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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60724]아굴의 모범적인 기도

아굴의 모범적인 기도

30:7-9(2016년 7월 24일 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철학자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으로 다섯 가지를 들었다고 합니다. 첫째, 생활하기에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둘째, 사람들이 칭찬하기에는 조금 떨어지는 용모. 셋째, 자신이 자만하고 있는 것에서 사람들이 절반 정도 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 넷째, 겨루어서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을 했을 때 청중의 절반 정도는 박수를 치지 않는 말솜씨. 플라톤이 제시한 다섯 가지 조건은 전부 다 조금은 부족하고 모자란 상태입니다. 신앙인이 아닌 철인이 이 정도로도 행복했다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은 아굴의 기도를 통해서 신앙생활의 지혜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언 1-29장은 솔로몬 왕의 잠언이고, 30장은 아굴의 잠언이고, 31장은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본문은 아굴이 저자인데 아굴은 본문에서 자기의 두 가지 소원을 하나님께 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소원을 흔히 아굴의 기도라고 부릅니다.

아굴의 기도를 두 부분으로 나눠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1. 아굴의 기도에서 배울 수 있는 것

 

1) 그는 장기적인 기도를 했습니다.

아마도 아굴은 평생 이 기도를 해온 것 같습니다. 7절 보면 그의 소원은 잠시잠간의 소원이 아니라 평생의 소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내가 죽기 전에라는 표현을 통해 아굴이 지금까지 기도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기도할 것이고, 평생에 기도할 제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너무 쉽게 끝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금 기도를 하다가 마음이 바뀌어 기도를 포기하기도 하고, 또 환경이 바뀌면 기도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죠지 뮬러는 자기 친구 5명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했는데, 그 중에 세 사람은 기도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만 두 친구는 주님에게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죠지 뮬러는 그 두 친구의 영혼을 위하여 죽을 때가지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기도가 응답 되어 두 명의 친구도 주님에게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죠지 뮬러는 기도를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끈질긴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가 전에 지하수를 잘 파는 사람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른 지하수 업자들은 단 번에 물을 찾아내기도 하지만 몇 차례 자리를 바꾸어 파다가 물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업자는 언제나 한 곳을 파면 그곳에서 물이 솟아났습니다. 사람들이 비결을 물었습니다. 업자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물이 나올 때까지 팝니다

기도는 평생을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한 동안 기도하다가 내려놓아서는 안 됩니다. 몇 년 만 기도하고 끝내서도 안 됩니다. 기도는 평생토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간혹 작정기도를 감동 받습니다. 그래서 며칠 혹은 몇 달 어떤 사람은 몇 년씩 작정하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작정기도 중에 포기하고 맙니다. 이유는 다 그럴싸합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가 되었든 작정기도를 포기하는 것은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작정기도는 끝까지 해내야 합니다. 그래야 응답을 받습니다. 하다가 실패하면 또 다시 도전하면 됩니다.

 

2) 아굴은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7절에서 구하였사오니구하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샤알’(שׁאל)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소원 정도가 아니라 졸라대며 애원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계속 끈질기게 기도하고 하나님께 졸라대는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18장에 보면 가난한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 과부는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억울함을 풀길이 없습니다. 과부는 도움을 구할 곳이 없으니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갔습니다. 그녀는 밤낮으로 재판관을 찾아가서 귀찮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불의한 재판관이 과부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곧 마음을 돌리고 과부의 청을 들어주었습니다.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귀찮게 하는 기도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18:4-5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과부의 귀찮게 하는 간청과 재판장의 반응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기도에 관한 교훈이 있습니다. 18:6-8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우리가 밤낮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한을 풀어주십니다. 속히 풀어주십니다.

여러분! “우는 아기에게 젖 물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매달리고 보채고 졸라대면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2. 아굴의 두 가지 소원

여러분은 어떤 소원을 가지가 있습니까? 우리는 소원을 갖게 되면 그 소원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가를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한다면 담대하게 구해야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어느 두메산골에 노인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산비탈을 일구어 밭을 만들고 산골에서 나무를 해다 팔아 필요한 것을 구입하여 살아가는 가난한 부부였습니다. 하루는 이 할아버지가 나무를 하러 산에 갔다가 산신령을 만났습니다. 그 산신령이 나는 너처럼 착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주는 요술 방망이를 선물을 주려고 하니 받아라.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는데 소원은 딱 두 개만 말해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 기뻐서 지고 갔던 지게와 낫을 다 내버리고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지게도 낫도 없이 할멈, 할멈...”부르며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를 본 할머니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습니다. “아니, 지게와 낫은 어디에 내버리고 뛰어오는가? 미친 영감이 아닌가? 나무를 해다 장에 가서 팔아야 보리쌀이이라도 팔아 저녁상을 차릴 것이 아닌가?” 하고 할아버지에게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화가 난 할머니는 소리만 질러댔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기가 막혔습니다. 자신은 그래도 할머니와 상의하려고 달려왔는데 이 미련한 할멈이 그까짓 지게와 낫을 놓고 왔다고 삿대질을 하며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들으려고 하질 않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화가 나서 같이 소리를 지르니 할머니도 질세라 더욱 소리를 지릅니다.

참다못한 할아버지가 이놈의 여편네, 저 주둥이 좀 닥치게 입 좀 비뚤어져라.”하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정말 할머니의 입이 비뚤어져서 잔소리는 그쳤습니다. 더 이상 소란은 나지 않았지만 문제는 할멈의 입이 비뚤어져서 밥을 먹지도 못하고 침만 질질 흘립니다. 화가 나서 그렇게 했지만 평생 자신만 믿고 고생하던 조강지처가 입이 비뚤어져서 말도 못하고 침만 질질 흘리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니 측은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하나 남은 소원으로 입을 바르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중요한 기회를 한 번은 입이 비뚤어지는 데 사용하고 또 한 번은 바르게 하는데 사용한 것입니다.

기도는 요술방망이가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는 요술방망이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아굴의 기도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기도입니다. 그의 기도는 정직한 삶을 위한 기도이고 또 자족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1) 아굴의 첫 번째 소원은 정직한 삶입니다.

이번 리우 올림픽에는 러시아 선수들 전원이 출전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러시아 선수들이 금지 약물을 복용했는데 러시아 정보기관이 개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올림픽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정직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8절에 보니 아굴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여기서 헛된 것은 속임수를 말합니다. 아굴은 자신에게서 부정직한 모든 요소들을 제거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즉 그는 정직한 삶을 구했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진리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믿는 우리들은 진리를 따라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정말 정직하게 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거짓의 아비인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은 정직해서는 손해를 보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마귀는 수많은 유혹을 통해서 우리들이 정직을 버리도록 역사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여호와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6:18-19에 보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살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습니다.

성경에 정직함의 표준이 되는 사람이 나옵니다. 다윗입니다. 왕상 15:11입니다.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유다의 아사 왕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윗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했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다윗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정직하게 살았기 때문에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특별히 사랑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특별한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112:1-2을 봅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2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이 말씀을 종합해서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정직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정직한 사람이 복이 있고 정직한 사람의 후손이 땅에서 잘 되는 것입니다.

달리기 선수는 자기 라인을 따라서 달려야 합니다. 그 선을 벗어나면 반칙입니다. 그 선을 벗어나면 아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정직한 삶이고 그것이 복된 삶입니다.

영국 속담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하루 동안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 동안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고, 한 달 동안 행복하려면 말을 사고, 한 해를 행복하게 지내려면 새 집을 짓고, 평생을 행복하게 지내려면 정직하라.” 정직한 삶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성경도 정직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기쁨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32:11입니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97:11을 보겠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의인은 정직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서 이런 상상이 되었습니다. 결혼식 중에 하객들이 신랑과 신부에게 꽃잎을 뿌립니다. 신랑과 신부를 따라가며 꽃잎을 뿌립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에게 빛을 뿌리시고 기쁨을 뿌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정직한 사람을 일평생 따라다니시며 빛을 뿌리시고 기쁨을 뿌리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직한 사람이 행복한 것입니다.

 

2) 아굴의 두 번째 소원은 자족하는 삶입니다.

8절 하반절과 9절을 보겠습니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저는 아굴의 기도는 정말 지혜로운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 부하게 되어 교만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가난하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목구멍을 위하여 죄를 범하지 않게 하여주옵소서.” 이런 기도는 쉬운 기도가 아닙니다.

이 기도는 자족하는 삶을 위한 기도입니다. 물질의 분량을 언급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굴은 부하면 부한 대로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언제나 자신의 생활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자족하며 감사하며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사람은 욕심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자리를 욕심내다가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욕심내어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1:15은 말씀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세계 최대의 여객선이라고 자랑했던 타이타닉호가 침몰했습니다. 그 배는 빙산과 충돌했습니다. 그런데 그 배가 바다에 완전히 빠지는데는 2-3시간 정도 소요될 예정이었습니다. 배 안에는 구명보트가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등객실의 손님들과 여성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졌습니다.

마지막 구명보트가 배에서 내려올 때였습니다. 그 보트에 타도록 되어있던 여성 한 사람이 선실로 향해서 쏜살같이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원은 깜짝 놀라 못 가게 막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인은 울면서 통사정을 했습니다. “내 객실에 보석 상자를 깜빡하고 그대로 놓고 왔어요. 내가 가서 그것만 가져올 테니까 제발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선원은 어쩔 수 없이 5분간의 여유를 주었습니다. 선실로 뛰어가는데 1, 거기서 보석상자를 찾는데 1,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데 1, 도합 3분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5분이 지나 약속된 시간이 되었는데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5분을 더 기다렸습니다. 10분이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마지막 구명보트는 배에서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그 여인이 돌아오지 못했을까요? 자기의 보석상자만 쥐고 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닥에 보니까 온갖 패물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그것을 줍다가 시간을 허비하고 만 것입니다. 결국 이 여인은 욕심 때문에 배와 함께 바다 속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욕심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고수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정한 영적 고수는 욕심을 내려놓고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인 고수가 맞습니다. 4:11입니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바울은 자족을 배운 사람입니다. 감옥에서도 자족할 줄 아는 영적인 고수였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도를 넘으면 안 되는 것 여덟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여행입니다. 어제 실버예배가 끝 난 후에 컴퓨터를 커다가 텔레비전이 켜져서 여행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제가 그런 프로그램을 좋아합니다. 두 남자가 마을버스 한 대를 사서 5대주 45개 국가 150개의 도시를 여행하는 내용입니다. 그 사람들은 2년 째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 부러웠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제가 막 흥분이 되는 것입니다. 제 속에서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옆에서 함께 보던 아내가 너무 좋겠다. 우리도 한 번 해볼래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아내는 그렇게 말을 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제가 아내에게 대답했습니다. “하고는 싶지만 할 수는 없어요. 목사인 내가 저런 일로 세월을 보낼 수는 없지...” 여행이 과하면 안 됩니다. 둘째는 친구입니다. 친구도 지나치게 많아도 좋지 않습니다. 셋째는 일입니다. 일 중독자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지나치게 과로 하면 요즘 말로 어느 날 훅 가는 것입니다. 넷째는 술입니다. 술도 과하면 안 됩니다. 다섯째는 잠입니다. 적당히 자야합니다. 많이 자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입니다. 게으르면 가난하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섯째는 약입니다. 약이 적당하면 약이 되지만 과하면 독이 되는 것입니다. 일곱째는 향료입니다. 전 요즘 그런 여자를 만나 본적이 없는데 예전에는 지나친 화장품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 아름답게 보이지 않더군요. 향도 지나치면 구역질이 납니다. 마지막으로 돈입니다. 돈은 신발과 같다고 했습니다. 신발은 크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발에 맞아야 좋은 신발입니다. 돈도 그렇습니다. 내 그릇에 맞아야 합니다.

제가 어느 글을 읽어보니 우리나라에서 깨끗한 부자인 청부가 옳으냐, 깨끗한 빈자인 청빈이 옳으냐에 대한 열띤 논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청부론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불교와 달리 기독교는 깨끗하게 부자가 되는 길을 적극 권장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깨끗하게 번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입니다. 반면에 청빈론을 고수하는 쪽에서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라가는 제자들은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자발적인 가난을 감수해야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른바 영성적 가난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청부론이 옳으냐? 청빈론이 옳으냐? 저는 두 가지가 다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인도하는 대로 살아가면 어떤 사람은 청부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청빈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부자냐 가난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자족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주기도문에서 물질을 위한 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6:11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이 기도는 많은 것을 구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습관적으로 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어떠한 형편에서도 자족하는 삶을 위한 기도입니다.

여러분은 가진 돈이 얼마나 있어야 안심이 됩니까? 여러분이 하루를 사는데 돈이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1만원, 3만원, 7만원, 10만원... 여러분의 식구가 하루를 사는데 10만원이 필요하다고 가정을 합시다. 여러분이 가진 돈을 다 털어보니 가진 돈이 10만원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불안하겠습니까 평안하겠습니까? 더 있기를 원하겠습니까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까?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어떠한 형편에서도 자족하는 삶을 위한 기도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왜 시험듭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1:14-15을 보겠습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시험에든 사람들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시험에든 이유를 다 말해보게 하면 오만가지도 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약 1:14절은 표면적으로 나타난 오만가지 이유를 하나로 정리했습니다. 욕심 때문입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다른 것 없습니다. 시험 드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입니다. 자기 욕심에 끌려서 미혹 된 것입니다. 더 갖고 싶은 욕심, 더 높아지고 싶은 욕심, 더 인정받고 싶은 욕심 때문입니다. 자족하지 못하니까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쓴 유명한 단편 소설 중에 [인간은 도대체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습니다. 도무지 만족을 모르는 부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땅도 엄청났지만 더 많은 땅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이 부자는 새로운 유목지가 한창 개발 중인 지역에 러시아 화폐로 1천 루블(rubles)만 내면 하루 종일 자기가 걸은 만큼의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단 해가 떨어지기 전에 자기가 출발한 지점에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규정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이 사람은 흥분을 가누지 못한 채 해가 뜨자마자 기름진 대평원을 젖 먹는 힘을 다하여 걷기 시작했습니다. 기름진 땅 곳곳에 말뚝을 박으면서 이 광활한 땅이 모두 자기 것이 된다는 기쁨 때문에 피곤도 모른 채 걷고 또 걸었습니다. 아니 뛰어 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에서 그동안 걸어 온 길을 되돌아보니 엄청난 길이의 땅이었습니다. 더 가고 싶었지만 해지기 전에 출발지점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규칙을 지키기 위하여 왔던 길을 부지런히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지나치게 넓은 땅을 잡았기 때문에 도저히 해 떨어지기 전에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는 일이 불가능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처음 떠났던 곳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그 많은 땅을 고스란히 잃어버린다는 생각을 하자 넘어지고 다치고 땀이 뒤범벅이 된 채 단 1초도 쉬지 않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마침내 해가 지평선 위로 막 떨어지고 있었을 때 이 사람은 간신히 출발지점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그 자리에서 거품과 피를 토한 채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하루 종일 기를 쓰고 걸어서 엄청난 땅이 모두 자기 소유가 되었다는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죽고 말았습니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을 다음과 같이 끝내고 있습니다. "머슴은 괭이를 집어들고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치수대로 여섯 자의 땅을 팠다. 그의 묘를 쓰기 위해. 그리하여 그를 그곳에다 묻었다." 이 부자에게 필요한 땅은 겨우 6자였으면 족했지만 그는 그 이상의 욕심을 부렸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부자 되려고 욕심내지 말고 지금 가진 것으로 만족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이 세상은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자가 누구입니까? 삼성그룹의 이건희씨입니다. 그는 지금 코마 상태에 빠져서 2년이 넘는 시간동안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 이건희씨의 성추문 동영상 때문에 온 세상 사람들이 떠들고 있지만 그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자고 있습니다. 지금 그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은 돈으로 그의 목숨을 붙잡아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연명장치만 떼면 바로 숨이 멎을 것입니다. 아니 연명장치를 떼지 않아도 오래지 않아서 그는 죽게 될 것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제일 부자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돈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는 곧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가 하나님을 만나서 구원을 받았다면 그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만나지도 못했고 구원도 받지 못했다면 그는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잠시 지나가는 과정입니다. 사람의 영원한 종착지는 영원한 천국이나 영원한 지옥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 복을 누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영원한 그 나라를 위하여 믿음으로 삽시다. 의로운 삶을 삽시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그리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고 감사하며 삽시다.

 

출처 :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글쓴이 : 마경훈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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