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김광일목사

그런즉 어찌하리요-롬 6:15~23

그런즉 어찌하리요-롬 6:15~23
  
  


에릭 리들(Eric Liddell)은 영국 선교사 자녀로 중국 천진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먼 거리를 걷고 달리던 습관이 있어서 육상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에릭 리들(Eric Liddell)은 영국 선교사 자녀로 중국 천진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먼 거리를 걷고 달리던 습관이 있어서, 육상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에딘버러 대학에 입한한 뒤 본격적인 육상선수로서 활동을 시작하여 수년간에 걸쳐 단거리 육상대회를 석권하였으며, 영국대표로 1924년 제8회 파리올림픽 경기의 금메달 후보였습니다. 그러나 100m 경기 일정이 주일이었습니다. 그는 저는 주일에는 안 뜁니다. 주일은 예배를 드려야합니다라고 단호한 결정을 알렸습니다. 그의 결정은 주일성수를 위한 자기희생적 결정이었고, 주일은 주님의 날이므로 주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신앙의 결단이었습니다. 에릭의 100m 출전 포기를 들은 영국 전체의 반응은 매우 냉소적이었습니다. 그를 두고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신앙을 소매끝에 달고 다니는 위선자’‘조국의 명예를 버린 자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에릭은 100m 예선 경기를 하던 주일에 스콧츠커크 교회에서 평소처럼 성도들에게 간증하였습니다. 그후 에릭은 주종목이 아닌 200m에서 동메달을 땄고, 400m에도 출전하였습니다. 에릭은 신들린 사람처럼 400m100m를 뛰는 주법으로 달렸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던 전문가들은 에릭이 저런 속도를 유지하다가는 도중에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에릭은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결승전 테이프를 끊고 쓰러진 에릭의 손에 쪽지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가 경기에 출전할 때 담당 안마사가 쥐어준 것인데,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나도 존중하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우승의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처음 200m는 제 힘으로 최선을 다해 뛰었고, 나머지 200m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뛰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올림픽 경기로 국가적 영웅이 되었지만, 에릭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그 이듬해 세상 영광을 내던지고 아버지와 형의 뒤를 이어 24세의 젊은 나이에 중국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에릭은 12년간 천진에서 선교사로 봉사하며 복음을 전했으며, 그후 7년 동안 산둥 반도의 곳곳을 다니며 농촌 지역에서 선교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 몇 년간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일본군 수용소에 갇혀 지내며 타인들을 격려하는 삶을 살다가 43세인 1945, 19년간의 선교를 마치고 순교하였습니다. 감옥에서 숨질 때 그의 얼굴은 빛이 났고, 성도들의 찬양과 경배 속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에게서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중국 웅방시 감옥 옆 작은 동산에 그를 안장하였습니다. 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실천함으로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마무리 하였습니다. 인생이 끝나는 순간 이 땅에서 누렸던 쾌락이나 명예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말씀 따라 산다고 하지만 여전히 내가 주인이 되어 내 생각과 방법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본문 13절입니다.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우리는 죄를 용서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무기입니다. 불의한 무기가 될 것입니까? 의로운 무기가 될 것입니까? 그것은 누구의 종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죄가 주장하는 불의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장하시는 의의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적극적 자세를 요청합니다. 죄를 멀리하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사역에 동참하라는 것입니다. 의를 위해 싸우는 의의 무기가 되라고 전투적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능동적으로 악을 향하여 공격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가 어찌 죄 가운데 있어야 합니까? 죄의 종이 되어 악한 무기로 사용될 것입니까? 그런즉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첫째로 은혜에 이르러야

영국에 윌리엄 쿠퍼(William Cowper)라는 젊은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남보다 출세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의사당 앞에 사무실을 냈습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도서관에서 오랜 시간을 연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어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변호사 명성은 높아졌지만,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결국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자꾸 높아지는데 자기만 낙오되었습니다. 그는 이러다 폐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기회를 다 놓쳤어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기도하였습니다. 쿠퍼가 절망적인 삶에 처하자 동료들이 전도를 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새 출발을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하나님, 어떻게 살면 좋겠습니까?’기도하면서 자신의 삶을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은혜에 이르는 삶을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앙고백을 시로 표현하고 노래로 불렀습니다. 바로 찬송가 258장입니다.“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날 정케 하신 피 보니 그 사랑 한없네 살 동안 받은 사랑을 늘 찬송하겠네 늘 찬송하겠네.” 비록 변호사로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이른 결과 문학가이자 시인으로서 오히려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본문 15절입니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은혜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 아래 거하면 얼마든지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죄가 주장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은혜 아래 거하며 의의 무기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을 도구로 삼아 하나님의 의도를 왜곡시켰습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의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누구든지 법아래 있다면 법을 어기지 않기 위한 소극적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다면 지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사도 바울은 강조합니다. 지금 어디에 거하고 있습니까? 죄의 종이 되어 죄악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 의의 종이 되어 은혜 안에 거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순종에 이르러야

옥한흠(玉漢欽) 목사가 칠순이 넘는 노신사를 만나 전도한 이야기입니다. 노신사가 말하기를 나는 70년이 넘도록 살면서 손톱만큼도 나쁜 일을 안했소. 재산으로 남에게 구제 사업도 많이 했고, 학교도 세워 교육도 시키고 좋은 일을 많이 했소. 그러니 천당이 있다면, 나를 어렵지 않게 들여보내 줄 것이오.”그 말을 듣고 난 옥한흠 목사가 잔인하리만큼 단호하게 한 마디 했습니다. “선생님, 하나님은 너무나 의로우시고 너무나 거룩하신 분이에요. 그래서 선생님이 손톱만큼도 잘못을 안했다는 것이 정말 별거 아니에요. 마치 태양 앞의 촛불 같다고나 할까요? 어두움에서는 촛불이 굉장하지요? 그러나 태양이 솟아오르면 촛불은 너무나 의미가 없잖아요? 선생님께서 손톱만큼도 잘못한 것 없다는 것이, 사람 앞에서는 인정받을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 가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사람이 조금 양심적으로 살았다고, 약간 구제 사업했다고 하는 것 모두가 마치 태양 앞의 촛불이나 마찬가지에요. 선생님, 그것 갖고는 구원을 못 받아요. 천당 못 갑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랬더니 노인이 시무룩하게 앉아 있다가, 한참 후 침묵을 깨트리면서 말했습니다. “시골에 내려가면 교회에 나가겠소. 가족들과 조만간 의논해서 예수 믿기로 하겠소.” 그는 더 이상 죄의 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순종으로 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본문 17절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바울의 편지를 받는 로마교회 성도들이 이방신을 섬기며 죄를 짓고 살다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여 의의 무기가 되어야 합니다.

죄의 종이 되어 죄에 끌려 살지 않기 위해서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형식적인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을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무기로 계속해서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거룩에 이르러야

중국교회의 지도자 워치만 니(倪柝聲)의 저서에 나오는 글입니다. 예수 믿은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순결한 믿음을 가진 형제가 있었습니다. 기차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앞좌석에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형제에게 카드 게임을 제안했습니다. 네 사람이라야 할 수 있는 게임이기에 카드를 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형제는 사양을 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카드 할 줄 모르십니까? 한 번도 안 해 보셨습니까?” “해보았지요” “그러면 할 줄 아시네요? 그런데 왜 안 하십니까?” 그러면서 비꼬는 듯이 말했습니다. “아니, 손은 두었다가 무엇에 쓸려고 합니까?” 이때 그리스도인 형제가 대답을 했습니다. “문제는 이 손이 제 손이 아니라서요. 이 손은 달리 할 일이 있어요이상한 대답에 도대체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리스도인 형제는 자신이 예수 믿게 된 간증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 예수를 영접하고 기쁨과 새로운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구원받은 감격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므로 내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 되었습니다. 내 몸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따라서 내 몸이 아니라 하나님의 몸입니다. 이 손도 내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입니다. 그런데 이 손, 아니 하나님의 손으로 카드 하는 것을 손의 주인이 별로 기뻐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제가 못하겠습니다.” 그의 대답은 거룩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룩은 무엇을 안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불의를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룩은 보다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본문 19절입니다. “너희의 육신이 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거룩은따로 구별한다는 뜻입니다. 써야 할 목적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으로 거룩한 일을 행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몸을 드리기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에 자신을 던져야 합니다. 그것만이 거룩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 길입니다. 전에는 불의와 불법에 우리 자신을 내주었기 때문에 온갖 악한 생각을 하고 또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믿음 안에서 바른 삶을 통해 거룩을 나타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날 그리스도인의 숫자는 많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됩니까? 교회에서는 잘 믿는 것 같은데 삶의 현장에서 도무지 빛을 발하지 못하는 모습이 아닙니까? 어둠에 속하여 있으면서 맛을 내지 못하는 소금은 아닙니까? 믿음은 깨닫는 것에서 그쳐서는 결코 안 됩니다. 삶속에서 구체적으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세상이 유혹한다 할지라도 거룩의 열매를 맺어가는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몸을 누가 쓰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사랑의 수녀회'를 만들어 빈민들을 돌봤던 마더 테레사(Madre Teresa)는 자신은 다만 하나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세상에 보낼 사랑의 편지를 쓰시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몽당연필입니다.”  지금 누구의 손에 들려 있습니까? 누가 여러분의 이야기를 적어가고 있습니까? 헛된 욕심입니까? 하나님이십니까? 인생의 저자가 하나님일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에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가 될 것입니다. .

숯장수 집 곁으로 세탁소가 이사 왔습니다. 혼자 외롭게 살던 숯 장수는 이웃에 세탁소가 온 것에 대하여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같이 친구가 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때 세탁소 주인이 무어라 하였는가 하면, “자네의 호의는 알겠지만 생각해 보게. 나는 검은 것을 희게 하는 일을 하는데 자네는 흰 것도 검게 하는 사람이 아닌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겠나?”

우리는 예수와 함께 다시 산 사람입니다. 더 이상 죄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피부에 생긴 상처가 나으려면 속에서부터 자꾸 새 살이 차올라야 하듯이, 죄의 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은 열망이 자라야 합니다. 부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런즉 은혜에 이르러야 합니다. 순종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에 이르러 의의 종으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