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예수님! (막 11:12~14)
예수님은 이 땅에서 많은 이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예컨대 예수님은 각종 병을 고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들을 내쫓으셨습니다. 죽은 자들을 살리셨습니다. 풍랑을 잔잔케 하셨습니다. 또한 적은 양의 음식으로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이외에도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들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했습니까? 요21:25 말씀을 보면, 이 세상에라도 그 기록된 책들을 두기에 부족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마가복음도 예수님의 이적들을 많이 수록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막1:34 말씀처럼, 그저 간단하게 일괄적으로 설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일반적인 경우와 예수님 자신의 부활을 빼면,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의 이적들이 모두 열 여덟 번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그 결과 막11:21 말씀을 보면, 그 무화과나무가 말랐습니다. 이는 마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이적들 가운데 마지막에 해당하며, 아울러 유일하게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이적입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실 때만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컨대 예수님이 병을 고치신 것은 그 병자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내쫓으신 것도 귀신 들린 사람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신 것도 죽은 자의 가족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이 적은 양의 음식으로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 것도 그 때 배고파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일반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이 이적을 행하신 동기는 예수님의 풍성하신 긍휼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경우는 사정이 완전히 다릅니다.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셔서 그 나무를 말라버리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파멸을 가져온 이적을 행하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상징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일부러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면서, 의도적으로 파괴적인 이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끝 부분을 보면,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고 말씀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이 축복하시는 말씀뿐만 아니라, 저주하시는 말씀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열매를 찾으셨습니다.
막11: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때는 “이튿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고난 주간의 둘째 날에 해당합니다. 그 전날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곧바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둘러보셨습니다.
삼 년 전인 공생애 초기에도,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신 적이 있으셨습니다. 그 곳에서 예수님은 매매하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을 보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의분을 발하시면서, 사정없이 그들을 성전에서 내쫓으셨습니다.
그로부터 삼 년이 흘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상황은 그 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진 바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날은 때가 이미 저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시고 일단 예루살렘을 나와서 베다니로 나가셨습니다.
요11:18 말씀과 같이,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한 오리 곧 2km 정도 밖에 안 되는 거리였습니다. 베다니에는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와 그의 두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날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유숙하셨습니다.
그 이튿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베다니에서 나오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시장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마21:18 말씀과 같이, 때는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따라서 분명 예수님은 그 날 아침 식사를 거르셨을 것입니다.
막1:35 말씀과 같이, 그 날도 예수님은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일어나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그 날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실 것입니다. 그리고는 의분을 발하시며, 다시 한번 성전을 숙청하실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예수님은 새벽에 일찍이 일어나셔서 기도로 준비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나사로의 집에 들리지 아니하시고, 그대로 예루살렘으로 가셨을 것입니다. 아니면 나사로의 집에서 아침 식사를 잘 대접해드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간절히 기도하실 동안, 예수님은 시장함을 느끼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은 기도를 끝내시고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이었습니다.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가깝기는 하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힘든 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잠시 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전을 숙청하실 것입니다. 이는 육체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시장함을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동시에, 인자 곧 사람의 아들로 오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막11: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님은 멀리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셨습니다.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다보면, 벳바게라는 동네가 있었습니다. 히브리어로 벳은 집이며, 바게는 무화과입니다. 그러니까 벳바게는 무화과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그 곳에는 무화과나무가 많았습니다.
마21:19 말씀처럼, 그 무화과나무는 길 가에 있었습니다. 이제 곧 예수님은 그 무화과나무에게 파괴적인 이적을 행하심으로, 제자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실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주인 없이 길 가에 서있는 무화과나무를 택하신 것입니다.
때는 유월절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른봄인 3월말 내지는 4월초순 경이었습니다. 게다가 예루살렘은 해발 800m가 넘는 고지대입니다. 따라서 계절적으로 보면, 아직은 무화과나무에 잎사귀가 나지 않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신 그 무화과나무에는 이미 잎사귀가 있었습니다. 비록 그 무화과나무가 길 가에 심기었지만, 그 곳에는 물이 넉넉하고 또한 토질이 비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무화과나무는 특이하게도 일찍이 잎사귀를 내었던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잎사귀보다 오히려 열매가 먼저 나무에 달립니다. 그리고 다른 열매들은 익어야 먹을 수 있지만, 무화과나무 열매는 익지 않아도 불쾌한 맛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 배가 고프면, 익지 않은 무화과를 몇 개정도 따먹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무화과나무에 잎사귀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려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무화과나무는 달랐습니다. 그 나무에는 잎사귀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 나무에는 열매가 전연 달려있지를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는 까닭을 이와 같이 밝힙니다. 13절 끝 부분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무슨 뜻입니까? 만일 무화과의 때라면,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이미 다 따먹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무화과를 다 따먹었기 때문에, 그 나무에 열매가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무화과나무는 처음부터 열매를 맺지 않았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무화과나무는 땅만 허비하는 병든 나무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서도 열매를 찾으십니다. 예수님에게 드릴 열매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잎사귀만 있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가 바로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경건의 모양만 있을 뿐, 경건의 능력이 없는 우리의 삶은 아닙니까?
무화과나무가 그 잎사귀만을 뽐낼 수는 없습니다. 무화과나무는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경건의 모양만 드러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삶에 실제로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야만 합니다. 아니면 그 결과는 비극입니다.
둘째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막11: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향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이는 마21:19 말씀과 같이, 이제부터 영원토록 그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는 뜻이었습니다.
막11:21 말씀과 같이, 이 때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말라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로써 이 때 예수님은 유일하게 파멸을 불러일으키시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까? 예수님의 시장기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게 짜증을 내셨던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단 한번도 사적인 목적으로는 이적을 행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의 발걸음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곧 예수님은 강도의 소굴이 된 성전을 숙청하시면서, 거짓으로 가득 찬 유대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번 이적을 통해서, 자신이 하실 바로 그 일을 미리 제자들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성전은 매매하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로 북적거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겉으로 보면, 그들은 하나님께 열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었습니다. 그들은 헛되이 하나님을 경배했을 뿐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잎사귀만 무성했지, 아무런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정없이 그들을 성전에서 내쫓으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들의 제사를 싫어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잎사귀만 있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곧이어 예수님은 외식으로 가득 찬 성전을 숙청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의 의미는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이 두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임할 임박한 심판을 상징적으로 보이셨던 것입니다.
요1:11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자기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자기 백성 곧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회개의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따라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또한 외식과 형식으로만 가득한 성전처럼, 예수님을 배척한 이스라엘도 심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회개의 열매를 찾지 못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들도 예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사십 년이 지났습니다. 예수님이 심판하신 대로, 이스라엘은 멸망의 날을 맞이했습니다. 주후 칠십 년 로마 군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 성벽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도록 철저하게 무너졌습니다.
이와 같이 열매 없는 나무는 심판을 받습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이 사실을 강조합니다. 마3:10 말씀입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이는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친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도 있습니다. 마7:19 말씀입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요15:2 말씀입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제거해 버리시고.”
눅13:6~9에서 예수님은 비유로도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고서, 삼 년이나 그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열매를 얻지 못하자, 그는 포도원지기에게 그 무화과나무가 땅만 버리니 찍어버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포도원지기가 이와 같이 대답했습니다. 눅13:8~9 말씀입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물론 포도원지기의 간청으로, 삼 년이나 열매를 맺지 않은 무화과나무에 대한 심판은 다소 늦추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화과나무가 또다시 그 해에도 열매를 맺지 아니했다면, 어쩔 수 없이 그 무화과나무는 찍혀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운명이 그러했습니다. 삼 년 동안 예수님은 그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베푸셨습니다. 또한 그들을 위해서 많은 이적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의 열매를 맺기는커녕, 도리어 예수님을 죽여 없애기로 작정했습니다.
물론 누가복음 13장의 무화과나무처럼, 그들에게도 어느 정도 심판의 유예기간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무화과나무처럼, 결국 그들은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여 우리도 그 동안 무위도식하면서 땅만 허비하는 나무는 아니었습니까? 열매 맺지 않는 나무는 찍힘을 당합니다. 지난 날 우리의 부실했던 농사와 결실을 회개하며 용서를 구합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힘써 아름다운 열매를 맺읍시다.
셋째로, 우리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잎사귀 있는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무화과나무에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잎사귀만 있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영적인 교훈을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이 끝맺음을 합니다.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잎사귀만 있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때 그들은 과연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었겠습니까?
만일 그 때 그 자리에 우리가 있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떠한 생각을 했겠습니까? “나는 잎사귀만 있는 나무가 되어서는 안 되겠구나. 나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어야겠구나.” 분명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열매를 맺어야 할 나무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서 찾으시는 것은 잎사귀가 아니라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는 무엇입니까? 과연 우리는 어떠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까?
갈5:22~24 말씀은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오직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그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는 아홉 가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우리는 이들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를 간단하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는 모두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사랑도 희락도 화평도 충만하십니다. 예수님은 오래 참으시며 자비하시며 선하십니다. 그리고 충성과 온유와 절제도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예수님 닮기 원함이라.”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맺어야 할 첫째 열매는 예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모두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으면, 자연히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낼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예수님의 향기를 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로 말미암아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로 말미암아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맺어야 할 둘째 열매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세 가지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열매를 찾으셨습니다. 둘째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서도 열매를 찾으십니다. 잎사귀만 있는 무화과나무처럼, 우리의 직분만 과시하려 들지 말고 직분에 걸맞게 열심히 봉사합시다. 예배를 드릴 때도 예배의 모양만 갖추지 말고, 진정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립시다.
열매를 맺지 않으면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새해를 허락 받았습니다. 올해가 주어졌으니까, 내년도 또한 후 내년도 자동적으로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맙시다. 계속해서 열매를 맺지 않다가는 결국에는 찍힘을 당하고 맙니다.
새해에는 매일매일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도록 힘씁시다. 예수님을 본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더 깊이 배우며 더 많이 기도합시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의 증인이 되리라는 심정으로 힘써 복음을 전합시다.
요15:8 말씀입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새해에는 열매를 많이 맺읍시다. 그리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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