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0:1-9 2012.7.29.(일)
좋은 일은 기도로 시작됩니다
7월 마지막 주일, 일년중 가장 무더운 때입니다. 사람들은 이럴 때 산으로 강으로 피서를 떠납니다. 여러분도 피서를 계획하셨습니까? 이현주가 쓴 “쉼표가 주는 여유”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은 우리가 지금 쉬어야 되는 상황인지 아닌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도 소리만 들릴뿐 마음에 감동이 흐르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식구들 얼굴을 마주 보고도 살짝 웃어 주지 못한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아침에 눈을 떳을 때 창문을 비추는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때입니다.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를 받고 바쁘다는 말만 하고 끊었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기 위해 한 번 더 뒤돌아 보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해당합니까? 뭔가 쉬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일만 하는 세상에서 쉬는 것은 시간 낭비요 경쟁에서 뒤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우리는 여가를 위해 쉬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쉬어야 합니다. 쉬지 않으면 우리가 살 수 없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잘 쉬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도하면서 쉬는 것입니다. 저는 여름이면 언제나 한 두 주간씩 조용한 기도원에서 쉬면서 기도했습니다. 작년에도 어느 기도원에 가서 한 주간 있었는 데 너무 좋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도하고 성경을 읽기 시작합니다. 평소에 읽지 못했던 성경을 통독합니다. 두 어 시간 읽으면 많이 읽습니다. 읽다가 은혜가 되면 조용히 묵상합니다. 그리고 느낀 바를 노트에 적습니다. 성경을 읽은 다음에 산에 오릅니다. 기도원을 둘러싸고 있는 산은 대부분 높지 않습니다. 산에 오르면 온통 산은 찬양의 메아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매미소리, 풍뎅이 소리, 잠자리, 산 새 소리, 바람소리, 산은 온통 살아있는 것들의 합창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내려옵니다. 점심식사를 하고 잠시 쉽니다. 두 어 시간 푹 자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독서를 시작합니다. 평소에 읽지 못했던 책들, 특히 고전이 좋습니다. 고전은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책입니다. 기독교 고전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거스틴의 “참회록”, 존 번연의 “천로역정”, 토마스 마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입니다. 요즘 유명한 기독교 작가 유진 피터슨, 필립 얀시, 오스왈드 챔버스, C.S. 루이스의 책도 좋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메모해 둡니다. 그리고 저녁식사후에 묵상기도를 시작합니다. 편한 자세로 앉아 침묵으로 기도하다가 힘이 나면 소리내서 기도하고 다시 침묵으로 기도하고 생각나는 사람들, 교회, 사역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면 두어 시간이 지나갑니다. 그리고 저녁에 일기를 쓰고 잡니다. 정말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몸을 피곤하게 하는 세상적 휴가보다 영혼을 맑게 하는 영적 휴가가 좋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렇게 기도하면 살았던 한 사람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고넬료입니다. 1절 읽겠습니다. 행10: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오늘의 주인공 고넬료는 로마의 백부장이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지중해 전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는 데 이스라엘도 주후 6년부터 총독을 보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총독부는 가이사랴에 있었고 군대도 거기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군대의 가장 기본 단위는 100명이었습니다. 이 100명이 6개 모여 600명, 한 중대를 이루고, 600명이 10개 모여 6000명, 한 대대를 이루었습니다. 백부장은 100명의 군대를 이끈 사람이 우리로 말하면 소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떻게 했습니까? 2절입니다. 행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이것은 사실 놀라운 기록입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백부장인데 그가 자기 나라 종교를 믿지 않고 이스라엘의 종교를 믿었다는 것입니다. 본래 로마인은 로마인이 믿는 종교가 있습니다. 로마의 종교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다신교입니다. 로마는 여러 신을 믿었습니다. 심지어 황제도 신이었습니다. 하도 여러 신을 믿었기 때문에 지금도 로마에 가면 만신전이 있습니다. 그들이 믿은 수많은 신들을 모신 신전입니다. 또 하나는 국가종교입니다. 로마는 국가에서 정해준 신만 믿었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으면 반국가적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로마장교로서 로마의 신을 믿지 않고 이스라엘의 신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쉬운 일입니까? 만일 황제가 이것을 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고넬료의 성공과 출세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황제를 신으로 믿는 나라의 장교가 자기 나라 신을 믿지 않고 식민지 국가의 신을 믿는다면 황제가 좋아하겠습니까?
이것은 요즘 우리가 당면한 상황입니다. 최근 한 대법관후보가 국회에서 종교문제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울산지방법원 원장인 김신 후보입니다. 이 분에 대하여 일부 국회의원들이 제기한 문제는 그가 지나치게 기독교 편향이라는 것입니다. 김후보는 기독교인 소송 당사자들을 재판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고 자신도 아멘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재판중에 특정종교의 기도를 부탁하고 아멘까지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가 지난 6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판사로서 자격을 갖췄다 하더라도 그 결재권자는 하나님에게 있다”고 말했는 데 결재권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에게 있는 데 대법관 후보가 하나님과 시민을 착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걸음 나아가 그가 울산 성시화 운동에도 깊이 관여해 울산기독기관장회 창립도 서두르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참 어이없는 발언입니다. 대한민국에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을 모릅니까?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이 믿는 신앙대로 말하고 표현할 수 있는 데 누가 그것을 막습니까? 불교, 카톨릭은 되는 데 기독교만 안된다는 것입니까? 그렇게 종교에 대하여 공정하다면 최근에 불교단체인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 기독교를 여러모로 힘들게 하는 종교편향은 바로 잡지 않습니까? 지난번 당선된 기독교 국회의원 수가 전체 국회의원의 70% 가량됩니다. 그들이 정말 믿음대로 살고 믿음대로 정치한다면 이 나라가 이렇게 될까요? 왜 자신은 믿음대로 안 살려면서 제대로 믿음대로 살려는 사람을 문제삼습니까?
이 시대에 고넬료가 필요한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손해볼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자신만 믿는 것이 아니라 2절 보면, 온 집안과 함께 믿었습니다. 믿을 뿐 아니라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했습니다. 기도와 삶이 함께 간 사람,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신앙을 선택하지 않고 진리를 위하여 신앙을 선택한 사람, 믿을 뿐 아니라 항상 기도하고, 항상 기도할 뿐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구제한 기도와 실천의 조화를 이룬 사람, 그가 고넬료였습니다. 우리 중에 공직자가 있습니까? 여러분은 혹 근무지에서 예수믿는 것을 숨깁니까? 여러분의 상관이 불교신자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동료가 비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내가 장로인 것을, 내가 집사, 세례교인 것을 숨기지 않습니까? 혹시 그들과 함께 식사하러 가서 그들이 볼까봐 기도도 않하고 식사하지 않습니까? 고넬료를 통해 깨달으십시오. 신앙은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지금이 로마 시대처럼 황제숭배를 강요하는 시대도 아니잖습니까? 예수믿으면 감옥에 집어 넣겠다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왜 직장에서 안 믿는 척 하고 집사 아닌 척하고 앤티 기독교 이야기만 나오면 함께 맞장구칩니까? 127년의 역사속에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무엇을 그렇게 못했습니까? 고넬료를 통해 배워야 합니다. 2절, 행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나님이 믿음있는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사용합니다. 이 엠 바운즈가 <기도의 능력>에서 말했습니다. “사람은 더 나은 환경을 찾지만 하나님은 더 나은 사람을 찾으신다”. 역사를 바꾼 것은 환경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왜 사도행전 10장에 고넬료 이야기가 나오느냐 하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자리를 역사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행전 28장에서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도착할 때를 학자들은 주후 60년으로 봅니다. 그 뒤 바울은 2년간 재판을 기다리다가 주후 63년에 유죄판결을 받고 감옥에 갇혀 그 다음 해인 64년에 네로에 의해 죽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주후 60년에 로마에 도착해 보니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있었습니다. 롬16장에 보면 그때 믿었던 주요 그리스도인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실명만 36명입니다. 그것도 누구 누구의 가정, 누구 누구의 형제 이렇게 나오니까 실제로는 훨씬 많은 그리스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군지 롬16장에 나옵니다. 롬16장 1절, 자매 뵈뵈, 3절,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 5절, 에배네도, 6절, 마리아, 7절, 안드로노고, 유니아, 그래서 23절까지 모두 39명, 이들중 상당수는 바울 이전에 예수믿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들은 누가 전도해서 예수님 믿은 것입니까? 우리는 바울이 로마에 처음 온 줄로 알았는 데 알고보니 누군가 먼저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하고 보았더니 롬16장에 나옵니다. 누가 바울보다 먼저 온 것일까요? 고넬료입니다. 오늘 행10장에서 고넬료가 베드로를 만난 것을 학자들은 주후 47년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13년 차이가 납니다. 고넬료가 베드로 만나서 예수믿고 회심한 지 13년, 그 사이, 고넬료는 이스라엘 근무를 마치고 로마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후 60년 바울이 로마에 도착할 때까지 약 10년 이상, 그는 전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있었습니다. 특히 군인들, 정치인들, 사회 저명인사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고넬료가 먼저였습니다. 하나님의 오묘한 계획이었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기전에 고넬료를 택하사 베드로를 통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시고 로마 구원을 위해 사용하신 하나님, 그래서 행10장은 11장에서 생긴 안디옥교회 선교를 위한 준비과정이었습니다. 성경이 괜히 행10장에서 고넬료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로마 구원을 위해 미리 고넬료를 준비한 것입니다. 그 능력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3-4절을 보십시오. 행10:3-4, “하루는 제 9시쯤 되어 환상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 되었으니”. 다같이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 되었으니”.
여러분은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요일5:14절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구하면 들으십니다. 필립 얀시는 <기도>라는 책에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든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지만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으신다”. 기도의 응답을 우리가 원하는 데로 될 수도 있고 원하지 않는 대로 될 수도 있습니다. 즉각 응답할 수도 있고 천천히 응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다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기억하셨다”는 말은 헬라어로 “므네모쉬논”입니다. 이 말은 “기념물”, “기념비”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반드시 거기에 맞는 기념물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아브라함이 아들을 위하여 25년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삭을 기념물로 주셨습니다. 모세가 40년간 호렙산에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민족 지도자의 기념물을 주셨습니다. 한나가 오랫동안 자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때가 되자 한나에게 사무엘을 기념비로 주셨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 성전건축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이 다윗에게 황금빛 성전을 기념비로 주셨습니다. 느헤미아가 이국땅 페르시야에서 조국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아름다운 성벽과 성전을 기념비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쓰시고 기도하면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기도하는 사람을 쓰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전도한다는 것입니다. 행10장에서 중요한 것은 고넬료가 기도하는 거의 같은 시간에 베드로도 기도했다는 사실입니다. 9절을 보시겠습니까? 행10:9,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간은 제 육시라”. 9절의 첫 단어 “이튿날”이 중요합니다. 언제로부터 이튿날입니까? 고넬료가 환상을 보고 종들을 욥바로 보낸 이튿날입니다. 천사가 고넬료에게 베드로가 욥바에 있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거하고 있는 데 그를 청하여 말씀을 들으라고 명한 다음 날입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의 명령이 임하자 즉각 하인 둘과 부하 한 사람을 욥바로 보냅니다. 고넬료가 있던 가이사랴에서 베드로가 있던 욥바까지는 직선 거리로 약 60킬로 됩니다. 요즘 같으면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리겠지만 옛날에는 일일이 걸어 갔기 때문에 아마 대 여섯 시간은 걸렸을 것입니다. 고넬료가 9시 즉 오후 3시에 기도를 시작했으니 오후 5시 경에 기도가 끝났다고 하고 바로 하인을 보냈으니 하인들이 욥바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다음 날 새벽녘쯤 되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있었던 집은 욥바의 무두장이 집이었습니다. 무두장이는 요즘 말로 하면 가족 제조공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가죽을 만들려면 먼저 죽은 짐승의 사체를 가져다가 피부를 벗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무두질과 염색을 하고 말려야 합니다. 이때 아주 역겨운 냄새가 납니다. 그래서 그 집이 시내에 있지 않고 해변가에 있었습니다. 유대인 입장에서 죽은 동물을 만지는 것도 부정하고 또 염색을 해야 하기 때문에 냄새가 많이 납니다. 베드로도 유대인 아닙니까? 그래서 피하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감동하셨습니다. “너 해변가에 있는 무두장이 집으로 가라”. 그래서 율법에 저촉되는 줄 알면서 순종하여 갔는 데 또 하나님이 감동하십니다.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라”. 그래서 올라갔는 데 시간이 6시, 낮 12시였습니다. 한편 고넬료가 보낸 종들은 욥바에 도착하여 베드로가 있는 무두장이집을 찾았는 데 집이 바닷가에 있기 때문에 찾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있던 집에 도착했을 때는 베드로가 막 기도를 마칠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두 도시에서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두 사람이 기도를 통해 만났습니다. 한 사람을 불러 기도시킨 후에 종을 보내자 종이 도착할 때 하나님이 또 한 사람을 기도시킵니다. 그래서 기도가 끝나자마자 종이 도착합니다. 이것이 누가 만든 조화입니까? 누가 이렇게 두 사람을 정확하게 만나게 했습니까? 고넬료와 베드로가 평소에 알기라도 했습니까? 만난 적도 없습니다. 두 사람을 아는 분은 하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두 사람을 기도중에 연결한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할 때 감동시켜 기도하게 하고 하나님이 정한 시간에 응답받게 합니다.
제가 오래전에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목회학박사를 마치고 철학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가 5월이었는 데 어느날 도서관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로 내려가는 데 제 귀에 너무 선명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가 너를 목회자로 불렀다”. 너무 선명해서 어떤 사람이 한국말로 제 귀에 대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거리에 한국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날부터 기도를 시작했는 데 나도 모르게 목회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가 한국을 떠난 지 5년이 넘을 때였습니다. 저는 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교수로 일하고 싶었는 데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기도를 시작했는 데 제 마음에 이런 생각이 납니다. “한국에서 첫 번째 부르는 교회로 가라“. 그런데 같은 5월, 한국의 어느 지방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교인들이 충격을 받은 가운데 담임목사 청빙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누구 누구의 소개로 미국에 있는 저를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전교인이 저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교회 장로님은 저에게 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솔직히 교회가 지방이고 규모가 작아 안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께 “처음 부르는 교회로 가겠습니다” 약속한 뒤였습니다. 우여곡절을 지나 드디어 그해 12월 24일, 저는 한국에 돌아왔고 돌아오자 마자 물어 물어 그 교회를 찾아 갔습니다. 한번도 가본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는 교회, 놀랍게도 그때 교회 바닥에서 교인 몇 명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교회가 부흥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이 포함 150여명 되던 교회가 첫해에 300명, 다음 해에 500명, 6년이 지나자 1,000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도로 감동하기전에는 서로 몰랐던 사람들을 하나님은 능력으로 둘을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나중에 보니까 그 교회 목사님이 돌아가신 정확하게 다음 날, 하나님은 저에게 “내가 너를 목회자로 불렀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교인들이 기도하기 시작한 때 제가 “첫번째 교회로 가겠습니다”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몰랐지만 하나님은 우리 둘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 교회는 제가 필요했고 저는 그 교회가 필요했습니다. 정확한 때 정확하게 기도를 시작하게 하신 분, 필요할 때 필요한대로 응답하신 분, 기도는 하나님의 일이요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목숨걸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면 하나님은 그 순간 무엇인가를 시작하고 계신다”. “우리가 기도의 감동을 받으면 하나님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주실 것이 있다”. “우리가 기도를 그치지 않고 계속한다면 하나님응답도 크고 아름답다”. 그래서 우리에게 최고의 축복은 기도의 감동입니다. 나중에 제가 보니까 제가 “한국에서 첫 번째 부르는 교회로 가겠습니다” 하고 감동을 받을 때 하나님은 이미 그 교회를 정해 놓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기를 감동받을 때, 우리가 기도해야겠다고 마음이 움직여 새벽에 발걸음을 옮길 때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곧 알게 될 크고 비밀한 일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리고 우리가 기도가 끝나면 오늘 4절 마름대로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므네모쉬논”, 우리에게 그의 “기념물”로 응답하시는 것을 믿습니까?
만일 우리가 전도를 위해 기도한다면 어떨까요? 이상하게 어느날 어떤 사람이 생각나고 그를 위해 기도가 나올 때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시려고 우리를 감동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빌립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행8장에서 “사마리아로 가라”해서 갔더니 거기 많은 병자와 귀신들린 자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만일 빌립이 “주님, 저는 치유의 능력도 없고 말도 못하는 데 어떻게 할까요?” 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마리아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하고 아마 지금까지 이방인으로 살았을지 모릅니다. 사마리아 전도가 끝나니까 또 어떻게 합니까? 행8: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이르되 일어나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이번에는 광야로 가라“. 그때 빌립이 어떤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아, 이번에 하나님은 실수하셨구나. 아니 광야에 사람이 어디 있다고 광야로 가라고 해?“ 그래서 리고 엉금엉금 걸어 갔는 데 아 이게 웬일입니까? 에티오피아서 온 사람들이 예루살렘 들렸다 가면서 성경을 펴놓고 고개를 기웃 기웃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광야에 사람이 있는 줄. 하나님은 광야에 빌립의 도움을 받을 사람을 준비하시고 빌립을 감동하여 그곳으로 보낸 것입니다. 그때 빌립이 가슴을 치고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 그렇다. 하나님이 나에게 가라고 감동하신 것은 반드시 거기 나를 통해 하실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도는 무엇보다 순종입니다. 전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나 전략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기도하라는 감동을 순종하는 것, 가라는 명령을 순종하는 것, 말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 손을 얹고 기도하라는 지시에 순종하는 것, 순종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순종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미국의 어느 지역에 한 소녀가 난치병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소녀는 어느날 병상에서 전도를 받고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에 출석할 수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 데 어느날 목사님이 방문하여 병상에서나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게 되었고, 놀라운 부흥이 그 지역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소녀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소녀가 죽은 다음,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소녀의 베게 밑에서 56명의 이름이 적힌 종이 한 장이 나온 것입니다. 거기에 적인 56명은 하나님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각 사람의 이름 앞에서 빨간 십자가 표시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이 기도한 그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한 사람씩 표시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 교회의 부흥은 우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몸을 쓰지는 못하지만 병상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한 한 소녀로 인해 교회가 부흥된 것입니다.
전도는 순종입니다. 우리가 다 설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행정가이거나 목회자도 아니잖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기도입니다. 전도할 명단을 구체적으로 작성하고 한 사람 한 사람씩 기도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인 무디(D L Moody) 목사님이 1872년 영국의 조그마한 교회에서 부흥회를 열었는데 열흘 동안 400명이 구원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는 데 다고 교인가운데 선천적 장애로 누워있는 아들라르드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그가 매일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나는 예배에 나갈 수는 없지만 우리 교회에 부흥을 보내주시옵소서. 부흥을 보내주시옵소서.” 이 여인의 숨은 기도로 말미암아 교회는 크게 부흥했던 것입니다. 누가 교회를 위해 기도하겠습니까? 누가 “기도하라”, “가라”는 명령에 순종하겠습니까? 전도는 기도입니다. 전도는 순종입니다. 8월, 무더운 한 달, 우리 모두 전도를 위해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할 사람이 고넬료라면 그 한 사람 때문에 로마가 변하고 역사가 달라집니다. 새생명축제까지 3개월, 새생명축제 기간까지 하면 5개월, 나도 전도하겠습니다. 나도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고 전도하고, 앉으면 기도하고, 일어서면 전도하고,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하고, 눈감으로 기도하고, 입을 열면 전도하고,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언제나 좋은 일은 기도를 통해 일어납니다. 그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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