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27:1-5 2013.5.12(일)
행복한 우리 가정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낳으시고 기르신 부모님을 생각하는 주일입니다. 작년부터 우리 교회는 이 날을 한신가족 축제로 온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가정을 생각할 때마다 부르는 좋은 노래가 있습니다. “즐거운 나의 집"입니다. 이 노래는 영국 작곡가 비숍이 1823년에 작곡한 곡인데 지금까지 약 200년 동안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노래입니다. 함께 불러 보겠습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라.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피고 새우는 집 내 집뿐이오.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내 집 뿐이라."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가정도 즐겁습니까? 세상 어떤 곳에서 날 오라 하여도 역시 내가 쉴 곳은 내 집, 내 작은 집입니까?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가정에 산다고 모든 가정이 행복합니까? 아닙니다. 불행한 가정도 많고 상처와 아픔이 있는 가정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행복한 가정입니까? 유명한 영성가 헨리 나우엔은 행복한 가정의 세 가지 특징을 말했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첫째 서로 친밀하다. 행복한 가정은 두려움이 없고 비밀이 없다. 서로의 방어막을 내려놓고 언제나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다. 두 번째 행복한 가정은 풍성하다. 가진 것이 많아서 풍성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있기 때문에 풍성하다. 사랑은 모든 것을 풍성하게 한다. 셋째 기쁨이 있다. 좋은 일만 있기 때문에 기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면 기대합니다. 기대하면 희망이 생깁니다. 희망이 있기 때문에 기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서로 친밀합니까? 사랑으로 풍성합니까? 희망안에서 서로 기뻐합니까?
이 모든 것은 사랑과 희생으로 말미암습니다. 우연히 인터넷을 보다가 이런 그림을 보았습니다. 제목이 “마음 울리는 엄마의 일생”입니다(그림). 어머니의 일생이 그림 몇 장으로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낳고 안고 업어 키우다가 더 이상 나를 안아줄 수 없을 때 어머니는 늙고 내가 얼마동안 부축하다가 돌아가신 후에는 옷가지만 덩그렁이 남아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 잘 해야 겠다 생각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어버이 주일에 여러분의 가정이 정말 행복한 가정 되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무엇이 행복이며 어떻게 해야 행복할까요? 오늘 성경은 크게 세 가지 말하고 있습니다. 1-2절을 읽겠습니다. 시127:1-2,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행복한 가정을 위한 성경의 첫 번째 조건은 무엇입니까? 1절, “여호아께서 세우지 아니하시면, 여호아께서 지키지 아니하시면”.
하나님이 주인인 가정입니다
행복한 가정의 첫 번째는 하나님이 주인인 가정입니다. 행복이 무엇입니까? 요즘 나온 사전에 보았더니 행복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행복=기분 좋은 만족감”, 행복을 거의 쾌락에 가까운 감정과 동일시했습니다. 행복이 좋은 감정을 포함한 것은 맞지만 좋은 감정이 곧 행복인 것은 아닙니다. 행복은 감정이전에 관계입니다. 어떤 관계일까요? 행복의 근원인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행복은 감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옵니다. 가정의 행복은 더욱 그렇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누가 가정을 세웠으며 누가 가정을 유지해 나가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말씀은 가정행복의 뿌리에 대해 말해 줍니다. 1절, “여호아께서 세우지 아니하시면”, 가정은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여호아께서 지키지 아니하시면”. 가정은 하나님이 유지해 나갑니다. 가정의 시작도 하나님, 가정의 유지도, 가정의 운명도 하나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정의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가정을 세우신 것을 믿습니까? 그러면 가정을 이루는 기본 요소는 무엇입니까? 부부입니다. 부모와 자녀는 부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래서 부자관계가 가정의 시작이 아니라 부부관계가 가정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그 부부를 누가 만나게 했습니까? 창2:18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부부를 만나게 한 것은 하나님입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배필을 지으리라”. 나같이 “내가”. 하나님이 부부를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배필이란 말도 중요합니다. NIV 영어성경을 보면 “I will make a helper suitable for him." ”내가 그에게 꼭맞는 조력자를 만들리라“ 했습니다. 아무나 만나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꼭 맞는 사람“입니다. 누가 세상에 있는 그 많은 사람중에서 나에게 꼭 맞는 사람을 만나게 해 줍니까? 저도 가끔 중매해보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비슷하다고 소개했는 데 필이 안 통한다고 열이면 아홉은 진행이 안됩니다. 중매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옛날 중세에 유대인 귀부인이 수하에 많은 하인, 하녀를 거느렸다고 합니다. 나이들이 차서 결혼을 시켜야 하는 데 고민하다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어느날 하인과 하녀들을 두 줄로 세워 놓고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끼리 짝지으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며칠은 잘 지났습니다. 그런데 며칠지나자 여기 저기서 불평이 쏟아졌습니다. ”주인님, 바꿔주세요.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요. 보기에는 그럴싸 한데 살아보니 아니예요. 바꿔주세요“. 여기 저기서 아우성입니다. 그때 주인이 탄식하면서 말했습니다. ”아, 중매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오직 하나님이 중매하실 수 있구나“. 그리고 중매를 중단했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중매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게 합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히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바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원하셔야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무엇하고 계신줄 아닙니까? 어떤 유대인이 랍비에게 물었답니다. ”선생님, 하나님은 엿새동안 세상을 창조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날부터 하나님은 무엇하고 지내십니까?“ 랍비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중매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만난 것은 하나님이 만나게 하셨기 때문에 만난 것입니다.
창2:22절을 보시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여기에 “이끌어 왔다”는 말이 나옵니다. 누가 누구를 이끌어 왔습니까?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왔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아담을 창조하고 그를 잠들게 한 다음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을 깨운 후 하와를 그에게 이끌어 왔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하와입니다. 왜 하와입니까? “하와, 남편을 하늘같이 받드는 와이프가 되어라”. 그래서 하와입니다. 하나님이 이끌어 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부간에 싸우고 미워하고 같이 안 살려면 반드시 하나님께 묻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원래 만나게 한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허락해야만 갈라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허락하시기 전에는 절대 나뉘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별거가 무엇입니까? “별거, 별거 아닌 일로 헤어져 사는 것”. 혹시 잘 안 맞는 것 같아도 오래 참고 기다리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습니다. 내가 안 참고 감정대로 하니까 안 맞지 하나님이 잘못 연결해서 안 맞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유대인이 가진 결혼에 대한 생각중에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 것이 아니라 결혼했기 때문에 사랑한다”. 이 말은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랑하지 말고 결혼하라는 뜻이구나. 결혼에 있어서 사랑이 필요없다는 뜻이구나“ 라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결혼에 있어서 사랑은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아예 결혼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이것입니다.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사랑의 감정보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믿기 전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어서 결혼했다고 믿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과 계획보다 내 사랑의 감정을 더 중요시 하면 내 감정이 식는 순간 결혼은 무의미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면서 발견하는 것은 내 감정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 감정은 왔다 갔다 합니다. 좋았다 싫었다 합니다. 내 감정이 표준이 아닙니다. 변하지 않은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이 표준입니다. 그것을 표준삼으면 가끔 부부사이에 감정이 안맞아도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이삭을 보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아들을 위해 종을 통해 하란에 가서 신부를 구해 왔습니다. 그 이름은 리브가였습니다. 성경 창24장은 리브가가 멀리서 올 때 이삭은 들에서 기도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6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창24:67,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다같이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은 리브가를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도움과 하나님의 은혜로 리브가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만나자 마자 결혼했습니다. 만난 일이 없으니 사랑의 감정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만남 자체를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고 결혼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자 사랑의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내로 삼고 사랑했습니다”. 사랑하고 아내로 삼은 것이 아닙니다. 아내로 삼고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독일의 본회퍼 목사님이 <옥중서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은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나, 결혼은 위로부터 온다. 사람의 사랑이 결혼을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이 사랑을 지탱한다”(본회퍼). 우리가 결혼할 때 결혼서약을 합니다. 누구에게 서약합니까? 신랑, 신부, 주례자, 부모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앞에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고 하나님이 우리를 지라게 하셨고 하나님이 만나게 하셨고 하나님이 살아 가게 하시고 하나님이 우리 운명의 끝을 아십니다. 하나님이 자녀를 주시고 하나님이 자녀의 앞길을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그들을 책임집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시고 하나님이 주관합니다. 그래서 다시 1절을 보시겠습니까? 시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우시고 지키시면 어떻게 됩니까? 2절입니다. TL127: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도록 건강도 주시고 물질도 주시고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 평안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의 주인입니다. 아멘.
그런데 하나님이 주인이신 가정에 우리 행복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있습니다. 자녀들입니다. 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녀가 누구입니까? 3절을 보시겠습니까? 시127: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자녀에 대하여 이렇게 분명하게 기록한 말씀은 없습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기업이며 상급입니다
자녀가 하나님의 축복인데 왜 축복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가지입니다. 기업이며 상급입니다. 최근에 “무자식 상팔자”란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자식을 둔 부모에게 근심 걱정이 떠날 날이 없는 것을 보여 주는 드라마였습니다. 우리 말에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입버릇처럼 쓰는 이 말이 맞는 말인지 틀린 말인지 살펴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어떻습니까? 성경에서도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말합니까? 아닙니다. 전혀 다르게 합니다. 3절, “자식은 여호아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 상급이로다”. 여기서 먼저 “기업”이란 말은 하나님이 거저 주신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창33:5절에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야곱이 20년만에 형 에서를 만났습니다. 야곱은 20년간 13자녀를 낳았습니다. 이들을 처음 본 에서가 이들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그때 야곱이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정의하는 자녀입니다. ”무자식 상팔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들입니다“. 자식이 하나님의 기업이란 말이 이 말입니다. 자식은 하나님이 부모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낳기는 했지만 자녀를 창조한 것은 아닙니다. 주신 것을 그냥 받았습니다. 그런 자녀를 달라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주었습니다. 아들이든 딸이든 예쁜 애들, 조금 미운 애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셨고 우리는 받은 것 뿐입니다.
거저 주신 선물은 부모도 받았지만 자녀도 받았습니다. 자녀입장에서도 내가 태어날 때 “이런 부모를 주세요”. 기도한 적이 없습니다. 세상에 태어날 때 부모와 상의해서 태어난 사람도 없습니다. 자기 생일, 자기 혈액형, 자기 키, 성격, 남자인지 여자인지 , 적성, 취미를 결정하고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특히 부모를 통해 받은 사랑, 돈 주고 받은 것도 아닙니다. 거저 받았습니다. 부모에게 태어나 지금까지 자랐지만 한번도 부모에게 월급 준 적 없습니다. 가끔 감사했던 적은 있지만 대부분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없던 생명이 부모 때문에 태어나 여기까지 살았다면 그것이 당연한 일입니까? 그 많은 사랑, 희생, 아무 대가 없이 주신 사랑이 당연한 것입니까? 어떤 교인이 교회 홈페이지에 동영상 하나를 올렸습니다. “No Charge”, “무료”란 영상입니다. 보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함께 보겠습니다(영상).
어떻습니까? 자녀 여러분, 어머니가 9달, 10달동안 품어 주시고 낳아서 온갖 고생하시고 희생하실 때 여러분에게 돈 받았습니까? 어릴 때 안고 업고 얼러 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린 마음, 당연한 것입니까? 여러분 학교 보내고 학비, 용돈, 책값, 동록금 주시고, 자라서 결혼한다고 결혼자금, 집장만까지 해준 것, 당연한 것입니까? 그것들을 다 고사하고 지금까지 여러분 때문에 마음 졸이시고 어느 한 날 편히 자지 못하고 근심, 걱정하신 것, 가끔은 너무 걱정하고 잔소리해서 싫지만 어머니, 아버지 돌아가시면 누가 걱정하며 누가 잔소리합니까? “No Charge”, 무료입니다. 공짜입니다. 선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자녀 여러분, 여러분이 선물로 공짜로 부모의 은혜를 받았다면 여러분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딱 한 가지만 하면 됩니다. 3절 뒷 부분,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상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 상을 받습니까? 잘 한 사람만 상을 받습니다. 우수한 사람만 상을 받습니다. 부모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부모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상급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나 상급받는 것이 아닙니다. 올림픽에서 메달받는 사람은 딱 세 명입니다.
그러면 상급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신의 삶을 미래에 고정해야 합니다. 메이벨 뉴컴버가 말했습니다. “문제는 목적지에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그 목적지가 어디냐는 것이다.” 속도보다 방향입니다. 한 시골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쟁기질을 합니다. 그런데 아들은 비틀 비틀하게 갈았는 데 아버지는 반듯하게 갈았습니다. 아들이 물었습니다. “어버지는 어떻게 그렇게 반듯하게 밭을 가나요?”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너는 어디를 보고 갈았니?” “땅을 보고 갈았죠”.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나는 먼 산에 있는 소나무를 보고 갈았다”. 멀리 보고 가면 반듯이 갑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을 멀리 보고 갑니까? 눈앞의 것만 보고 갑니까? 미국 속담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Play today, pay tomorrow, pay today, play tomorrow". “오늘 놀면 내일 지불하고 오늘 지불하면 내일 논다”. 성공한 사람은 오늘 고통을 택하고 내일 기쁨을 택합니다. 성공한 사람은 대부분 자기 절제에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절제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절제란 즐거움을 유보하는 능력입니다”. 내일의 더 큰 즐거움을 위하여 오늘의 작은 즐거움을 유보하는 것입니다.
미래에 삶에 고정하는 사람은 훈련받기를 즐거워 하는 사람입니다. 옛날에 제 친구중에 야구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연습시간이 되면 운동장에 나가면 하루종일 연습합니다. 하루에 500번 이상의 배팅 연습을 합니다. 한번 잘못하면 감독에게 호된 기압을 받습니다. 운동장을 몇 바뀌 돌든지 엎드려 뻗혀를 50번 하든지 기압을 받습니다. 그래도 집에 돌아가서 또 연습합니다. 언젠가 한번 집에 가보았더니 역기, 아령, 줄넘기, 야구 방망이, 운동기구가 가득합니다. “집에서라도 쉬지 운동만 하니?” 했더니 “제대로 된 선수가 노는 것 봤니?”. “그래도 하루쯤 쉬면서 하지?” 했더니 “야, 하루 쉬면 내 몸이 안 움직여. 나를 위해 운동하는거야”. 그러더니 그 후에 최고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상급받기 위해서는 훈련받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영국 속담에 “평온한 바다는 결코 유능한 뱃사람을 만들 수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딤전4:15절에도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했습니다. 부모님에게도 너무 많이 의존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도 자녀를 너무 많이 도와주지 말아야 합니다. 애정과 애착은 다릅니다. 애정과 애착은 똑같이 사랑하는 데 애정은 상대방의 정신적 성장을 염두에 두고 사랑하고 애착은 정신적 성장과 상관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고등학생 아들이 학교에 걸어갈 수 있는 데 굳이 엄마가 매일 차로 등교시킨다면 그것은 애정이 아니라 애착입니다. 아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는 데 굳이 부모가 그것을 반대하고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강요하는 것은 애착입니다. 자녀가 아르바이트해서 용돈을 벌 수 있는 데 고생한다고 일시키지 않고 모든 용돈 다 주는 것은 애착입니다. 자녀의 미래를 위하여 마땅히 주일날 교회가라고 가르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는 데 대학들어가면 교회 가라고 하는 것은 진정한 애정이 아니라 애착입니다. 주어도 무조건 주는 것은 애착이고 주어도 지각있게 주고 또한 지각있게 안 주는 것은 애정입니다. 말도 무조건 잘했다고 말하는 것은 애착이고 지혜롭게 잘했다고 말하고 엄하게 잘못되었다고 말해주는 것이 애정입니다.
3절을 우리 자녀들만 읽겠습니다. 시127: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자녀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물,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기업입니까? 여러분이 부모로부터 받은 모든 사랑은 아무 대가 없이 받은 최고의 선물임을 믿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남은 생애, 부모의 자랑, 하나님의 상급되기로 다짐합니까? 어떤 경우에도 고난을 이겨내며 훈련을 참아내고 기필코 하나님의 상을 받는 자들이 되겠습니까? 자녀들만 따라 합시다. “나는 하나님의 선물로 태어났습니다. 이제 나는 자랑스러운 하나님의 상급이 되겠습니다”.
꿈이 있어야 행복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꿈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 가정은 하나님의 꿈이 있습니다. 꿈이 가슴 설레게 하는 마음의 생각입니다. 우리 마음에 일단 꿈이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꿈이 우리를 인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꿈을 화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4-5절입니다. 시127:4-5,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꿈이 화살과 같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화살은 반드시 앞으로 나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화살은 거꾸로 가지 않고 머물러서도 안됩니다. 과거 없이 현재 없지만 과거는 머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기 위해 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기 좋아하는 사람은 꿈을 이루지 못합니다. 현재에 머물러 있는 화살은 그 자리에 떨어집니다. 화살은 과녁을 향해 나가되 쉬지 않고 나아갑니다.
꿈의 활을 잡고 미래를 향해 쏘는 사람이 가질 기본적인 “나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임을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꿈을 이루게 합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세르반테스의 동키호테를 읽었는 데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별을 따자”. 동기호테의 말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우리 나라 인물중 “이윤재”와 같은 이름을 찾았습니다. 그랬더니 일제시대의 한글학자 이윤재 선생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독립운동하다가 감옥에 갇혀 순국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이윤재 선생처럼 되어야지 생각했습니다. 제 생일이 9월 28일인데 이 날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조국이 수복된 날입니다. 이 생일을 통해서도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 저도 이 민족의 역사를 수복시키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꿈은 가슴을 설레게 하고 우리를 미래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의 원천입니다. 꿈꾸는 사람은 길이 없다고 푸념하지 않습니다. 길이 없으면 자기가 길을 만들면 됩니다. 중국의 루신이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 “내가 가는 길이 후세에 길이 될 것이다“ 이렇게 믿고 황무지를 뚜벅 뚜벅 걸어가면 그 길이 나중에 길이 됩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꿈을 이룹니다. 오래전에 전남 해남에 집안이 가난해 중학교를 가지 못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머슴인 아버지를 따라 나무를 하고 풀을 베는 일로 가난하게 살면서도 공부가 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교회에 가서 기도 하다가 하나님께 편지를 한 장을 썼습니다. “하나님 저는 공부하고 싶습니다. 제게 공부할 길을 열어주십시오”. 그리고 편지 봉투에 “하나님 전상서”라 쓰고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소년의 편지를 발견한 집배원은 어디다 편지를 배달해야 할지 몰라 고심하다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교회 목사님이 아닌가 생각해서 읍내 교회에 갔다 주었습니다. 목사님이 이 편지를 보고 소년을 과수원에서 일하게 하면서 중학교를 보냈고 신학대학을 보냈고 때가 되어 스위스 바젤대학에 가서 박사가 되었습니다. 훗날 이 분이 한신대 총장이 된 오영석박사님입니다. 꿈이 있으면 반드시 이룹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이루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꿈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꿈이 있는 자를 축복하시고 반드시 꿈을 이루어주십니다.
여러분이 사는 집은 하나님이 주인이신 집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시고 지키시기 바랍니다. 남편과 아내, 부부 관계를 지켜 주옵소서. 자녀와 부모, 형제와 자매를 지켜 주옵소서. 우리 가정에서 자라는 자녀들이 하나님의 기업이 되고 상급이 되게 하옵소서. 꿈의 화살을 주셔서 미래를 향해 쏘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의 가정을 평생 축복하옵소서.
시127:1-5 2013.5.12(일)
행복한 우리 가정
“즐거운 나의 집"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라.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피고 새우는 집 내 집뿐이오.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내 집 뿐이라."
헨리 나우엔의 행복한 가정의 세 가지 특징
- 서로 친밀하다.
- 풍성하다.
- 기쁨이 있다.
“마음 울리는 엄마의 일생”(그림).
시127:1-2,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
하나님이 주인인 가정입니다
“행복은 기분 좋은 만족감이다“
창2: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I will make a helper suitable for him).
창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유대인이 가진 결혼에 대한 생각=“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 것이 아니라 결혼했기 때문에 사랑한다”.
창24:67,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사랑은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나, 결혼은 위로부터 온다. 사랑이 결혼을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이 사랑을 지탱한다”(본회퍼)
시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시127: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시127: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자녀는 하나님의 기업이며 상급입니다
창33:5”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No Charge(영상).
메이벨 뉴컴버 “문제는 목적지에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그 목적지가 어디냐는 것이다.”
영국 속담, “평온한 바다는 결코 유능한 뱃사람을 만들 수 없다.”
딤전4: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했습니다.
애정과 애착은 다르다
시127: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꿈이 있어야 행복합니다
시127:4-5,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별을 따자”(동키호테).
'추천 설교 > 이윤재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9:35-10:4 꿈이 있어 행복한 교회 2013.6.2(일) (0) | 2017.04.20 |
---|---|
대상4:9-10 고통넘어 승리한 사람 2013.5.26.(일) (0) | 2017.04.20 |
잠1:8, 엡6:4 아들아, 달려라 2013.5.5(일) (0) | 2017.01.26 |
겔47:1-12 겔47:1-12 생수의 강 2013. 4.29(일) (0) | 2017.01.26 |
눅8:42-48 생명, 긍휼의 눈물 2013.4.21(일) (0) | 2017.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