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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시 1:1~3

 복 있는 사람-시 1:1~

 

 

 



제목 없음

1822년 독일에서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7살 때 아버지가 성탄절 선물로 주신어린이를 위한 세계사라는 책에서 유명한 시인 호머가 쓴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트로이라는 도시가 아직도 실재하는 장소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믿음은 마침내 그의 일생을 이끌어 가는 포기할 수 없는 꿈이 되어 41세 되던 해 고고학자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51세 되던 1871년 드디어 그는 과거의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 에게해 연안 언덕에서 트로이 유적을 발굴하는 일에 성공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적 탐사의 과정에서 보화들을 발굴하고 세기의 부호가 되었습니다. 독일의 기자가 그의 부자됨을 축하했을 때 흥미 있는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 부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트로이에 대한 믿음과 꿈을 가진 그 순간부터 나는 이미 부자였으니까요.” 우리도 이미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진 순간부터 복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복 있는 사람을 설명하면서 형용사가 아닌 동사를 사용합니다. 복은 상태가 아니라 행동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 하고,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입니다. 돈 많이 번 상태, 지위가 높고 명예가 높은 상태, 세상적 성공의 상태, 출세한 상태나 편하고 안일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돈 많고 성공하고 출세하고 명예로운 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며,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으면 복된 사람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행하며,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구약에서 복을 표현할 때 사용한 단어는 바라크아쉬레이입니다. 바라크는 구약에 415번 정도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적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의 선행과 상관없이 내려주시는 복입니다. ‘아쉬레이44번 정도 사용되었는데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순종하는 자에 대한 보상으로 내리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는 바라크의 복과 달리 우리가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 얻는 복이아쉬레이의 복입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복 있는 사람은 아쉬레이의 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행동으로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복 받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살아가야할 태도를 말하며 받은 복으로 복이 되게 하는 삶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복 있는 사람입니다. 복 받을 사람이 아니라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복 받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복 있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로 그 생각이 복되어야

20세기 초 경제 대공황이 세계를 뒤엎었을 때 독일 국민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사업이 망하고 공장들이 문을 닫고 중소기업이 무너졌습니다. 그때 등장한 사람이 아돌프 히틀러(A. Hitler)입니다. 그는 독일의 게르만 민족은 온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며 유럽과 세계를 다스려야 한다. 그러므로 세계를 다스리고 지배해야 된다라는 야망으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유럽을 초토화시키고 온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었습니다. 히틀러는 유태인들은 인종의 쓰레기라고 주장하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600만 명 이상을 학살하였습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생각이 무서운 비극적 결과를 초래한 일이었습니다. 법정신의학자 라인하르트 할러(Reinhard Haller)아주 정상적인 악이라는 저서에서 모든 범죄는 악한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하였습니다. 범죄는 마음에 악한 생각이 들어오고 난 후에 그것으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악인은 원어로 라솨인데 인격이 진실하지 못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악 한 꾀에차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생각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으니 그 생각도 의도도 계획도 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생각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예레미야 619절입니다.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한 생각, 죄짓는 생각 때문입니다.

악인의 꾀는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타락하도록 유혹했습니다. 가인을 통해 동생 아벨을 죽게 했으며, 사람들을 타락케 하여 노아 홍수의 원인을 만들었습니다. 수많은 불행을 조종한 악의 근원이 되는 악한 생각을 만들고 있습니다. 언제나 악한 생각을 심어 악한 열매를 맺게 하고 생명을 파멸과 죽음으로 초래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항상 복된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그 행동이 복되어야

사무엘 맨(Samuel Mann)은 노만 빈센트 필 목사를 만나 구원의 체험을 말했습니다. 어느 날 시골길로 가다 늪에 빠졌습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단단한 땅 같아 밟고 들어섰는데 갑자기 발목까지 말려들어 갔습니다. 사방에 아무도 없었기에 소리를 질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있었으며 옆에는 갈대들이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것을 잡기만 하면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 팔을 뻗어 갈대를 잡았습니다. 힘을 주어 당겼더니 갈대만 뽑히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장화를 신은 채 나오려고 발에 힘을 줄 것이 아니라 장화를 벗어 버리면 되지 않겠는 가 생각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팔을 뻗어 갈대를 한웅 큼 잡고 발의 힘을 빼고 장화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장화를 벗어 버릴 때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죄의 수렁에 빠질 때 십자가를 붙잡고 죄악에 박혀있는 상태를 벗어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죄인은 원어로 하타임인데 목표를 맞추지 못한 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춰 살지 않는 사람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기 기준에 맞추어 살아갑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합니다. 죄인들의 자리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선다는 것은 행동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빗나간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정 복 있는 자는 죄인의 길에 서지 말고 도리어 거절해야 합니다.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악인의 꾀가 생각이라면 죄인의 길은 행동을 의미합니다. 머리의 생각을 몸으로 나타내는 것이 행동입니다. 행동은 육체를 도구로 삼습니다. 좋은 것을 보면 가지고 싶은 욕망이 생깁니다. 배가 고프면 먹고 싶은 욕망이 느낍니다. 육체는 편리하고 좋은 것을 사모하게 하며 죄악의 길에 서게 합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생명이 기다리는 길로 가야 합니다. 동시에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나아가 복 있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그 자리가 복되어야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대제가 러시아를 정복하기로 계획했을 때 충성스런 장군이 그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각하! 러시아 원정을 취소하옵소서. 지금까지 수많은 나라를 정복하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러시아 정복을 그만하소서.” 그러나 나폴레옹은 그의 충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장군이 다시 간청하면서 아무리 사람이 일을 계획해도 그 일을 성취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번 러시아 원정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취소하십시오.” 그러자 나폴레옹은 크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가 모든 일을 계획하고 성취한다. 무슨 하나님이 일을 계획하고 성취해?” 그는 오만하게 러시아 원정을 출발하였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에서 실패하여 패망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는 원어로 레침인데 하나님을 조롱하며 업신여기는 자를 가리킵니다.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아니하는 사람, 완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수군대는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오만한 자들은 하나님을 무시하며 살아갑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다고 나서는 태도를 보입니다. 자기 생각과 판단이 절대적이어서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함께 모여 수군거립니다. 빈정댑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사람과 어울리지 말아야 합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꾀가 길이 되고 길이 자리가 됩니다. 우리의 자리가 혹시 오만한 자의 자리가 아닙니까? 우리가 잘못 행함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자리로 만든 것은 아닙니까? 복 있는 자의 자리로 나아가 복 있는 자의 모습이 되시기 바랍니다.

중국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 벼슬을 놓고 한 재상이 시골에 내려와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임금이 그를 좋게 보고 신하를 보내어 다시 돌아와 벼슬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재상이 안 하겠다고 말한 뒤에 귀가 더러워졌다고 냇가에서 귀를 닦았습니다. 세수는 안하고 귀만 닦았습니다. 그때 소에게 물을 먹이려고 지나가던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왜 자꾸 귀를 닦느냐고 묻자 재상은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어서 닦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소에게 물을 먹이려고 했던 사람이 그냥 가는 것이었습니다. 재상이 왜 소에게 물을 먹이지 않고 그냥 가느냐물으니, 그 더러운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어서 그냥 간다고 대답하더랍니다. 왜 악인들의 꾀를 따릅니까? 왜 죄인들의 길에 섭니까? 왜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습니까? 우리의 신앙을 하나님 앞에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동안 악인들의 꾀를 따르며, 죄인들의 길에 서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악인들, 죄인들, 오만한 자들은 복수입니다. 복 있는 사람의 길은 소수이며 외롭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수많은 죄인들, 악인들, 오만한 자들의 틈 속에서 믿음의 삶을 지켜나가기 때문입니다. 다수가 가지 않는 좁은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가장 복 있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악한 자의 꾀를 따르지 않으며 복된 생각만 하시기 바랍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복된 행동만 하시기 바랍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된 자리에 거하는 복 있는 성도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