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9:35-10:4 2013.6.2(일)
꿈이 있어 행복한 교회
어떤 분이 세미나에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자원이 묻혀 있는 곳은 어디 입니까?” 그랬더니 여기 저기서 답이 나왔습니다. “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광산입니다”. “남미에 있다는 황금 매장지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거대한 유전입니다”. 그런데 정답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답은 아주 가까운 데 있었습니다. “공동묘지”였습니다. 그래서 왜 공동묘지가 비싼 자원들이 묻혀 있는 곳인가 물었더니 강사가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위대한 가능성과 자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그 무한한 가능성을 다 쓰고 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어서 묻히면 다 쓰지 못하는 가능성, 잠재력, 꿈, 에너지도 함께 무덤에 묻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덤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자원이 묻혀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동의하십니까? 사람에게는 누구나 위대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위대한 보석함입니다. 그 보석중에 가장 좋은 보석은 “꿈”의 보석입니다. 꿈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보석입니다. 성경을 그 꿈을 “묵시”, “비전”이라고 합니다. 비전은 보는 것입니다. 현재에 자리에 서서 미래에 이루어질 꿈을 보는 것입니다. 성경 잠언 29:18에서 말합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왜 비전이 없으면 방자히 행할까? 비전은 앞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전이 없다는 것은 앞을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늘 앞을 보지 못하고 지금 보이는 것을 보고, 지금 감정과 기분대로 움직입니다. 그러니까 방자해 집니다.
왜 오늘날 교회가 문제가 생깁니까? 건물이 없습니까? 재정이 없습니까? 교인이 없습니까? 비전이 없으니까 문제입니다. 비전은 보는 것입니다. 오늘 창립을 맞고 입당을 맞은 우리 교회가 붙들 것은 예수님의 꿈, 예수님의 비전입니다. 오늘 말씀은 2천년전에 예수님이 가졌던 비전을 보여 줍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의 비전을 함께 갖기를 원합니까? 여러분의 보석상자안에 예수님의 꿈으로 가득 채우기를 원합니까? 예수님이 33년동안 일관되게 품었던 위대한 꿈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사람을 키우라
예수님이 한번 설교를 시작했는 데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배 때문에 가난하고 헤롯의 폭정 때문에 가난하고 비가 없어 가난했습니다. 그래도 사랑스러웠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사방에서 모였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들으려고 몰려온 사람들을 보면서 예수님은 생각했습니다. “아, 이들을 돋는 사람들이 필요하구나”.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마9:37-38절입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영혼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것이 “추수”라면 분명 그 일을 하는 추수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제자를 선택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마10장으로 오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마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좇아 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왜 예수님이 제자를 선택하셨습니까? 영혼의 추수 때문입니다. 들에 익은 영혼의 곡식들을 추수하기 위해 제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3년, 예수님은 십자가 질 때까지 그 제자들과 함께 있었고 부활이후 그들을 세상으로 보냈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결국 12제자와 함께 한 일생이었습니다. 이것이 막3:13-15절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님은 먼저 12제자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부르신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냥 부르신 것이 아니고 산에 올라가 기도하신 후 부르셨습니다. 부르신 다음 함께 있게 하셨습니다. 함께 있으면서 예수님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예수님께 배우는 방법은 두 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예수님의 삶을 보고 배우고. 듣고 배우구 보고 배우고, 그래서 목표하신 것은 예수님의 삶이 그들의 삶에 거룩한 습성이 되도록 훈련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보내서 하게 하신 일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전도하고, 둘째 귀신을 내쫓고, 첫째 전도하고는 순수한 복음 전파를 말합니다. 제자들이 할 첫 번째 일은 복음 전파였습니다. 둘째 귀신을 쫓아내고는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는 세력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치권력, 물질만능, 타락한 문화, 미신종교, 나쁜 사회적 관습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것들과 싸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자들이 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약학자가 4복음서에 예수님이 시간사용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결론이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시간의 3/4을 제자들과 함께 있고 나머지 1/4은 군중들과 함께 쓰셨습니다. 예수님은 시간의 3/4을 제자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고 제자들과 함께 여행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진리를 가르치는 데 썼습니다. 1/4은 군중들에게 오병이어를 먹이고 병든 자를 치유하는 일에 쓰셨습니다.
어떻습니까? 오늘날 교회도 예수님처럼 사람을 키우는 일에 3/4의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합니까?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신앙생활의 3/4을 예수님의 좋은 제자가 되는 일에 씁니까? 목회자로서 제 시간을 살펴보아도 제 시간의 3/4을 사람 키우는 데 쓰고 있지는 않습니다. 너무 많은 일이 저에게 있어 이리 쓰고 저리 쓰고 그 중에 남는 시간 얼마를 사람 키우는 데 쓰고 있습니다. 교회 재정도 어떻습니까? 우리 교회의 재정의 3/4을 교회학교, 중고등부, 청년, 장년 제자만드는 일, 장학생 키우는 일에 집중하는가? 그렇게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창립주일을 맞아 다시 한번 예수님이 가진 꿈을 다시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주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을 키우는 데 집중하게 하소서“. 그래도 우리 교회가 다행인 것은 교회의 제일 사명으로 사람 키우는 일의 중요성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1988년부터 25년간 계속된 전국 목회자 세미나는 한국민족을 살리기 위해서 지도자인 목회자를 살리는 운동이었습니다. 25년간 대략 한국교회 목회자 4만명이 다녀갔고 거기에서 강의한 분만도 400명이 넘습니다. 아마 이 기록은 앞으로도 한국교회에서 깨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재작년에 예수영성대학을 세웠는 데 이것은 목회자들을 아주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훈련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대학을 세울 때 제가 염두에 두었던 대학은 독일에 있는 할레대학입니다(사진). 독일 할레 대학은 유럽 최초의 근대 대학입니다. 1694년에 설립된 이 대학은 정말 기라성같은 많은 믿음의 인물들을 배출했습니다. 경건주의를 창시한 스페너, 프랑케, 진젤도르프가 이 대학 출신입니다. 1832년 우리 나라에 최초로 선교를 왔던 귀쯜라프가 이 대학 출신이고 영국에 건너가 고아원의 아버지가 된 조지 뮐러가 이 대학출신입니다. 중국 최초로 선교의 문을 연 스코틀랜드 출신의 로버트 모리슨 선교사, 중국 내지 선교의 아버지 허드슨 테일러, 1878년 만주 선교사로 와서 한글 성경을 최초로 번역한 존 로스, 매킨타이어 선교사가 직접 간접으로 이 학교와 관련됩니다. 학교 하나를 제대로 설립해서 세계 역사를 바꾼 것입니다. 제가 그 학교에 가서 손을 대고 기도했습니다. “주여, 우리 예수영성대학이 그런 대학이 되게 하옵소서”.
여러분,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양심적인 그룹중에 일본교회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일본 교회를 지금의 모습으로 세운 분이 도요히쿄 목사님입니다(사진). 일본 교회는 이 한 분 때문에 지금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일본 유명 정치인이 기생과의 관계에서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가 기생이라 사람 취급받지 못하고 늘 겉으로만 돌다가 폐병까지 걸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믿고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폐결핵이 완치되면 입학을 허가한다는 조건으로 강제휴학 당했습니다. 다니던 교회로부터도 병낫기 전까지는 출석을 삼가 달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평소 절친하던 친구들도 그를 떠났습니다. 병을 고칠 치료비도 없었습니다. 더 이상 살 용기를 포기한 그는 죽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발길이 닿는 대로 길을 걷다가 일본 최북단, 가나자와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골에 5년전에 들어와 텐트를 치고 교회를 세운 분이 있었습니다. 나가오목사였습니다. 그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를 세우려고 일본 전역을 다니다가 그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지나간 5년동안 이 교회에는 한 사람의 신자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청년이 텐트를 제치고 불쑥 교회로 들어왔는 데 그가 바로 도요히코였습니다. 나가오 목사가 반가와 뛰어갔는 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는 폣병환자였습니다. 콜록 콜록 하는 데 입에서 피가 나옵니다. 그때부터 나가오 목사는 이 청년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입에서 수많은 피가 나오고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나가오 목사는 그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밤새 기침할 때는 온 몸을 안고 잤고 변이 항문에 걸려 배변을 하지 못할 때는 꼬챙이로 변을 파 주었습니다.
그렇게 극진한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자 청년을 건강을 회복했고 신학교에 복학했으며 후에 유명한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신학교 졸업후 고베와 도쿄에서 수없이 많은 빈민들을 섬기는 목회를 했습니다. 그에게 옛날에 그가 했던 대로 폣병환자가 오면 피를 닦아 주었고 변비로 고생하는 사람이 오면 자기 입을 항문에 대고 차돌같이 굳어 있는 변을 침으로 녹여주었습니다. 사람들이 놀라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배운 대로 합니다. 제 선생님 가가오 목사님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제가 토해 낸 폐결핵 핏덩이를 밤새 닦아 주셨고 제 언 발목을 안고 밤새 기도하셨습니다. 변비로 배변이 안되어 고통할 때 꼬챙이로 그것을 파주셨습니다. 저는 배운대로 한 것뿐입니다. 우리 선생님이 그렇게 했습니다”. 도요히코가 간 데마다 가가오 목사를 소개하는 바람에 일생 단 한 명을 목회한 가가오 목사는 일약 유명한 목사가 되었습니다. 위대한 성자 목자 배후에 위대한 스승이 있었던 것입니다. 일생 딱 한 사람을 길러 일본 교회를 바꾼 사람, 가가오 목사, 그에게 배워 진짜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된 도요히코 목사, 그들 이야기는 왜 성경이 사람을 키우는 것이 최고의 일이며 예수님이 평생 그 일에 집중하셨는가를 깨닫게 합니다.
한신교회, 비전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평생에 걸쳐 실천한 비전입니다. 사람을 키우는 비전, 12제자를 훈련시키는 꿈, 가가오가 도요히코를 키워 일본교회를 세운 것 같이, 36년전에 고 이중표 목사님이 한신 교회 세워 한국 민족을 살렸던 것 같이, 오늘 우리도 사람을 키워 민족의 제단에, 역사의 무대에 세워야 합니다. “사람을 키우라”. 첫 번째 우리의 꿈입니다.
둘째. 교회를 세우라
예수님은 자신에게 몰려온 백성들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36절, 마9: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여기서 “민망히 여겼다”는 말은 불쌍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히브리어는 “라쿰”입니다. “라쿰”은 어머니의 자궁입니다. 어떤 부모가 자식을 불쌍히 여기라고 해서 불쌍히 여깁니까?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불쌍히 여깁니다. 속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왜 불쌍히 여겼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 이유가 36절입니다. 마9:36, “이는 저희가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예수님이 백성들을 불쌍히 여긴 이유는 그들이 주인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마치 양처럼 목자를 떠났습니다. 그래서 불쌍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인인 목자에게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집이 무엇입니까? 교회입니다.
예수님이 목자없는 양과 같이 하나님없이 사는 사람들을 9장에서 불쌍히 여기시고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12제자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훈련해서 내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것이 16장입니다. 마16:18,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세우신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것을 세운 것이 아닙니다. 학교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회사를 세우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세우면 그 속에 다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있으면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만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찾고 있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전3:11,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교회는 본질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세상은 무엇인가 해야 인정받습니다. 그것도 잘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내가 무엇을 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행위하는 곳이 아니라 존재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곳입니다. 중세시대 영국에 쥴리앙이라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고난의 시대였습니다. 십자군 전쟁이 실패하고 페스트 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영국과 프랑스 간에 100년 전쟁이 일어나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였습니다. 그때 쥴리안이 교회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는 데 하나님이 나타나 이렇게 물었습니다. “쥴리안, 너는 만족하니?” 전쟁과 기근과 질병이 난무하던 시절, 사람들은 이것 저것을 요청했지만 하나님은 성도들이 함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있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하나님에게 집중하지 않을 때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와서 실망하고 시험듭니다. 원인은 보면 다른 것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따뜻한 인간적 정과 사랑을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봉사하는 일에 집중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자기의 사회적 신분에 걸맞는 직분을 찾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따뜻한 정보다 우선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정을 못 찾아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못 찾아서 교회 떠납니다. 일을 않하기 때문에 교회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일만 하기 때문에 교회 떠납니다. 교회는 인간적인 정, 봉사, 직분 그 이상입니다. 그 이상이 무엇입니까? “너는 나로 만족하니?”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목회자인 저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실시한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전도가 제대로 안돼 새신자가 늘지 않아 교회 부흥이 지체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새벽에 나와 기도하는 데 주님이 갑자기 저에게 이렇게 질문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언제쯤 나로 만족하겠니?” 그때 저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목회하고 있다고 생각했는 데 사실은 제 나라를 위해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지 않으면 왜 목회는 하는 것이며 왜 장로, 권사, 직분이 필요한 것이며 왜 신학교는 가는 것이며 왜 교회는 있는 것입니까? 다 헛된 일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세웠을 뿐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교회입니다. 행9장에서 어느날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 만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행9:4,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예수님은 사울에게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울이 예수님을 핍박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이 살아 있을 때 다소에서 율법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살아 있을 때 한번도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울에게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갈1:13절에 보면 바울은 교회를 핍박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바울이 핍박했던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합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교회가 곧 예수님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곧 교회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핍박하면 예수님 핍박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부지런히 세워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교회는 곧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오면 곧 예수님 만납니다. 일단 교회세우면 교회를 통해 예수님이 증거됩니다. 교회가 예수님이요 예수님이 곧 교회입니다. 지난 2월에 세운 충남 조치원에 세종장로교회를 세웠습니다. 건물만 세우고 유방기 목사를 파송했습니다. 교회만 덩그러니 있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40명이 모입니다. 만일 그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면 40명이 하나님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 40명에게 하나님을 안 것은 거기 교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꿈은 이것입니다. “내 교회를 세우라”. 교회를 세우는 것이 예수님의 꿈입니다, 성남의 어느 교회가 이 꿈을 품었습니다. 3-400명밖에 모이지 않는 교회에서 50명을 떼어 교회를 세웠습니다. 2-3년 후에 150명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모교회와 150명된 교회가 또 50명을 떼어 교회를 세웠습니다. 2-3년 지나자 또 150명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세 교회가 연합하여 네 번째 교회를 세웠습니다. 또 자랐습니다. 교회를 세우지 않았으면 3-400명 그대로 있었을 교회가 4-5년 만에 교회가 4개가 되면서 1000명이 넘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생명입니다. “내 교회를 세우라” 이것이 예수님의 꿈입니다.
셋째. 세상을 섬기라
예수님의 세 번째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꿈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지만 왜 교회를 세웠느냐가 중요합니다. 건물을 위해서 세웠겠습니까? 교단을 세우기 위해 교회를 세웠겠습니까? 신학과 교리를 발전시키려고 세웠겠습니까? 딱 한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리기 위해 세웠습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세워 하시려는 계획이 35절에 나타납니다. 마9: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예수님이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사역의 대상은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세운 교회는 세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교회도 세우고 사람도 키우는 것입니다.
교회는 무엇 하는 곳입니까?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람을 키우는 곳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어디로 갑니까? 세상으로 갑니다. 마28:19-20절이 그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자, 여기에 동사가 넷 나옵니다. “가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 우선 가야 합니다. 어디로 갑니까? 세상으로 갑니다. 가서 무엇을 합니까? 세 가지를 합니다. “제자를 삼고”, 이 말은 예수를 믿게 해서 그를 영접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회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회심은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심이 목적이 아닙니다. 조금 더 나아가야 합니다. “세례를 주고”, 세례는 교회에서 줍니다. 이 말은 예수믿고 회심했어도 교회에 들어와 세례받고 한 식구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교회 들어와 세례받은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자화, 교회화, 제자화라고 부릅니다(도표). 불신자에게 신자가 되는 것을 회심이라고 부릅니다. 신자가 교회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을 세례라 합니다. 교인이 말씀으로 훈련받아 제자가 되는 것을 양육이라 부릅니다. 우리가 세상으로 가는 것은 모든 사람을 예수믿게 해서 신자되게 하고, 교회에 들어와 세례받아 교회 공동체에 소속하게 하고, 계속해서 양육해서 말씀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35절, 가르치고, 전파하고,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항상 어디 있었는지 아십니까? 세상입니다. 36절, 마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예수님은 목자없는 양같이 유리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음을 항상 생각했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을 위해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는 교회안에 있을 때 교회가 아니라 교회 밖으로 나갈 때 교회입니다. 진정한 교회의 밖으로 나가는 교회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의 믿음이 교회안에 갇히지 말고 교회밖으로 나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너무 은혜에 만족하지 말고 은혜가 행위가 되게 해야 합니다. 미국의 어느 교회가 정말 지역사회와 세상을 잘 섬겼습니다. 때가 되어 멀리 이사가게 되었는 데 모든 동네 사람들이 나와 교회 떠나면 안된다고, 우리는 교회가 필요하다고, 데모를 했습니다. 할 수 없이 교회가 이사가지 못하고 대신 지교회를 세웠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교회가 이사간다면 이 지역 사람들이 모여 데모할까요? 가지 말라고, 교회 떠나면 우리는 죽는다고 말할까요?
세상을 섬기는 교회가 되기 위해 우리가 할 것은 우리 자신이 먼저 좋은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 중에 로버트 버드(Robert Carlyle Byrd)라는 의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40년간 하원의원을 역임했는 데 유명한 헌법학자이기도 해서 별명이 ‘걸어다니는 미국법“이었습니다. 이 의원이 어느 날 운전 중 앞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내고 파출소에 연행되었습니다. 파출소에 도착한 뒤 그의 신분증을 본 경찰이 상원의원임을 알고 의원에게는 면책 특권이 있으니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러나 버드 의원은 10일 후 재판소에 나와 다른 범법자속에 앉아 재판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차례가 되자 혐의를 인정하고 벌금을 물었습니다. 면책 특권이 있지만 그 특권을 쓰지 않고 스스로 재판받은 상원의원, 적어도 그렇게는 되어야 사람들이 의원들을 신뢰합니다,
며칠전 새벽에 기도하는 데 하나님이 그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네가 먼저 그렇게 해라”. 그래서 몇 가지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심방가서 수고비를 받지 않겠습니다. 좋은 뜻으로 주신 줄 알지만 제가 받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감사헌금으로 내시기 바랍니다. 결혼주례나 장례식을 인도하면 감사를 표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의로 하는 줄 알지만 목회자가 성도의 가정을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장학헌금으로 내시기 바랍니다. 토요일마다 교회 나와 청소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 까지는 그렇게 못했습니다. 저도 하겠습니다. 이미 어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했던 것처럼 저의 물질생활은 언제나 청렴 결백하게 하겠습니다. 저에게 주시는 최소한의 생활비 외 다른 것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 목회 이외의 어떤 명예직, 감투도 사양하겠습니다. 오로지 목회에만 집중하겠습니다. 그리고 좀 더 겸손해 지겠습니다. 제가 담임목사지만 겸손히 주일날 장로님들의 중보기도를 받고 단에 오르겠습니다. 오늘 이미 2부 예배에 4분, 3부 예배에 4분 장로님들이 교회 나와 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제가 먼저 달라지겠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섬기는 교회의 첫 번째 자세입니다. 혹시 제가 잘하려고 하다가 실수 할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실수했다고 를 사과하겠습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한신교회 목회자요 성도들입니다. 제 평생에 제일 자랑스러운 것은 한신교회 목회자 된 것입니다. 한신교회는 작지 않지만 큰 교회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성경적 교회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목회자로서 저는 많이 알려졌지만 유명한 목사되는 것을 목표삼지 않고 올바른 목사되는 것을 목표삼겠습니다. 여러분도 세상에서 성공하고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성공이 목표가 아닌 예수님을 닮은 거룩한 성도가 되는 데 목표를 두십시오. 꿈이 있어 아름다운 교회, 예수님의 세 가지 꿈을 이루는 교회, 하나님이 평생 교회와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마9:35-10:4 2013.6.2(일)
꿈이 있어 행복한 교회
잠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첫째. 사람을 키우라
마9:37-38,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마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좇아 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막3:13-15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할레대학(사진).
도요히쿄 목사(사진).
둘째. 교회를 세우라
마9: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마9:36, “이는 저희가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마16:18,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전3:11,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행9:4,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갈1: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셋째. 세상을 섬기라
마9: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불신자 신자 교인 제자
회심 세례 양육
마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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