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스와질란드(Swaziland)에 최초로 의과대학을 설립하고 현대판 리빙스턴으로 불리는 김종양 선교사의 간증입니다. 아프리카 스와질란드(Swaziland)에 최초로 의과대학을 설립하고 현대판 리빙스턴으로 불리는 김종양 선교사의 간증입니다. 원래 불교신자였던 김선교사는 오스트리아에서 기독교에 귀화했으며, 영적 체험을 통해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후, 독일에서 신학을 하다가 선교의 소명을 결심한 그는 영국으로 떠났습니다. 선교단체가 많은 영국에서 아프리카 선교에 대한 책자와 선교사들의 경험담과 간증을 접하면서 아프리카 선교의 길을 더욱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스와질란드의 선교사가 된 김선교사가 남아공화국 포트엘리자베스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100여명이 참석하여 은혜롭게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데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백인 남성이 다가가서 말합니다. “저는 아이반(Ivan)이라고 합니다. 당신을 따라 스와질란드로 가서 사역을 돕고 싶습니다.”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데, 갑자기 스와질란드로 따라오겠다니 난처했습니다. 결국 스와질란드에 있는 아내의 동의를 얻고 그를 스와질란드로 데려왔습니다. 선교센터에 도착하자 아이반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저는 남아공에서 태어났고,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갔다가 만난 독일 여자와 결혼하고,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재정적으로 어려워지자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다녀오겠다며 독일로 떠난 뒤 연락을 끊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와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뒤 아이반은 선교의 동역자가 되어 선교센터에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효과적인 선교를 하려면 신학적인 선교지식이나 조직보다 현지인 동역자를 잘 만나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아이반 형제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두 사람은 밤을 새워가며 선교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반 형제는 성실하고, 신실했습니다. 먼 지역으로 선교를 나갈 때 운전기사가 되었고, 선교센터에 축대를 쌓을 때는 현지인들을 고용해 필요한 벽돌을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선교하면서 부인에게서 받은 상처를 치유 받았습니다. 1년이 지난 후 “그동안 선교 사역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마음이 안정됐으니 사업을 시작하고 결혼도 해서 물질적으로 선교를 돕겠다”며 떠나겠다고 말합니다. 떠나기 전 마활랄라의 가정집에서 함께 성경 공부를 하던 3명의 청년을 소개해 줬습니다. 아이반이 떠난 후 그 청년들을 데리고 기도모임과 성경 공부를 계속하면서 이시드라 교회를 개척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아이반은 사업을 시작했고, 중국인 여성과 재혼해 아들을 낳았는데, 선교사에 대한 고마움의 의미로 아들 이름을 김이라 지었다고 합니다. 아이반은 현재 꾸준히 스와질란드 선교센터에 물질적 지원을 하고 있으며 1년에 한 번씩 스와질란드를 방문하여 선교 사역에 함께하는 동역자로서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진실로 아름다운 동역자의 모습이 아닙니까?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은 자신들의 지혜를 자랑하고 가진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심지어 성경적 지식과 신앙 경륜을 자랑하고 신앙적 계파까지도 자랑합니다. 결국 그로인해 교회는 분쟁이 일어나고 파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때 바울이 ‘너희는 모두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로 구속받은 자들입니다. 자신을 위해 자랑하거나 일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하나님의 동역자로 일해야 합니다. 본문은 두 종류의 신앙인을 증거합니다. 젖 먹는 어린아이의 신앙을 가진 육신에 속한 자와 밥을 먹는 장성한 신앙을 가진 신령한 자입니다. 어린아이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으나 매사를 자기중심적으로 행합니다. 다른 이는 배려하지 않고 곧잘 다른 사람과 비교합니다. “누구는 왜 봉사하지 않는가? 누구는 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가?”언제나 자신의 신앙이 최고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고 분쟁만 일으킵니다. 반면에 장성한 신앙인은 다릅니다. 바울은 장성한 신앙인을 가리켜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합니다. ‘동역자’는 원어로 ‘쉬네르고이’인데 ‘함께 일하는 자(co-worker)’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협력하는 동역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같이 일하는 동역자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행함에 있어 함께 일하는 자로서 주체는 내가 아닌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9절에서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처음에 위치시킴으로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에 있어서 사람의 동역자가 아닌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와 베드로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목숨 걸고 하나님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목숨을 걸고 함께 일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동역자들은 어떻게 행해야 합니까? 첫째로 은혜를 따라야 로저 배니스터(Roger Bannister)는 세계 최초로 1마일 달리기 4분의 벽을 깬 전설적인 육상선수입니다. 1마일은 약 1,609미터로 4분 주파가 불가능한 거리로 인식되었고 신체 조건으로 볼 때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도전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당시 1마일의 4분 주파를 무리하게 시도하면 심장과 폐가 터질 뿐만 아니라 뼈와 관절, 근육과 힘줄이 파열된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신이 내린 한계라고까지 했던 장벽을 로저 배니스터는 기적처럼 넘어섰습니다. 1954년 5월 6일, 로저 배니스터는 목숨을 걸고 네 바퀴를 돌아 결승점에 이르렀습니다. 곧바로 쓰러져 의식을 잃었지만 신이 정한 인간의 한계로 여겼던 1마일의 4분 주파를 이루어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4분의 벽을 베니스터가 넘자마자 한 달만에 무려 10명이 넘었다는 것입니다. 2년이 지난 후 300명이 넘었습니다. 한 사람이 1마일 4분 한계를 넘어서는걸 보고 너도나도 300명이 넘은 것입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은혜를 알고 그 은혜에 따라 살게 때 모든 사람이 은혜에 따라 살게 되는 결과를 이루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됩니다. 내게 주신 은혜를 아십니까? 내게 주신 은혜에 만족하십니까? 그 은혜에 따라 살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의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내게 주신 은혜를 깨달아 그에 따라 살아갈 때 비로소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것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여기의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의 뜻은 ‘내게 주신바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납니다. 그 자체가 ‘내게 주신 은혜’입니다. 이방 땅에 태어나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은 스스로 고향이나 부모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함을 받아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내게만 주신 은혜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별화된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를 귀히 여기는 마음이 하나님의 동역자가 가지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들은 각각 주신 은사대로 섬겨야 합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며 협력하는 것이 동업자 신앙입니다. 아울러 다른 사람에게 주신 은혜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를 소중히 여기며 자랑으로 삼고 다른 사람에게 주신 은혜에 질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협력하고 소중히 여길 때 피차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예수로 세워야 삿갓조개는 바위나 배 밑창에 붙어서 삽니다. 삿갓조개는 워낙 집착력이 강해서 바위를 깰지언정 거기에 붙은 삿갓조개를 떼어 낼 수가 없답니다. 학자들은 삿갓조개가 강하게 붙어 있는 이유 중에 하나로 오랫동안 파도와 싸웠다는 점을 꼽습니다. 파도의 힘은 시속 500Km의 엄청난 바람과 비슷한 힘으로 조개를 때립니다. 이렇게 강한 파도 속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남기 위해 삿갓조개는 엄청난 힘을 키워 바위에 바짝 붙게 되었습니다. 파도가 세기 때문에 실려 나가지 않으려고 바위에 붙으려다 보니 조개 살이 강해져 나중에 바위를 깨뜨려도 조개가 떨어지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풍파와 시련을 통하여 예수께 더 바짝 붙어야 합니다. 예수께 떨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로 세워져야 합니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 같은 신앙이 되어 예수로만 세워져야 합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금이나 은이나 보석 신앙이 되어 예수의 터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본문 11절입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보석으로 짓는 자는 성령의 은사와 열매가 가득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들은 은사를 나누고 은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우는 것은 명예나 지위나 권세나 쾌락을 따라 살며 예수로 세우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기기에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우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자가 되고야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그 사역을 세워야 합니다. 자신의 행실을 제어하며 부끄러움이 없는 생활을 하면서 진실한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찬송이나 기도를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 욕심을 따라 살아간다면 사람의 동역자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정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없습니다. 불에 타버려 공력이 없어지는 육신에 속한 신앙생활에 그치는 동역자가 될 것이 아니라 공력이 남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상급을 믿어야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은 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중국에 의료선교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혼란스런 상황 때문에 선교지를 아프리카로 바꾸었습니다. 리빙스턴이 아프리카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형 존이 찾아왔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병원을 개업하면 탄탄한 앞날이 보장된다며 아프리카로 가지 말라고 설득하였습니다. “네 소원대로 미개인들에게 가면 네 인생은 매장되겠지만, 나는 이곳 영국에 머물면서 이름난 의사가 될 것이다” 동생 리빙스턴은 소명대로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형 존은 영국에서 유명한 의사가 되어 돈과 명예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누가 더 유명하게 되었습니까? 리빙스턴의 활동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14줄로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그의 형 존은 겨우 한 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리빙스턴의 형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역한 사람의 공적은 영원히 남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동역자에게 주어질 상급을 믿는 기쁨이 있기 바랍니다. 본문 8절입니다.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심는 것과 물주는 것은 한 가지이며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각자 자신의 일에 따라 자기의 상을 받는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상급의 기준은 인간적인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행하는 충성됨입니다. 심는 일과 물주는 일은 그 수고가 다르고 일하는 모양이 다르지만 한 가지라고 바울은 증거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동역자들은 서로 다툼이나 질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들은 경쟁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 관계에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말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동등함을 깨달으며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같은 일을 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탈무드에 나오는‘나무 심는 노인’에 대한 교훈입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집 정원에 과수 묘목을 심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곁을 지나가던 나그네가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노인께서 언제쯤 그 나무에 열매가 맺히리라 생각하십니까?”노인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말했습니다. “아마 한 20년쯤 후면 열리겠지요”노인의 대답에 나그네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노인장께서 그때까지 살아 계실 수 있습니까?” 그러자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럴 리가 있겠소. 허나 그래도 그런 게 아니요.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집 과일나무에 많은 과일이 열려 있었소. 그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내 부친께서 심어 놓으신 거지요. 지금 나도 아버님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오.” 심지도 않고 물을 주지도 않는 곳에 자라는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심는 수고와 물을 주는 희생이 있기에 그 열매를 보게 됩니다. 교사 역시 미래를 보는 믿음과 안목으로 사명을 감당하여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부디 사람의 일을 하는 동역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함께 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따라 동역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우는 동역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상 주심을 믿고 끝까지 충성하며 헌신하는 교사들과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