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일본의 미즈노 겐조(水野源三)는 눈깜박이 시인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홍역의 고열증세로 뇌가 손상되어 보는 것과 듣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절망 속에 있다가 고린도후서 12장 9절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겐죠의 환경과 여건은 바뀐 것이 없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그의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자신이 살아 있어야하는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면서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시를 지어 발표하였습니다. 말을 할 수 없고 글도 쓸 수 없는 그는 일본어 오십음도를 벽에 붙여 놓고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원하는 글자를 짚을 때마다 눈을 깜박이면서 글자들을 모아 문장을 만들어 시를 썼습니다. 감사하고 싶고 찬양하고 싶어도 눈 깜빡이는 것 외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단이 없어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었으며, 어떻게 해서든지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지은‘내 마음 속에’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기쁨이 있다. 내 마음속에 희망이 있다. 내가 나아갈 길이 있다. 그건 그리스도 예수가 열어 주신 것 어두워도 헤매지 않아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기쁨의 길이 있다.” 미즈노 겐죠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우는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본문에 보니 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장애를 안고 태어나 구걸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가 있던 장소는 성전에 들어가는 미문이었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돈이 아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였습니다. 구걸하는 그에게 물질보다 더 필요한 것이 복음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당당히 전해 준 것입니다. 무엇을 구하며 살아가십니까? 무엇을 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명예나 권세보다 힘이나 물질보다도 필요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기적이 있습니다. 다함께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서리라’찬양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주가 주신 능력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원수가 날 향해 와도 쓰러지지 않으리. 주가 주신 능력으로 주가 주신 능력으로 주가 주신 능력으로 일어서리.”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까? 첫째로 기도하리라 미국 텍사스에 달라스 신학교(Dallas Theological Seminary)가 한번은 학교 재정이 모자라 교수들이 함께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일반 대학 졸업생들은 기부를 많이 하지만 신학교 졸업생들은 대부분 목회자들이기에 기부하는 일이 흔치 않았습니다. 교수들 가운데 해리 아이언사이드(Harry Allen Ironside) 박사가 이렇게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제가 분명히 알기에 하나님은 산과 들의 모든 가축들을 다 소유하고 계시는 부자이신 줄 믿습니다. 그 가축들을 팔아서 신학교의 부족한 재정을 채워주시고 교역자들을 길러내는 사역을 중단하지 않도록 해 주세요. 예수 이름으로 구하면 무엇이든지 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달라스 신학교 근처는 광활하게 펼쳐진 넓은 초원 지역이라 목장들이 많았습니다. 그 날 근처에 있던 목장 주인이 두 열차 분의 많은 소들을 내다팔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에 모두 하나님께 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를 팔아 받은 수표를 신학교 학장비서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수표를 전해 받은 루이스 쉐이퍼(Lewis S. Chafer) 학장은 기도하는 교수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언사이드 박사, 하나님께서 방금 소를 팔아서 수표로 보내오셨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제 구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새” 베드로와 요한은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제 구시에 기도하러 성전으로 가는 길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손을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움직일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기적을 주십니다. 기적은 기도하는 자에게 일어납니다. 기도하는 교회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베드로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기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일으킨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4절입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부족하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할 때 응답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할 때마다 응답 받는 기적의 체험이 날로 더하여 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선포하리라 여류소설가 임옥인(林玉仁)의 간증입니다. 그녀가 중풍으로 쓰러져 온 몸에 전신마비가 왔습니다. 병원서 전혀 치료도 안 되고 소망이 없다고 해서 퇴원하였습니다. 한번은 친구 권사가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들어오자마자 ‘옥인아 일어나라!’그러더랍니다. ‘아니, 친구 간에 이럴 수 있나. 왔으면 기도라도 해주지 누가 누워있고 싶어 누워 있는 줄 아느냐?’라고 싶더랍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으려니 사도행전 3장이 기억납니다. 앉은뱅이도 일어났는데 그래서 그녀는 마음속으로 크게 외쳤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라’하며 손을 확 잡았는데 손이 움직여지더랍니다. 그래서 왼손을 움직여보니 손이 움직입니다. 그랬더니 친구가 또 ‘옥인아 일어나라’하더랍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벽을 잡고 일어났습니다. 그 자리에 제자들도 병문안 왔었는데 인사도 안 받고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벽을 짚고 돌다가 손을 떼고 돌았습니다. 그때서야 할렐루야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 후 임옥인 작가는 ‘새 손’이란 시를 썼습니다. “걸레 같은 내 손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던 손이 새 손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의 손을 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손을.”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일단 걸어보고 나면, 은혜를 경험하고 나면, 성령의 충만을 받아보고 나면,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억만금을 주어도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난 과거의 헛된 세월이 안타까울 만큼 헌신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본문 6절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 못 걷게 된 자에게 “우리를 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면 예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베드로는 혹시 일어서지 못하면 어찌될까 머뭇거림도 없이 믿음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그들의 인생을 세워줄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변화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주저앉은 인생을 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변화되리라 헨리 나우엔(Henri Nouwen) 박사가 어느 날 갑자기 명문 하버드 대학의 교수직을 사임하고 메사추세츠의 정신박약자 수용소인 데이 브레이크(Day Break)의 직원으로 자청해 봉사했습니다. 그는 정신박약자들에게 용변 보는 법을 가르치고, 식사와 세수를 돕고 옷을 갈아입히는 일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신동이란 별명을 들었던 사람이었고, 하버드 대학 교수가 된 후에 책도 20여권 집필했으며, 그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누구나 그의 얼굴을 한 번 보기 원할 만큼 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그런 좋은 길을 포기한 이유를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있을 때, ‘예수 이름으로(In the name of Jesus)’라는 책을 썼습니다. 책의 요지는 ‘예수를 진정으로 알려면 내리막길을 체험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대로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환자들, 식사도 혼자 못하는 정신박약자들에게 봉사할 때 그의 박사학위, 교수, 큼직한 사회적 직함들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섬기는 봉사만이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교수로 있을 때 보다, 강연자로 다닐 때 보다 자기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봉사할 때 사람들에게 더 깊은 감동을 줄 수 있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고 몸소 행했던 복음의 교훈은 내리막길에서만 체험됩니다. ‘꼭대기를 향하여 오르막길로만 전진하다 보니 예수는 안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기 위해 높은 곳으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가장 낮은 곳에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입니다.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는 성전을 등지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무관하게 살아왔습니다. 성전에 가까이 있는 듯하였지만 하나님을 향하여 한 번도 향한 적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러한 그가 성전 안으로 들어갑니다. 걸으며, 뛰며 하나님을 찬송하며 들어갑니다. 거듭난 환희가 넘치는 모습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변화된 모습입니다. 그가 부르는 찬송 소리는 목구멍의 울림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였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때 약함을 붙들어 주십니다. 부족함을 채워주십니다. 나의 이름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행할 때 모든 일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야 합니다. 그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지배하며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살게 하십니다. 전주 예수병원은 미국 북캐롤라이나 히커리(Hickory)의 마티 잉골드(Mattie B. Ingold)라는 여자 의사에 의해 1898년 11월 3일 시작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이름이 예수 병원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남장로교 진료소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예수 병원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습니까? 병원을 설립한 선교사가 아닙니다. 의학적으로 미개했던 나라에 선교사들에 의해 병원이 세워졌으며 그들이 친절히 진료를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고 예수 안 믿는 전주 시민들이 “예수 병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빙자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들은 예수이름으로 사랑하자고 외치지만 사랑하지 않습니다. 헌신을 외치지만 헌신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외치고 헌신을 외치면서 사랑하지도 헌신하지도 않는 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빙자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빙자할 때는 능력도 없을 뿐 아니라 사탄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신뢰할 때 사탄이 두려워 물러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빙자하는 모습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는 모습입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는 곳에만 기적이 있고 능력이 있고 구원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신앙의 눈이 열려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