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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아끼라-엡 5:15~21

세월을 아끼라-엡 5:15~21

 

 

미연방교도소에서 복역한 에드워드 분커(Edward Bunker)미스터 블루-변절자의 추억(Mr.Blue:Memoirs of a Renegade)’이라는 자서전을 출간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분커는 5세 때 부모가 이혼을 하여 8세 때부터 아동 보호소에서 자랐습니다. 그 후 소년원 수감, 탈옥, 정신병원 수용 등 악순환이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범죄 조직에 가담하고 마약거래와 무장강도 혐의로 검거돼 최연소 수형자로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이 그 곳에서 바뀌게 되었습니다. 언제 사형이 집행될지 모르는 초조감 속에서도 글을 쓰는 사형수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분커는 그 사형수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고 결심을 했습니다. “나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인생을 헛되이 살지 말아야지그래서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유명한 고전 작품들은 모조리 섭렵했습니다. 그리고 글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18년간 교도소에 있으면서 장편소설 6편과 단편소설 50편을 쓸 수 있었습니다. 41세가 되어 교도소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작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출소 후에도 미친 듯이 글만 썼습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자신이 다시 타락하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침, 점심, 저녁, 밤낮 없이 글만 썼습니다. 비로소 그의 글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화 제작자들로부터 교섭이 들어오고, 그가 각본을 쓴 영화가 오스카상 후보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한 시간도, 한 순간도 이제는 헛되게 보내지 않을 꺼야! 나는 시간을 알차게 보낼 것이다라고 결심하고 시간을 선용하며 살았기에 전과자였지만 소설가로 성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세월을 아끼라에서 아끼라는 원어로 엑사고라조메노이입니다. 이는속량하다는 뜻입니다. 영어로 ‘redeeming the time’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윌리암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노예제도를 통해 속량을 설명합니다. “노예는 소유권이 없습니다. 재주와 능력, 그가 버는 돈, 모두 주인의 것입니다. 생명까지도 주인의 것입니다. 노예가 주인이 원하는 것보다 더 충성스럽게 일하면 주인이 얼마의 돈을 줍니다. 그러면 노예는 돈을 신전에 맡깁니다. 이렇게 하기를 반복하여 액수가 어느 정도 되면 노예는 신전에 가서 돈을 찾아 주인에게 몸값을 치룹니다. 그 때부터 노예는 자유하게 됩니다. 자유의 시간을 생각하며 충성되게 일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시간을 속량한다는 의미입니다. 주어진 시간을 최선의 시간으로 알고 선용하는 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악합니다. 일이 많아서 우리를 쉬지 못하게 합니다. 지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생각할 시간도 내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 말씀을 읽을 시간을 내지 못하게 합니다. 혼자 예수 믿기도 힘들어 다른 이에게 전도할 엄두도 못 내게 하는 악한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에게 속한 악한 시대를 사서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시간을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직 지혜 있는 자는 바로 세월을 아끼는 자라고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세월을 아끼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주의 뜻을 이해해야

전도자 무디(D. L. Moody)가 시무하던 교회의 교인이 양조장을 크게 짓고 개업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모두 양조장 사업이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 그리고 축사를 했습니다. 마지막 축도시간이 되어 무디가 앞으로 나갔습니다. 무디는 손을 높이 들고 축복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이 양조장이 예배드린 후에 곧 문을 열게 됩니다. 이 양조장 문이 열리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문이 열리면 엄청난 술이 생산될 것입니다. 수많은 청소년들이 술을 마시고 타락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술을 먹고 취하여 제 정신이 아닐 것입니다. ! 하나님. 오늘 밤 양조장 주인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셔서 양조장 문이 열리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모인 사람들은 파티도 못하고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양조장 주인은 밤새 고민하며 한숨도 잘 수 없었습니다. 새벽에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양조장 문을 열지 않기로 하나님 앞에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건물이 후에 무디 신학교가 되었습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본문 17절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우리는 건강할 때보다도 오히려 약할 때, 부유할 때보다도 오히려 가난할 때, 불행할 때 더 하나님의 뜻에 가까이 있음으로 시간을 더욱 선용할 수 있으며 그 시간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간에 개입 할 때가 더 안정될 때입니다. 시간을 선용해 가는 때는 환경, 여건이 문제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문제입니다. 그것만 알면 어느 시간도 낭비는 없게 됩니다.

욥의 고민이 무엇입니까? 고난 자체, 재물 손실 자체가 욥에게 억울함이 아니고 그 시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는데 대한 이해를 못하는 데에서 오는 고민입니다. 거기에서 오는 갈등입니다. 거기에서 오는 몸부림입니다. 모든 것을 다 상실하고 비참한 지경에 있다 할지라도 그 시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분명히 이해한다면 세월을 아끼는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성령으로 충만해야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는 삶으로 복음을 사는 케이티 데이비스(Katie Davis)의 현재진행형 감동 실화를 그린 책입니다. 그녀는 우간다에서 14명의 아이들을 친딸로 입양해서 키우는 동시에 아마지마(Amazima)’라는 비영리 사역 단체를 세워 빈민과 아이들, 병자들을 돌보며 복음을 전하는 스물세 살의 미국인 여성입니다. 남부러울 것 없이 다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2007년 열여덟의 나이에 사랑하는 가족과 풍족한 생활, 보장된 미래를 모두 내려놓고 우간다로 날아간 그녀의 선택과 결단은 미국 사회 내에서 선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으며 시대의 귀감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녀는 책의 서두에서주님, 우리가 매 순간 주님을 선택하게 해 주세요. 주님을 사랑하면서부터 나 자신의 계획, 나를 향한 다른 사람들의 계획은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거대한 사랑이 내 안에서 꿈틀거렸고, 그 사랑이 나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대학 입학 전 1년만 머물 작정으로 선교 여행을 떠났던 우간다에서 잠시 맡아 돌봐주던 다섯 살배기 아이가 꺼낸 한 마디,“엄마라고 불러도 돼요?”라는 말이 그녀의 삶을 새로운 지경으로 이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고백합니다.“사람들은 나를 엄청난 사람으로 생각하곤 합니다.‘정말 용기가 대단해! 정말 강인한 아가씨야! 정말 특별한 사람이야!’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미국 테네시 주 출신의 평범한 아가씨일 뿐입니다. 나는 틈만 나면 실수를 저지르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봐도 특별한 점이라곤 없습니다. 딱 하나, 늘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점이 특별하다면 특별할 것입니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비범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평범한 사람.”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아끼며 살아가는 그녀에게서 행복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일들을 보면 자신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묻는 그녀의 모습이야말로 성령 충만함으로 세월을 아끼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닙니까?

본문 18절입니다. “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여기의 술 취하지 말라는 것은 단지 음주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고 세상적인 쾌락에 자신을 맡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책임을 망각하고 먹고 마시면서 할 일을 소홀히 하는 자세를 경고하는 것입니다. 여기의 방탕함은 세월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악한 때에 방탕한 자세로 살 것인가, 혹은 성령의 충만을 받아 살 것인가 결단을 촉구합니다.

성령의 충만은 우리를 무감각하게 마비시키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분별력을 가지고 깨어 있도록 해 줍니다. 세월을 아끼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인격이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생각이 성령에 의해 움직여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원수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마음도 가질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려면 항상 낮추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기도하기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필요를 인정하지 않고 교만하여 문제를 일으키고 맙니다. 결국 세월을 낭비하는 모습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하여 세월을 아끼는 지혜로운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마음으로 노래해야

런던의 웸블리 스테이덤에서 남아공의 만델라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기 위하여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세계적 록밴드와 가수들이 모여 축제를 벌였습니다. 7만에 가까운 군중들이 모여 만델라의 취임과 흑인의 해방을 축하하면서 보냈습니다. 어둠이 짙어갈 무렵 콘서트의 마지막 주자로 흑인 여가수 제시 놀만(Jessye Norman)이 올라섰습니다. 놀만은 무대에서 한동안 서서 기도하였습니다. 잠시 후 노래가 시작되었습니다. 반주도 없이 목소리만을 사용해서 부르는 노래는 노예매매상의 죄악을 회개하고 노예 해방을 위해 헌신했던 존 뉴턴의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였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장내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숙연해졌습니다. 3절이 시작되자 따라 부르는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찬양 하리라.” 찬양이 끝났을 때 사람들은 침묵 속에 잠겨버리고 말았습니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한동안 어둠 속에서 노래를 통해 선포되어진 메시지를 가슴에 안고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튿날 신문에 기사가 실렸습니다. “어젯밤 웸블리 스테이덤에 하나님의 신이 임하셨다.” 다음 주일에 적지 않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교회로 향했다고 합니다.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가 죽어 있던 사람들에게 생명을 허락하시는 은혜가 임했던 것입니다.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세월을 아끼며 그리스도의 변화된 삶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본문 19절입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에는 치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일상적인 삶은 주로 근심, 걱정, 분노의 감정에서 나오는 표현들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상처를 받게 되고 그 상처들은 허용된 시간을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은 시간을 더 의미 있게 합니다.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는 것 자체가 시간을 구속된 시간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는 자는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찬양은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선용하는 지혜를 줍니다. 그러므로 삶의 전 영역에서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와 찬양이 울려 퍼져야 합니다. 약할 때 신령한 노래들은 위로하고 격려하기에 좋은 것이 됩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주님을 노래하는 것이야말로 용기를 북돋기에 좋은 모습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라고 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자의 모습이 아닙니까?

미국 헌팅턴 프레스(Huntington Herald Press) 신문사 건물 입구에 3개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이 지구본을 껴안고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고, 다른 하나는 지구본 위에 사람이 거만한 표정으로 서 있으며, 나머지 하나는 사람이 지구본 밑에 깔려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신문사측은 동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지구본은 흘러가는 시간을 상징하는 것이요. 사람이 지구본을 껴안고 있는 동상은 시간을 아끼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고, 지구본 위에 거만하게 서 있는 모습은 시간의 귀중함을 비웃는 것을 표현한 것이고, 지구본 밑에 깔려 있는 모습은 시간을 무시하다가 실패해서 고통당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리 신문사는 항상 흐르는 시간 속에서 최후의 신문을 만들고자 이 동상을 세웠습니다.”

세월을 아끼며 살아간다면 그 무엇도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 후회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구속의 시간을 살지 못한다면 후회가 막급할 것입니다. 시간을 아끼는 선용의 문제는 외적인 여건이나 환경이 아니라 내적인 문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구속 받은 자의 삶이 되지 않고는 시간 속에서 어두운 경험밖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참여해 갈 때 비록 상황이 힘들다 해도 시간을 선용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쫓아다니는 존재로 부름 받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인공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세월을 낭비하지 말고 아껴야 합니다. 부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노래하며 찬송함으로 주어진 시간을 선용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