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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광일목사

내가 기도하노라-빌 1:9~11

내가 기도하노라-빌 1:9~11
  
  


전 광 목사의 저서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A. Lincoln)에 보면 링컨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모든 일에 기도를 하였다고 나옵니다.

전 광 목사의 저서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A. Lincoln)에 보면 링컨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모든 일에 기도를 하였다고 나옵니다. 어릴 때도 기도했지만 대통령에 당선되어 고향 스프링필드를 떠나면서 마중하기 위해 운집해 있는 군중들에게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전쟁 중에도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남북 전쟁이 치열하게 계속되던 어느 날, 당시 유명한 배우 제임스 머독(James Edward Murdoch)이 링컨의 초청으로 백악관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밤늦게까지 대화를 하다가 잠자리에 들게 됩니다. 그날 밤 머독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포성소리에 잠을 설치고 있었습니다. 새벽이 되었는데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누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신음소리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의 발이 멎은 곳은 복도 깊숙이 안쪽에 위치한 대통령 집무실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링컨은 신음하듯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부족한 종입니다. 제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새 힘을 주시고 저에게 용기를 주시고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도와주소서! 이 민족을 긍휼히 여기시고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 통일된 나라로 세워주소서. 이 나라의 젊은이들을 보호하여 주소서머독은 링컨의 기도하는 모습에 감명 받아 링컨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고 그를 돕는 일에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링컨은 야전 막사에 머무는 동안에도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았습니다. 링컨이 기도할 때는 막사입구에 하얀 손수건을 걸어 놓았습니다. 그러면 비서는 하얀 손수건이 없어질 때까지 면회를 금지시켜 기도가 방해받지 않도록 했습니다. 미 육군전투교범 가운데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전투들을 분석한 내용이 있는데 그 중에 북군이 승리한 남북전쟁이 들어 있습니다. 분석한 내용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남군에는 위대한 명장 로버트 리 장군이 있었다. 북군은 병력과 무기 모든 것이 열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군이 승리했다. 그것은 북군에는 기도의 사람 링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후 링컨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북군의 승리는 기도의 승리였습니다. 우리에게 리 장군과 같은 유능한 장군이 없었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서 더욱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힘이 주어지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돈이 있으면, 능력이 있으면, 건강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은 빌립보 교회로 보내는 바울 서신입니다. 바울은 선교의 결실인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감사의 마음과 함께 그들을 위한 기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아름다운 신앙은 우연이나 인간의 노력으로 되어진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온 교회가 바울의 동역자로서 복음사역에 동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확신 속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그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것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계속 돌보며 기도함으로서 목회자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의무감 때문에 기도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마음으로 교인들의 성숙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생업이나 건강을 위함이 아니라 더 중요한 일을 위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신앙이 성숙한 단계에 이르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을 위해 기도를 부탁한 것이 아니라 교인들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어떠한 신앙에 이르도록 바울이 기도했습니까? ‘내가 기도하노라를 통해 보여주는 기도의 내용은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지식과 총명으로 사랑에 이르도록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어거스터스라는 작품의 내용입니다.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부모가 있었습니다. 아기를 달라고 오랫동안 기도했는데 다행스럽게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이 바로 어거스터스(Augustus)였습니다. 그가 태어나기 전 한 신비한 노인이 밤중에 산모에게 나타나 말했습니다. “아들의 탄생을 축하한다. 아이를 위해서 내가 꼭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 소원이 무엇인가?” 어거스터스의 어머니는 곰곰이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아이가 자라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살게 해 주십시오그녀의 소원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아이는 자라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집에서는 부모님의 사랑, 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선생님의 사랑, 친구와 이웃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것은 행복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사랑만 받고 베풀지 못하니까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어거스터스가 노인이 되었을 때 주위에 사람이 없었습니다. 외롭고 비참한 삶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신비한 노인이 또 나타났습니다. 노인은 어거스터스에게 물었습니다. “삶에 만족하는가?” 어거스터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노인은 다시 물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한 가지 소원을 이루어주겠다. 소원이 무엇인가?” 그러자 어거스터스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랑 받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받으려는 사랑이 아니라 베푸는 사랑이 될 때 비로소 인생이 열립니다.

본문 9절입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바울은 사랑이 풍성해지는 방식으로 지식과 총명을 말합니다. 지식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해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사랑이 얼마나 큰지 이해하면 할수록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사랑에 대해 더 깊고 더 넓게 깨달을 때 다른 사람을 풍요롭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총명으로 풍성해져야 합니다. 총명은 사랑을 행하는 데 필요한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사랑은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상대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사랑이 베풀어져야 합니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하나 상대방이 알지 못한다면 우둔한 사랑이 됩니다. 사랑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상대의 필요를 채워주고,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는 사랑이 총명으로 풍성해지는 사랑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Jonathan Edwards)는 우리 안에 일어나는 사랑이 불길이라면 지식과 총명은 그 불 속에 던져지는 장작이라고 말합니다. 쌓아놓은 장작이 저절로 불을 일으킬 수 없듯이 지식이나 하나님 성품에 대한 믿음 자체가 사랑하게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지식과 총명과 함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식 안에 사랑이 더 풍성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총명으로 사랑이 더 풍성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이 맹목적으로 흐른다면 그 진가가 발휘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식과 총명을 갖춘 사랑이 풍성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분별과 진실로 그 날에 이르도록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149210월 카리브해 바하마 군도의 섬에 도착했을 때 인디언들의 숫자는 7만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23년이 지나자 살아남은 인디언의 숫자는 불과 5만이었습니다. 35년이 지난 1550년에는 기껏해야 500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후 1650년에 이르러서는 순수 인디언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던 스페인 탐험대의 구호는 성령의 이름으로 인디언들을 노예로 잡아 보내자였습니다. 당시 스페인 성직자 라스 카자스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탐험대는 인디언들을 죽이거나 살점을 도륙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심지어 자신의 칼날이 예리한지 아닌지 시험해 보기 위해 칼날로 사람을 쳐 죽였다.” 신앙의 본질을 잃게 되자 성령의 이름으로 망령된 짓을 자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것을 분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인지 기도해야 합니다. 지엽적인 일에 시간을 허비하거나 열정을 낭비해서도 안 됩니다. 미숙한 사람의 특징은 분별력이 없는 것입니다.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가치 있는 일에 모든 정열을 쏟게 됩니다.

본문 10절입니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여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여기 진실하며의 뜻은 햇빛에 비추어 검사한 결과 순수한 것으로 인정됨을 의미합니다. 순수한 금을 판정할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햇빛에 통과시켜 보아도 여전히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거짓과 탐욕이 가득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실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안에서 자신이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을 세우니까 거짓을 범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면 살수록 진실한 사람이 됩니다. 사람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판단을 두려워하여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순수함과 진실함을 지켜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분별력을 갖추고 기도하면 하나님 앞에 흠 없이 서는 진실한 삶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의의 열매로 영광에 이르도록

쌀가게를 운영하는 김 집사가 아내에게 오늘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사려면 박씨 정육점에 가지 말고 다른 정육점에 가도록 해요말했습니다. 아내는 놀란 얼굴로 남편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왜요? 그 정육점은 단골이잖아요. 그 집에서 고기를 사지 말라니, 두 사람 싸웠어요?” “싸운 게 아니고... 아무튼 그 집에서 고기를 사지 말라고” “내가 가면 좋은 고기를 주고 항상 넉넉하게 주는데 왜 가지 말라는 거예요” “아니, 가지 말라면 가지 말아요. 오늘만 가지 말라고...” 남편이 짜증을 내자 아내는 그래도 무슨 이유인지 알아야지. 무턱대고 가지 말라니 이상하잖아요그러자 남편이 말합니다. “오늘 아침 박씨가 우리 집의 저울을 빌려갔어.” 쌀가게를 운영하는 김 집사는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그는 저울을 속이고 있었습니다. 신앙과 저울을 속이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울을 속이면서도 바른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의롭다는 것은 신앙과 속이는 저울이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 따라 속인 저울을 바로 잡는 행위입니다.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였다고 할지라도 의롭게 살지 않으면 그 믿음은 헛되며 열매 없는 믿음입니다. 의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감이 신앙인의 마땅한 본분이 아닙니까?

본문 11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바울의 기도제목은 의의 열매가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의 열매는 율법을 지킴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그리스도가 내재하고 역사하심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고결함을 가지고 행할 것을 기도하였습니다. 의의 열매는 하나님과의 관계없이 자기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부터 오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맺게 됩니다.

바울이 열매를 사람에게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모든 열매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고 마땅히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피로 구원하셔서 의로운 자로 인 쳐주셨습니다. 죄 가운데 있었으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로운 자라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이 되려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는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의 바른 관계 속에 있으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죠지 뮬러(George Muller)는 비행소년에서 기도의 사람으로 변하여 고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온통 기도로 점철되어 5만 번이나 응답해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노트 한쪽에는 기도 제목과 날짜를 적었고, 다른 한 쪽에는 기도 응답 받은 날을 적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곧 생명줄을 놓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뮬러는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뮬러는 언제까지 기도해야 하는지 다음과 같이 충고 합니다. “기도를 시작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바른 기도를 했다고 또는 얼마 동안 기도했다고 해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인내와 믿음의 자세로 응답 받을 때까지 계속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을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종종 실패하는 이유는 응답을 받을 때까지 계속 기도하지 않고 중간에서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기도하십니까? 기도의 내용이 더 성숙해져야 합니다. 나의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이기적 단계를 벗어나 타인을 향한 기도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의 기도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더 풍성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선한 것을 분별하며 진실함으로 살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와 바른 관계를 통하여 열매 맺는 의로운 삶에 이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