부흥하게 하옵소서
합 3:2
완연한 봄입니다. 봄이 온 것을 제일 먼저 알게 해 주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봄꽃들입니다. 울타리에 노란 개나리가 활짝 피었고, 산자락에 분홍빛 진달래가 손짓을 합니다. 앞마당에 목련이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고, 길가에 벚꽃이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온 천지가 꽃 대궐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봄꽃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나뭇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색상이 무척이나 화사하다는 점입니다. 또한 함께 어우러져 핀다는 점입니다.
이런 특징들 때문에 봄꽃은 계절의 변화를 극적으로 드러내 보여줍니다. 춥고 길었던 겨울이 가고 새로운 계절 봄이 왔다는 것을 강열하게 드러내 보여줍니다.
저는 이 봄꽃들을 보면서 ‘부흥’을 생각합니다. 마치 겨우 내내 죽은 것같이 숨죽이고 있던 나무들이 봄꽃을 피우며 역동적인 생명활동을 다시 시작합니다. 나 죽지 않았다고, 나 아직 살아있다고 소리치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봄꽃들의 향연은 그야말로 ‘부흥의 축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인 안정환의 “봄을 기다리며”라는 시가 있습니다.
죽음이 아니었어요 새 생명을 꿈꾸는 오랜 침묵이었을 뿐
이제 동녘의 빛처럼 일어나 잠자던 시체들 깨우시고
신비한 생명 불어 넣으시며 초침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오세요 ...
메마른 가슴 외로운 가슴에 당신의 꽃 활짝 피는 날이면
아! 화사한 봄 날 작은 천국이지요.
시인은 겨우내 이 봄을 기다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봄의 생명의 축제가 펼쳐지기를 간절히 기도해온 것입니다. 한 마디로 부흥을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해온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 시인처럼 영적 부흥을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해 온 선지자의 기도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박국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드리워있는 기나긴 영적 겨울을 지나면서 어서 영적인 봄날이 오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주전 7세기 남왕국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기 직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선지자였습니다. 당시 바벨론이 앗수르를 멸망시키고 애굽과의 전쟁에서도 대승을 거두며 최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약소국 남왕국을 강력하게 압박해 왔습니다. 이제 남왕국은 언제 바벨론에게 멸망당할지 모를 상황입니다.
이런 엄중한 상황인데도 남왕국 유다는 내부적으로 타락이 극에 달했습니다. 통치자들은 하나님 앞으로 나가 기도하기 보다는 외교적으로 위기를 극복해 보려고 주변 강대국들에게 손을 벌려왔습니다. 그리고 강대국들에게 조공을 바치려고 백성들을 착취하고 압제했습니다. 잘못됐다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판하는 주의 종들을 잡아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볼 때 이런 상황은 그야말로 영적인 겨울이었습니다. 그것도 강력한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한 겨울이었습니다. 어디에서도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기도 소리가 그친지도 오래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래도 영적인 봄날을 꿈꾸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영적인 부흥을 갈망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하박국 선지자입니다. 그의 기도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부흥이란
하박국 선지자는 본문에서 부흥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박국 선지자가 기도하고 있는 부흥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에 부흥이라는 말이 이곳 단 한 곳에만 나온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부흥이라는 말을 참 많이 쓰고 있는데, 정작 성경에는 이곳 한 곳에서만 발견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 부흥을 말할 때 이 말씀을 성경적 근거로 사용하곤 합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가 생각하는 부흥이라는 개념과 오늘 성경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부흥이라는 개념이 과연 일치할까요? 대체로 부흥을 말할 때 교회 성장을 염두에 둡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교회의 재정이 늘어나고, 교회의 사역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것을 부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것은 부흥이라기 보다는 ‘왕성’, ‘번성’이라는 말이 적절할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이 말씀하는 부흥이란 무슨 뜻일까요? 히브리어 원어에는 “하야”라는 동사가 쓰였습니다. 이 하야라는 말은 영어로 번역할 때는 “revive”라는 말을 씁니다. 그러니까 “다시 살린다.”, “회생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할 때 다시 ‘부’(復)에 일으킬 ‘흥’(興) 즉 다시 일으킨다는 뜻으로 부흥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흥이란 겨우내 죽어있는 것 같은 나무들이 이 봄날에 꽃을 피우는 것처럼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잠자고 있던 영혼들이 다시 깨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침체되어있던 영혼들이 다시 활기차게 약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는 무엇을 부흥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까요? 본문을 보면 주의 일을 부흥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 일이란 한 마디로 말하면 말씀의 역사입니다. 말씀을 선포하시고 그 말씀을 이루시는 일을 말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지 않았다고 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들을 귀가 닫혀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우이독경’ 즉 소에게 말씀을 들려주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이 선포되었지만 저들이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하박국 선지자는 다시 말씀의 역사가 활발하게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에 반응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흥은 말씀의 역사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에 반응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의 역사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말씀의 역사가 다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영적 부흥이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영적 갈망
그러면 부흥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영적인 갈망이 일어나면서부터 부흥은 시작됩니다.
하박국 선지자 당시 나라가 멸망당하기 직전입니다. 정치 외교 문제가 엉망입니다. 나라 지도자들이 반복해서 외교에 실패해서 강대국들에게 농락을 당하고 있습니다. 경제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서 백성들이 먹고 사는 일이 너무도 힘에 겹습니다. 나라가 총체적으로 위기입니다.
이 때 선지자 하박국은 도대체 나라가 왜 이 모양이 되었는지 답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특히 답을 찾으려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로부터 그 답을 찾았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세상 백성들처럼 살아가고 있는데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박국 선지자는 올바른 영적 진단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박국은 영적 해법을 찾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적 부흥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 부흥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자신이 먼저 간절한 영적 열망을 가지고 기도를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토미 테니(Tommy Tenney) 목사님이 쓴 [갓 캐처스](The God Catchers)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안내해 주고 있습니다. 이분은 이 책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 반드시 가져야 할 영적 태도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배고픔’입니다.
이분은 이 책에서 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부흥의 선구자는 훌륭한 설교자도 아니요, 훌륭한 복음성가 가수도 아니다. 진정한 부흥을 태동시키는 선구자는 바로 우리의 '배고픔'이다."
그렇습니다. 영적 부흥은 영적 배고픔에서 시작됩니다. 영적으로 배고픔을 느끼는 사람들이 영적 부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시편 42:1을 보면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인은 지금 강렬한 영적 배고픔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인처럼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 때 우리에게 부흥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강렬한 영적 배고픔을 느낄 때 부흥은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암환자들을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이분들은 암 수술을 한 뒤 오랜 시간 항암치료를 견뎌야 합니다. 이 때 잘 먹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항암 치료의 후유증으로 식욕이 현격하게 감퇴됩니다. 입맛을 잃어버리게 돼서 입에서 음식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점점 몸이 쇠약해지고 결국 암과 싸움에서 이겨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영적으로 이런 상태에 있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영적인 입맛을 잃어버리고 있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영적인 배고픔을 잃어버리고 있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영적 배고픔을 육체의 배고픔과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육체의 배고픔은 먹지 않으면 느껴집니다. 한 끼를 거르면 배고픔이 느껴집니다. 두 끼를 굶고 하루를 굶으면 배고픔은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영적인 배고픔은 그 반대입니다. 말씀을 접하게 되면서 느껴집니다. 은혜를 받으면서 느껴집니다. 말씀을 접하지 않고 은혜를 받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 점점 영적 배고픔은 사라집니다. 세상 즐거움에 사로잡혀서 세상 것을 탐닉하다보면 영적 배고픔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인터넷 게임에 빠져든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영적인 입맛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TV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들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영적인 입맛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골프, 도박, 갖가지 취미에 중독 수준으로 젖어든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영적인 배고픔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 배고픔, 영적 갈망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인 배고픔을 더욱 강렬하게 느끼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역사
하박국 선지자는 부흥을 갈망하되 말씀의 역사로 일어나는 부흥을 꿈꾸었습니다. 합 2:1-2를 보면 하박국 선지자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 선지자가 꿈꾸는 그 부흥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답을 주시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하박국 선지자에게 답을 주셨습니다. 그 답은 바로 말씀을 기록하여 읽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의 역사가 나타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흥은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영적인 배고픔으로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령에 말씀으로 우리의 영적 배고픔을 채우시고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일어서게 해 주십니다.
시 119:50을 보면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그리고 119:107에서는 또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의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119:154에서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구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
분명히 시인은 말씀으로 그 영이 다시 살아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요즘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그야 말로 대세인 것 같습니다. 시청률이 드디어 30%를 넘었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보다 중국이 더 야단인 것 같습니다. 전체 드라마 시청률에서 압도적인 1위를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누적 조회수가 현재 46억이나 된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중국공안부가 한국 드라마가 위험하다고 경계주의보를 내리겠습니까?
한 40대 주부와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분이 이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송중기 때문에 잊고 살았던 로맨스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특히 송중기가 송혜교에게 한 대사를 듣고서 눈물이 다 났답니다. “뭘 할까요 내가 사과할까요? 내가 고백할까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대사가 자기 가슴을 뛰게 했답니다. “내 생각 많이 했어요. 난 많이 했죠? 남자답게...” 그러면서 이런 생각까지 했답니다. “하루라도 이 남자하고 살아봤으면 좋겠다.”
이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저는 많이 놀랐습니다. 드라마가 사람에게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구나! 그리고 드라마 대사가 잠자던 마음을 깨우는 구나!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씀의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람의 말, 그것도 허구로 만들어진 말 한 마디로도 이렇게 잠자던 감정을 깨우고, 잊혀졌던 삶의 활력을 되찾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놀라운 능력이 있을 것인가?
느 8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건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학사 에스라가 모세의 율법을 가져와 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께 경배하고 말씀을 읽었습니다. 율법교사들이 그 말씀을 풀이해서 설명했습니다.
그 때 일어났던 일을 느 8:8-9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깨닫게 하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 지라...”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 반응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말씀을 듣고 다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흥은 말씀의 역사로 이루어집니다. 말씀을 들을 때 깨달아집니다. 그리고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때로는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삶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영혼이 깊은 잠을 자고 있지는 않습니까? 영적 배고픔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을 들어도 감동이 없지 않습니까? 영적 부흥이 필요합니다. 마치 긴 겨울이 지나고 봄꽃이 만발하듯 우리의 심령에 새로운 계절이 찾아와야 하겠습니다.
새봄을 맞아 우리 교회는 창립 60주년 기념 신앙사경회를 개최합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강사님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여러분 사모하는 마음으로 참여하셔서 영적 부흥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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