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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도에 대해 가르치신 예수님! (막 11:20~26)

기도에 대해 가르치신 예수님! (막 11:20~26)

 

 

오늘 본문 말씀의 주제는 기도입니다. 어떠한 기도가 능력이 있으며, 어떠한 기도가 효과적입니까? 어떻게 기도해야지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베푸셨습니다.

물론 그 동안에도 예수님은 그들에게 기도에 대해서 많이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이 기도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난 삼 년 동안 그들은 늘 예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동안은 예수님이 언제나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의 갈 길을 친히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예수님이 몸소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또한 그들이 시장할 때면, 예수님이 손수 그들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면서, 그들의 모든 필요를 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그들의 면전에 늘 하나님을 모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들은 따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까닭을 못 느꼈던 것입니다.  

요16:24 말씀과 같이, 지금까지는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을 때도, 그들은 깊이 졸거나 잠들어버렸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기도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곧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입니다. 그 후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실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제자들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오직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예수님이 그들 곁에 보이지 아니하시더라도,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한번 오늘 본문에서 그들에게 기도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기도의 원리를 밝히 제시합니다. 능력 있는 기도, 응답 받는 기도, 효과적인 기도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기도의 원리를 세 가지로 나누어서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하신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20~21절).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따라서 여태껏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더 힘있게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효과적인 기도를 드리는 첫째 원리입니다.


막11:20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때는 고난주간의 셋째 날이었습니다. 그 전날 예수님은 잎사귀만 있는 무화과나무를 심판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강도의 소굴이 된 성전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날이 저물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성 밖으로 나가셔서 베다니로 가셨습니다.

다음날, 곧 고난주간의 셋째 날을 맞이했습니다. 아침에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베다니를 나와 예루살렘을 향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들은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았습니다. 그 전날 베다니로 갈 때는 날이 어두워서 보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뿌리째 말랐습니다. 잎, 가지, 줄기 등 무화과나무 전체가 말랐습니다. 그러니까 무화과나무는 완전히 죽어버린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단순히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아예 성전을 심판해버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심판으로, 무화과나무는 뿌리째 말라서 죽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심판으로,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막13:2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예루살렘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졌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눅21:33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천지는 없어져도 예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아니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막11: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그 전날 예수님은 잎사귀만 있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예수님이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제자들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생각이 났습니다. 예수님이 그 무화과나무에게 하신 일이 생각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에게 이와 같이 여쭈었습니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그 때 그들은 그 전날 예수님이 하신 일을 생각했습니다. 바로 여기에 능력 있고 효과적인 기도를 드리는 첫째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하나님이 하신 일을 깊이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이전에 하나님이 하신 일이 전연 없다면, 지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과거에 하나님이 하신 일이 있기 때문에, 지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능력 있는 기도를 드리려면,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많은 연단을 받았습니다. 그 후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주신 말씀이 바로 신명기입니다.

신명기를 읽어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생각하라, 또는 기억하라”말씀입니다. 이 두 단어는 같은 뜻입니다. 이 말씀이 신명기에만 스무 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이제 곧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수많은 난관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와 같이 명하셨습니다. “너희가 어떤 문제를 당할 때마다, 이미 내가 너희를 위하여 행한 일을 생각하라.”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신 일, 반석에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신 일,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일,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신 일,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이기게 하신 일, 등등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절로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또는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회상해보십시오. 그리하면 지금도 또한 앞으로도 하나님은 변함 없이 역사하실 것임을 쉽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효과적으로 기도하는 첫째 원리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22~24절).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능히 응답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좋은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능력 있고, 응답 받는 기도의 둘째 원리입니다. 


막11: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베드로의 말이 끝나자, 예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대답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 곧 제자들 전체에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앞 절에서 베드로가 한 말은 베드로가 모든 제자들을 대신해서 했던 말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이 때 강조되는 점은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대상인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흔히들 우리의 믿음에 무슨 능력이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의 믿음 자체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모든 능력은 오로지 하나님에게서만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홍해가 갈라졌을 때를 생각해봅니다. 모세의 믿음이 커서, 그의 믿음이 홍해를 가른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친히 홍해를 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마7:11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생각해봅시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고집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옳지 못한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면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곧이어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능력이 있고 효과적인 가를 설명하십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하나의 예를 들어서 비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23절 말씀입니다.


막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진실로”입니다. 비록 엄청난 말씀이긴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진실입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천지는 없어지더라도, 예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단어가 “누구든지”입니다. 이는 참으로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 안에 우리 모두가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해당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나오는 말씀이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나오셔서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이 산은 베다니가 위치한 감람 산이며, 또한 바다는 감람 산 정상에서 먼 곳으로 내려다보이는 사해였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 때 예수님은 비유적인 표현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산이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가 있으십니다.

때로는 산처럼 큰 문제가 우리 앞을 가로막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그 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줄 믿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을 의심하면 안 됩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 때의 주안점은 우리의 믿음에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 자체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습니다, 믿습니다”를 아무리 수 없이 반복해도, 산이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선함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짐을 믿어야 합니다.

마17:20에서 예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겨자씨는 아주 작습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산을 옮기는 것은 우리의 믿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에 능력이 있으려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막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십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합니까?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구하지도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겨자씨의 믿음을 생각해봅니다. 마13:32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겨자씨는 모든 씨보다 작습니다. 그러나 겨자씨는 점점 자랍니다. 풀보다 더 커집니다. 나중에는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일 정도로 큰 나무가 됩니다.

기도했는데도, 응답 받지를 못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기도를 중단해버리면, 그것은 겨자씨의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겨자씨의 믿음은 그럴수록 더욱더 간절하게 매달리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1장을 보면, 벗에게 떡 세 덩이를 구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또한 누가복음 18장을 보면, 재판장에게 원한을 풀어달라고 조르는 과부가 나옵니다. 그들은 다 응답을 받았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태도가 겨자씨의 믿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태산처럼 큰 문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며 구합시다. 그리하면 그 산이 아무리 크다하더라도, 하나님이 그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하나님은 산을 들어서 바다에 던지지 아니하실 수도 있으십니다. 그 산이 우리에게 유익할 경우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밝히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기도의 둘째 원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절로 능력 있는 기도, 응답 받는 기도, 효과적인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25~26절).


사59:2 말씀처럼,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우리에게 죄가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아니하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려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길은 무엇입니까?


막11: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서서 기도할 때에.” 그 당시에는 보편적으로 서서 기도했습니다. 예컨대 눅18:9~14 말씀을 보면, 바리새인도 서서 기도했고 세리도 서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기도할 때의 몸 자세가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입니다.

그래서 곧이어 예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혐의가 있다는 말씀의 본 뜻은 마음에 원한을 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마음에 품은 원한을 없애려면, 그 사람을 용서해야만 합니다

왜 우리가 우리에게 허물이 있는 자를 용서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그 이유를 이와 같이 밝히셨습니다.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우리가 남의 허물을 용서해야, 하나님도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는데도 용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도 우리의 허물을 사하여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허물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아니하십니다.


막11:26 (없음)

(만일 너희가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니하시리라)


우리말 성경을 보면, 분명하게 26절이라는 절의 수가 표기되어 있긴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26절에 해당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를 않습니다. 단지 괄호 안에 “없음”이라고 써놓았을 뿐입니다. 이는 무슨 까닭입니까?

마가복음의 원본은 오늘날 남아있지 않습니다. 단지 서기관들에 의해 기록된 마가복음의 여러 사본들만이 오늘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기에 기록된 사본들을 보면, 오늘 본문 26절에는 아무런 말씀이 없습니다.

다만 보다 후기에 기록된 몇몇 사본들을 보면, 26절에 이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너희가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니하시리라.” 이 말씀이 초기 사본들에는 없는데, 후기 사본들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후기 사본들보다는 초기 사본들이 더 권위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 성경은 26절이라고 표기는 하되, 후기 사본들이 담고 있는 말씀을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마가복음의 원본에는 그 말씀이 없었을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마6:14~15에서도 예수님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나님도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도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십니다.

물론 여기서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의 육신이 약하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죄를 짓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이미 몸은 깨끗하게 씻었더라도, 더러워진 발은 계속해서 씻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엡4:32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심과 같이 우리도 서로 용서합시다. 그리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능력 있는 기도, 응답 받는 기도, 효과적인 기도를 드리는 셋째 원리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능력 있는 기도, 응답 받는 기도, 효과적인 기도의 원리를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하신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요14:12~13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컨대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셔서 뿌리째 마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더 큰 일, 곧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는 일도 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그와 같이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예수님이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능력 있는 기도, 응답 받는 기도, 효과 있는 기도를 드림으로 큰 일을 행하여,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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