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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6:26-34 하나님이 물질의 주인입니다 2012.6.30(일)

6:26-34 2012.6.30()

하나님이 물질의 주인입니다

필리핀, 인도선교를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필리핀은 이번에 처음 갔는 데 생각보다 어렵게 살았습니다. 부익부 빈익빈, 국민간의 경제 격차가 매우 컸습니다. 7%의 부자가 전체 부의 60%을 소유하고 있답니다나머지는 대부분 가난하게 삽니다. 그렇다고 행복지수가 낮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 나라 국민소득이 약 2만불 이상, 필리핀이 2천불 이상이니까 우리가 10배나 잘 살지만 행복지수는 필리핀이 훨씬 높습니다. 우리는 100위 미만이고 필리핀은 20위 미만입니다.

 

행복은 언제나 소득과 비례하지 않습니다. 많이 번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가난하다고 불행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돈이 우리에게 불행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 반드시 행복을 주지 않지만 반드시 돈이 없어야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서점에 갔더니 김동윤이란 사람이 쓴 책이 있었습니다. 제목이 참 재미있습니다. “예수님 다음으로 돈이 좋아요”. 솔직한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도 사실은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솔직히 말하면 어떨까요? “나는 예수님보다 돈이 더 좋아요”.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돈을 좋아합니까? 혹시 예수님보다 돈을 더 좋아하는 것 아닙니까? 재미있는 것은 성경 전체의 20퍼센트 가량이 돈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돈과 부, 하나님의 공급과 축복, 소유와 관리, 십일조와 헌금, 이런 주제의 내용들이 20% 이상 나옵니다. 성경 다섯 마디중 한 마디가 돈 이야기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세 마디가 사랑하라, 믿으라, 드리라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어떤 말이 가장 많이 나올까요? “드리라입니다. 사랑보다, 믿음보다 드리라가 더 많이 나온다는 것을 제가 처음 알았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성경은 사랑하라”, “믿으라가 더 많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드리라가 더 많이 나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은 우리 삶의 구체적인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은 어찌 되든지 천국이나 가라는 것이 성경의 목적이 아닙니다. 삶의 가장 구체적인 현실이 돈입니다. 돈없으면 삶의 현실을 살 수 없습니다.

돈이 왜 우리 삶의 현실적인 이야기입니까? 돈은 우선 경제적 가치의 척도입니다. 돈은 물건의 교환수단이고 또한 가치 척도의 수단입니다. 우리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그만한 가치의 물물교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비교적 귀하다고 여겼던 금붙이나 조개껍데기, 소금같은 것을 교환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돈이 모이면 저장수단이 됩니다. 사람들은 돈을 저장하여 자신의 꿈을 이룹니다. 돈은 저장의 수단일 뿐 아니라 재창조 수단이기도 합니다. 돈이 움직이면 돈이 됩니다. 돈은 돈을 낳습니다. 돈은 돈이 되는 데로 가려는 본성이 있습니다. 돈은 자신의 확장을 위해 끊임없이 돌고 돕니다. 교환수단, 가치 척도 수단, 저장수단, 그리고 재창조의 수단, 이렇게 함으로 돈은 우리에게 유익과 편리를 제공합니다. 돈은 어쩌면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돈은 경제적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기능이 있습니다. 돈은 세상과의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세상과의 관련이 경제적 기능이라면 하나님과의 관련이 영적인 기능입니다. 이 두 기능은 서로 같이 있습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갑니다. 여러분은 돈의 영적인 기능을 아십니까? 그래서 좀더 성경적이고 아름다운 경제생활을 하기 원하십니까?

 

첫째 하나님은 물질을 공급하십니다

돈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첫 번째 영적 기능은 소유권에 대한 문제입니다. 24절 보실까요?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주인이란 말이 나옵니다. 주인은 소유권자를 말합니다. 물질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소유권이 왜 중요합니까? 소유권자만이 판매할 수 있고 소유권자만이 양도할 수 있고 소유권자만이 처분할 수 있고 폐기할 수 있습니다.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셨고 하나님이 관리하시고 하나님이 공급합니다. 1:29-30절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사람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채소, 모든 나무, 모든 짐승, 모든 새, 모든 땅에 기는 것, 모든 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모든 물질을 여러분에게 공급하신다고 믿습니까? 우리가 노력해서 물질을 얻지만 근본적으로 그 물질은 내가 만들거나 내가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으시고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1:29-30절에 모든이란 말이 무려 다섯 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왜 주셨습니까?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고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꿈은 일구월심 우리의 행복입니다. “생육하고”, 많은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번성하고”, 수가 많아 지는 것입니다. “충만하라”, 속이 꽉 차는 것입니다. 큰 언덕처럼 속에 빈 것이 없이 가득 차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생활을 할 때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공급하신다는 것입니다. 5:19을 보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다같이 어떤 사람에게든지”. 대상의 제한이 없습니다. 누구나 가능합니다. 타고날 때부터 부자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하나님이 주십니다.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 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 가진 물질에 대한 몇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첫째 가난하게 사는 것이 영적 생활에 좋다는 오해입니다. 가난하게 살면 어쩔 수 없이 기도하게 되지만 가난이 자동적으로 우리를 영적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또한 부자라고 해서 모두 타락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난하면 겸손해 지지만 너무 가난하면 범죄하게 됩니다. 둘째 오해는 하나님은 물질에 관심이 없다는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헛된 욕심이나 성취에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산신령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늘 위에서 구름을 타고 부채나 붙이고 다니는 신선이 아닙니다. 동양의 산신령은 인간의 일에 관심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에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천국에 갔습니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그를 안내하기 위해 문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참 가다보니 커다란 창고가 있는 데 창문은 하나도 없고 겨우 작은 문 하나가 달려 있습니다. 죤이 보고 싶다고 하자 베드로가 안보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존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정이 다 끝날 무렵 존이 또 졸랐습니다. “아까 보았던 커다란 창고를 볼 수 없을까요?” 그래서 들어갔습니다. 문을 열자 그 큰 건물에 바닥부터 천장까지 수많은 선반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반들마다 리본이 달려 있고 리본에는 이름들이 씌여져 있었습니다. 존이 재빨리 자기 선반을 찾았는 데 수도 셀 수 없는 수없는 선반중의 존의 이름이 나타났습니다. 존이 물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님, 도대체 이 선반의 이름들은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이것들은 땅에 있는 성도들이 간구하면 주시려고 준비했던 하나님의 응답들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땅에서 구하지 않아서 그냥 쌓여 있는 것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구하지 않아서 그대로 있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분입니다. 할 수 있으면 안 주시려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공급하시는 분입니다. 구약에 나타난 물질생활에 대한 일관성 있는 특징은 믿음이 좋은 사람은 하나같이 부자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땅에서 육축과 은금이 풍부했습니다. 이삭은 불레셋 땅에서 농사하며 100배나 얻었고 욥은 동방의 부자였으며 솔로몬은 아프리카 스바 여왕까지 탐내는 부와 지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가난하게 산 사람은 성경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가난하게 살았다면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게을렀기 때문입니다. 112:1할렐루야, 여호아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복이 있는가 하고 보았더니 2,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하고”, 자녀, 후손의 복과 3, 112:3,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나니”, 물질의 복입니다. 하나님의 복중 가장 대표적인 복은 자녀의 복과 물질의 복입니다”. 물론 믿음을 가진 사람중에 가난하게 산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복을 주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욥처럼 다시 복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공급하시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가난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 당시 목수는 가난한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고기잡던 베드로와 요한도 큰 배를 소유할만큼 부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 예수님을 장사 지낸 아리마대 요셉, 많은 사람을 구제하였던 백부장 고넬료, 베드로의 장모, 고넬료,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 모두 물질적으로 풍부했습니다. 우리가 물질의 복을 받기 위해 먼저 가져야 할 생각이 있습니다. “부요의식입니다. 하나님은 부요하십니다. 24:1입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다 여호아의 것이로다”. 하나님은 온 땅의 주인이고 우리는 그의 자녀입니다. 부자 아버지가 아들을 억지로 가난하게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아버지입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물질에 대해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말씀이 25,26절입니다. 6:25-2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공급자요 우리의 아버지라면 우리가 물질에 대해 염려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공급을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예를 듭니다. 하나는 새의 예요 다른 하나는 꽃의 예입니다. 여러분은 공중의 새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공중의 새를 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보라는 것은 그냥 흘끝 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목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헬라어로 브레포입니다. 이 말은 베드로가 예수님 무덤에 들어가 예수님의 시신을 확인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무덤에 들어가 예수님의 시신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은 슬쩍 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꼼꼼히 봐야 합니다. 유심히 살피는 것입니다. 주목하여 보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를 주목하여 봅니까? 주목하여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저 새들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갈까? 저 새들은 매일 무엇을 먹고 사나? 누가 저 새들을 만들었나?

 

이스라엘의 새는 다양하고 그 수가 많습니다. 모두 350종이나 됩니다. 그중에 약 100종류는 이스라엘에 언제나 상주하고 250종류는 철따 왔다 갑니다. 새중에 가장 작고 대표적인 새가 참새입니다(사진). 예수님이 우리를 참새와 비교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중의 새를 보라 할 때 아마 참새를 말했을 것입니다. 참새가 가장 많은 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눅12:7에서도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우리는 참새와 비교합니다. 참새만큼 작고 흔한 새도 없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참새 두 마리가 동전 한 닢에 필린다고 말합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당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먹었던 음식은 시장에서 팔리던 참새였다고 합니다. 참새는 가난한 사람들이 먹었던 가장 값싼 음식중의 하나였습니다. 값이 얼마나 나갔나 하면 참새 두 마리에 동전 한 닢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는 이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작고 새를 보느냐? 그것이 참새다. 참새가 얼마나 작고 불쌍한지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적은 돈으로 사지 않느냐? 그런데 그렇게 작은 새가 얼마나 예쁘냐? 누가 그 작고 예쁜 눈은 만들었느냐? 누가 그 부드러운 깃털을 만들었느냐? 그 작은 날개로 얼마나 많이 날아가는지 아느냐? 그 작고 보잘 것 없는 참새도 하나님이 먹이시는 데 너희는 오죽하겠느냐? 너희가 아무리 부족해도 참새보다 못하겠느냐? 참새 한 마리를 먹이시는 하나님이 너희들은 못 먹이겠느냐?”

 

들에 핀 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꽃은 갈릴리에 가장 많이 핀 포피라는 꽃이었을 것입니다(사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꽃을 길에 핀 백합화라고 부릅니다. 꽃은 식물입니다. 식물의 교훈은 이것입니다. 식무은 떨어진 곳에서 나무가 되고 꽃을 피웁니다. 꽃을 피웁니다. 식물은 자기가 떨어진 곳을 불평하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상 나무가, 꽃이 자기가 떨어진 곳이 마음이 안든다고 다른 데로 가서 다시 심겨져 꽃을 피운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내가 왜 여기에 심겼지? 나를 다른 곳으로 옮겨주세요“.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다른 곳에 있었다면 더 잘나갔을텐데“. ”내가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출세했을텐데이것은 꽃이 할 이야기가 아닙니다. 꽃은 그가 떨어진 곳에 만족합니다.

 

우리가 불안해 하고 염려하는 이유는 내 삶을 내 가 계획하고 내가 디자인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거기 떨어진 이유를 하나님의 눈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힘으로 먹고 살고 내 노력으로 돈벌고 내 생각으로 성공하려고 하기 때문에 염려가 생깁니다. 30절을 보시겠습니까?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다같이 믿음이 작은 자들아“, 결국 우리가 염려하는 이유는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이 작아서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은 숲속의 울새가 참새하고 이렇게 이야기했답니다. “참새야, 나는 정말 알고 싶어. 왜 사람들은 그렇게 안절부절하며 염려하고 사는지.” 참새가 대답했습니다. “울새야, 거기에는 이유가 있단다. 그것은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이 그들에게는 없기 때문이야”. 문제는 믿음입니다.

 

저는 유학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너무 많이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로 떠날 때 저는 돈이 거의 없었습니다. 서울 한신교회에서 퇴직금 받은 것 모두 다 헌금했습니다. 비행기표 살 돈이 없어서 난생 처음으로 부모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나마 조금 있는 것 이스라엘 도착해서 등록금 내고 월세로 방얻고 보니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때쯤 해서 한국에서 장학금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저는 장학금약속을 받고 유학을 떠난 것이 아니라 떠났더니 장학금이 왔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부족했는 데 부족할 때마다 기적을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등록금 철이 되면 돈이 한꺼번에 필요했습니다. 한번은 천불이 더 필요했습니다. 기도만 하고 있었는 데 등록금 완불하는 전날 밤, 한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떤 권사님이 제 생각이 나 천불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가끔 외국에 공부하는 유학생, 목회자들을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도와 주십시오. 평생 잊지 못하는 도움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힘듭니다. 자녀들 학비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스라엘 어떤 사모님이 하던 유대인 청소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집사람이 이어 받으면서 매주 이틀, 8 시간씩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 덕분에 미리암이라는 유대인 여자와 친해지고 유대인 가정을 자주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큰 은혜였습니다. 때가 되어 미국을 가야 했습니다. 비행기표며 학비등 많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어느 목사님이 한국에서 오는 그룹을 안내해야 하는 데 아파서 못하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저에게 하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한번도 안내해 본 적도 없고 아직 길도 잘 모르는 데 어떻게 합니까? 길을 잘 몰라 가나를 가야 하는 데 지나쳐 나사렛까지 가고 갈멜산 지나 텔아비브로 가야 하는 데 갈멜산을 잊어 버리고 텔아비브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엉망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항의를 해야 하는 데 항의를 하지 않고 제가 안내하니 너무 은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제가 안내잘하는 사람으로 소문나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미국 하와이에서 온 목사님과 교인들을 안내했는 데 그들이 너무 은혜를 받고 하와이에서 초청했습니다. 촌 사람이 하와이까지 가서 강의도 하고 와이키키 해변도 거닐었습니다. 하나님은 제 형편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일마다 때마다 먹이시고 입히셨습니다. 그래서 신8장에 나타난 말씀을 저는 너무 실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동안 광야를 건넌 날.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8:2,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이 40년동안 이 광야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그 광야에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4, 8:8,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물론 고생도 하고 힘들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굶지는 않았습니다. 의복이 헤어질 때 의복주었고 신발이 부르틀 때 새 신발을 주셨습니다. 공급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믿음이 문제입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닙니다.

 

이번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교를 하다보면 막상 현장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선교사의 상황은 열악하고 할 일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항상 물질 때문에 염려하지만 선교가 끝나고 나면 그것이 쓸데없는 염려였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번에도 교인들이 꼭 필요한 선교비를 주셨습니다. “목사님, 선교지에 가면 필요할텐데. 꼭 필요한 데 쓰세요“. 에외가 없었습니다. 필요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공급하신 것입니다.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공급하시는 분입니다. 인도 교회 세우는 것도 그렇습니다. 돈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필요할 때 필요한 사람을 통해 필요한만큼 공급하셨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물질 염려 안하고 살 날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이 두 조각나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요 우리는 그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아버지가 부자인 데 자기 자식을 굶기는 아버지가 있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부족해도 참새 보다 못합니까? 우리가 아무리 못났어도 꽃 한송이보다 못합니까? 하나님이 공급하십니다.

 

물질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모든 물질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22-23절을 보시겠습니까? 6:22-23,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이 부분을 읽을 때 우리는 의아합니다. 왜 예수께서 돈 이야기하시다 갑자기 눈이야기하시나? 그런데 여기서 눈은 관점을 말합니다. “좋은 눈은 좋은 관점입니다. 좋은 눈은 잘 보는 눈이요 나쁜 눈은 나쁘게 보는 눈입니다. “돈독오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돈을 너무 너무 좋아하면 눈에 돈독이 올라 보이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돈독이 올라 눈이 가리워지면 그때부터 사람은 안 보리고 돈만 보입니다.

 

돈은 돈 자체보다 돈을 보는 관점이 중요합니다. 같은 돈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2:5입니다. “그 욕심을 음부처럼 넓히며 또 그는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르나니”. 돈을 욕심으로 보면 만족이 없습니다. 1:8절입니다.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돈을 욕심으로 보면 족함이 없고 성에 차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물질을 보는 네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욕심은 줄이지 않고 소유만 늘려가는 것이 속부형입니다. 속된 부자입니다. 하나님 상관없이 많이만 가지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돈도 필요없이 대충 사는 것이 속빈형입니다. 없다고 문제가 될 것도 없습니다. 가난을 운명처럼 알고 삽니다. 속된 가난입니다. 욕심은 줄이지만 소유는 늘려가자는 것이 청부형입니다. 깨끗한 부자입니다. 부자는 부자지만 믿음으로 부자되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부자되는 것입니다. 욕심도 줄이고 소유도 줄이자는 것이 청빈형입니다. 깨끗한 가난입니다. 성자형입니다. 없서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난하게 되는 것입니다. 속부형과 속빈형은 하나님과 상관없으니 성경적인 물질관이 아닙니다. 청부형과 청빈형중에 하나입니다.

 

청부형은 욕심은 줄이지만 할 수 있거든 열심히 벌어서 깨끗한 부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청빈형은 욕심과 소유도 줄여서 가난하게 사신 예수님을 따르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입장에 서 있습니까? 청빈형은 아름답고 성경적이지만 아무나 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성자, 수도자, 순교자, 신실한 목회자, 성도들이 청빈형으로 삽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청빈할 수 없습니다. 청빈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자신없는 사람은 청부형을 택하십시오. 할 수 있으면 열심히 일하고 할 수 있으면 열심히 버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따라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우들이 모두 청부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지런히 일하고 많많이 벌되 깨끗한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깨끗한 부자가 되기 위해서 금해야 할 몇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먼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돈을 번다는 생각입니다.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닙니다. 더 큰 목적이 있습니다. 돈을 벌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해도 된다는 생각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돈을 벌면서 나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다 그렇게 해도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될 것들이 있습니다. 힘들게 벌었으니 내가 알아서 쓴다는 생각입니다. 아닙니다. 돈에는 공익성이 있습니다. 내 것이라고 내 마음대로 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니 하나님의 뜻대로 써야 합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세계적인 기업들이 어떻게 성공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공하는 기업의 가장 큰 특징중의 하나는 반드시 이윤을 남기기 위해 기업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윤추구는 목표지만 목적은 아닙니다. 성공하는 기업은 반드시 돈보다는 사람을 관심하고 개인보다 사회를 먼저 생각합니다. 돈은 돈을 쫓아가는 사람을 따르지 않고 돈을 버리는 사람을 따릅니다. 돈벌기 위해 기업하지 말고 세상에 봉사하기 위해 기업해야 합니다. 그래야 돈도 따라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교회 자체의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있는 기관이 아닙니다. 세상을 섬기고 봉사하기 위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어려운 가운데 점점 선교비, 장학금, 사회봉사비를 늘려 왔습니다. 반드시 남에게 준 교회만 부흥합니다. 6:38절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이것이 성경적 경제의 원리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대 교회 교부 요한 크리소스톰이 말했습니다. “진정한 부자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주는 사람이다”. 우선순위가 필요합니다. 33절을 보십시오.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되 돈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돈에 대한 우선순위가 필요합니다.

 

채의숭 장로님이 계십니다. 자동차 부품 사업, IT산업등으로 세계적인 그룹이 된 대의그룹 회장입니다. 이 분이 쓴 <주께 하듯 하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그가 충남 대천의 가난한 집에 태어나 세 가지 꿈을 꾸었답니다. 하나는 박사가 되어 교수가 되는 것, 둘은 큰 회사의 회장이 되는 것, 그리고 셋째는 전 세계에 100개의 교회를 건축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그는 결국 해냈습니다. 그가 꿈을 이룬 이유가 무엇일까? 그가 어릴 때 들은 어머니의 우선순위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어릴 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숭아. 반드시 너는 평생 세 가지를 기억해라. 첫째 반드시 주일성수하고 교회가면 반드시 앞자리에 앉아라. 둘째 너는 반드시 물질은 하나님의 것으로 여겨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려라. 셋째 너는 반드시 목사님을 주의 종으로 여겨 순종하고 복종하라”. 채의숭 장로님이 이 말을 가슴에 새겨 실천했을 때 하나님도 그에게 세 가지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인생의 모든 노력은 나에게 속하고 인생의 모든 능력은 하나님께 속한다“. 우리가 노력을 다하면 하나님도 모든 능력을 우리에게 나타내줍니다. 3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오늘 물질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우리, 우리는 세 가지를 믿읍시다. 하나님은 공급하신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 물질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자.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아멘.

 

 

 

 

 

 

 

 

 

 

 

 

 

 

 

 

 

6:26-34 2012.6.30()

하나님이 물질의 주인입니다

 

돈은 우선 경제적 가치의 척도이다

돈에는 영적인 기능이 있다

 

첫째 하나님은 물질을 공급하십니다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1:29-30,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5:19,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신앙인의 물질에 대한 오해

(1) 가난하게 사는 것이 영적 생활에 좋다

(2) 하나님은 물질에 관심이 없다

 

112:1, “할렐루야, 여호아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12:3,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나니

24: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다 여호아의 것이로다”.

 

물질에 대해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6:25-2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참새(사진).

12:7,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포피(사진).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8:2,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이 40년동안 이 광야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8:8,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물질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6:22-23,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2:5, “그 욕심을 음부처럼 넓히며 또 그는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르나니”.

1:8,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물질을 보는 네 가지 관점

(1) 속부형(俗富形)

(2) 속빈형(俗貧形)

(3) 청부형(凊富形)

(4) 청빈형(凊貧形)

 

깨끗한 부자가 되기 위해서 금해야 할 생각

(1) 먼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돈을 번다는 생각

(2) 다른 사람들같이 나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겠다는 생각

(3) 힘들게 벌었으니 내가 알아서 쓴다는 생각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요한 크리소스톰, “진정한 부자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주는 사람이다”.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채의숭 장로님, <주께 하듯 하라>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