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도 응답을 받지 못 하는가?
마태복음 7:7(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찰스 하지라는 유명한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분은 기도의 중요성을 맥박에 비유하여 강조했습니다. 그는 “기도를 하지 않는 크리스천이나 맥박이 뛰지 않는 사람은 그 존재가 모두 불가능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맥박이 뛰지 않는 사람은 육체적으로 죽은 사람이듯이 기도생활을 하지 않는 크리스천은 영적으로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또는 그 사람의 건강이 어떤지 알려고 할 때 먼저 맥을 짚어봅니다. 마찬가지로 크리스천이 영적으로 살았는지 죽었는지 또는 건강한지 병 들었는지 알아보려면 그의 기도의 맥박이 어떻게 뛰고 있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기의 기도의 맥을 짚어보십시오. 팔딱팔딱 뛰고 있습니까? 영적으로 건강한 것입니다. 아무리 맥을 짚어보려고 해도 맥을 찾을 수 없습니까/ 영적으로 병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기도가 중요할까요?
첫째, 그리스도인이 항상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살전 5:16-18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둘째,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신 4:7에 보면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약속은 기도를 통해서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겔 36:37에 보면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만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해야만 그 약속이 성취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마 7:11에서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좋은 것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려면 기도하십시오.
다섯째,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눅 11:13에서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령님의 역사는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의 모든 것은 성령님의 감동과 조명 그리고 인도와 도움을 받느냐 못받느냐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하고 성령을 받았다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님을 받고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기도생활입니다.
여섯째, 하나님은 위기 중에 부르짖는 사람을 위기에서 건져주시기 때문입니다. 시 107:19-20입니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20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인생은 문제의 연속입니다. 마치 파도가 쉬지 않고 밀려오는 것처럼 수많은 문제들이 오고 또 오는 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만나는 고통과 위기 중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인생의 고통과 위기 중에서 건져주십니까? 부르짖는 사람입니다.
이 외에도 기도가 중요한 이유를 찾으려면 아주 많습니다만 이 정도로 정리를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은 기도응답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믿는 자들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받는 영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요 16:24입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이렇게 생각하면 쉽습니다. 여기 자판기가 있습니다. 이 자판기에 100원만 넣으면 자판기 안에 있는 음료수가 나옵니다. 이 자판기는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오직 100원짜리 동전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판기라는 기계로 기도를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판기로 기도응답의 원리는 설명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응답 받는 영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응답하시고 기도자는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고 찾는 자에게 찾게 하시고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입니다.
삼상 28:6을 보겠습니다.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전세가 불리하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침묵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사울에게 침묵하셨을까요? 왜 사울은 기도 응답을 받지 못했을까요?
오늘 설교 제목은 “왜 기도 응답을 받지 못 하는가?”입니다. 성경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응답해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1. 기도하지 않아서
약 4:2에 보니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성경에 기도응답에 대한 약속이 많아도 기도하지 않는데 어떻게 응답을 받겠습니까? 어머니가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줘도 먹지 않는다면 배부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26:41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제자들이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깨어서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깨어서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시험에 들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기도응답에 대한 약속이 많고 그 약속을 확신해도 실제로 기도하지 않으면 응답은 없는 것입니다.
2. 죄를 해결하지 못해서
시 66:18입니다.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지 않는 분명한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죄악 때문입니다.
사 59:1-2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어려움 속에 있어도 구원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난 중에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손을 내밀어 구원해주지 않으시고 아무리 기도를 해도 듣지 않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죄악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고,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크게 생각하지 않는 죄 된 작은 생각들이나 아주 작은 악한 말들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지극히 작은 죄도 심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죄로 보시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극히 작은 죄도 하나님 앞에 자백하고 참회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죄인입니다. 중요한 것은 죄를 처리하느냐 그대로 두느냐인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로 그 사람을 씻어주십니다. 죄를 자백하면 미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모든 죄를 사해주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주시는 분입니다.
이 시대는 회개가 없는 시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무뎌졌습니다. 이제는 웬만한 죄는 죄로 여기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영적인 불감증의 시대입니다.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죄도 무겁게 생각하고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며 회개합니다.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무뎌져서 죄에 대해서 심각성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죄를 범하고도 하나님께 자복하지 않기 때문에 그 죄가 쌓이면서 마음이 무뎌지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을 누리고 싶다면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지극히 작은 죄도 하나님 앞에 자백하며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3. 기도응답을 의심하기 때문에
약 1:6-7을 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치유받고, 믿음으로 축복받고, 믿음으로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마 21:22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에서는 기도응답의 두 가지 조건을 말씀합니다. 첫째, 믿는 것입니다. 둘째,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 받습니다. 믿는데 구하지 않으면 못 받습니다. 또 구하는데 믿지 못해도 못 받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은혜와 축복을 주실 것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성취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는 응답을 못 받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으려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믿음이 없습니다. 이 사람도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기도할 때 응답하십니다.
4. 정욕으로 구하기 때문에
약 4:3을 보겠습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여기서 ‘정욕으로 쓰려고 구한다’는 말은 ‘자기 욕심을 위하여’ 혹은 ‘자기 쾌락을 채우려고’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는데 자기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독사가 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그런데 여러분의 자녀가 그 독사를 달라고 해요. 주겠습니까? 못주죠. 여기 마약이 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여러분의 자녀가 마약하고 싶다고 달라고 하면 주겠습니까? 못 주죠. 3살짜리 어린 자녀를 둔 부모에게 그 아이가 부엌칼을 가지고 놀겠다고 달라고 하면 주겠어요? 못주죠.
하나님도 그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실 능력이 없어서 안 주시는 것이 아니라 정욕적인 기도에 응답해주면 그것이 우리의 영에 독이 되니까 안주시는 것입니다. 해가 되니까 못 주시는 것입니다.
5. 약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않기 때문에
잠 21:13입니다.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사람들은 약한 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돈이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 말하면 잘 듣고 그가 원하는 대로 하지만 약한 자의 부르짖음은 듣지 않습니다. 무시해버립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심고 거두는 법칙을 만드셨기 때문에 약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않는 사람이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주님에게 한 것이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주님에게 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 5:7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내가 약한 자를 긍휼히 여기면 하나님께서도 내가 약하여 부르짖을 때 긍휼히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6. 말씀을 듣지 않아서
잠 28:9입니다.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잠언은 구약시대에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율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만 신약적인 표현을 쓴다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 가증한 기도입니다. 가증한 기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잘 응답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시고, 성령님의 음성에도 귀를 기울이시고, 설교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바랍니다.
7. 중언부언해서
마 6:7입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기도는 많이 하는데 중언부언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중언부언이 무슨 뜻입니까? 헬라어로는 ‘밧톨로게오’라는 말입니다. 뜻은 ‘쓸데없는 말을 하다’입니다. 마 6:7을 표준새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 사람들처럼 빈 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들어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빈 말을 대풀이하는 것이 중언부언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형식화된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입니다. 그런데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가 없는 기도입니다. 형식화된 기도는 기도의 생명력을 잃어버린 기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응답과 감동과 생각 등에 반응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가 교제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형식화되어지면 간절함이 없습니다. 기도에서 간절함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간절함을 보시고 응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간혹 저는 우리 교회에서 통성기도를 할 때 몇 몇 사람들에게서 영적 생명력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은 입을 열어 기도는 하는데 기도가 지극히 형식적이기 때문에 제가 그런 느낌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중심을 드려야 합니다.
8. 외식하는 기도를 하기 때문에
마 6:5입니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외식하는 기도의 잘못은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기도하는 폼만 잡는 것입니다. 그러니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외식하는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롬 8:32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신 분입니다. 아들도 주신 분이기 때문에 기도하는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9. 자기 의에 빠졌기 때문에
사람은 아무리 의롭게 살아도 하나님 앞에서면 죄인입니다. 남보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뛰어난 사람도 하나님의 빛 앞에 서면 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의를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만약 누군가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의를 의지한다면 그의 기도는 어리석은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눅 18:9-14을 보면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 거기에 나오는 바리새인은 자기의 의에 빠진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남들보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이 그를 자기 의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때문에 다른 사람을 멸시했습니다. 눅 18:11-12절에 나오는 그의 기도의 내용을 봅시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그의 기도는 자기 의로 가득 찬 기도였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며 겸손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마도 세리의 마음에는 하나님 앞에 죄송한 마음이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 외에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의 기도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눅 18:13입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그 두 사람의 기도의 결과는 어떨까요? 눅 18:14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자기가 죄인이라고 주님에게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했던 세리는 주님에게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자기 의에 사로잡힌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을 받았고 그 은혜로 기도응답을 누리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을 누리려면 자기 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10. 하나님의 깊은 뜻으로 인하여
기도 응답이 안 되는 이유는 꼭 우리 쪽에서 무엇인가를 잘못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도 기도 응답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정오의 빛보다 더 밝은 빛으로 자기를 찾아오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그 충격으로 3일간 앞을 볼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서 눈을 뜨게 되었지만 눈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심한 안질로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기록할 때도 다른 사람이 대필했었고, 본인이 글씨를 쓸 때도 크게 써야만 했었습니다. 바울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는 바울에게 눈이라도 빼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눈에 문제가 있는 것을 육체의 가시라고 표현했습니다. 바울은 그 문제로 괴로웠다는 말입니다. 우리 몸에 가시가 박혀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사도 바울은 자기 눈의 문제를 사탄의 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눈 문제가 자기 사역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수많은 기도응답을 누리며 사역을 했던 대사도입니다. 기도의 사람 바울은 자기의 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에 관한 내용이 고린도후서 12장에 나옵니다. 바울은 자신의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가 떠나기를 위하여 3번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를 제거해주시는 응답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기도에 ‘NO’라고 응답하셨습니다. 고후 12:9을 보겠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하십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만나는 문제해결을 위하여 기도하지만 응답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론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롬 8:28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기도할 때 응답이 있다면 하나님을 높입시다. 만약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면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할 것이 있다면 회개하고 고쳐야 할 것이 있다면 고쳐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달려가는데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선한 계획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사하시고 있다고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항상 좋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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