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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이윤재목사

막4:26-29 2013.1.27(일) 생명의 씨

4:26-29 2013.1.27() 생명의 씨

새해들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꿈입니다. 꿈의 특징은 한 가지입니다. “꿈은 꿈꾸는 자에게 이루어지고 꿈은 꾸는 만큼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꿈을 꿔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거나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경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좋은 꿈이든 나쁜 꿈이든 꿈꾸지 않는 자에게는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11:1절이 꿈에 대해 말합니다.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꿈은 바라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이 없이는 꿈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꿈은 보이지 않은 것을 보는 것입니다. 보는 것만 보면 꿈이 아닙니다.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을 미리 보아야 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 첫 주에 보았던 중국 여인은 진짜 꿈의 사람입니다. 20년간 척박한 사막에 나무를 심어 여의도 40배만한 숲을 만들었습니다(영상). 어떻게 그렇게 했습니까? 첫 번째는 마음의 열정입니다. 모세처럼 타는 불꽃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두 번째 습관의 힘입니다. 20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계속해서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까?

 

그리고 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할 때 이렇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 열정을 가졌습니다. “내가 반드시 이 사막을 숲으로 만들어 놓을거야“. 그리고 매일 심었습니다. 자식까지 모래에 묻으며 심었습니다. 쉬지 않고 심었습니다. 그런데 질문입니다. ”심었는 데 만일 죽은 막대기를 심었다면“, ”열심히 20년간 심었는 데 죽은 나무 가지를 심었다면“, ”생명이 없는 돌을 심고 옷을 심고 죽은 동물을 심었다면그렇게 큰 나무가 되고 큰 숲이 되었을까? 심었는 데 살아 있는 것을 심었습니다. 살아 있는 씨를 심고 살아 있는 나무를 심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을 심었기 때문에 숲이 되었습니다.

 

성경이 생명을 말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나라를 말할 때, 교회를 말할 때 살아 있는 생명을 말합니다. .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무엇이냐? 성경이 말합니다. “밀이다. 가라지다. 겨자씨다. 누룩이다. 신부다. 몸이다”. 모두 생명체입니다. 심지어 돌로 비유할 때도 있지만 그 돌도 산돌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나라는 생명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살아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쓰신 비유를 볼까요?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공중의 새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활동하신 갈릴리는 새가 많기 때문입니다. 까마귀, 황새, 올빼미, 참새, 울새, 벌새, 비들기, 독수리, 종달새, 다 있습니다(영상). 전 세계 9천종의 새가 있는 데 이스라엘에만 3천종이 있답니다. 6:28,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갈릴리는 온갖 생명으로 가득합니다. 물고기도 많지만 꽃도 많습니다. 야생화, 철쭉, 길가에, 무엇보다 들에 핀 백합화(영상), 너무나 많은 꽃들이 사방에 피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들을 보라하고 말씀합니다. “이것들을 생각하여 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헬라어로 카타마세타입니다. 이 말은 배우라, 관찰하라는 뜻입니다. 공중에 나는 새도, 들에 핀 꽃 한 송이도 하나님의 생명의 신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자연속에 위대한 진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나 들에 핀 백합화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스스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공중의 새를 먹이지 않습니다. 스스로 살아 갑니다. 누구도 들의 백합에게 물주지 않습니다. 땅에 떨어지면 스스로 자라납니다. 이것을 우리는 자생력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씨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도 그것을 말합니다.

 

4:26-29입니다.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으렀음이니라.” 예수님은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생명의 원리입니다. “농부가 씨를 심은 다음 매일 매순간 돌보지 않는다. 돌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씨를 심고 자고 일어나면 싹이 나고 그 다음 날 보면 이삭이 맺혀 있다. 이유는 씨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누가 뿌렸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살아 있는 것이냐 죽어 있는 것이냐가 중요하다. 살아 있는 것을 심으면 반드시 자란다. 그것이 생명의 원리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이것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삶에 큰 숲을 이루는 꿈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살아 있는 생명의 원리를 아셔야 합니다. 살아 있는 생명의 씨를 뿌리고 심어야 합니다.

씨는 살아 있습니다

성경이 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제가 첫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1장은 곧 에 대한 기록입니다. 1: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은 창조의 셋째 날에 씨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동물, 모든 식물을 창조하기 전에 먼저 씨를 창조했습니다. 왜냐하면 씨가 모든 생명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새와 짐승이 먼저 생기지 않았습니다. 씨가 먼저 생겼습니다. 1:2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씨를 먼저 만드신 하나님은 그 씨에서 생물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종류대로란 말은 씨대로란 말입니다. 같은 씨에서 같은 생명이 나옵니다. 콩심은 데 콩나고 팟심은 데 팟나옵니다. 우리가 진화론을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같은 씨를 가진 존재가 천년이 지났다고 해서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원숭이는 원숭이를 낳지 사람을 낳지 않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원숭이는 원숭이고 사람은 사람입니다. 씨가 다릅니다.

 

(1) 예수님은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와 우주가운데 계시는 유일한 생명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 생명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가예수님입니다. 요한일서1:1절이 중요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세 가지 생명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하나님안에 있는 생명입니다. 나타낸 생명-예수님안에 나타난 생명입니다. 체험된 생명- 예수님안에 있는 생명을 우리가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림으로 그리면 이렇습니다.

 

영원한 생명(하나님)

 

나타난 생명(예수님)

듣고 보고 만지고

체험된 생명()

여러분은 예수님이 생명이라고 믿습니까? 14: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예수님은 생명입니다. 생명은 살리고 죽입니다. 예수님과의 관계도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관계 모델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

통하여 안에서

구원 교제

신분(하나님의 자녀) 연합(하나님의 생명)

생명을 얻고 풍성히 얻게 하려함이라

과거 현재

죄사함의 복음 새생명의 복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과거에 받은 구원만 생각합니다. “나는 구원받았다. 너 구원받았냐?”. 그러나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과거에 우리가 받은 구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우리는 계속 예수님을 생명을 받아야 합니다. 풍성한 생명을 얻어 새생명의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예수믿는 것은 다만 죄사함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풍성한 생명을 누려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왼쪽입니까? 오른 쪽입니다. 먼저 왼쪽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오른쪽으로 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입니다.

 

(2) 교회는 생명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이듯이 교회도 생명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몸은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으면 자랍니다. 교회는 자라고 성장합니다. 예수님이 처음 교회를 세우신 말씀이 있습니다. 16:13-20절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서 예수님은 교회의 네 가지 특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교회는 예수님이 세우신다.

교회는 사람이 세울 수 있고 건축자가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세우는 것은 예배당이지 교회가 아닙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건물을 지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수는 없습니다. 어떤 목회자가 개척을 시작하면서 원로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교회를 세우려고 하는 데 저에게 조언 한 마디 해주세요”. 원로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자네안에 예수님이 계신다고 확신하기 전까지는 아무일도 하지 말게. 어떤 경우에도 주님보다 앞서지 말게. 주님이 교회를 세우신다네”. 그렇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세웁니다.

(2)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자신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예수님이 세우신 것은 예수님의 교회지 우리 교회가 아닙니다.

 

(3) 교회는 성장하게 되어 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요 몸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은 자랍니다. 밖으로 성장하고 안으로 성숙하고 위로 성화합니다. 미국의 마이클 조던은 전설적인 농구선수입니다. 그가1990년에 시카고 불스에 입단하기 전 시카고 불스는 도산직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입단하자 8년간 NBA 타이틀을 여섯 번이나 차지했습니다. 한 사람이 들어가 시카코 불스의 신화를 창조했다면 예수님이 우리 교회, 우리 가정, 우리 삶에 들어오신다면 우리는 얼마나 승리하겠습니까?

 

(4) 교회는 음부의 권세와 싸운다.

예수님은 앞으로 교회가 세워지면 반드시 음부의 권세가 공격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음부의 권세는 곧 지옥의 권세요 마귀의 권세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있는 교회는 처음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고난과 방해과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음부의 권세를 두려워 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이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가 2차 세계대전 때 참여한 비행기 조종사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가는 비행기가 적의 대공포 사격을 받는다면 그것은 우리 비행기가 가는 방향이 옳다는 증거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그리고 성도가 마귀의 공격을 받는 은 마귀의 적진과 가깝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자기와 먼 사람은 공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고난받고 시험받는 것은 우리가 마귀의 상대가 될만하기 때문입니다. 2천년 교회와 성도들은 계속 마귀의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님 생명이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가정과 사업의 어려움 때문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꿈에서도 나쁜 꿈만 꾸었습니다. 한번은 꿈을 꾸는 데 자기가 어린 학생이 되어 학교에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골목에서 불량한 동네 형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더니 돈을 내 놓으라고 욱박질렀습니다. 다 죽었다 싶었는 데 이게 웬일입니까? 불량배뒤에 아버지가 딱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보자 무서움이 싹 사라지고 담대해 졌습니다. 불량한 형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웃었답니다. 그랬더니 불량배 형이 이 놈봐라. 웃어?”하며서 주먹질을 하려고 하는 데 아버지가 뒤에서 그 손을 꽉 잡았답니다. 순간 불량배는 줄행랑을 놓았고 집사님은 잠에서 깻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 고난당할 때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같이 계신다. 고난당할 때 불량배를 보지 말고 그 뒤에 있는 아버지를 보자”. 그렇습니다. 교회나 성도나 마귀위 공격을 당하지만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최후 승자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이고 교회가 생명이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생명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씨라고 말합니다. 벧전1:23절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딘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여기에 두 가지 씨를 말합니다. 썩을 씨와 썩지 아니할 씨입니다. 썩을 씨는 사람이 부모로부터 받은 육신의 씨입니다. 그러나 예수믿으면 또 하나의 씨를 받습니다. 썩지 아니할 생명의 씨입니다. 그 씨를 받으면 우리가 다시 태어납니다. 이것을 성경은 거듭났다고 말합니다. 두 번 태어난 것입니다. 모든 씨안에서 DNA가 있습니다. DNA는 세포의 핵심부에 있고 생명의 원동력과 정보를 제공합니다. 우리 생명의 DNA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생명의 핵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가 DNA를 이렇게 풀었습니다. DNA= Divine Nature of the Almighty이다. 전능자의 신적인 본성이다. 그 전능자의 신적인 본성이 예수님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DNA는 우리에게 어떤 형태로 나타납니까? 말씀으로 나타납니다. 다시 벧전1:23을 보면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말씀입니다. 우리안에 예수님 생명이 있고 그 생명안에 말씀이 있습니다.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곧 생명입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으니 그 말씀이 곧 예수님입니다.

 

여러분, 교회와 우리의 믿음이 언제 성장하는지 아십니까? 생명을 공급할 때입니다. 생명체가 자라는 비결은 계속 생명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안 자라고 우리의m 믿음이 침체에 빠지고 우리의 삶이 풍성해지지 않은 이유는 이 생명의 원리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이 생명의 원리를 역행하고 있습니다. 예수생명아닌 다른 무엇으로 교회를 이끌어 가려고 합니다. 반짝 좋아보이지만 시간이 가면 곧 메말라집니다. 멜 깁슨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이 영화가 미국에서 상영되자 미국교회는 엄청나게 흥분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불신자들이 이 영화 때문에 교회에 들어올 것이다”. 과연 이 영화는 세계적으로 6억달러 이상의 돈을 벌었습니다. 대박이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돈은 많이 벌었지만 영혼들이 교회로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영화가 선교의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생명 자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명력이 없으니까 다른 방법으로 교회성장의 안간힘을 씁니다. 교회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는 프로그램들이 생겨납니다. 기독교 T.V 보면 재미있고 웃기는 만담형식의 설교가 인기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교회가 아무리 사람들을 웃기려 해도 개그 콘서트보다 더 웃기겠습니까? 교회가 감동적인 영화를 만들어 내고 즐거운 인터테인먼트를 개발해도 할리우드보다 더 잘 하겠습니까? 교회 건물을 아무리 잘 지어 사람들의 눈길을 끌려고 해도 용문에 있는 통일교 건물보다, 미국에 있는 인민사원보다 더 잘 짓겠습니까? 교회가 미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교회 안팎을 미술, 조각으로 꾸민다 해도 로마의 베드로 성당보다 잘 하겠습니까? 필요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본질에 더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입니다. 생명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이 삽니다. 그래서 제가 새신자 접견때마다 묻습니다. “어떻게 한신교회 등록하게 됐어요?” 제가 제일 감사한 대답이 있습니다. “, 말씀에 은혜받아서요”. 이것이 진짜입니다. 옛날에는 그랬습니다. “교회당이 예뻐서요. 주차장이 넓어서요. 이중표 목사님때문예요. 판교역이 가까워서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받아서요. 새벽에 나왔다가 우연히 말씀에 은혜받았어요”. 이것이 생명입니다. 생명은 생명이 들어가야 산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씨를 심어야 합니다

우리가 생명으로 사는 비결이 딱 하나 있습니다. 생명의 씨를 심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살리는 비결이 하나 있습니다. 계속해서 생명의 씨를 심는 것입니다. 작년 목회자 세미나때 어느 목사님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개척한지 십여 년이 되었는데도 교회가 자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들어보니까 이 교회가 하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신자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는 제자훈련, 영혼들을 거두어 드리는 전도, 살람을 영적 지도자로 키워내는 훈련, 거의 없었습니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만일 목사님에게 땅이 있어서 감자나 옥수수같은 식물을 재배하고 싶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먼저 땅을 갈고 잡초와 바위를 없애야겠지요”. “좋습니다. 그 다음은요?”. “필요하면 비료를 뿌려야겠지요. 따뜻한 햇볕과 물도 필요하죠”. “좋습니다. 그 다음은요?” “, 잡초가 나는 대로 뽑아내고 농작물을 갉아먹는 해충도 쫓아내야겠지요.” “맞습니다. , 다른 건 없습니까?”. “, 그러면 끝나는 것 아닙니까? 때가 되면 추수하지 않나요?” 제가 그를 보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은 흙말고는 거둘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때 그가 무릎을 치면서 말했습니다. “, 한 가지 빠뜨렸네요. 씨앗을 안 뿌렸군요”.

 

그렇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렸습니다.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큰 나무를 기다리기 전에, 여의도 40배만한 숲을 꿈꾸기 전에, 풍성한 수확을 거두기 전에 우리가 가장 먼저 그리고 부지런히 할 일은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비유중에 가장 첫 번째 비유가 씨 뿌리는 비유라는 것을 아십니까? 13장에 7개의 비유나오는 데 그 첫 번째가 씨뿌리는 비유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에 앉으시자 비옥한 게네사렛 호수가 펼쳐졌습니다. 이 지역은 지금도 옥토입니다. 재작년 안식년때 이곳을 거닐면서 찍은 사진입니다(영상). 땅 색깔이 벌써 붉고 검습니다. 지금은 키부츠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막4:3, “들으라로 시작해서 마13:9, “귀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로 마칩니다. 모든 비유의 시작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 겨자씨 비유가 나옵니다. 심었기 때문에 겨자씨처럼 자라는 것입니다. 누룩의 비유가 나옵니다. 심으면 누룩처럼 번집니다. 밀과 가라지 비유가 나옵니다. 심어도 가라지는 있습니다. 그러나 가라지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때가 되면 밀과 가라지는 나뉘일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심습니까? 바울이 말했습니다. 고전3:6-7,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물주고 자라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심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심습니까? 생명의 씨앗을 여러분의심령의 밭에 심습니까? 밭이 길가밭이고 자갈밭이고 가시밭인 것은 다음 문제입니다. 일단 심고 계속 심어야 합니다. 교회도 계속 심어야 합니다. 거두려만 해서는 안됩니다. 전도의 씨를 심고 개척의 씨를 심고 선교와 봉사의 씨를 심어야 합니다. 기도의 사람 이. . 바운즈가 그의 기도의 능력에서 아주 좋은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더 좋은 수단을 찾지만 하나님은 더 좋은 사람을 찾으신다.” 우리가 승리하는 것은 더 좋은 환경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씨의 원리가 있습니다. “심으면 거둔다. 심은 만큼 거둔다. 처음에는 작게 심고 나중에 많이 거둔다”. 우리의 인생도 사업도 영적인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적게 심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생명의 씨고 계속 심다보면 나중에 크게 거둡니다. 미국의 어느 대학을 방문하고 은혜받았습니다. 이 학교의 상징은 작은 도토리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물었더니 이 학교가 세워진 자리에 본래 도토리숲이었답니다. 작은 도토리로 시작하여 큰 학교가 되었다는 뜻으로 그랬다는 것입니다. 커다란 숲도 본래 작은 도토리 한 알로 시작되었습니다. 스콜틀란드의 아주 골짜기에 한 목사님이 3년이 지나도 결신자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한 어린이가 왔는 데 너무 반가와 이 어린이 하나에 집중했습니다. 나중에 이 어린이가 자라 세상을 빛내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가 아프리카 탐험가이자 선교사인 리빙스톤이었습니다. 생명은 작게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자랍니다. 여러분은 생명의 능력을 믿습니까? 예수님의 생명, 교회의 생명, 말씀의 생명이 들어가면 누구나 변화되고 위대하게 된다는 것을 믿습니까?

(최성봉)

 

작은 씨가 숲이 됩니다.

 

 

 

 

 

 

 

 

 

 

 

 

 

 

 

 

 

 

 

 

 

 

 

 

 

 

 

4:26-29 2013.1.27() 생명의 씨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중국 여인(영상).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영상). (존 스토트, , 우리들의 선생님에 나오는 새 사진들)

 

(영상). (성지순례4. 321, 335, 344, 352) (성지순례3, 372, 373, 376, 378)

 

4:26-29,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으렀음이니라.”

 

씨는 살아 있습니다

1: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2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1) 예수님이 생명이다.

요일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영원한 생명(하나님)

 

나타난 생명(예수님)

듣고 보고 만지고

체험된 생명()

 

14: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예수님

통하여 안에서

구원 교제

신분(하나님의 자녀) 연합(하나님의 생명)

생명을 얻고 풍성히 얻게 하려함이라

과거 현재

죄사함의 복음 새생명의 복음

 

 

(2) 교회가 생명이다.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교회의 네 가지 특성

(1) 교회는 예수님이 세우신다.

(2)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다.

(3) 교회는 성장하게 되어 있다.

(4) 교회는 음부의 권세와 싸운다.

 

(3)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다.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딘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DNA= Divine Nature of the Almighty(전능자의 신적인 본성)

 

벧전1:23,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씨를 심어야 합니다

 

 

갈릴리(영상) (안식년사진. 이스라엘 1, 갈릴리, 65, 67)

 

4:3, “들으라

13:9, “귀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고전3:6-7,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 . 바운즈, “사람들은 더 좋은 수단을 찾지만 하나님은 더 좋은 사람을 찾으신다.”(기도의 능력)

 

최성봉(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