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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그들은누구인가?눅 15:11∼26 길자연

신세대와 기성세대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세대는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팬클럽을 조직합니다. 맹목적이라고 할만큼 열광적입니다. 그러므로 신세대와 기성세대의 갈등과 불협화음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세대가 한 울타리 속에서 살면서 이질적인 요소로 부딪치고 갈등하고 있지만,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서로가 서로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명심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기성세대를 사랑하시듯 역시 신세대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청년이 누구인가, 청년 시대의 본질과 그 특성이 어떠한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또 청년이 가장 의지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청년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입니다. 청년은 자기 외에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눅 15:12). 본문에서 우리는 둘째 아들의 말에 주목합니다. 이 아들은‘내게’란 말을 두 번 사용합니다. 둘째 아들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자기중심이었습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을 달라고 하면 아버지의 입장이 어떨 지,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실 지, 자기가 한 말이 아버지의 마음을 곤욕스럽게 하지는 않을 지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자기 생각대로 말했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고 자기의 재산에 대해서만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청년시대가 그러합니다. 오늘의 청년이 자주 표현하는 말은 ‘내게 돌아올 분깃을 주소서’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청년시대는 자기중심적인 시대입니다. 부모의 고통이 무엇인지, 부모의 아픔이 무엇이고 무엇을 생각하고 고충을 겪고 있는 지 모릅니다. 그저 내가 손해보면 안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 중심적으로 산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 진실한 그리스도의 삶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둘째, 청년은 물질중심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눅 15:12).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이 나에게 얼마나 분배될까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재산을 나눠주었습니다. 13절에서 이 아들은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떠났다고 합니다. 여기서 모았다는 말은 현금으로 다 바꾸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버지가 죽을 때 비로소 분깃이 돌아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 아들은 멀쩡히 살아계신 아버지를 향해 자신에게 돌아올 재산의 분깃을 달라고 합니다. 둘째 아들은 돈이면 다라고 생각합니다. 이 아들에게 아버지는 필요없고 오직 돈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청소년의 문제는 돈이 최고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만지는 것마다 돈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일찍이 깨우쳐야 합니다.
 셋째, 청년은 조급합니다. 본문의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의 분깃을 받은 이후 며칠이 못되어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눅 15:13). 둘째 아들은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기다리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조급했습니다. 아버지가 준 재산을 모두 현금으로 바꾸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준 재산으로 남보다 더 급하고 빨리 이루려 했습니다. 오늘날도 청년들은 조급합니다. 빨리 성공하려 합니다. 빨리 성취하려 합니다.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전 3:1). 모세를 보십시오. 기다릴 줄 모르고 마음이 조급하니까 동족을 위해 독립을 하려고 나섰다가 애굽사람을 때려 죽이는 살인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너무 조급하지 마십시오. 너무 급하게 생각을 바꾸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도 조급하지 않으셨습니다.
 넷째, 청년은 현실도피적입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없는 아버지의 간섭이 없는 먼 나라로 갔습니다. 이처럼 청년은 현실을 탈출한 미래의 저 세계가 불투명한지를 신중하게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본문에서 보여준 먼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그 먼 나라는 쾌락과 실패와 가난과 굶주림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청년들은 먼 나라와 그 미래에 실패와 가난이 있다는 것은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청년들은 당장의 답답한 마음을 탈출하기 위해 현실에서 뛰쳐 나가려 하는 것입니다. 청년들은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미래를 지향합니다.
 다섯째, 청년은 상당히 도발적이고 발산적입니다.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눅 15:13). 허랑방탕했다는 말은 헬라어로 거친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오늘 청년들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범죄를 일삼습니까. 도덕적인 타락에 너무도 관대합니다.
 여섯째, 청년은 위기관리능력이 없습니다. 가진 재산을 먼 나라에서 모두 없앴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흉년이 오고 궁핍함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여기 저기 전전긍긍합니다. 결국 이 아들은 돼지를 치는 사람의 집에 가게 되었으나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도 구하지 못하는 형편에 처했습니다. 시련이 오고 위기가 오고 역경이 오고 흉년이 오는데, 이 탕자는 위기관리능력이 없었습니다. 그의 생활은 파멸을 향해서 떨어지게 됩니다. 청년의 현주소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청소년들도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대처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탕자는 그 위기에서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 탕자 같은 형편으로 위기를 맞은 청년들이 의지해야 할 분은 누구겠습니까.
 탕자는 드디어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끝까지 기다리시는 분이었습니다. 돌아온 탕자를 사랑의 손길로 끌어안아 주시고 품에 품어 주신 아버지였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대변해 주고 용서해 주고 편이 되어 주신 사랑의 아버지셨습니다(눅 15:24).
 오늘 우리가 의지해야 할 하나님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내 편이 되어 주시고 사랑과 긍휼로 안아주시고 붙들어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가기만 하면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돌아갈 때우리는 진정으로 기쁨과 풍성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붙들지 않으면 영적, 육적 궁핍하게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청년시대의 유일한 답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