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박봉수목사

17. 3. 19. 버가모 교회의 교훈 버가모 교회의 교훈 계 2:12-17

17. 3. 19.                                          

 

버가모 교회의 교훈

 

버가모 교회의 교훈계 2:12-17

 

   요한 계시록은 사도요한이 노년에 밧모섬에서 주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를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주님께서 이 계시의 말씀을 기록해서 보내라고 구체적으로 거명하신 교회들이 나옵니다. 바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그리고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이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말씀하신 계시의 내용은 한 마디로 말하면 장차 일어날 종말에 관한 것들입니다. 특히 주님의 재림 이후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이런 계시의 내용에 관한 말씀 이전에 당시 일곱 교회 각각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각 교회에 대한 칭찬과 책망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칭찬과 책망이 교회마다 다 다릅니다.

   이것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칭찬만 받은 교회가 있습니다. 바로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이 교회들은 사람들이 볼 때 작고 보잘 것 없는 교회들이지만 주님께서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책망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둘째는 책망만 받은 교회가 있습니다. 바로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당시 가장 큰 건물을 자랑하고, 사회에서 유력한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눈에는 크고 좋은 교회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교회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칭찬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셋째는 칭찬과 책망을 함께 받은 교회입니다. 나머지 에베소, 버가모, 두아디라, 그리고 사데 등 네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이 교회들을 칭찬도 하셨지만 또한 책망도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각 사람에 대한 평가를 하실 것입니다. 그 때 어떤 사람은 칭찬만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책망만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칭찬과 동시에 책망도 함께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을 살아갈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마치는 날 주님 앞에 설 것이고, 그 때 주님의 평가가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인생을 살았느냐,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 했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장차 주님께 칭찬 듣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행여라도 책망만 듣는 성도가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 신앙생활을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버가모 교회에 대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이 주님께서 버가모 교회에 대해 말씀하신 계시를 받아 기록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버기모 교회의 상황

   버가모는 터키의 서부 에게해 근처에 있는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그 옛날 알렉산더 후계자들이 세운 뒤에 그리스 시대에 동방의 거점 도시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 시대에는 아시아 지역의 수도로서 거대한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현재도 옛날의 영화를 기억한 채 도시의 이름이 ‘베르가모’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도시에 대해 간략한 소개가 나옵니다. 13절에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한 마디로 말하면 당시 버가모는 사탄의 권좌가 있던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사탄의 권좌가 무엇일까? 말뜻은 마치 왕이 앉아서 권세로 다스리는 왕좌처럼 사탄이 앉아서 통치하는 자리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을 숭배하는 거대한 신전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이 연구해 본 결과 당시 버가모 지역에 직접 사탄을 숭배하는 사람들과 사탄 숭배 신전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사탄의 권좌란 무엇일까요? 이 버가모라는 도시는 산성처럼 평지 위의 높은 언덕에 세워졌습니다. 마치 멀리서 보면 어떤 신의 제단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도시 안에 거대한 제우스 신전을 비롯하여 그리스 신전이 4개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우구스투스를 비롯한 황제를 숭배하는 신전도 3개나 되었습니다. 또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우스를 섬기는 신전이라든지 애굽의 신 세라피스 신전과 같은 수많은 우상을 섬기는 신전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당시 이 버가모는 황제숭배와 그리스 신 숭배 그리고 각종 잡다한 우상 숭배가 가장 극심한 도시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도시는 그야말로 사탄에게 장악된 도시요, 우상숭배를 통해 사탄이 통치하는 도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사탄의 권좌가 있는 도시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이 버가모가 처음부터 이렇게 사탄의 권좌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 그리스 신전들이 세워졌고, 로마시대로 접어들면서 황제 신전들도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이 도시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그 신들을 섬겼고, 그 신전들이 거두어들이는 수입이 컸습니다. 그래서 각종 우상 신전들이 앞을 다투어 세워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도시 사람들이 영적으로 어둠이 몰려오는 것을 방치했고 그러다 결국 깊은 영적 어둠 속에 빠져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 우리 사회에 영적인 어둠이 짙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년 말에 발표된 통계청 종교통계를 보면 2015년을 기준으로 종교가 없는 무교인구가 종교를 가지고 있는 종교 인구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종교가 없다고 답한 사람이 5기독교, 불교, 천주교, 기타 여러 종교의 종교인들의 수를 다 합한 것보다 종교가 없다고 답한 사람이 56.1%나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불교, 천주교, 그리고 기타 여러 종교에 속한 사람들의 수보다 많은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우리 사회에 이렇게 무교인구가 종교인구를 넘어선 것은 통계조사 이후 처음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이 종교에 대한 관심이 식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영적인 어둠이 몰려오고 있는 불길한 조짐인 것입니다.

   더 우리를 긴장시키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자신은 무신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무신론자는 무교도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무교도라는 사람들은 기존의 종교들 가운데 어떤 종교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종교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나름대로 의지하는 신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를 다니거나 절에 다니지 않으면서도 조상신을 섬긴다든지, 달을 보고 기도하거나, 산에 오르며 돌을 쌓고 무사를 기원하는 것들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신론자라는 사람들은 자기들은 그 어떤 종교를 가지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어떤 신적인 존재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자신을 의지하거나 철저하게 과학적 사고에 근거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무신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무려 15%나 된다고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무신론자들의 분포를 보면 단연 1위가 중국으로 47%, 2위가 일본으로 31%, 3위가 체코로 30%, 4위가 29%로 프랑스, 그리고 우리나라가 5위에 오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무신론자가 다섯 번째로 많은 무신론 강국인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에게 영적 어둠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강도가 점점 심해져서 우리 사회에 영적 어둠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각성을 해야 하겠습니다. 철저하게 대비해야 하겠습니다.

 

버가모 교회에 대한 책망

   본문 1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주님께서 버가모 교회에 대해 두어 가지 책망하실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첫 번째 책망거리는 14절에 나옵니다.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버가모 교회에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는데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발람의 교훈이란 무엇일까요? 민 22장을 보면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이 위협해 오자 선지자 발람을 초청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요청했습니다. 민 2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발람을 돌이키셔서 오히려 발람은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발락에게 악한 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바로 모압 여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게 하여 음행을 저지르게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압 여인들에게 이끌려 이스라엘 남자들이 우상 앞에 절하고 우상 제물을 먹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대로 음행을 저지르고 우상숭배를 저질렀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수만 명이 죽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두 번째 책망거리는 15절에 나옵니다.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버가모 교회에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니골라 당의 교훈은 무엇일까요? 니골라당은 기독교 내에서 일어난 일종의 이단 사상입니다. 크게 보아서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영지주의의 한 분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선한 것은 영혼뿐이기 때문에 어차피 육체로는 무슨 일을 한다고 해도 악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율법이니 도덕이니 하는 것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늘 예수 그리스도의 보살핌이 있기 때문에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그렇게 악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발람의 교훈이나 니골라 당의 교훈은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 속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또 그러면서 하나님도 섬기며 살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을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도 예배하고 우상도 섬기는 한 마디로 양다리 걸치기 신앙생활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현대판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현대적이 용어로는 세속화된 신앙인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사도적지도자연합(United States Coalition of Apostolic Leaders)의 대표 지도자 조셉 마테라(Joseph Mattera) 목사는 세속화된 신앙인의 징후 10가지를 소개했습니다.

1.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지 않고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2.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생각이나 시선을 더 의식한다.

3. 성령의 이끌림이 아니라 돈에 이끌린다.

4. 예배에 참석하는 주목적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관계(교제) 때문이다.

5. 대중문화가 추구하는 가치를 따른다.

6. 하나님은 당신의 인생에 일부일 뿐이다.

7.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

8. 당신의 삶이 다른 이들에게 복음의 영향력을 미치지 않고 전도도

  하지 않는다.

9. 제자 삼지 않는다.

10. 재정에 있어서 성경적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점점 세속화되어가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돌아서야 합니다. 우리가 더욱 세속화된 신앙의 길로 나간다면 주님의 책망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에 대한 칭찬

   본문 13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주님께서 버가모 교회에 대해 칭찬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기서 안디바는 누구이며 그가 왜 칭찬을 받은 것일까요? 안디바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다만 초대교회 전승에 그가 버가모 교회의 감독이었고, 도미티아누스 황제 통치 때 황제 숭배를 거부하다가 체포당해서 벌겋게 달구우진 놋쇠 황소 위에 얹혀서 타 죽었다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버가모는 앞에서 살핀 대로 주님께서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우상숭배가 가장 극심한 곳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수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목숨을 바쳐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시절 교회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유세비우스의 기록을 보면 이 버가모 교회에서 안디바와 같은 순교자가 계속해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 카푸스, 파필루스, 아가도니크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탄위 권좌가 있는 버가모에 안디바의 뒤를 이어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13절에 이 안디바를 “내 충성된 증인”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저가 순교하면서 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버가모 교회는 주님의 특별한 칭찬을 받은 교회였던 것입니다.

-+--  저는 총회 파송을 받아 숭실대학교 이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숭실대에 대해 보다 깊이 알게 되었고, 숭실대가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정말 대단한 학교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숭실대는 1897년 평양에서 미국의 베어드 선교사에 의해 ‘숭실학당’이라는 이름으로 개교를 했으니까 금년이 창립 120년이 됩니다. 1905년에 ‘합성숭실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4년제 대학으로 인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숭실대학은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이 되는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이 대학이 신사참배에 맞서서 신앙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자진 폐교를 했다는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1931년 만주침략을 시작으로 이른바 15년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 때 조선을 병참기지로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내선일체를 앞세워 우리나라를 속국으로 만들고 우리 국민을 황민화하려고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조선말과 조선의 역사를 가르치지 못하게 했고, 창씨개명을 하게 했고, 그리고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특히 총독부는 모든 학교는 신사참배에 참여해야 하며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것은 천황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압박을 했습니다. 그리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교사나 학교 책임자들은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때 많은 기독교인들이 타협의 길로 나갔습니다. 당시 기독교 지도자들은 신사참배는 국민이 반드시 봉행할 국가 의식일 뿐이라면서 신사참배에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기독교 학교들도 그 길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이 때 숭실은 신앙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학교의 문을 닫게 됩니다. 자진 폐교로 신사참배에 맞섰던 것입니다. 이런 숭실의 뒤를 따라 많은 기독교 학교들의 용기를 내어 자진 폐교의 길에 동참했던 것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안디바를 칭찬하셨듯이 숭실을 칭찬하실 줄로 믿습니다. 스스로 폐교하면서 우상숭배의 물결과 맞섰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거대하게 밀려오는 이 세속화의 물결과 맞서야 합니다. 신앙의 양심을 지켜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버가모 교회가 맞닥뜨렸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영적 어둠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특히 영적인 세속화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발람의 교훈을 따라 타협하는 길로 나가지 말고, 안디바의 뒤를 따라 믿음을 지켜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