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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존재 대하 16:1∼14 길자연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에 시종여일(始終如一) 충실하면서 살아가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과 그 성품은 시종여일하다는 사실을 요한계시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 완전한 하나님처럼 변치 않고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된 아사왕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손자요 아비야의 아들입니다. 아버지 아비야가 죽자 그를 대신하여 왕으로 즉위하였고, 그런 가운데서 어린 아사가 통치하는 10년 동안 유다는 평화로웠습니다. 아사왕은 왕위에 즉위하자마자 우상을 없애고 선과 정의를 행하였습니다. 아사왕은 나아가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경배하게 했습니다.
이를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유다에 평안과 형통을 주십니다. ‘이방 제단과 신당을 없이 하고 주상을 훼파하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을 명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하며 그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이 하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얻으니라’(대하 14:3-5).
얼마 후, 구스의 세라가 군사 100만과 병거 300을 거느리고 남왕국 유다를 침공하였습니다. 아사는 이러한 생명의 위협 속에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였습니다.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대하 14:11).
하나님의 역사로 구스와의 전쟁에서 대승을 하게 됩니다.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수십만도 안 되는 군대로 100만의 군사를 이긴 것은 하나님이 도우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아사는 기뻐하며 하나님을 모시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아사는 아사랴의 말을 듣고 우상을 박멸하고 여호와의 낭실 앞에 여호와의 단을 중수합니다. 아사가 즉위한 지 15년 3월에 예루살렘에서 모여 소 700과 양 7000으로 하나님 앞에 경배와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찾지 않는 백성을 죽이라고 명령하면서 온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했습니다. 또한 어머니 마아가가 아세라 목상을 만들자 태후의 자리를 폐하였습니다. 아사왕은 왕에 즉위한 지 35년 동안 오로지 하나님 중심으로 통치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던 아사가 즉위한 지 36년 때부터 그 원칙과 삶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중심으로 나라를 통치하고 인간 중심으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왕으로 즉위한 지 36년 유다는 큰 위기에 봉착합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바아사가 수십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내려와 유다를 압박합니다. 이스라엘 북왕국과 유다 남왕국의 중심 지점인 라마에 성을 건축하고 북왕국에서 남왕국 예루살렘으로 제사를 드리러 오는 많은 백성들을 가로막으면서 남왕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다급해진 아사왕은 아람의 벤하닷에게 사람을 보냅니다. 그는 성전의 곳간에서 은과 금을 자랑하며 부탁합니다. ‘내 부친과 당신의 부친 사이에와 같이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하자 내가 당신에게 은금을 보내노니 와서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저로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대하 16:3). 벤하닷은 돈을 받고 북왕국의 남하를 가로막게 됩니다.
이렇게 나라의 위기를 극복한 아사왕은 하나님을 보내어 자신을 경고하는 선견자 하나니를 옥에 가두고 신앙 중심으로 사는 백성들을 학대하기 시작합니다. 아사왕은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형편과 사정에 따라서 인간적인 술수를 쓰는 사람으로 변한 것입니다. 신령한 사람에서 세속의 육적인 사람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가 왕위에 즉위한 지 39년 되는 해에 발에 병이 생겼습니다. 바로 그 때, 그는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고 의원을 찾아 병을 고치려 했습니다. ‘병이 있을 때에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대하 16:12). 신본주의자였던 그가 인본주의자로 전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왕위에 즉위한 지 41년, 2년 동안의 질병 끝에 열조에게 돌아가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는 초창기에는 신앙이 좋은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었습니다. 우상을 훼파하고 우상에 대해서라면 어머니와의 관계를 끊을 정도로 하나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말년의 인생과 신앙은 타락하고 불의하게 삶을 마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시종여일하게 하나님께 향하고 있습니까? 과거의 첫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과거의 첫 열심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시종여일 맡은 일에 충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과거의 열정적인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과거의 뜨거운 헌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과거의 열정적인 말씀생활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심지가 견고해서 하나님만 의지하여 맡은 일에 충성할 것을 바라고 계십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 25:3).
아사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방 나라의 힘을 의지했습니다. 자신의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눈을 돌려 이웃에 있는 부강한 나라의 힘을 의지한 것입니다. 벤하닷에게 물질을 보냄으로 자신과 백성과 나라의 위기를 막아보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힘과 지식의 힘과 물질의 힘은 하나님 앞에 우리의 구원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사는 어쩌다가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는 자리에서 인간을 의지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습니까? 그의 신앙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의지하고 체험하고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기도하던 신앙이 점점 세월이 흐르면서 빈 껍데기로 전락한 것입니다.
여기서 인본주의가 나옵니다. 인본주의의 특징은 교만이요 자기 중심적인 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아사는 위험한 고비 때에도 하나님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교만한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아마도 계속되는 평화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열정이 식어졌을 것입니다. 너무 편하고 만사가 형통하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할 수 있습니다. 시련과 역경이 오히려 우리의 신앙을 바로 잡아줍니다.
우리는 생활이 편할 때 더욱 경계하며 신앙생활에 전력해야 합니다. 시종여일한 참 믿음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환경이 좋지 않을 때, 하나님께 나오십시오. 지금 하나님의 형통함을 경험하며 평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에도 하나님께 나오십시오. 우리의 첫 열심과 열정과 사랑이 우리의 달려갈 길을 마칠 때까지 여전한 방식과 능력으로 지속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