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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7~14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7~14
  
  


제목 없음

네델란드의 코리 텐붐(Corrie Ten Boom)여사는 우리 시대에 큰 간증을 남긴 복음전도자입니다. 그녀는 유대인을 도운 죄목으로 체포되어 온 가족과 함께 나치 수용소에서 고생했습니다만, 자기 언니를 죽인 간수를 용서하고 유럽과 미국, 전 세계를 다니며 간증으로 우리 시대를 일깨운 믿음의 거인이셨습니다. 그런데 코리 여사의 믿음의 감화는 본래 그녀의 아버지의 영향이었다고 증언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캐스퍼 텐붐(Casper Ten Boom)이었는데 시계방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가족과 함께 성경을 읽었고 자기 상점에서는 친절과 최선으로 기쁘게 손님들을 섬기며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시절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였습니다. 하루는 한 부자가 와서 아주 비싼 시계를 현금으로 사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 시계만 팔면 온 가족이 얼마동안 고생 안하고 살 수 있는 거래였습니다. 그런데 거래가 끝나고 시계를 받아들면서 부자가 말하기를 사실은 다른 시계방에서 고장 난 자신이 아끼는 시계를 가지고 갔는데 그 시계를 고칠 수 없다고 해서 이곳에 와서 새 시계를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코리 아버지는 그 시계를 혹시 볼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시계를 받아들고 몇 가지를 만지더니 이제 시계는 잘 작동한다고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며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 친구는 사실 좋은 시계공인데 아직 조금 더 경험이 필요할 뿐이라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면 그 청년도 자기처럼 훌륭한 시계공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코리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그 부자에게 받았던 현금을 다시 건네주면서 시계를 다시 저에게 주시지요하는 것입니다. 코리는 이런 부친에게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그 돈이 얼마인데 그 거래를 포기하느냐고 부친에게 반문했습니다. 코리 아버지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리야, 돈은 하나님이 필요하면 언제나 우리에게 주실 수 있지 않겠니? 그러나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정직하게 손님을 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코리야,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사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코리는 이 교훈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녀의 아버지야말로 주를 기쁘시게 하는 빛된 자녀의 모습이 아닙니까?

본문 8절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바울은 에베소 교우들에게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 상태인 어두움을 상기시키며 이제는 참 빛이신 그리스도를 삶 가운데 드러내야만 한다고 강조합니다. 빛은 생명과 의와 화평과 천국을 의미한다면 어두움은 죽음과 죄와 절망과 지옥을 상징합니다. 그 빛과 어두움의 경계선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본 구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 열매로 증거되어야 한다고 언급합니다.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생활이나 행위 면에서 세상의 불신자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빛된 삶을 살 때 어두움이 물러가고 밝아질 것입니다. 그리할 때 가정과 사회가 밝아지고 우리의 미래가 환해집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빛의 자녀로 살아야 합니다. 빛의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빛의 열매는 구체적으로 삶 속에 어떻게 나타납니까?
 

첫째로 착함으로

스펄전(Charles H. Spurgeon) 목사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설교한대로 살아가는 유명한 설교자였습니다. 실제로 사회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노예제도에 대한 비난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학교와 고아원, 요양원을 직접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존경을 받던 목사이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였습니다. 스펄전 목사 부부가 닭을 기르며 달걀을 얻고 있었는데 이 달걀을 꼭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그 일로 인해 주위의 사람들은 스펄전 목사를 돈만 아는 욕심쟁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스펄전 목사는 비난에 대해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스펄전 목사의 부인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 때 왜 돈을 받았는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달걀을 판 돈이 두 명의 늙은 과부의 생활비를 대는데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스펄전 목사 부부는 자신들의 행동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또 늙은 과부를 이름 없이 도와야 했기에 그 많은 비난을 침묵으로 지켜왔던 것입니다. 착함으로 빛된 자녀의 모습이 나타난 것입니다.

본문 9절입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여기의 착함이란 아가도쉬네인데 자신의 이익이 아닌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성품을 뜻합니다. 착함은 하나님의 성품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선대하시는 분이십니다.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골고루 비추십니다.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함께 내리십니다. 그리스도는 이런 선하심으로 병든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고치셨습니다. 성령은 선함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면 나에게 잘못하는 사람에게까지 선한 동기를 찾아 그를 세우고자 해야 합니다.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합니다. 이것이 빛된 그리스도인의 열매입니다. 우리의 삶에 착함의 열매가 나타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빛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모든 사람을 착하게 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로 의로움으로

소고사대지혜(小故事大知慧)거백청대(巨伯請代)”라는 이야기입니다. 한 나라 때 순거백(荀巨伯)이라는 선비가 살았습니다. 하루는 먼 곳에 사는 친구에게 문병을 갔는데 마침 흉노족이 쳐들어 모두 도망치기에 바빴습니다. 동네는 곧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순거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병든 친구의 곁을 지켰습니다. 보다 못한 친구가 그에게 다급히 말했습니다. “나는 병든 몸이니 죽어도 아까울 게 없네. 하지만 자네는 피신하여 목숨을 보존해야 할 것이 아닌가? 어서 떠나게그러자 순거백이 정색을 하며 말했습니다. “자네, 어찌 그런 섭섭한 말을 하는가? 나 혼자 살자고 의리를 저버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여기서 자네와 생사를 함께 하겠네그때 흉노족이 들이닥쳤습니다. 도망치지 않고 있는 그들을 의아하게 생각한 흉노족이 왜 도망치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순거백이 결연한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친구가 중병에 걸려 거동이 불편합니다. 나 혼자 살아남으려고 병든 친구를 죽게 놓아두는 것은 옳지 못한 일입니다.” 그 말에 감동한 흉노족 장수는 의롭지 못한 우리가 의로운 나라에 쳐들어왔으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라며 즉시 군대를 철수하여 돌아갔다고 합니다. 순거백의 의로움이 흉노족을 감동시켜 전쟁을 그치게 한 것입니다.

본문 9절입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착함이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열매라면 의로움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되는 열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구주로 믿는 순간 하나님에 의해 의로 지으심을 받습니다. 죄사함 받고 의롭다함을 얻었다면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의로움은 원어로디카이오쉬네인데 도덕적으로 악을 떠난 정직하고 성실한 행위를 의미합니다. 세상이 악하고, 죄악이 강물처럼 넘친다 해도 성도에게는 의의 샘물이 솟아나야 합니다. 빛의 자녀다운 의로움을 잃어버리면 결코 안 됩니다. 의로움이 생활 속에 구체적으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어둠 가운데 행하던 일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야 합니다. 왜 불의해 집니까? 경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을 경외하고 살 때 의로움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셋째로 진실함으로

일제 말기 천황숭배를 거부한 김용기 장로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경기도 양주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평생을 기독교정신에 입각하여 농촌운동에 헌신하였습니다. 일제 말기에 광적으로 강요하던 신사참배, 동방요배, 정오묵도, 창씨개명에 단 한 번도 응하지 않고 8.15 해방을 맞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김용기 장로 역시 신사참배와 국민의례 거부로 경찰서에 불려가 발길로 채고 얻어맞았습니다. 당시 양주 경찰서 고등계 주임인 일본사람 다치에게 끌려갔습니다. 그는 국민의례를 다 하는데 유독 하지 않는 이유를 대라고 다그쳤습니다. 그러자 김용기 장로는 솔직히 대답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억지로 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오. 조선 사람이 일본인이 될 수 없는 것은 반대로 일본인이 조선인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요. 그러니 억지로 마지못해 하는 것뿐인데, 그렇게 하는 것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것만도 못한 것이오. 묵념하면서 속으로 천황페하를 욕하는지 어쩌는지 누가 알겠소? 사람을 마음속을 측정하는 기계가 있다면 모르지만, 그러니 차라리 하지 않으면 천황폐하도 욕을 먹지 않고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도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이니 서로 좋을 것 아니오?” 그러자 형사도 네 말이 옳다면서 그 따위로 하는 국민의례라면 당연히 그만두는 것이 낫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형사는 자기 입장이 곤란하니까 다른 교회에는 그런 말 하지 말고 김용기 장로 교회는 하기 싫으면 그만두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해방될 때까지 다시는 그 교회에 그런 일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거짓이 아닌 진실함의 열매를 나타낸 결과입니다.

본문 9절입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진실함은 원어로 알레데이아인데 말과 행위에 있어서 순수하고 정직함을 의미합니다. 진실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사단의 종노릇하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진실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 감이 당연한 변화가 아닙니까? 빛이 어둠에 임하면 어둠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드러납니다. 숨길 것이 없는 투명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빛의 자녀들이 맺어야 할 진실함의 열매입니다.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어두움을 책망하여야 합니다.

빛의 자녀들에게 높은 동기가 주어졌습니다. 본문 10절입니다.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여기서 시험하라는 말은 구체적인 삶과 행동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고자 함을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빛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디에서나 빛의 자녀다운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여야 합니다. 빛이 임하면 거짓과 진실이 드러납니다. 어둠의 상태와 죽은 자의 상태에서 벗어나 빛의 자녀답게 진실함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다카스꼬(ダカスコ)는 일본 제국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의과대학도 공부한 불교인이었습니다. 그는 슈바이쳐(Albert Schweitzer)의 헌신에 감명을 받고 아프리카로 들어가 슈바이처를 도왔습니다. 그런데 그와 오래 있었어도 예수 믿으라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철저한 불교인이었던 다카스꼬는 참다못해 물었습니다. “박사님! 기독교로 개종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세례를 줄 수 없겠습니까?” 그 때서야 비로소 슈바이쳐가 다카스꼬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슈바이쳐는 말로 전도하지 않고 행동으로 전도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행동을 통하여 보여주는 것이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는 삶입니다.

예수 안에 우리는 빛의 자녀들입니다. 빛의 자녀들이 빛 가운데 행할 때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하고 빛 가운데 드러나듯이, 우리 가운데 있는 어두움의 구석들이 모두 다 밝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선과 의와 진리를 추구하여야 합니다. 어두움의 자녀들과 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들의 죄를 책망하며 복음의 빛으로 인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디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시기 바랍니다. 착함을 행하여야 합니다. 의로움으로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함으로 행하는 열매를 통해 빛 된 삶을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