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거하라
요 15:1-8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비유의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포도나무 비유”라고 일컫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농부시고, 예수님은 포도나무시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가지는 열매를 많이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이런 좋은 가지야 말로 참된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지에 열매가 많이 맺게 하기 위해 수고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라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가지는 스스로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잘 붙어있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왜(why)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 비유의 말씀을 하셨을까요? 우선 예수님께서 언제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셨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신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바로 앞 절인 14:31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그런데 그 앞 요 13장-14장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시면서 행하신 일과 하신 말씀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최후의 만찬을 마치시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본문을 포함해서 요 15장과 1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긴 설교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요 17장을 보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장면이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신 뒤 기도하시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신약을 연구해 온 고뎃이라는 성경학자는 특히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 근처 포도나무 과수원 곁을 지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일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제자들과 작별을 하셔야 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후에 잡히셔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이 제자들과 헤어지기 전 마지막 시간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당부하실 말씀을 집중적으로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 시점에서 이 포도나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 곁을 떠나신 뒤 홀로 남아있을 때 제자들에게 제자들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바로 제자들은 포도나무의 가지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사실 지난 3년 동안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자기들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한 시도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자기들 곁을 떠나신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자기들이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자기들은 누구인가에 대해 혼란이 일어날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들이 누구인지를 그림과 같은 비유로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설명해 주신 그림 같은 이미지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철저하게 붙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지에는 주렁주렁 포도송이들이 달려있습니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씀하실 그런 포도나무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미지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면서 앞으로 이런 가지들이 되라고 당부하고 계신 것입니다.
1971년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에서 주목할 만한 실험을 했습니다. 신문광고를 보고 24명이 실험에 참가했습니다. 이들을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룰에 따라 2주 동안 12명은 간수 역할을 그리고 다른 12명은 죄수역할을 하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선량한 시민이기 때문에 서로 잘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간수 역할을 한 사람은 갈수록 권위적이고 강압적이 되고, 죄수 역할을 한 사람은 갈수록 눈치를 보며 비굴해져 가더라는 것입니다. 1주일이 지나자 간수 역할을 맡은 사람은 정말 간수처럼 변하고, 죄수 역할을 맡은 사람은 죄수처럼 변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 실험을 진행하지 못하고 1주일 만에 끝냈다고 합니다.
이 실험은 사람이 자기를 누구라고 생각하며 사느냐에 따라 인격도 삶도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실험으로 유명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어떤 셀프 이미지를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그렇게 변해 간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분을 보았습니다. 제 선배 목사님입니다. 이분은 3대째 목사인데 어려서 할머니가 예언하듯 “너는 정말 훌륭한 목사님이 될 거야” 하는 말씀을 듣고 자랐답니다. 그리고 늘 그렇게 되도록 축복기도를 받으며 자랐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안에는 훌륭한 목사의 셀프 이미지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답니다.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목사가 되어가고 있는 자기를 확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제자들에게 좋은 제자의 셀프 이미지를 가지게 해주신 것입니다. 포도나무에 잘 붙어있는 가지, 그리고 주렁주렁 열매를 맺은 가지 같은 좋은 제자라는 셀프 이미지를 가지게 해 주신 것입니다. 실제로 이 말씀을 들었던 제자들 모두가 이런 포도나무 가지와 같은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도 우리 마음속에 이런 셀프 이미지를 고이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포도나무 가지이다. 포도나무에 잘 붙어있어서 주렁주렁 열매를 맺은 포도나무 가지이다.” 그리고 모두가 이런 포도나무 가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what)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제자들에게 당부하고자 하신 말씀은 무엇일까요?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원어성경을 보면 15장에 이 표현이 무려 13번이나 나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서 제자들에게 앞으로도 계속 예수님 안에 거하라고 강조 또 강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은 어폐가 있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곁에 계시면서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신다면 몰라도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텐데 내 안에 거하라고 하시는 것은 어폐가 있어 보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이 사람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곁에 있을 수는 있어도 피차가 서로의 안에 있다는 말은 어폐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면 내 안에 거하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한 마디로 영적인 연합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거하시는 것과 같은 영적 연합의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3년 동안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했지만 아직 영적인 연합의 단계에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인간관계의 연합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께서 저들 곁을 떠나시게 되면서 제자들과는 영적인 연합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이것을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바로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영적 연합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나무에 붙어서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안에서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도의 실천입니다. 본문 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한 마디로 말하면 제자들이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특별히 언어라는 도구를 주셨습니다. 말로 의사소통하고 서로 교제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만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로 하나님과 소통하고 교제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오직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인간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늘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셨습니다. 대표적으로 요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이렇게 기도로 교제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 가운데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누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이렇게 주님과 기도 가운데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기도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도는 특별한 시간과 장소에서 드리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하나님께 나의 소원을 아뢰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물론 그런 기도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본질은 주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드리고, 내 생각을 아뢰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묻고,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 안에서 주님과 영적 교제를 맺는 것이 우리가 주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가지로서 더 철저하게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하겠습니다.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더 철저하게 기도 안에서 주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한 마디로 말하면 제자들이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늘 아버지의 뜻을 생각하셨고 아버지께서 명하신 말씀을 철저하게 지키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신다고...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바로 우리가 주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선 우리 안에 주의 말씀이 거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경청하고, 말씀을 읽고, 말씀을 공부하고, 그리고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의 심령 속에 주의 말씀이 거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말씀을 지키려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 안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있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How)
그러면 우리가 주 안에 있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포도나무 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본문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한 마디로 우리가 주 안에 거하면, 가지로서 포도나무에 붙어있으면 우리는 열매를 많이 맺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4절 말씀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우리가 주 안에 거하지 않고서는 결코 우리 힘으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고는 자기 힘으로는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전도의 열매를 맺어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성령의 9가지 열매와 같은 인격의 열매를 맺어보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교회를 부흥시켜보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기도의 응답을 받아보려고 부르짖고 몸부림치며 기도에 주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듯이 안 됩니다. 힘 만들고 열매가 맺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주 안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열매는 가지 스스로 맺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가 맺게 해 주는 것입니다. 뿌리를 통해 양분도 제공해 주고 물도 제공해 주기 때문에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지는 다만 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나무가 열매를 맺게 해 주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말씀대로 순종만 하면 교회는 주님께서 부흥시켜주십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말씀대로 순종만 하면 전도는 주님께서 열매 맺게 해 주십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말씀대로 순종만 하면 우리의 인격도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말씀대로 순종만 하면 다양한 신앙생활의 열매도 주님께서 풍성하게 얻을 수 있게 해 주십니다.
특히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가 두 가지 확실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는 기도 응답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 거할 때 우리가 주님께 구하는 것을 주님께서 들으시고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 기도 자체보다는 기도하는 내가 주 안에 거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주 안에 거하지 않은 채로 기도할 때 응답을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말씀의 역사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 거할 때 우리가 말씀을 지키면 그 말씀이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안에 거하면서 말씀의 역사를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 안에 거하지 않은 채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 안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있습니다. 바로 기쁨입니다. 11절을 보면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주 안에 있어서 열매를 많이 맺게 되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데 그 기쁨이 우리의 심령 안에 전해져서 정말 큰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 안에 거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있는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나무에 잘 붙어있는 것입니다. 바로 주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기도 안에서 주님과 영적 교제를 나누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열매는 주님께서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모두 주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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