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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길 민 27:12-23

지도자의 길

 

민 27:12-23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을 마칠 때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느덧 광야생활을 한 지 40년이 되었습니다. 저들이 요단 강 동편 모압 평지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아바림 산에 오르게 하셨고, 저 멀리 가나안 땅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세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지난 날 므리바 물 사건 때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그 말씀을 듣고 보통 사람들이 하기 힘든 기도를 드립니다. 자기가 죽은 후 자기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갈 지도자를 세워달라고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에게 여호수아를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울 절차를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웠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가 걸어야 할 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영적 지도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청지기의 길

   본문 12-13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이 돌아간 것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제 지도자의 역할을 끝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세상에서의 삶도 그만 끝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말씀일까요? 지난 40년 오로지 가나안 땅만 바라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땅을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들어가지 못한다니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그래서 신 3:24-25를 보면 모세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였사오니 천지간에 무슨 신이 능히 주의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그렇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끝내 거절하셨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지도자로서의 사역은 거기까지라고 못 박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된 것은 모세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출 3장에서 보듯이 나이 80의 노인이 된 모세, 40년 동안 모든 꿈과 야망을 접고 광야에서 양을 치며 살고 있던 모세는 갑작스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지도자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없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고, 무엇보다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사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요한 설득과 명령에 어쩔 수 없이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기는 원치 않았지만 지도자의 사역을 끝내야 했습니다. 더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단호하게 끝내라 하시기에 어쩔 수 없이 지도자의 길을 끝내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도자의 길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자기가 하기 싫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뿐 아니라 자기가 더 하고 싶다고 더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자기가 그만 하고 싶다고 그만할 수 있는 것 역시 아닙니다.

   

  이번 총선은 그야말로 이변이었습니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넉넉히 과반은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여당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분열로 19대 의석을 지켜내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던 야당은 기대 이상의 결과에 놀라고 있습니다. 정치 전문가라는 사람들, 여론조사 전문가라는 사람들, 언론 관계자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에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고 있습니다.

  이 결과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롬 13: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모든 지도자는 다 하나님께서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도자들의 권세도 다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은 겸손해야 합니다. 자기가 대단하기 때문에 권력을 얻게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택하셔서 권력을 일정 기간 위임하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권력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내려놓아야 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합니다. 그 권력을 더 오래 누리려고 저항을 한다면 크게 다치게 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은 청지기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일정 기간 하나님께서 주신 리더십을 위임 받아 섬기다가 때가 되면 뒤돌아보지 말고 내려놓아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지도자의 길은 청지기의 길입니다. 맡겨주실 때

순종 하며 맡고, 거두실 때 역시 순종하며 깨끗하게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2. 섬김의 길

   본문 15-17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이르되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모세가 하나님께 지엄한 말씀을 듣고 드린 기도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듣고 드린 기도입니다. 이제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죽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드린 기도입니다. 그 기도의 내용이 한 마디로 백성을 위한 기도입니다. 자기가 죽고 나면 백성들이 지도자 없이 헤맬까봐 자기를 대신할 지도자를 세워달라는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제 자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일 제가 이 상황이라면 어떤 기도를 드렸을까? 우선 제 영혼을 부탁하는 기도를 드렸을 것 같습니다. 무사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주님 품에서 영원복락을 누리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을 것 같습니다. 두고 가는 제 아내와 가족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을 것 같습니다. 저 뿐 아니라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달랐습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두고 가는 가족들을 위한 기도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지금까지 40년 간 섬겨왔던 백성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든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섬김에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지도자의 길은 섬김의 길입니다. 모세가 마지막 순간에도 마음을 다해 이스라엘 백성을 위했던 것처럼 지도자의 길은 섬김의 길입니다.

 

  금번 중국선교 여행 차 하남성 개봉을 다녀왔습니다. 우리가 이 지역 농촌교회 사역자를 지원하고 있어서 어려운 교회사정을 돌아보고 그 사역자를 격려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곳까지 찾아간 것입니다.

  마침 개봉에 간 김에 ‘포공사’라는 곳을 들렸습니다. 이곳은 송나라 시절 유명한 판관 포청천의 사당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무려 1000년 전 사람을 사당을 만들어 기리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황제도 아니고 고관대작도 아닌 한 벼슬아치를 이토록 숭배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송나라는 부패가 만연하여 백성들이 살기 힘이 들었습니다. 특히 재판이 공정치 못해서 백성들에게 억울한 일이 많았습니다. 한 예로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이 고소하려면 반드시 아래 벼슬아치에게 고소문을 올려야 했습니다. 그러면 저가 보고 선별해서 판관에게 재판을 청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벼슬아치들이 권세를 부렸습니다. 돈을 많이 주면 상소를 올리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묵살해 버렸습니다. 포청천이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들이 직접 북을 쳐서 고소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에 사회가 부패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만연했습니다. 그리고 판관들보다 높은 세도가들은 재판에 막강한 영향을 행사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억울함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었습니다.

   포청천이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여 황제의 재가를 받았습니다. 사형을 실행하는 작두를 세 종류로 만들었습니다. 서민용으로 개작두, 권력자들과 가진자들 용으로 호작두, 그리고 황족들을 위한 용작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재판 절차를 달리해서 부정부패가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어 황족들이 죄를 범했을 때 증거가 충분하고 증인들이 확실하면 일단 용작두로 처형을 먼저하고 재판기록을 추후에 남기도록 했습니다. 재판과정에서 황실의 입김이 작용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포청천이 추진했던 사법제도는 한 마디로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늘 그의 가슴에는 백성들을 위하려는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정말 백성들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그토록 존경과 사랑을 받았고, 오늘까지 저토록 추앙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도자는 늘 따르는 사람들, 자기가 섬기도록 위임을 받은 사람들 그들을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들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포청천이 한 때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간청과 나라의 부름을 받자 그는 다시 벼슬자리로 나왔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고사에 나오는 사자성어 한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선공후사’(先公後私)라는 말입니다. 공익을 앞세우고 사리를 뒤로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지도자는 섬김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모세처럼 백성을 먼저 생각하고 온통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3.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길

   오늘 본문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한 가지 걱정이 생겼습니다. 지도자인 자기가 죽고 나면 이스라엘 백성을 누구 이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걱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자기를 대신할 지도자를 세워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당시 모세는 모든 일을 끝내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갑작스럽게 명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더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청도 거절당한 상태에서 끝을 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끝내고 떠나면 그만입니다. 그 뒷일은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달랐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 이 순간에도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했습니다. 특히 자기가 떠난 후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의 행군을 계속하도록 하기 위해 자기가 할 일을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후계자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모세는 지난 40년 동안 다음 지도자를 세우는 작업을 해 왔습니다. 출애굽 당시 모세는 젊은 여호수아를 차세대 지도자로 마음에 담아 두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르비딤 골짜기에서 아말렉과 전쟁할 때 이 백성을 이끌고 아말렉과 전쟁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홀로 시내산에 오를 때 여호수아만을 대동했습니다. 이미 지도자로 세우기 위해 훈련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자기를 대신할 지도자를 세워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모세가 그동안 다음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볼 때 주의 사역은 마치 계주와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사람이 바턴을 받아 자기가 달려갈 길을 잘 달리고 난 후에 다음 사람에게 그 바턴을 잘 이어주어서 계속 사역이 이어지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 바턴을 받아 자기가 달려갈 길을 잘 달릴 뿐 아니라 다음사람에게 바턴을 절 전해주는 데까지 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신앙사경회 강사로 다녀가신 김동호 목사님께서 자랑삼아 하신 말씀이 제 마음 속에 남았습니다. 이분은 동안교회를 목회하신 일이 있는데 3대째 바턴터치가 잘 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송치헌 목사님이라는 분이 이 교회를 오랫동안 목회하시면서 부흥시키셨고, 당신이 바턴을 받아 이 교회를 더 크게 부흥시키셨고, 다음으로 김형준 목사님이 바턴을 받아 지금 목회를 하고 있는데 당신이 목회하실 때보다 교회가 더 크게 부흥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동안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교회도 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창립할 때부터 주의 종들과 믿음의 선배들이 바턴을 잘 이어주셨습니다. 특히 고 주관준 목사님께서 교회를 부흥시키신 후에 최대준 목사님께 바턴을 넘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최대준 목사님께서 더 부흥시키신 후에 제게 바턴을 넘겨주셨습니다. 감사하게도 그 후에 교회가 부흥해왔습니다. 이제 이후로도 우리 교회가 계속 부흥하고 또 이 바턴을 잘 넘겨주어야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남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바턴을 잘 넘긴다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끝까지 충성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도중에 하차를 한다든지 다른 생각을 품는다든지 할 경우 바턴을 잘 넘길 수가 없습니다.

   저는 성경의 인물 가운데 ‘데마’라는 사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성경에 세 번 그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그 이름이 나타날 때마다 이 사람을 소개하는 표현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몬 1:24에 그 이름이 등장합니다. “나의 동역자 데마”라고 되어있습니다. 당시 사도 바울과 함께 주의 일에 충성을 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골 4:14에 그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런 수식어가 없습니다. 그냥 “데마”라고만 나옵니다. 처음보다 그 충성이 약해졌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딤후 4:10에 그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때는 바울을 버리고 세상으로 도망한 배신자로 그 이름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모세는 달랐습니다. 처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부터 40년 동안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동안 한 결 같이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 모든 짐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충성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도자의 길은 충성하는 길입니다. 그것도 끝까지 충성해야 하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오늘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크고 작은 지도자로 세움을 받습니다. 어떤 지도자의 길을 걸어갈 것인지 깊이 생각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세처럼 청지기임을 잊지 말고 섬김의 사역을 끝까지 충성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