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지혜
전 11:1-8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 이 시대를 일컬어 ‘불확실성의 시대’라고들 합니다. 1975년 미국의 경제학자 존 갤브레이스라는 분이 이 제목으로 책을 썼고, 이것이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뒤부터 이 책 제목을 따서 현대를 불확실성의 시대라고들 말합니다.
인간의 삶에는 늘 불확실성이 있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를 아예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변화가 너무 빠르고 그 변화의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이 나타나 세상을 이렇게 뒤바꿔놓을 줄 누가 알았습니까? 예측하지 못했던 소니, 노키아, IBM 같은 세계를 호령하던 기업들이 도태되지 않았습니까? 이제 인공지능의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많은 직업이 없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또 많은 기업들이 도태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인공지능의 시대라는 것이 언제 어떤 형태로 도래하게 될 것인지 그리고 우리 삶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누구도 제대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시대를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불확실성이 과거와 달리 복잡한 형태를 띠고 있어서 예측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구촌이라고 부를 정도로 전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있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면 이것이 전 세계로 금방 파급됩니다.
예를 들어 2008년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 하자 엄청난 파급효과가 일어났습니다. 소위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나전 세계의 금융권이 몸살을 앓았습니다. 미국과 중동의 미묘한 힘겨루기로 기름 값이 폭락하자 전 세계 경제가 한 차례 홍역을 치루고 있습니다. 이제 곧 있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가 전 세계 경제에 자칫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우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문제입니다. 남의 나라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저 앉아서 고스란히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나 우리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도무지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불확실성의 시대라고들 합니다.
오늘의 현대인들은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모두가 크고 작은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 때문에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안절부절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불안 때문에 만성적 스트레스로 고생하고 있고 크고 작은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특히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정말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가 그 답을 오늘 본문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전도서는 전도자 솔로몬이 쓴 지혜서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이 책에는 장소를 의미하는 용어 하나가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바로 ‘해 아래에서’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저 하늘과 대조되는 이 세상을 말합니다. 유한하고 제한적인 존재들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해 아래에서 인간이 살아가면서 결국 겪게 마음 상태를 의미하는 용어 하나가 또한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바로 “헛되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해 아래에 사는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전도서는 이 두 용어를 통해서 해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해 아래에 살면서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인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해 아래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겪게 되는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불확실성입니다.
2절을 보면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사람이 해 아래에서 살면서 언제 어떤 재앙을 당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6절을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우리가 살아보려고 노력하지만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도자가 인생을 살아보니 해 아래에서의 삶은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떤 재앙을 당할지 예측할 수 없고, 자기가 노력하는 일들이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불안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도자는 이렇게 불확실성 속에서 불안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권면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투자를 하라
본문 1절을 보면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배로 무역하는 상황을 배경으로 한 것입니다. 배에 상품을 싣고 출항을 시키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그 배가 돌아올 때 돈을 벌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배를 띄워 출항을 하면 풍랑 때문에 배가 침몰하면 어떻게 하나, 해적을 만나서 다 빼앗기면 어떻게 하나 불안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믿음으로 출항을 시켜야 한 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불확실성 시대에 사람들은 투자를 머뭇거리게 됩니다. 자칫 돈을 버는 것은 고사하고 투자금마저 다 날려버릴 것을 염려해서입니다. 그러다보면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그저 한 달란트만 가지고 주인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투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을 믿고 투자해야 합니다.
본문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언제 어떤 재앙이 닥칠지 모르니 재물을 손에 쥐고만 있지 말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확실성 시대에 사람들은 지갑을 잠급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가진 것을 나누려고 하지 않습니다.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손에 돈을 쥐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해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 19:1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주시리라”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는 것은 하나님께 투자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필요할 때 하나님께서 이자까지 붙여서 더 크게 갚아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마 10:42을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작은 자에게 사랑의 손을 펴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반드시 상으로 갚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는 아직 헌당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세계 선교하는 일 중단하고 또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을 중단하고 그 돈을 일단 교회 빚 갚는 일에 투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해 아래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해 아래의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내부적으로 긴축을 하고 절약하면서도 선교하는 일과 구제하는 일은 결코 줄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투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말 3:10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나님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한국교회 미래지도라는 책을 보면 근자에 한국교회에 헌금이 줄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십일조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선 소득이 줄어서 십일조가 준 것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안한 미래와 노후를 생각하면서 십일조를 중단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은퇴자들이 십일조를 중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믿음의 투자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에 성실하라
본문 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 바람 없는 좋은 날 씨를 뿌리겠다고 바람을 살피는 사람은 씨를 뿌리지 못할 것이고, 비가 오지 않는 날 추수하겠다고 구름을 살피는 사람은 추수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농사지을 때 풍세도 살펴야 하고 구름도 바라봐야 합니다. 농사지을 때 날씨는 매우 중요한 요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이런 환경 요소가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환경 탓하며 자기의 불안을 감추기도 합니다. 환경 탓하며 자기의 게으름을 핑계하기도 합니다.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부스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콜럼부스가 위대한 것은 그가 신대륙에 이르렀다는 것에 있지 않고 신대륙을 향해 닻을 올렸다는 것에 있다.”
당시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고 영국과 네덜란드에는 신대륙 발견의 꿈을 꾸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씨 탓하고 거센 바다의 풍랑 탓하며 주저주저하다가 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콜럼부스는 풍세만 살피지 않았습니다. 구름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를 다했습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닻을 올렸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콜럼부스와 같은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불확실한 시대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한 뒤에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고 닻을 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완벽한 환경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려보지만 그런 환경은 이루어지기 어렵고, 그런 환경이 이루어지면 이미 때가 늦을 경우가 많습니다.
본문 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아침에도 씨를 뿌리고 또한 저녁에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아침에 씨를 뿌린 것이 풍성한 소출을 가져다줄지 저녁에 가꾼 채소가 풍성한 소출을 가져다줄지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말콤 글래드웰이라는 분이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전문가로서 성공한 사람들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빌 게이츠를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빌 게이츠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남다른 좋은 환경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좋은 환경 아홉 가지를 들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부유한 부모를 만나서 좋은 사립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운 좋게 남들 접할 수 없는 컴퓨터를 마음껏 쓸 수 있었고, 고등학교에서 역시 수업시간을 빼먹고 컴퓨터 프로그램 짜는 것을 용납해 주었다는 것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좋은 환경이 저절로 빌게이츠를 성공하게 해 준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좋은 환경에서 편히 놀며 지낼 수 있었지만 그는 남다른 노력을 쏟아 부어 남다른 성공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불확실성 시대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어떤 환경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맞아 최선을 다할 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주어진 오늘에 성실할 때 소중한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심판의 날을 생각하라
본문 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캄캄한 날이 많으리니 그들을 생각할지로다” 그리고 9절을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불확실한 날들이 우리 앞에 있지만 결국 그 날들도 다 지나갈 것이고 우리가 생을 마치는 날이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불확실한 시대에 사람들은 앞날을 예측해 보려고 무던히 애를 씁니다. 그래서 미래학이라는 학문에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서점에 가보면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다양한 전문 분야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이야기들을 쏟아놓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한 편으로 불확실한 시대에 성업하는 곳이 점을 보는 곳이라고 합니다. 수능을 앞두고 입시생 학부모가 많이 찾고,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많이 찾는 답니다. 근자에는 기업의 CEO 들 가운데 점집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허망한 일인 줄 알면서도 점집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앞날을 예측해 보려는 것은 나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남보다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해서 대비한다면 오늘을 남보다 성공적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앞날을 내다보려고 하되 너무 근시안적이라는 점입니다. 우리 인생 끝자락까지 내다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인생 이후까지 내다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미래를 내다보았다고 해도 참된 성공을 이루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라고 하면 우리 시대의 영웅이라고 불리는 인물입니다. 남들이 보지 못한 미래를 내다보며 선도적으로 길을 걸으며 큰 성공을 거둔 사람입니다. 애플이라는 퍼스털컴퓨터를 만들어 컴퓨터 시대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었고, 아이폰을 만들어 스마트폰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패드와 같은 앞서가는 제품들을 선보이면서 세상의 변화를 주도해갔습니다. 그야말로 그는 불확실한 시대의 영웅이라고 불릴만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희귀암 발병으로 건강 문제로 큰 고통을 겪으며 살았습니다. 2004년 췌장암 수술을 받았고, 2009년에는 간이식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다 2011년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시대의 앞을 내다보았을지는 몰라도 자신이 맞게 될 캄캄한 날 그리고 심판의 날은 내다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독실한 믿음의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그는 불교의 참선에 심취했고, 제대로 된 가정도 꾸리지 못했고, 그 많은 재산 허망하게 남기고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며 오늘을 잘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태풍처럼 지나갈 불안한 미래 너머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날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내다보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같이 해 아래에서 살지만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투자를 해야 합니다.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심판의 날을 생각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이 불확실한 시대를 그리스도인으로 잘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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