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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8:1-8 선교사 빌립 집사처럼 2012.6.23(일)

8:1-8 2012.6.23()

선교사 빌립 집사처럼

사람이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많은 것이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열정입니다. 열정은 어떤 일에 미치는 것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킨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어떤 일에 미친 것입니다. 윌리엄 섹스피어가 말했습니다. “내 안에 식지 않는 여름이 있다”. 그는 그 열정대로 위대한 문학가가 되었습니다, 애플사의 스티브 쟙스가 말했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파라, 어리석어라”. 이 말은 2005년 스탠포드대 졸업식에서 한 말입니다. 이 말은 그가 암선고 받은 후에 한 말이라 더욱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비록 자신이 암에 걸렸지만 미래를 향해 열정을 갖는 일에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말한 것입니다.

 

오래 전에 제가 미국 버클리에 있을 때 어느날 버클리 대학앞을 지나갔습니다. 그랬더니 한 사람이 목에 무엇인가 걸고 걷고 있었습니다. 무엇이라고 써 붙였나 가까이 갔더니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I am mad with Jesus"(나는 예수에게 미쳤다). “그러면 그렇지. 미친 사람이었구나했는데 그가 돌아서자 또 한 글자가 등뒤에 선명하게 나타났습니다. "and you?"(너는 누구에게 미쳤냐?). 제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예수에게 미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는 누구에게 미쳤냐고 묻고 있는 데 제가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길을 가면서 물었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미쳤나? 나는 과연 무엇에 미쳐 사나?”

 

세계 역사는 한마디로 예수님께 미친 사람들의 역사였습니다. 선교의 역사는 곧 예수님께 미친 사람들의 역사요 세계 역사는 예수님께 미친 사람에게 전염된 사람들의 역사였습니다. 여러분은 영국의 역사를 아십니까? 찬란한 영국의 역사는 4세기 아일랜드에 처음 선교한 선교사 패트릭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16살 때 해적에 납치되어 노예생활하다 풀려나 수도원에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노예생활하면서 경험한 비참한 영적 생활로부터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영국 사람들은 태양, , 바람, , , 바위 등을 신봉하고 있었고 무당, 미신,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저급한 종교를 믿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수없이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선교한 패트릭은 일생 200여 교회를 세웠고 10만명 이상의 개종자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찬란한 영국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영국에서 7세기에 보니페이스란 사람이 게르만족에게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당시 독일도 정령숭배, 마술의식등을 믿고 있었고 참나무를 신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보니페이스가 라인강에 가서 참나무를 도끼로 찍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의 역사는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의 역사도 청교도가 도착한 1620년에 시작되었고 우리 나라의 새로운 역사도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바이킹의 나라 영국에 복음이 들어가자 섹스피어, 대영제국, 의회민주주의, 청교도의 나라가 되었고 야만인의 땅 게르만족에 복음이 들어가자 괴테, 칸트, 바하, 헨델, 종교개혁, 그리고 라인강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세계 역사는 곧 선교의 역사요 선교의 역사는 예수님께 미친 사람들의 역사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미친 사람중 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가 빌립입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1절을 읽겠습니까? 8:1,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사도행전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예루살렘 교회 집사 스테반이 순교합니다. 그러나 순교의 역사는 스테반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스테반의 죽음을 계기로 유대인들은 더 집요하게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사울이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3절을 볼까요? 8: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여기서 잔멸했다는 말은 포도원에 뛰어든 멧돼지가 포도원을 온통 쑥대밭으로 짓밟는 모양을 가르칩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순교자들 때문에 슬퍼하게 됩니다. 2절입니다. 8:2, “경건한 사람들이 스테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여기서 울었다는 말은 가슴을 치며 울었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고난을 당하자 사람들은 직분에 따라 두 가지로 행동합니다. 먼저 사도들은 교회에 남습니다. 사도들은 교회를 지키는 자로서 핍박을 당할 때 교회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6.25가 되어 평양이 공산당이 지배하자 많은 성도들이 월남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내려오지 못했습니다. 산정현 교회 조만식, 유계준 장로가 그런 분들이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모두 순교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 말고 평신도들이 어떻게 했을까요? 그들은 모두 뿔뿔히 흩어졌습니다. 1절 다시 볼까요? 8:1,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여기서 흩어졌다는 말이 나오는 데 1절에도 나오고 4절에도 나옵니다. 이 말은 핍박 때문에 사람들이 사방으로 퍼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흩어졌다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이 말의 헬라어 동사 디아스페이로는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린다는 뜻입니다. 고난이 올 때 성도들이 사방으로 퍼졌지만 그것은 무서워서 피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복음의 씨를 퍼뜨리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6.25전까지 우리 나라 기독교의 중심은 북한이요 평양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6.25가 나면서 북한의 성도들이 남으로 흩어집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영락교회, 충현교회, 해방촌교회, 초량진교회입니다. 고난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고난을 선한 목적으로 이용하십니다. 핍박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 복음의 씨를 뿌린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빌립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선교할 때 무엇을 떠올립니까? 아마 가장 먼저 선교사가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면 선교사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아마 신학교를 나오고 제대로 교육을 받은 정식 선교사, 교회와 교단의 파송을 받은 전문 선교사를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최초의 선교사 빌립은 평신도였다는 것을 아십니까? 빌립은 집사였습니다. 최초의 순교자 스테반이 집시였던 것처럼 최초의 선교사 빌립도 집사였습니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선교사는 개신교와 카톨릭을 합하여 대략 25만명 정도로 파악됩니다. 이 수가 많아 보이지만 전 세계를 선교하기 위해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전세계에는 120만 명의 화장품 판매원이 있고 75만명의 암웨이 판매원들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선교사가 암웨이 판매원보다 많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나라 선교사는 몇 명이나 될까요? 지난 2년전 한국세계선교협의회가 밝힌 통계에 의하면 총 23,331명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직업 선교사들은 아닙니다. 교단 말고 선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들이 있는 데 예를 들면 대학생 성경읽기가 있습니다. 이들이 모두 1722명입니다. 이들은 모두 목사가 아닌 평신도입니다. 일반 평신도가 직업 선교사로 각 나라에 파송된 것입니다. 물론 전문선교사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직업을 가진 평신도 선교사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선교는 목회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는 두 종류의 선교사가 나옵니다. 목회자로 구성된 전문선교사와 평신도로 구성된 직업선교사입니다. 전문선교사를 대표한 사람이 바울과 바나바입니다. 13장에 나오는 안디옥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이 선교는 보내는 기관이 있습니다. 목표하는 선교지가 있고 함께 일하는 팀이 있습니다. 팀이 움직이려니까 후원이 필요합니다. 바울선교팀도 적어도 6-7명 이상은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우선 바울, 바나바가 있고 누가, 데마, 마가 요한이 함께 있었다고 성경이 말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6-7명 이상은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이렇게 팀으로 움직이려면 전략이 필요하고 후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또 하나 선교 형태가 있는 데 그것은 평신도 중심의 자발적인 선교입니다. , 4절을 다시 보세요. 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자발적인 선교는 핍박을 피해 흩어진 평신도들입니다. 그들은 선교를 위해 특별히 많은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핍박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선교에 떠밀려 나왔습니다. 그들은 평신도였고 각자 직업도 있습니다.

 

그래서 각자 자기의 직업을 가지면서 스스로 선교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크게 다섯 종류가 있습니다. (1) 전문 직업 선교사: 주로 목회자로 교회나 선교기관에서 파송받은 선교사들입니다. (2) 직업을 가진 선교사: 이들도 전문선교사는 직접 선교를 하지 않고 직업을 가지고 일하면서 사실상 선교하는 선교사입니다. 공산권이나 이슬람권 선교사들이 주로 그렇게 합니다. (3) 선교하는 평신도 직업인: 이 사람들은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 선교사들입니다. 이들은 각 나라에서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선교합니다. (4) 해외에 있는 평신도 직업인: 이 사람은 선교사가 아닙니다. 다만 외국에 살면서 자기 직업을 가지고 시간만 나면 선교하는 평신도입니다. (5) 국내에 있는 평신도 직업인: 이 사람도 역시 선교사는 아닙니다. 다만 국내에서 자기 직업에 충실하면서 때를 얻는대로 선교하는 평신도 직업인입니다.

 

선교하는 종류에 따라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면 선교하는 방법에 따라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말은 하지 않지만 삶으로 선교하는 선교. 우리는 꼭 말로 선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말은 안하지만 삶으로 선교하는 선교가 있습니다. 오래전 한국 어느 교회가 중국 무슨 대학에 영어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중국인들에게 영어를 잘 가르치고 친절히 대함으로 그리스도인의 빛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임기가 되어 몇 사람의 교수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데 공산당원인 총장이 물었습니다. “당신들 영어 교사들은 모두 크리스쳔들입니까?” 그래서 깜짝 놀랐습니다. 정체가 탄로나지 않았나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거짓말은 할 수 없으니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그가 말하더랍니다. “감사합니다.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들을 보내주세요. 우리는 당신들 같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중국인 총장은 한국에서 보낸 교수들이 선교목적으로 보낸 영어 교수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고 보니 그들이 하도 열심히 가르치고 착해서 그들이 그들 같은 사람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말은 하지 않지만 삶으로 보여준 선교의 예입니다.

 

(2)두번째는 일과 함께 말하는 선교입니다. 우리가 직장생활하면서 나는 선교사가 아니니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 직업안에서 얼마든지 말로 선교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안산의 한 의사는 치료받으러 온 환자들에게 자기가 교회 장로임을 밝히고 늘 기도로 치료를 시작합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은 처음에는 거부반응을 보이다가 의사의 친절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받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 나왔습니다. 제가 전주에 있을 때 우석대학교 교수중의 하나는 자기가 가르친 제자들에게 이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친절하게 대해줘서 한 사람 한 사람 전도했는 데 매년 200명은 전도합니다. 일과 함께 말로 선교한 경우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3) 말로 선교하는 전문선교사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교사에 속합니까? 전문선교사가 아니더라도 둘중의 하나는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말없이 착한 행실로 그리스도의 삶을 증걸하든지 내가 하는 일속에서 만난 사람에게 좋은 삶과 함께 말로 선교할 수 있지 않습니까? 누가 나는 선교사가 아니라고 말하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선교사입니다. 빌립이 집사요 평신도였지만 선교사였듯이 우리도 선교사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떤 선교든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선교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어떤 선교든 선교는 사람의 일이 아니라 성령의 일입니다. 우선 성령님이 선교사를 부릅니다. 13:2절입니다.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따로 세우라“. 성령님이 선교를 위해 사람을 부릅니다. 성령님이 사람들을 세우기 위해 훈련시킵니다. 성령님이 기도하게 하시고 금식하게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선교할 때 동행하고 기적을 베풉니다. 빌립이 이 성령님에 순종하여 사마리아에 갔을 때 성령님은 여러 가지로 빌립을 도왔습니다. 6절입니다. 8:6,“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 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다같이 말도 듣고 표적도 보고”. 선교는 예수님을 말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엇을 중거합니까? 17:1-10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성경을 가지고”, 선교는 성경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선교의 도구요 무기입니다. 둘째,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나셨다”. 복음입니다. 선교는 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셋째 결론이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주님, 이것이 선교의 결론입니다.

 

성령님은 선교를 말로만이 아니라 능력으로 감당하게 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8:7, “많은 사람들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선교지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고 마귀의 통치를 받는 곳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만으로 안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다시 8:6, “말도 듣고 표적도 보고“, 듣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빌립을 통해 표적을 나타냅니다. 귀신을 내 쫓고 중풍병자도 고칩니다. 9절 이하에서는 마술사 시몬도 꼼짝 못하게 제압합니다. 왜 이렇게 합니까? 표적 자체를 위해 표적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케냐 선교사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몇 년전 케냐 마우마우 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선교사 두 사람이 그 지역을 통과하여 나이로비를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폭동 지역 사람들은 케냐인과 선교사들을 살해하여 시체까지 토막 낼 만큼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 둘이 이 지역을 조심스럽게 통과해 오는 데 갑자기 차가 고장났습니다. 얼른 이 지역을 빠져나가야 하는 데 차가 고장났으니 얼마나 불안합니까? 차를 고치려 했으나 시동조차 걸리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두 선교사는 차 속에서 밤을 보내야 했는 데 그들은 자기 전에 간절히 기도하고 성경을 폈습니다. 시편 4:8의 말씀이 나왔습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말씀을 붙잡고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나이로비로 돌아왔습니다. 얼마후 선교사 가족이 휴가를 얻어 미국으로 돌아왔는 데 그들이 나이로비를 떠나기 전날 밤 한 케냐 목사가 그들을 방문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마우마우 지역사람들이 당신 차에 접근하여 당신들을 죽이려고 갔는 데 차에 열 여섯명이 에워싸고 있어서 무서워 그냥 돌아갔노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선교사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열여섯 사람이라고요? 우리는 둘 밖에 없었는데”. 선교사는 16명이 무엇일까 긍금하게 여기면서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주일날 모 교회로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중보기도팀이 있는 데 이들이 매일 케냐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그들이 몇 명이냐고 물었는 데 이때 선교사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16명이예요”. 16명이 주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두 선교사가 폭동지역에 있을 때도 16명이 기도하고 있었고 하나님이 그 16명을 폭도들에게 보이게 해 그들을 지켜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교를 위해서 선교사들을 지키시고 선교를 보호합니다.

 

작년에 인도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인도 교회에서 교회 나온지 얼마 안된 새 신자들이 귀신들을 쫓아내 지역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답니다. 이제 갓 예수 믿고 교회 나온 새 신자들이 어느 집에 모여 기도하고 있는데, 한 힌두교도가 찬송 소리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가족중 귀신들린 사람이 하나 있는 데 우리를 괴롭게 한다. 우리를 좀 도와 줄 수 있겠느냐?”. 새신자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가서 기도했답니다. 그랬더니 귀신이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마을 사람들이 깜짝 놀라 80명 가량이 예수를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 새신자는 성경도 잘 모르고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낸 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몰라도 믿고 기도하니까 됩니다. 기도하면 우리안에 주신 능력이 나타납니다. 새신자라고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누군든지 믿고 구하면 하나님이 주십니다. 선교는 성령의 일입니다.

 

선교현장은 영적 싸움터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납니다. 작년 인도에서도 그랬습니다. 우리가 막 공항에서 빠져 나오는 데 그때마침 승객중 하나가 가방을 분실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팀중에 하나가 비슷한 가방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 CCTV에 찍혔습니다. 물론 그 가방은 우리의 가방이었지만 가방이 비슷하고 잃어버린 시점이 비슷해 인도 선교 내내 경찰의 추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여 우리가 당신들을 주시하고 있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출국하지 못할 수 있다고 위협했습니다. 우리 팀은 밤마다 기도했습니다. 선교하러 왔다가 한국에 못 돌아가는 것은 그만이고 여기서 선교하는 선교사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매일 힘들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은 평안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마지막 날 인도를 빠져나오면서 제가 공항 경찰서로 갔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이야기했습니다. 그 결과 무사하게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생각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선교기간 내내 우리에게 두려움과 불안을 주셨을까?” 제가 중요한 것을 발견하고 감사했습니다. 가방 사건을 통해 선교기간 내내 긴장하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자만하지 않고 매일 기도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선교는 성령의 일입니다. 성령님이 부르실 때 순종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성령께서 말씀하게 하시고 성령께서 담대하게 하시고 성령께서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교회에 그렇게 써 붙어 있었습니다. “만일 우리가가능한 일을 행하면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행하실 것이다”(If we do the possible, then God will do the impossible)”.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합시다. 성령의 음성에 순종합시다. 기도합시다. 최선을 다 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불가능한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세상에 큰 기쁨을 줍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선교한 후 성경은 이렇게 그 결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이것처럼 선교의 목적을 분명하게 말한 구절은 없습니다. 그 이전에 그곳은 기쁨이 없었습니다. 더러운 귀신과 우상 숭배와 죄악과 미신으로 가득찬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평신도 선교사 빌립이 들어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 후 그 곳에 기쁨이 생겼습니다. 사는 목적과 재미가 생겼습니다. 개인뿐 아니라 성전체가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선교를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선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선교받는 사람이나 선교하는 사람, 모두를 기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 선교는 세 가지에 집중해왔습니다. 하나는 교회 건축입니다. 어떤 선교를 해도 결국 영혼들이 돌아와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은 교회입니다. 그래서 매년 교회를 세웠습니다. 2006년도에 처음 인도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 이미 이중표 목사님이 세운 신학교가 아름답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또 우리 여신도가 세운 교회도 있었는 데 몇 년이 지나 이미 수백명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2007년도에 아프리카 탄자니아 빅토리아 호수에 자리잡은 부코바란 지역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2009년에 인도에 교회 세웠습니다. 그리고 올해 작년 여신도가 수고해서 인도 훈수르 지역에 교회를 세웁니다. 이 교회는 이미 1000명이 모이는 큰 교회입니다. 그런데 불이 났습니다. 불이 나서 실내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밖에서 텐트를 치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나마 좁아서 매주 드리지 못하고 격주로 드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낸 2천만원으로 부족하다 생각했는 데 여신도 중에 누가 5백만원 헌금했습니다. 또 한분이 500만원을 헌금했습니다. 인도의 이완주 선교사가 우리가 매달 보낸 선교비를 모아 700만원은 헌금했습니다. 그래서 4천만원 가까이 모아졌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교인은 많은데 그나마 있던 작은 교회 불나고 예배도 드리지 못하는 인도의 교인들이 우리가 지어준 교회에서 한국사람이 지어줬다고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8절 다시 볼까요? 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이 기쁨을 위해서 우리가 선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우리가 하는 두 번째 선교는 목회자 세미나입니다. 교회가 살아야 나라가 살고 목회자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8년간 한번도 빠지지 않고 각 나라에서 목회자를 섬겨왔습니다. 탄자니아, 인도, 네팔,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에서는 이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려고 타밍이라는 사람이 히말라야 지역에서 4일을 걸어왔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했으면 4일씩이나 그 험한 길을 걸어 참석했겠습니까? 네팔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악지역입니다. 보통 해발 2천미터가 넘습니다. 그 높은 산을 넘고 넘어 4일을 걸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목회자 세미나에 대한 사명을 더 갖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필리핀 현지 목회자 150명을 훈련하기로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계획되고 있던 지난 4, 필리핀에서 선교하는 한국 선교사 한분이 저를 만나 필리핀에는 열악한 선교환경에서 고생하는 한인선교사가 많으니 그들에게도 은혜의 시간을 갖게 해달라고 해서 100명을 또 초청해서 한인선교사 세미나만 따로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여러분이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후원으로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매년 수백명씩 우리가 각 나라의 목회자, 선교사를 섬기고 훈련해서 이들이 힘을 얻어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한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다시 8, 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세 번째 의료선교입니다. 의료선교는 가난하고 병든 선교지에서는 피할 수 없는 선교의 목록입니다. 인도, 캄보디아, 베트남, 네팔, 어느 곳이든 아픈 사람이 줄을 섰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도우라며 병든 몸을 앞세워 치료받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의사들처럼 헌신적인 의사들이 없습니다. 선교를 위해 한 주간 병원 문을 닫습니다. 자기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 다 휴가비 줘서 함께 갑니다. 자기 비용들여서 선교지를 몇 번씩 방문하고 준비합니다. 이들의 헌신으로 선교지의 영혼들은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어떻습니까?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선교임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자신의 다른 자녀들을 돕고 섬기는 일을 하는 어찌 축복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목회자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선교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까? 오늘의 주인공 빌립도 집사였고 브리스길라 아굴라도 평신도였습니다. 선교는 어디에 있든지 예수님을 위해서 일하고 살면 선교입니다. 일의 종류가 선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의 목적이 선교를 결정합니다. 떠나든지 보내든지, 예수님을 위해 살고 예수님을 위해 일합시다.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마음으로 함께 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8:1-8 2012.6.23()

선교사 빌립 집사처럼

영국- 4세기 패트릭

독일- 7세기 - 보니페이스

 

흩어진 사람들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8:1,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8: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8:2, “경건한 사람들이 스테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8:1,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두 종류의 선교사

- 목회자로 구성된 전문선교사

- 평신도로 구성된 직업선교사

 

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평신도가 할 수 있는 선교

- 말은 하지 않지만 삶으로 선교하는 선교

- 일과 함께 말하는 선교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8:6,“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 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8:7, “많은 사람들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4: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미국의 어느 교회, “만일 우리가 가능한 일을 행하면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행하실 것이다”(If we do the possible, then God will do the impossible)”.

 

세상에 큰 기쁨을 줍니다.

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우리 교회가 집중한 선교

- 교회 건축

- 목회자 세미나

의료선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