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인종차별 철폐 운동가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투투(Desmond Mpilo Tutu)대주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신이 성공회 주교가 되고 인종차별 철폐 운동을 하게 된 이유를 어렸을 때 경험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길을 가는데 성직자 차림의 훤칠한 백인이 다가오더랍니다. 당시 남아공은 철저한 인종차별 국가였기에 흑인들은 백인이 지나가면 한쪽으로 물러나 고개를 숙이고 백인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투투와 어머니도 한쪽으로 물러나려고 하는데 그 백인이 재빨리 먼저 한쪽으로 비키고는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한 뒤 투투와 어머니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놀란 어린 투투는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저 백인이 왜 저러는 거에요?” 이때 어머니의 대답이 투투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 사람은 성공회 주교인데 성경에서 선을 행하라고 배웠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도 친절하고 공손하게 대하는 거란다.” 그래서 어린 투투는 나중에 반드시 성공회 주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선행이 아이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고, 나아가 남아공화국이라는 국가의 미래를, 그리고 세계를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는 교훈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이 전도하여 세운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들어와 교회를 분열시키고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예수께 부르심을 받은 사도가 아니며, 동시에 율법과 할례를 따르지 않는 유대인이라면서 바울을 대적했습니다. 결국 바울의 전도를 받고 교회의 중심이 되었던 교인들과 바울을 대적하는 교인들 간에 충돌이 생기면서 갈라디아 교회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졌습니다. 바울은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사도직을 받았다고 변호하면서 복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교회와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바로 서야 한다고 말하며 특히 선을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믿음의 가정들에게 더욱 선을 행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선을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위선자가 되어선 결코 안 됩니다. 자신을 속이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척하는 신앙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모습이 되기 때문입니다. 위선을 행하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변명을 해서라도 결백을 증명하고 싶어 하기에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속이지 않도록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서 항상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 선을 행하는 일은 즉시 시작해야 합니다. 하지만 시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시작보다 더 어려운 것은 시작한 일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할 때 사람들의 반응과 결과에 관심을 가지다가 반응이 없으면 선행을 지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을 행하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낙심하지 말아야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지독하게 가난했습니다. 한때 기름때 찌든 작업복을 입고 기계를 고치는 일을 하였으며 한때는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사과를 팔았고, 산동네 판자 집을 돌아다니며 양말을 팔기도 했습니다. 그에게는 소박한 꿈이 있었습니다. 화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림을 사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로니에 공원과 도서관 앞에 그림을 펼쳐 놓았지만 누구도 관심을 가져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림 다음으로 좋아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야학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7년에 걸쳐 글을 썼습니다. 책이 출간되면 절반은 가정을 돕고 절반은 가난한 이웃들에게 선한 도움을 주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원고 뭉치를 들고 출판사를 다녔지만 그의 글을 사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다섯 번이나 거절을 당했지만 낙심치 않았습니다. 그가 낙심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라고 글에서 적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찾아간 출판사에서 그의 글을 출간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렇게 해서 수많은 독자들을 울린 우리 시대 마음 따뜻한 사람들의 베스트셀러 ‘연탄 길’이 출간되었습니다. 그의 책 연탄 길에 그가 그린 그림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화가가 되었습니다. 이어 출간된 ‘행복한 고물상’, ‘곰보빵’ 역시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이철환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낙심하지 않은 이유를 곰보빵이란 글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기름때 찌든 작업복을 입고 있을 때도 나는 프란츠 카프카를 읽고 있었다. 아무도 사가지 않는 그림 옆에 서서 고개를 들 수 없을 때도 나는 알베르 카뮈를 읽고 있었다. 도스토엡스키와 말라르메, 스타니슬라프스키와 헤르만 헤세가 있어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이 계셨기에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사람을 꿈꾸게 하는 건, 기쁨이 아니었다. 아픔이었다. 나는 지금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평화롭고 행복하다. 아름다움의 원래 모습은 아픔이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가 이르면 거두기 때문입니다. 낙심은 금물입니다. 본문 9절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누구나 끊임없이 무엇인가 뿌리고 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루를 살았다는 말은 지나간 시간과 공간에 무엇인가 뿌리고 심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낙심을 말하기에 앞서 무엇을 심기 위해 살아왔는가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만난 순간부터 인생의 우선 순위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순종의 동기를 가지고 살아온 것이라면 성령을 위하여 심은 것입니다. 약점과 허물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사는 동기가 복음이었다면 하나님이 그 선한 동기를 인정하셨다는 사실로 위로 받아야 합니다. 결과가 없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보상이 없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한 씨앗을 뿌린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주를 위한 인생을 살고자 한 동기로 노력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여 아파한다면 낙심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까닭은 추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분명히 선한 씨앗을 심었다고 인정하실 것입니다. 비록 선한 결과를 보지 못했어도 주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선한 동기를 보셨기 때문입니다. 낙심치 말고 끝까지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포기하지 말아야 강원희 선교사는 히말라야,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에티오피아에서 30년 동안 선교사로 봉사하다가 현재 네팔에서 의료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30대 중반 부인이 배가 아파 병원에 왔는데 진단한 결과 장폐색이었습니다. 마취를 하고 급히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의료 장비가 없어 그물망 마스크를 입에 밀착시키고 그 위에 마취약을 떨어뜨려 마취를 시켰습니다. 하지만 위험한 것은 수술도중 음식물이나 역류한 소화액이 폐에 들어가 흡인성 폐렴이 되면 폐가 순식간에 손상되어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수술이 끝날 무렵 구토를 시작한 환자의 폐에 그만 오물이 들어가 폐가 절반가량 하얗게 변해버렸습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습니다. 환자는 의식이 없고 산소가 부족했지만 산소를 주입할 기계도 없었습니다. 쇼크 상태라 수축기 혈압은 60, 맥박은 130을 가리키며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는 절망적인 상황이 되었습니다. 강원희 선교사는 조용한 곳에 가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부르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 저 환자를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제 능력 밖의 일이오니 주님이 저 생명을 살려 주십시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세 시간 반 동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회복실로 가보니 환자가 살아나 있었습니다. 맥박이 정상이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동안 폐의 죽었던 세포가 생명의 세포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는 탄성을 질렀습니다. 생선의 가운데 토막과 같은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하고 평생토록 선을 행하였지만 포기할 상황을 만났을 때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더니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다가 고통이 있다 해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한 일이라면 더더욱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편과 자녀들의 변화를 기도하고 있다면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직분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작은 것이지만 봉사를 하고 있다면 어려워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게 하시리라고 하나님이 분명히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9절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안에 심각한 분열이 생겼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서로에게 선한 일을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나와 생각이 달라서 불편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리 선을 베풀어도 도무지 변화가 없습니까? 누구나 이런 상황이 되면 포기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입고 끝까지 선을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거두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끝까지 선을 행하라고 강조합니다. 악으로 맞서 싸우지 말고, 서로 짐을 나누어지는 선을 행하라고 말입니다. 선을 먼저 베풀고, 포기하지 말고 함께 가야 합니다. 빅터 프랭클은 “그대는 그대의 인생에게 무엇을 요구하지 말고 무엇을 심을 것인가를 생각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인생에게 무엇을 바라기 때문에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일이기 때문에 포기하지 말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일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때가 이르면 그 열매를 맺히게 하실 것이 분명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기회대로 하여야 미국의 어느 가구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점원들은 손님이 없자 둘러 앉아 잡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할머니 한 분이 가구점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점원 가운데 한 청년이 그 모습을 보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할머니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비 오는데 거기 서 계시지 말고 가구점으로 들어오세요. 들어오셔서 가구도 구경하세요” “아닐세. 젊은이, 나는 지금 차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네.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이 아니야” 그러나 청년은 할머니를 강권해 가게 안으로 모셔 왔습니다. 의자를 내주어 쉴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잠시 뒤에 기다렸던 차가 왔습니다. 할머니는 청년에게 명함 한 장을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차에 올라탔습니다. 그 뒤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깜짝 놀랄 만한 편지 한 통이 가구점에 전달되었습니다. 당시 강철 왕으로 이름이 나있던 카네기(Andrew Carnegie)가 청년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일전에 비 오던 날, 우리 어머니에게 베풀어 주신 친절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머니의 요청에 따라 이번에 스코틀랜드에 짓고 있는 대저택에 쓸 가구 일체와 또 우리가 새로 짓고 있는 회사에 들어갈 가구 일체를 당신의 가구점에서 구하고 싶습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에 당신이 책임을 지고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어진 기회에 친절을 베푼 결과 청년은 엄청난 보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여기의 ‘모든 이’는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무조건 선을 행하라는 뜻입니다.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든 그를 위해 무조건 기도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습관이어야 합니다. 선을 행한다는 의식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해야 합니다.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친절하게 대하고 격려를 해야 합니다. 선이기 때문에 행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을 만났기에 즉시 도와준 것이지 계획을 세우고 도와 준 것이 아닙니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올 때에 갚아 주겠다고 약속까지 하면서 주막 주인에게 맡겼습니다. 그는 주어진 기회에 선을 베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 선을 행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며 주어진 기회마다 놓치지 말고 선을 행해야 합니다. 간디(Mahatma Gandhi)가 시골로 기차 여행을 하였습니다.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하다가 시간이 늦어졌습니다. 기차가 떠나려는 순간 간신히 탔는데 그만 한 쪽 신발이 벗겨졌습니다. 그래서 한 짝만 신고 올라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간디는 즉시 남은 신발을 벗어 신발이 떨어진 곳으로 힘껏 던졌습니다. 곁에 있던 사람이 간디에게 “그건 왜 던집니까?” 하고 물으니 그가 대답합니다. “저 신발을 누군가가 주워서 신을 텐데 한 짝만 가지고는 안 되지 않겠는가?” 간디는 급한 상황에서도 항상 남을 생각하며 선을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선행의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자기를 온전히 내어 놓아야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없이는 자신을 계속해서 내어 놓는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야 선을 행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부디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선을 행하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