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134센티미터의 작은 키로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에서 희망을 전하고 있는 국제 사회복지사 김해영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가난과 눈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던 불행했던 그녀의 삶에 어느 날 주님이 친구로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녀의 나이 열아홉, 세계 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편물 분야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가장 성공의 자리에 있던 무렵, 아프리카 선교사의 길을 선택한 그녀. 아프리카 사랑은 그녀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했습니다. 다시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콜롬비아 대학교 국제 사회복지대학원에 입학, 국제사회복지사로서 당당히 서게 됐습니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시절, 단지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에게 내던져져 평생 척추 장애를 안고 살아야 했던 그녀의 삶은 한 편의 영화와도 같았습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벅찬 삶의 무게를 못 견디고 가출을 선택하였습니다. 한의원에서 가정부를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서울중부기술교육에서 기계편물기술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기술로 그녀의 삶은 180도 역전됩니다. 전국 장애인 기능대회, 전국 기능대회에서 기계편물 부문 금메달을 휩쓴 것에 그치지 않고, 세계 장애인 기능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한 결과 철탑산업훈장을 받게 됩니다. 김해영 선교사와 아프리카의 인연은 우연히 참여한 자원봉사를 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아프리카 보츠와나 지역에 편물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그녀는 그 땅을 밟는 순간 아프리카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주위 사람들의 편견에 사로 잡혀 평생을 살 줄 알았던 그녀는 아프리카에서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여성이었습니다. 그런 계기로 보츠와나의 굿 호프 마을에서 14년 동안 현지인에게 편물기술을 알려주는 굿 호프 학교를 운영하였습니다. 아프리카를 향한 그녀의 사랑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밀알 복지 재단 희망사업 본부장을 맡으며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위한 초등학교 지원 사업과 희망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탄생의 축복조차 누리지 못했던 김해영 선교사는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희망 전도사가 되어 2012년도 국민훈장목련장과 KBS 감동대상 희망상을 수상했으며, 한경재단의 ‘세상을 밝게 만드는 사람들’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작은 거인 김해영 선교사는 꿈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장애우를 위한 희망사업을 계속 펼치는 일입니다. 키는 작지만 꿈만큼은 원대한 아름다운 하나님의 딸 김해영 선교사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의 뒤를 따라가는 하나님의 사람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예수께서 수난을 예고하신 후 십자가가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마지막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사역의 본질적 측면을 이해하고 나아가 그들 또한 당신의 뒤를 좇아 희생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십자가의 도’를 교훈의 핵심으로 삼으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누가 크냐’는 논쟁에서 드러났듯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간까지도 메시야의 수난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자신의 체중감량을 위해 금욕하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발전을 위한 수고와 고통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걸머지고 가라는 십자가는 고통이 수반되지만 타자를 위해 자발적으로 감당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주의 뒤로 물러서는가 헨리 무어하우스(Henry Moorhouse)가 젊었을 때에 영국의 한 도시에서 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과 미국 어느 곳에서도 신앙부흥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장벽을 뛰어 넘으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밤낮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기도하며 외쳤습니다. “하나님, 왜 신앙의 부흥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어느 날 그가 걸어가고 있을 때 성령께서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는 현수막을 보여 주셨습니다. “헨리 무어하우스, 영국 전도사중 가장 유명한 전도사!” 그는 즉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이다!” 그는 전도 준비위원회를 찾아가 말했습니다.“형제 여러분, 이제야 나는 신앙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여러분들이 모든 면에서 나를 얼마나 위대한 사람같이 선전해 왔는지 알았습니다. 성령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지 않았기에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못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놀라우신 분이십니다. 나는 단지 영광스러운 복음을 전파하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말하는 미천한 종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누구라도 예수보다 앞서가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의 뒤로 물러가야 합니다. 본문 33절입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수제자 베드로가 졸지에 사단이라고 불립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지혜로 답변했을 때는 예수를 기쁘시게 하는 고백을 하였지만 하나님의 뜻을 제쳐둔 채 인간적 생각이 앞섰을 때 예수를 실망시키고 말았습니다. 예수의 사역을 돕는 자가 아니라 도리어 방해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사단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앞세울 때 제자라고 할지라도 사단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내 뒤로 물러가라’의 뜻은 무엇입니까? 제자는 스승 뒤에 있어야 합니다. 제자는 뒤에서 스승을 따라야 합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고 위치가 바뀔 때 혼란이 오게 됩니다. 그곳이 가정이든지, 교회든지, 사업장이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수제자 베드로가 이런 실수를 범하였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사단의 도구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까? 예수로 대장삼고 복종해야 합니다. 예수를 지도자로 삼고 따라가야 합니다. ‘내 뒤로 물러가라’는 명령은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의 구호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뒤로 물러서야 할 영원한 2인자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주의 일을 생각하는가 맥스 루케이도(Max Lucado)의 저서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주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중년 남자의 집에 전기불이 나갔습니다. 촛불을 켜기 위해 창고에 들어가 양초 한 자루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양초가 말을 합니다. “주인님, 아직 불을 밝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큰 빛을 밝힐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다음에 저를 사용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상하다. 양초가 말을 하네.” 옆에 있는 다른 양초에게 손을 뻗치자 “주인님, 나는 내가 불을 밝힌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내가 불을 밝힌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지 깊이 묵상하는 중입니다. 아직 묵상에서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묵상에서 깨어날 때까지 불을 밝히는 것을 연기하면 안 되겠습니까?” “어, 양초가 말을 하네” 문득 옆에 나란히 서 있는 4개의 양초를 발견했습니다. 그들 중 하나의 양초를 가지고 나가려 했더니 4개의 양초가 함께 소리 지릅니다. “우리는 아직 불을 밝힐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합니다. 다른 초들이 탈 때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중창연습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결국 그는 어떤 양초로도 불을 밝힐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가 왜 양초를 가지고 오지 않았느냐 물었습니다. 그는 자초지종을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화를 내면서 “도대체 그 양초들을 어디서 사왔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양초들은 건너 편 문을 닫은 교회에서 사왔습니다. “아 그랬구나!” 그제 서야 그 양초들이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았습니다. 당장은 힘이 들고 손해가 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면 영원한 상급이 하늘에 쌓일 것입니다. 사람의 일보다 먼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33절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여기서 ‘생각하다’는 가치관이나 성향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이나 시각보다 인간의 관점으로 상황을 인식하려 했기에 예수로부터 책망을 받았습니다. 사탄적인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과 시각으로 바라보고 행동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더 이상 내 생각에 매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반드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만 생각하면서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는 제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주를 위해 손해보는가 이용규 선교사는 ‘내려놓음’이란 책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학부를 졸업하고 유학까지 하여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던 자신이 몽골선교사로 헌신하는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부인의 삶이 무엇인가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 포기하지 못한 것이 있는가? 힘들어도 끝까지 버리지 못하고 붙잡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삶 가운데 이것만은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막는 영역이 무엇인지 헤아려보아야 한다. 예수의 발치까지 가지고 갔지만 더는 깨뜨리지 못한 채 여전히 두 손에 꽉 틀어쥐고 있으면서‘하나님, 저는 깨어지기 싫습니다. 상처받기 싫습니다. 내 체면도 좀 생각해주세요. 나도 영광을 같이 받고 싶습니다. 나도 적당히 같이 누리면 안 될까요?’하는 것은 아닌가?그러나 하나님은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네 안에 네가 너무 크면 내가 들어갈 수 없다. 나는 너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구나.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러나 네 안에 네가 너무 커서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구나. 네 것을 달라는 이유는 네 것을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란다. 너를 온전케 하려면 네가 잡고 있는 그것을 깨뜨려야 한다. 네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데 네가 그것을 끝까지 잡고 있으니 줄 수 없는 거란다.” 이것이 바로 자기부인의 모습입니다. 본문 35절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예수를 위해 자신의 의지와 소망을 기꺼이 희생하라는 뜻입니다. 자신을 위해 좋은 것을 얻으려는 생각을 기꺼이 부인할 수 있습니까?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향한 복수심을 버릴 수 있습니까? 이웃을 위해 나의 정욕과 탐심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예수를 따르기 위한 자기부인은 자신에게 유리한 것들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거듭나야 가능합니다. 사람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기에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십자가 지는 일이 고통이 아니라 부활의 증인이 되는 영광의 과정임을 깨닫고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야 합니다. 앤서니 베이커(Anthony D. Baker)는 ‘크리스차니티 투데이’잡지에 ‘복음서 이야기로 돌아가기’라는 글을 게재했습니다. 켄다 크리시 딘(Kenda Creasy Dean)과 론 포스터(Ron Foster)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바꾸어주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무엇인가 보여주길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간 대부분 피자를 사 주는 데 사용했다.” 교회가 십자가의 복음을 강력하게 전해야 하는데, 그것은 하지 않고 피자나 사주면서 사람들을 기쁘게 해 왔다는 비판입니다. 교회에 십자가의 복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병들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통과하지 못하면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 모두 여기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실 때 그들은 도망쳤습니다. 베드로는 가야바 대제사장의 뜰에서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제자의 모습을 갖추게 된 시기는 십자가와 부활을 목도한 직후였습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십자가의 도를 전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기로 작정하는 십자가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순절은 제자의 길을 묵상하는 기간입니다. 입술로는 제자처럼 말하면서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은 없는 거짓 제자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를 따른다면서 실상은 십자가를 외면하는 모습은 아닙니까? 예수께서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는데 제자된 우리가 복음을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를 당연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십자가는 ‘견디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뜻에 상반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기에 복종하며 주어진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자신이 부인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내가 져야할 십자가는 어떤 것인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더 회개하고, 더 기도하고, 더 금식하고, 더 자선을 베풀며 사순절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제자의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야 할 자리는 주의 뒤로 물러나야 합니다.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손해 볼 각오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