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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부요한 자-눅 12:13~21

하나님께 부요한 자-눅 12:13~21
 

 

 


제목 없음

 

종교, 부를 허()하다는 부자학 연구학회 학자들이 저술한 책인데종교적 삶을 통해서 훌륭한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면서 모든 빚을 갚고 하나님 펀드에 투자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자 가운데 영남대의 박정윤 교수는 대구 동신교회를 섬기는 장로입니다. 재무관리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박 교수는 성경에 기초한 행복한 부자학인터넷 강의로도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그도 한 때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에 여기 저기 투자를 했다가 손해만 잔뜩 보았습니다. 심지어 사놓은 주식 가격이 자꾸 떨어지자 답답한 마음에 새벽기도에 갔습니다.‘고민되면 팔거라는 음성을 들었지만 조금이라도 올라야 팔지요대답하였습니다. 그러다 로마서 138절의 피차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는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자산을 정리해 모든 빚을 갚아버렸습니다. 그 결과 마음의 부담이 사라진 것은 물론 건강도 좋아졌습니다. 박 교수는 성경에서 찾은 행복한 부자들을 소개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솔로몬, 욥을 말하면서 이들의 공통점은 많은 재물을 소유하게 된 것을 온전히 하나님의 복으로 해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모든 부가 여호와께 속하였고 주로부터 온다는 것을 기도로 고백한 다윗,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신다는 솔로몬을 행복한 부자로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불행한 부자는 엄청난 재물을 소유했지만 재물을 지켜 준 다윗에게 극히 작은 것도 나누어주기를 거절했다가 생명까지 빼앗겨 버린 나발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빚진 자로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죄는 스스로 갚을 수 없는 빚이지만 금전적인 빚은 최선을 다해 갚아야 한다고 박 교수는 강조합니다. 각자 받은 재능으로 재물을 모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베푸는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의 펀드로 행복한 부자가 될 것입니다. 박 교수는 한 때 신학을 할 생각도 했지만 행복한 부자학연구를 소명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열심히 연구하여 남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고 있는 박정윤 교수야말로 하나님께 부요한 부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본문에 탐심이 많은 형제가 나옵니다. 유산문제로 다투다가 동생이 예수를 찾아와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라고 청합니다. 그 때 예수께서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동생의 정당한 권리를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마음 전체가 탐심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태를 책망하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다툼은 욕심 때문에 일어납니다. 예수는 더러운 욕심 때문에 다투는 자들의 일에 관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시며 부자의 비유를 들려 주셨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지만 생명의 주관자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가진 것이 많고 먹을 것이 많으면 생명도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어리석음까지 범하였습니다. 자기만족에 빠져 있는 부자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여기의 어리석은 자아프론인데 무분별한 자, 생각이 없는 자, 지혜 없는 자라는 뜻입니다.

부자는 하나님은 생각에도 없고 오직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혜를 멀리하는 분별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다고 교훈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자기를 내세우지 말아야

비행기로 여행을 가던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첫눈에 부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재산과 사업의 번창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하였습니다. 자기 자랑에 도취해있던 부자는 미안한 듯이 당신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말씀하시지요하며 상대에게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입을 열었습니다. “제 아버지도 엄청난 부자이십니다. 이 비행기를 포함한 동산이나 부동산을 모두 소유하신 분입니다.” 이 말을 듣고 부자는 믿어지지 않아 의아스러움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말을 이어갔습니다. “물론 그것뿐이 아닙니다. 존재하는 피조세계가 모두 다 아버지의 것입니다.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도 아버지의 공동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 가더라도, 무엇을 먹고 마셔도, 어떤 것을 가져도,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언제나 부자로 넉넉하게 살아갑니다.” 그는 부자에게 당신도 예수 믿으면 나처럼 참된 부자의 행복을 갖게 될 것입니다라며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부자는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내게 단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영적 부요에 대하여 확신에 차서 말해 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얼마 후 비행기에서 내릴 때 부자도 그와 함께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되었습니다.

본문 18절입니다.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부자가 말하는 중에 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원문에는 , 나의라는 말이 열 두 번 나오고 우리말 번역에도 여섯 번이나 나옵니다. 이는 부자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 사고를 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자신을 위해 곡식을 쌓아 두고, 자신을 위해 곡간을 더 크게 짓고, 자신을 위해 곡식과 물건들을 차곡차곡 쌓아 두자는 것이 부자의 생각이었습니다. 도무지 자기 밖에 생각할 줄 몰랐습니다. 그는 재산이 늘어난 것도 자기가 잘나서 된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것, 쌓아둔 곡식, 재물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다른 것은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공로로 착각하며 자기를 내세웠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누구입니까? 자신을 내세우는 자존심과 교만을 내려놓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25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면서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더 이상 자기를 내세우는 세속적 부를 자랑하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부요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이웃을 사랑하며 섬겨야

헨리 포드(Henry Ford)가 아일랜드를 방문할 때 일입니다. 천주교의 신부들이 포드를 방문하여 자선 병원에 기부금을 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포드가 15천 달러를 기부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신문은 포드가 5만 달러를 기증하였다고 기사를 내었습니다. 신부들이 포드를 찾아와 신문사의 실수로 기사가 잘못 나왔는데 다시 15천달라로 고쳐 기사를 싣겠다며 사과했습니다. 그러자 포드는 괜찮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나머지 35천달라도 제가 내겠습니다. 그 대신 약속을 하나 해주셔야 합니다. 병원문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새겨 주십시오. ‘저는 이방인이었지만 당신이 저를 이곳에 들어오게 했습니다 (I was a stranger and you took me in)’ 이방인에 불과했던 자신이 가진 돈을 이웃과 나눔으로서 그들 속에 함께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웃에 대하여 눈을 돌리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하며 섬겨야 합니다. 이웃을 향해 이방인으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이웃을 보지 못했기에 어리석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기적인 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지게 하며 결국 이웃과의 관계도 파괴시키고 맙니다.

본문 19절입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부자의 독백 가운데서 '당신'이라는 말은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당신이라는 말이 존재할 여백이 없습니다. 부자의 세계는 당신이 없는 오로지 나만의 세계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부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이웃의 도움이 있었습니까? 많은 소작인들의 도움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재물을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눔에 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육신을 위해 쌓아놓을 줄만 알았습니다. 왜 사회가 살벌하고 각박해졌습니까? 가난해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나누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나눔에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재물을 이웃과 얼마나 나누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내 것만 주장하고 나눌 줄 모르고 이웃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부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웃을 돌아보며 섬기는 자가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아니겠습니까?
 

셋째로 재물을 하늘에 쌓아야

유대 랍비들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모노바즈(Monobaz)는 비교적 관대하고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해 기근이 닥쳐와 이웃들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자기가 상속받은 재물을 모두 내어놓았습니다. 그때 형제들이 찾아와 못마땅하게 말하였습니다. “조상들은 그 재물을 축적하고, 자손들도 상속받은 재물에 더 많이 보탰다. 그런데 왜 상속받은 재물을 그렇게 써버리느냐?” 그때 모노바즈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의 조상들은 보화를 땅에 축적했지만 나는 그것을 하늘에 쌓았습니다. 나의 조상들이 이 세상을 위하여 쌓았다면 나는 다가오는 세상을 위하여 쌓는 일을 한 것이지요그는 썩어질 세상보다 하늘에 재물을 쌓을 줄 아는 지혜로운 자였습니다. 이웃을 향한 사랑의 부요는 하나님께 대한 부요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 21절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재물이나 세상 것이 우리를 복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진 것이 크든 적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될 때 부요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곳간보다 하나님의 곳간을 더 부요케 해야 합니다. 그것이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만 잘 먹고 잘 살고 편안한 노후를 위해 배를 불리는 사람은 결코 진정한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이 아니라 하늘에 재물을 쌓아 놓는 지혜로운 자가 하나님께 부요한 자입니다. 그렇다면 재물을 하늘에 쌓는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그의 의를 위해 재물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하늘에 재물을 쌓아 놓는 일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세상에 재물을 쌓아두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서학자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 에게 학생이 찾아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내, 나의, 나의 것이란 단어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러자 바클레이가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침략의 대명사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침략적일 만큼 자기중심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웃을 생각할 줄 몰랐습니다. 철저한 이기주의야말로 철저한 영적 가난인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재물을 많이 가졌다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재물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재물을 취함에 부정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재물의 소유주가 자신이고, 재물의 사용주도 자신이고, 자신만을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이웃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는 부요한 자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의 모습이 잘못입니다.

모름지기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자기만을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는 어리석은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웃을 돌아보며 재물을 사용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재물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재물을 쌓아두는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되어 넉넉함을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