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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60626]이렇게 사역을 시작하라

이렇게 사역을 시작하라

4:1-11

(2016626일 주일 설교자; 비전교회 마경훈 목사)

 

우리는 흔히 목사나 선교사를 사역자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관점으로 보면 모든 그리스도인이 사역자입니다.

개역개정성경에 보면 사역자라는 말이 4구절에 나옵니다. 그 중에 2구절은 천사에게 사용 되었고, 1구절은 바울과 아볼로 같은 목회자에게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1구절은 권력자에게 사용되었습니다. 13:4입니다. 거기에는 2번이나 사역자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여기서 사역자는 세상 권력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권력자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질서를 위하여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정당한 법집행은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역자라는 말은 헬라어로 디아코노스를 말합니다. 그 뜻은 하인, 고용인, 집사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일군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사역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을 사역자로 보는 이유는 교회를 몸의 개념으로 보면 이해가 됩니다. 주님은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리고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몸 된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여러분! 우리 몸을 보십시오. 우리 몸에는 다양한 지체들이 있습니다. 그 모든 지체는 자신의 자리가 있고 자신의 일이 있습니다.

하찮게 보이는 지체도 그 지체가 가진 독특한 일이 있습니다. 손톱하나 발톱하나, 심지어 머리카락하나도 쓸데없는 것이 없습니다. 새끼발까락은 작기도 하지만 참 못났습니다. 이상하게도 새끼발가락의 발톱은 두껍기 까지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작고 못난 새끼발가락도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사람이 가만히 서있으려면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새끼발가락의 역할이 있다고 합니다. 달리기를 할 때도 새끼발가락이 있어야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몸에 다양한 지체들이 있는 것처럼 교회 안에도 다양한 지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몸의 모든 지체가 제각각 기능이 있는 것처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제각각의 사명과 사역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은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주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는 시점에 있었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에서 성령님께서 비둘기 같이 임하셨습니다. 주님은 성령의 충만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이끌리심을 받아서 광야로 가셨습니다. 주님은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셨고, 금식 하는 중에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귀는 3가지로 주님을 시험했습니다. 첫째 시험은 돌로 떡을 만들라는 시험이었습니다. 둘째는 주님을 이끌고 높은 곳에 올라가 천하만국을 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절을 하면 천하만국을 다 주겠다는 시험이었습니다. 셋째는 주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을 신명기에 나온 말씀들로 물리치셨습니다. 마귀는 주님을 시험에 빠트리지 못하고 모든 시험을 다한 후에 주님을 떠났습니다. 주님은 승리하신 후에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이렇게 사역을 시작하라입니다. 부제는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 영광입니다. 보통 영광이 아닙니다. 아주 큰 영광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온 우주의 통치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시기 때문에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 것은 영광입니다.

, 그럼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쓰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주님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성령으로 사역하셨습니다. 성령님을 힘입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12:28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신앙생활에서 성령님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 사람이 종교적인 모든 조건을 갖추었어도 성령님의 역사가 없다면 그는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에디슨이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천재는 99% 노력과 1% 영감이다.” 이 말을 우리는 오해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말을 아무리 천재라도 99%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노력을 강조한 말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이 아니었답니다. 에디슨이 이 말을 할 때에는 아무리 99% 노력을 하여도 1% 영감이 없으면 안 된다고 1% 영감을 강조한 말이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도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성령님의 영감이 없이는 신앙생활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받아야 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증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확신합니다. 내가 눈으로 보지도 못했는데 마치 눈으로 본 것처럼 확실하게 믿어집니다. 이게 희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천국이 확실히 믿어집니다. 내가 천국 들어갈 자격도 없지만 주님의 공로 때문에 천국이 있는 것도 믿어지고 내가 죽으면 천국 들어간다는 사실도 믿어집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양심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죄를 짓는 것이 힘듭니다. 죄를 지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돌이키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행실이 달라집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행함이 따르게 되기 때문에 진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생활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증거 중에 하나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하면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와 보호를 받았던 것처럼 우리들도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성령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8:14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인 것입니다.

저는 40일 금식기도를 2번했습니다. 2번 다 성령님의 인도가 있어서 순종했습니다. 저는 기도 중에 성령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아셀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가 주를 섬겨 금식했는데 너도 나를 섬겨 금식할 수 없느냐? 사도행전 13장에 나오는 안디옥 교회가 주를 섬겨 금식했는데 너도 나를 섬겨 금식 할 수 없느냐?” 저는 주의 은혜로 성령님의 인도를 받았고 성령님께 순종해서 승리했습니다.

제가 두 번째 40일 금식기도는 교회에서 했지만 첫 번째 40일 금식기도를 할 때는 기도원에 들어가서 했습니다. 그때 같은 방에 몇 사람이 함께 금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전도사님 한 분이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 호기로 금식을 했습니다. 그 전도사님은 자기는 금식을 잘하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떠들었습니다. 그리고 14일 동안 매일 눈만 뜨면 먹는 이야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14일 째 되는 날 위출혈이 심해서 고통을 받다가 결국 금식을 포기하고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사람은 교만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진짜 겸손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찾고 성령님의 인도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주여, 주여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약하고 미련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의 약함을 인정하고 성령님의 인도를 구하면 하나님은 약한 나를 강하게 사용하시고, 미련한 나를 지혜롭게 사용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겸손하게 늘 성령님의 인도를 구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2. 주님은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시험이 없고 늘 형통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에게 시험이 더 많은 것 같이 보입니다.

신앙생활은 시험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확실하게 배운 지식이 있습니다. 마귀가 존재하며 믿는 우리들을 삼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벧전 5:8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예수님을 믿는 한 사람이 남의 집에 하인으로 있었습니다. 하루는 주인이 하인을 조롱하기를 나는 예수 믿지 않아도 아무 시험도 없이 잘 만 사는데, 너는 예수를 믿는데도 왜 늘 어려운 시험을 당하느냐? 그럴 바에야 믿지 않는 게 더 낫겠다.” 이때 하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노하지 말고 들어 주십시오. 가령 말입니다. 사냥 중에 사슴 두 마리가 있어 활을 쏘았는데 한 마리는 즉사하고 한 마리는 다리에 맞아 피를 흘리며 도망간다면, 주인께서는 어느 쪽 사슴을 보고 달려가겠습니까?”, “그야 죽은 놈은 내 수중에 든 것이나 다름없으니 산 놈부터 쫓아가 잡아야지.”, “옳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시험이 없는 것은 영혼이 죽어 마귀의 것이 되어버렸으므로 내버려 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자는, 마귀가 이를 방해하여 자기 수하에 넣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니 시험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아있고 마귀에게 위협이 되니 마귀가 우리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시험이 무서워서 마귀에게 항복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주님을 예루살렘 성전이나 예루살렘 왕궁으로 인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주님을 광야로 인도하셨고 주님은 그곳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먼저 광야와 시험을 통과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40일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금식기도가 끝나면 기적이 일어나고, 축복이 쏟아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예수님에게는 마귀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시험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시험을 통과하면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대학에 들어가려면 시험을 봐야 합니다. 시험에 통과하면 대학에 입학하는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할 때도 졸업시험이 있습니다. 그 시험을 통과하면 졸업이 되는 것입니다. 취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견실한 회사일수록 시험 없이 특채하는 일이 드뭅니다. 반드시 시험을 봐야 합니다. 그 시험에 통과하면 입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급도 마찬가지입니다. 진급시험에 합격하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받고 시험을 통과하면 우리의 믿음은 성장하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쓰시는 것입니다.

전철민 목사님은 외국에서 한인교회를 하시는 분입니다. 이분이 임마누엘교회를 개척하셨을 초창기에 유학생들이 교회를 나왔습니다. 그 지역은 유난히 힌두교 열성신도들이 많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힌두교 열성신도의 집에 세 들어 사는 학생들은 거의 귀신과의 영적 싸움에 직면해야 했답니다. 특히 어떤 특정한 집은 누구도 예외 없이 사단의 시험을 받아야 했답니다.

학생이 잠이 드려는 순간 자기 영이 몸에서 나와 자기의 자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자기 몸이 2-3미터 높이로 서서히 올라갑니다. 사단은 공중에 뜬 몸을 창문 밖으로 던지기 위해 흔들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학생은 너무도 소름이 끼치고 무서워 소리를 지르며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면 서서히 몸이 다시 침대로 내려오고 영이 몸속으로 들어가 정신을 차리면서 무서워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며칠 그런 공포가 계속되면 목사님에게 오셔서 기도해 달라고 연락이 온답니다.

목사님은 처음에 그런 전화를 받고 가서 기도하기가 겁이 나더랍니다. 그 귀신이 목사님 자신에게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사단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하는 의심도 들기도 하더랍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귀신을 추방하는 일들을 자주 경험하면서 사단과의 싸움은 일상이 되었답니다. 목사님은 그런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구나, 나는 하나님의 종이구나는 확신 속에서 사역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훈련소 생활은 힘든 생활입니다. 사회에서 내 마음대로 생활하던 청년이 훈련소에 들어가면 통제에 따라서 생활해야하기 때문에 힘이 듭니다. 또 그동안 잘 쓰지 않았던 몸을 계속해서 써야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도 힘이 듭니다. 그런데 훈련병 생활을 잘 통과하게 되면 훌륭한 군인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도 그런 것입니다. 시험과 연단을 통과하고 또 통과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는 것입니다. 시험을 잘 통과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훌륭한 일군이 되는 것입니다.

시험이 오면 피하거나 도망치면 안 됩니다. 싸우는 것이 피곤하다고 항복해서도 안 됩니다.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훈련소 생활을 할 때 훈련소를 수료하는 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리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가끔 1개 대대에서 1~2명 정도 유급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훈련병들은 훈련을 잘 받지 못했기 때문에 훈련소에서 나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다음 기수들과 다시 6주 동안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신앙의 훈련도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는 영적인 훈련이 있습니다. 그 훈련을 위하여 하나님은 때때로 시험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험이 올 때 물러서거나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명견을 훈련시키는 내용의 글을 읽어봤습니다. 명견을 만들 때 이런 훈련을 한다고 합니다. 바닥에 고깃덩어리를 갖다 놓습니다. 그리고 그 개가 주인의 허락이 없이 고기를 물 때는 사정없이 때립니다. 몇 번 그렇게 반복 훈련을 하면 고깃덩어리를 떨어뜨려도 개가 고기를 물지 않는다고 합니다. 잘 훈련된 개는 고깃덩어리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주인을 바라본다고 합니다. 우리도 반복적인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만 바라보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에 시험은 항상 있습니다. 부디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

 

3. 주님은 말씀 위에 서셨습니다.

오늘 설교는 시험의 종류를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이 당하셨던 시험의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은 세 가지 시험을 받으시면서 세 번 다 신명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취직 시험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젊은이가 최근에 환경미화원시험에 응시했다가 떨어진 일이 있습니다. 환경 미화원은 박사학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래주머니를 어깨에 메고 백 미터를 얼마나 빨리 달리는냐가 주 시험의 내용이기 때문에 아마 떨어진 것 같습니다. 영적인 시험은 학위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재산이 많다고 이기는 것도 아니고 건강하다고 이기는 것도 아닙니다. 영적인 시험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이기는 것입니다.

시험당하면 그 일을 자꾸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마귀는 그 사람의 생각을 이용할 것입니다. 마치 가룟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던 것처럼 마귀는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을 집어넣어줄 것입니다. 시험이 있을 때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험을 이기려면 평상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자신의 내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채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속에 가득 차 있는 것이 나오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컵 속에 생수가 들어있으면 생수가 나오고 꿀물이 들어있으면 꿀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조선일보에 보도 된 내용입니다. 결혼하고 첫 날 밤을 자고 헤어진 신혼부부 이야기입니다. 첫 날 밤을 자면서 신랑이 잠결에 무의식적으로 다른 여자 이름을 불렀습니다. 심하게 불렀던 모양입니다. 신부는 화가 났습니다. “무슨 말로도 용서할 수 없다. 이혼하자.” 그래서 위자료 소송을 냈답니다.

가득한 것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평상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마음에 채우면 평상시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의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에 시험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오뚝이 안에는 무거운 것이 있어서 중심을 잡아줍니다. 오뚝이를 건드리면 흔들리는 것 같지만 금방 중심을 잡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면 신앙생활을 오뚝이처럼 하는 것입니다.

딤후 3:16-17을 보겠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 되었습니다.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중심에 채우면 그 말씀이 그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만들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의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영국이 온 세계를 점령하여 영국 땅에는 해가지지 않을 때였습니다. 남양군도의 한 섬을 점령하였는데 나무가 없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그 섬에 나무를 심기 위하여 인부 100명을 파송하였습니다. 대장은 100명을 데리고 갔는데 모두 난폭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귀양을 보내듯이 보낸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삼청 교육대에 들어간 사람들을 제주도로 보내서 1100도로를 닦은 것과 같은 성격이었습니다.

섬에서 나무를 심던 중 100명은 대장을 체포하였습니다. 대장으로부터 감시받고 구속받기 싫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작은 배를 하나 구하였습니다. 선장을 그 배에 태워서 바다로 보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섬에 살고 있던 흑인 여자들과 같이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곳은 무법천지가 되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어느 날 그 섬 옆을 지나던 배가 그 섬을 보니 교회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섬은 뜻 밖에 현세천국이 되어있었습니다.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30년 동안 거의 술 마시고 난장판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담스라는 사람이 어머니가 넣어 준 성경책이 생각나서 꺼내어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조용히 시작된 것입니다. 아담스가 변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기도하였습니다. 성경을 읽으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온 마을이 복음화 되었습니다. 그 곳이 완전히 복음화 되어 천국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담스 한 사람을 변화시켰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결국 그 섬 전체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떡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떡이 다가 아닙니다. 문제는 떡이 다라고 생각하는 마귀가 심어놓은 잘못된 생각이 문제입니다. 고대에는 영토를 확장하는 왕이 백성들에게 인기가 있었습니다. 더 넓은 땅을 차지해서 백성들에게 양식을 공급해주기 때문에 영토를 확장하는 왕이 인기가 좋았던 것입니다. 요즘은 경제를 살리는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인기가 좋습니다. 아무리 잘하는 것이 많아도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 그 대통령은 인기가 없습니다.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돈 중심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김진홍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김진홍 목사님이 청계천에서 빈민선교 할 때 일이었습니다.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남자를 불쌍히 여겨 약을 구해주고 날마다 먹을 것을 갖다 주어 겨우 살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성탄절 예배를 드리는데 한 여인이 밖에서 떠들기에 나가 보았더니 김진홍 목사 나오라고 소리치더랍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우리 남편 죽였소. 내 남편이 어젯밤 당신 때문에 얼어 죽었소라고 하면서 엉엉 울더랍니다.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남편이 병들어 있을 때는 집에 누워라도 있었는데 병 낫고 건강해지니까 날마다 술 마시고 돌아다니다가 얼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김목사님은 사람부터 살려내보자고 말씀은 전하지 않고 음식과 약만 가져다 준 결과를 후회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영생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말씀을 버리고 돈을 따라가면 잘 살 것 같지만 길게 보면 망하는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면 답답해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요즘 지구촌을 보십시오. 인류역사상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풍족하던 때가 언제 있었습니까? 그런데도 더 잘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개인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습니다. 지금보다 더 잘먹고 잘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런 욕망을 목표로 삼고 달려가는 이 지구촌은 지금 어떤 모습입니까? 이 세상은 너무나 타락하였습니다. 살마들은 갈수록 주님을 떠나고 갈수록 하나님의 진노만 쌓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돈이 기준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 시대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교회들이 너무나 인간적으로 흘러갑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이 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돈이 교회를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다시 하나님께 엎드리고 다시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우리 교회가 사는 길은 다시 하나님께 엎드리고 다시 말씀 앞에 서는 길입니다.

주님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셨고, 주님은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성령으로 인도를 받기를 바랍니다. 시험이 올 때 도망가거나 마귀와 손을 잡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글쓴이 : 마경훈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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