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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5, 요4:34 왜 일하는가 2013.6.16(일)

2:15, 4:34 2013.6.16()

 

왜 일하는가?

아름다운 6월입니다. 아름다운 신록처럼 여러분의 삶도 푸르고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옆에 있는 분을 축복합시다. “6월의 신록처럼 푸르게 삽시다”.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중에서도 세 가지 중요한 선택이 있습니다. 첫째는 결혼입니다. 결혼은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의 선택입니다. 결혼의 선택이 우리의 남은 생을 좌우합니다. 두 번째는 신앙의 선택입니다. 신앙은 인생의 주인인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선택이 우리의 평생을 좌우합니다. 세 번째는 직업입니다. 직업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선택입니다. 이 세 가지중 어느 것이 가장 급할까요? 아마 직장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장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직업은 우리를 먹고 살게 할 뿐 아니라 우리에게 삶의 의미와 가치도 제공합니다.

 

한 사람이 길을 걷다가 채석장옆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세 사람이 돌을 다듬고 있어서 물었습니다. “지금 무엇들 하고 계십니까?” 첫 번째 사람이 버럭 화를 내며 대답했습니다. “보면 모릅니까? 이 더운 날, 돌을 쪼개고 있잖아요?” 두번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한 주일에 10만원 준다고 해서 일하고 있소”. 세 번째 사람이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멋진 건물을 짓고 있죠. 이 동네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를 짓고 있다니까요”. ,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똑같이 돌을 쪼개는 석수입니다. 셋은 근무 조건이나 월급이 서로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햇빛은 똑같이 비치고 돌깨는 일은 누구에데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달랐던 것은 일이 아니라 일하는 자세였습니다. 오직 셋중에서 마지막 사람만 행복했습니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 것은 일이 아니라 일하는 자세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에서 말합니다. 2: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는 그 일을 즐거워하며 그 일을 통해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까? 오늘부터 저는 여러분을 그 행복한 일로 초대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왜 일하는가를 묻고 싶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일하는가 입니다. 왜 일하는가를 알면 열심히 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묻다가 좋은 책을 발견했습니다. 독일의 여성 신학자 도로테 죌레가 쓴 사랑과 노동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사람이 일하는 세 가지 이유를 말했습니다. 첫째는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 생계수단으로서의 일입니다. 둘째는 자기를 성취하고 싶어서 일한다. 의미추구로서의 일입니다. 세번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일한다. 사명으로서 일입니다. 이것을 저는 M으로 시작하는 세 단어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Money, 돈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둘째, Meaning, 의미를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셋째, Mission, 사명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하는 일은 이 세 가지입니다.

 

Money, 돈 때문에 일합니다.

왜 일하느냐 물으면 가장 첫 번째가 Money, 돈 때문에 일하는 것입니다. 통계를 보면 우리 나라처럼 일을 많이 하는 나라는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 OECD통계를 보면 우리 나라 사람들이 연간 평균 일하는 시간이 2090시간입니다.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OECD 평균 연간 노동시간보다 353시간이나 많고 네델란드와 비교하면 711시간이나 더 많습니다. 문제는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합니까? 이렇게 물으면 누구나 대답하는 대답이 있습니다. 돈 때문입니다. 먹고 살려고 일합니다. 경제적 이유입니다.

 

사실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돈은 더 이상 더러운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구약 전도서 10:19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응용되느니라”. 여기에 돈은 범사에 응용되느니라라는 말이 어려워 <표준 새번역성경>을 보았더니 돈은 만사를 해결하느니라로 되어 있습니다. 또 영어 성경 NIV를 보니까 “Money is the answer for everything"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돈은 모든 것의 해답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처럼 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이 없습니다. ”돈은 모든 것의 해답이다“. 어떤 분이 미국 달러를 보여 주며 달러에는 날개가 있다고 말해 감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무슨 돈에 날개가 있어?“ 했는 데 불에 자세히 비춰보니까 날개가 보입니다. 제가 그것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 돈은 날개구나“. 의복이 날개가 아니라 돈이 날개입니다. 왜 돈이 날개입니까? 돈이 있으면 못 가는 데가 없습니다. 날개를 타고 아무 데나 갑니다. 어떤 나라도 지구의 끝이라도 돈만 있으면 갑니다.

 

믿음이 좋고 경건한 분일수록 돈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돈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돈을 잘못 써서 잘못이지 돈이 나빠서 잘못되는 것이 아닙니다. 심리학자에 의하면 사람은 하루에 3분의 2이상을 돈과 관련된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신문 사회면에 실리는 각종 범죄 사건의 90% 이상이 돈과 관련된 것입니다. 돈은 우리 삶에 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차피 돈없이 살 수 없다면 돈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감리교의 창설자 요한 웨슬리가 이 돈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는 세 가지 돈에 대한 원칙을 이야기했습니다. 첫째 할 수 있거든 많이 벌어라”, 둘째 할 수 있거든 많이 저축하라. 셋째 할 수 있거든 많이 나누라. 돈을 벌기 위해서도 부지런히 일해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살후3:10-12, “누구든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고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바울의 말입니다. 여기서 종용히란 전심전력하라는 말입니다. 누구든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되 일도 적당히 하지 말고 종용히”, “전신전력해야 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도 열심히 일하신 것을 아십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목수로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중 노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두 어부거나 세리거나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를 때 그물 던지고 있었고 요한을 부를 때 그물 깁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직업인이었습니다. 씨 뿌리는 농부, 포도원의 품꾼, 추수꾼, 건축자, 돼지를 치는 사람, 목자, 가정주부, 구약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부를 때 모두 일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부를 때 다윗은 들에서 양치고 있었습니다. 사울을 부를 때 잃어버린 나귀를 찾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를 부를 때 12겨리 소를 몰고 쟁기질하고 있었습니다. 기드온을 부를 때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아모스를 부를 때 뽕나무를 재배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고 하나님은 건강한 직업관과 경제관을 가진 사람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알 것이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되 돈을 사랑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성경 딤전6:10절에 보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했습니다. 돈 자체가 악은 아닙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악의 뿌리입니다. 모든 죄는 돈을 사랑하는 데서 나옵니다. 돈을 사랑하면 돈의 노예가 됩니다. 우리가 돈을 부리면 돈은 우리의 좋은 종이 되지만 우리가 돈을 섬기면 돈은 우리의 나쁜 주인이 됩니다. 부지런히 일하되 불로소득을 좋아해서는 안됩니다. 얼마전에 신문을 보았더니 어떤 사람이 일은 안하고 복권만 사다가 한번 큰 것이 당첨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그 돈을 썻습니까? 했더니 유럽 여행가서 마음껏 쓰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제는 무엇을 하겠습니까?“ 물었더니 또 복권 사야죠“. 했답니다. 그렇게 해서 복권 당첨되면 뭣 하겠습니까? 소고기 사먹겠지요. 그 다음에 무엇하겠습니까? 복권 사겠지요. 복권 사서 뭐 하겠습니까? 유럽 여행가겠지요. 이렇게 살면 돈을 좋은 종으로 부리는 것이 아니라 나쁜 주인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부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얻고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28:20입니다.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느니라”.

 

일확천금을 바라고 강원랜드 도박장 주변을 배회하는 사람들, 그들 대부분이 알거지가 되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도박에서 몇 억 대박이 터질 확율은 10만분의 1일랍니다. 그 희미한 가능성을 믿고 땀흘려 일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멸망의 형벌이 다가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열심히 일하십시오. 일확천금을 바라지 마십시오. 불노소득을 좋아하지 마십시오. 128:2절이 말씀이 곧 축복입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Meaning, 의미 때문에 일합니다.

왜 일하느냐 물을 때 두 번째가 meaning, 의미입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이 이 점입니다. 동물은 다만 먹고 살면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우리 교인가운데 퇴직하고 다른 직장에 다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 중 보수를 받지 않고 다니는 분도 있습니다. 그 분들은 과거에 꽤 전문적인 일을 하던 분들입니다. 때가 되어 은퇴는 했고 보수를 받을 상황은 아니지만 자신의 전문성으로 할 일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일하는 것입니다. 의미추구로서의 입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가장 번화한 거리 마카네 에후다에서 평생 바이올린만 연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항상 그 자리에게 연주합니다. 얼굴을 보면 언제나 싱글 벙글합니다. 한번은 제가 지나가다 물었습니다. “어디서 오셨느냐. 그랬더니 자신은 러시아에서 온 유대인인데 자기 조국에 돌아와 너무 기뻐 평생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로 마음 먹었답니다. 사람들이 연주를 듣고 동전 몇 푼을 던지고 갑니다만 이 사람은 동전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 자체를 즐깁니다. 자신의 바이올린을 통해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행복으로 여깁니다. 그에게 그것은 기쁨이요 의미입니다.

 

어떤 기독교 기관에서 크리스찬 직장인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현재 직장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는지. 만일 옮긴다면 왜 옮기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직장인의 2/3에 해당하는 63.2%의 사람들이 현재 다니는 직장을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왜 그만 둘려고 하느냐 물었더니 가장 큰 것이 회사 정책과 자신의 비전에 차이가 있다. 34.6%,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 20.3%,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 10%, 대인 관계의 어려움때문, 6%등이었으며 그 밖에 박봉, 5%, 격무, 4%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장 큰 것이 직장에서 자신의 꿈과 비전을 실현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옛날에는 돈 조금 주면 옮겼는 데 지금은 돈은 적어도 의미와 가치가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돈때문에만 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통해 이룰 비전과 가치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자주 직장을 옮겨다니는 것이 맞다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에 대한 만족도는 직장을 바꾼다고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높아 집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조지 크레인이란 사람의 말입니다. “어떤 직업에도 미래는 없다. 미래는 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자신에게 있다.” 그렇습니다. 직장 자체에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는 내가 창조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직장에서 일해도 내가 의미를 찾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은 돈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는 그 일에서 의미를 느낍니까? 일할 때 돈만 생각합니까? 의미도 함께 생각합니까? 월급받는 것이 목적입니까? 자신의 비전과 꿈을 실현하는 것이 목적입니까?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구분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첫째는 기쁘게 일하는가 입니다.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은 그 일이 기쁩니다. 일자체가 즐겁습니다. 일단 즐거워야 의미도 있고 성취도 있습니다. 전도서 3:22절 말씀입니다.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자기 일을 기뻐하는 것이 일의 성과를 높이는 실험이 있습니다. 쥐 세 마리를 놓고 실험했습니다. 첫째 쥐는 쥐장에 운동기구 없이 쥐만 있게 했습니다. 둘째 쥐는 아예 운동기구에 있게 했습니다. 세 번째는 쥐장에 운동기구를 넣되 죄가 알아서 운동하도록 했습니다. 어떤 죄가 가장 많이 운동했겠습니까? 운동기구를 옆에 놓고 알아서 운동하게 한 쥐입니다. 어떤 쥐가 가장 운동을 안 했겠습니까? 운동기구위에 올려 놓은 쥐입니다. 기쁨이 없이 억지로 하는 일은 효과가 없습니다.

 

두 번째 기준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 일이 나에게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을 줄 때입니다. 그래서 직업의 귀천은 없지만 남에게 해를 주거나 유익이 안되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그 일이 깨끗한 일이냐 더러운 일이냐로 일을 판단했습니다. 예를 들면 구약에서 목동, 의사, 피장이, 어부 이런 직업은 좋은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목동은 양이나 소등 동물을 매일 만집니다. 때로 죽은 동물도 만집니다. 그래서 부정합니다. 의사는 사람의 몸을 만집니다. 고치기 위해 만지지만 가끔 죽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정합니다. 피장이는 가죽쟁이입니다. 가죽은 동물을 죽어야 나옵니다. 동물죽이는 것은 부정합니다. 어부는 물고기를 만집니다. 그 중에는 가끔 뱀장어같이 지느러미, 비늘없는 물고기도 만집니다. 부정합니다. 그런데 신약시대로 오면 이 차별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한 밤중의 목자에게 맨 먼저 알려졌고 누가는 의사였으며 베드로는 피장이 시몬의 집에 우거하였고 예수님의 제자중 4명이 어부였습니다. 깨끗하냐 부정하냐 의 기분이 하나님의 나라에 유익하나 아니냐로 바뀌었습니다. 지금도 직업의 귀천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준은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유익을 주느냐?” 유익은 주지 않는 데 돈만 많이 버는 것은 크리스쳔의 직업이 아닙니다. 가장 큰 기준은 내가 하는 그 일로 남에게 유익을 줘야 합니다. 그래야 내 일이 나에게 의미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있습니다.

 

이랜드라는 기업은 믿음의 사람 박성수 회장이 하는 기업입니다. 그는 과거에 근육무기력증에 걸려 침대에 누어 살아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함받고 그는 이랜드라는 기업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그 기업을 위하여 세 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첫째 가장 많이 일하자. 성실입니다. 둘째 최고의 물건을 만들어 내자. 탁월성입니다. 셋째가 가장 값진 것으로 나누자. 섬김입니다. 그가 만일 성공했다면 그 성공은 사업이 확장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섬김과 유익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있습니까? 돈보다 의미입니다. 기쁘게 일하십시오. 남에게 유익을 주는 데 일의 목표를 두십시오. 그 일을 탁월하게 발전시키십시오.

 

Mission, 사명때문에 일합니다.

왜 일하느냐라고 물을 때 마지막이 Mission, 사명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직업은 단지 돈벌이의 수단이거나 자아실현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직업은 사명입니다. 사명은 스스로 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가 맡겨서 하는 일입니다. 시킬 사(使)사명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일을 시켰을까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고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생육하라씨를 뿌리라는 것입니다. “번성하라는 수가 늘어나라는 것입니다. “충만하라는 가득차라는 말입니다. 일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단어들입니다. 에덴동산을 다 만드신 후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그것을 아담과 하와에게 맡기셨습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었지만 일은 아담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담이 죄를 짓습니다. 그때부터 일은 노동이 되었습니다.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여러분, 하나님이 처음부터 우리에게 노동을 주시지 않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으로 주시고 노동은 죄의 결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본래 축복인 데 죄로 인해 노동이 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일로서 일합니까? 노동으로서 일합니까? 일은 창조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할 때 하나님의 창조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톨킨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일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에 동업하는 것이다. 우리는 말하자면 보조창조자다”. . 최초의 사람 아담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 이후의 사람은 어머니들이 낳습니다. 어머니는 말하자면 하나님의 보조 창조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기업을 받아 회사를 차리고 무역을 하고 세일즈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의 보조창조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학교 선생님들이 우리를 가르칩니다. 교사들은 하나님의 교육의 보조창조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양으로 삼으셨습니다.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양들을 먹이고 가르치고 훈련합니다.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목양의 보조창조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몸을 창조했습니다. 의사들이 우리 몸을 치료합니다. 의사는 하나님의 치료의 보조창조자들입니다. 우리의 일과 하나님의 창조는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함으로 하나님의 창조가 완성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자연 문화

nature 2:15(돌보고 가꾸라) culture

1차 창조 일 2차 창조

 

 

, 하나님이 원래 창조한 세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자연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본래 지으신 1차 창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명하셨습니다.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이 돌보고 가꾸는 것을 컬투스라고 합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culture입니다. 하나님은 nature를 창조하셨는 데 사람은 culture를 만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의 일이 있습니다. 우리 일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본래 창조한 자연을 문화로 바꿔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동업자, 하나님의 보조창조자가 됩니다.

 

그래서 왜 우리가 게으르면 안되는지 아십니까? 게으르면 우리가 가난해지고 밥을 못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에 동참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게으르고 일하지 않으면 자연은 문화가 되지 않고 그대로 자연으로 있습니다. 우리가 게으르면 아이도 태어나지 않고 우리가 게으르면 교육도, 기업도, 치유도, 목양도, 역사도 아무 발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1차 창조가 2차 창조가 되는 것은 우리의 일을 통해서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도 예수님 아니었으면 세상을 위해 일하지 못했듯이 예수님도 우리가 없으면 세상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도구였던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도구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중요합니다.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동업자 의식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업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과 동업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동업자입니다. 우리는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일하고 우리는 우리만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하여 일합니다.

 

선교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외국으로 나가 전도하는 것만 선교가 아닙니다. 선교는 예수님과 함께 일하고 예수님을 대신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일의 종류가 무엇이든 어디서 일하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일하고 예수님을 위하여 일하느냐가 중요합니다. ,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가 그물을 던졌습니다. 어부가 항상 하던 일이었습니다. 어느날 예수님이 와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일하고 예수님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설령 베드로가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지 아니했을지라도 베드로의 선교는 시작되었습니다. 어부를 그만 두고 외국선교사로 나가야 선교가 아닙니다. 똑같은 어부로 살아도 예수님을 위한 어부가 되면 선교입니다. 빌립보에서 루디아가 옷감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바울이 와서 전도해서 장사하는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그 전에는 money 돈벌기 위해 일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mission, 하나님을 위하여 일합니다. 선교로서 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에게 예수님이 찾아왔습니다. 뽕나무에 있던 그를 내려오라 부른 후 그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도 삭개오는 세리를 그만 두지 않았고 아마도 여리고 세무서에서 예전처럼 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달라졌습니다. 일이 달라져 달라진 것이 아니라 일하는 목적이 달라져 달라졌습니다. 그 이전에는 money, 돈을 위해 일했습니다. 이제는 mission, 선교를 위해 일합니다. 직장을 그만 두고 선교사로 가야만 선교가 아닙니다. 안 믿는 직장에서 믿는 직장으로 옮겨야만 선교가 아닙니다. money 를 위해 일하다 mission, 하나님을 위해 일하면 그때부터 선교입니다.

선교는 일의 종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일의 목적을 바꾸는 것입니다. money, 돈을 위해 일하면 생업입니다. meaning, 의미를 위해 일하면 천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mission, 하나님을 위해 일하면 성직입니다. 모든 사람이 성직자는 아니지만 모든 일은 성직이 될 수 있습니다. 왜 일합니까? 일합시다. 열심히 일합시다. 열심히 일하면 잘 먹고 살 뿐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를 완성합니다. 우리가 일할 때 하나님의 동업자가 되고 우리가 일할 때 자연은 문화가 됩니다. 다만 하나님을 위하여 일합시다. 예수님과 동업합시다. 여러분의 일과 직업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2:15, 4:34 2013.6.16()

 

왜 일하는가?

세 가지 중요한 선택

- 결혼

- 신앙

- 직업

 

2: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Money, 돈 때문에 일합니다.

전도서 10:19,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응용되느니라”= “돈은 만사를 해결하느니라”= “Money is the answer for everything"

 

살후3:10-12, “누구든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고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28:20,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느니라”.

127: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Meaning, 의미 때문에 일합니다.

조지 크레인, “어떤 직업에도 미래는 없다. 미래는 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자신에게 있다.”

 

일의 의미를 느끼는 요소

- 기쁘게 하는가.

3:22,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 남에게 유익을 주는가

 

- 일의 진보가 있는가

 

Mission, 사명때문에 일합니다.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자연 문화

nature 2:15(돌보고 가꾸라) culture

1차 창조 일 2차 창조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