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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목숨을 던져 民族을 구한 信仰人(에 4장 7-17)

목숨을 던져 民族을 구한 信仰人(에 4장 7-17)    2010. 6/20 주일 낮


소련의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남침을 승인한 문건이 몇 일전 공개되어 중국과 북한을 당황하게 하였습니다.

에4장 7- 9 본문은 위기에 처한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자신과 민족을 위하여 왕에게 간절히 간구하라고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미 유다인 처형을 허락한 왕의 조서는 왕의 반지로 인을 친 것으로 이것은 왕 외에는 아무도 변경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아달월 13 일 하루 동안에 바벨론 각처에 있는 유다인을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죽이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라'(3:13)고 되어 있었습니다. 모르드개도 수산 궁의 괸리였으므로 쉽게 그 초본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것이며, 또 한 그 역시 유다 인이라고 생각되는 내시 하닥을 통해 에스더에게 전달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본문을 살펴봄으로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1) 비난의 대상이 된 유다

  히브리인의 선민사상은 자신들을 특수한 백성으로 자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타민족을 '이방 민족'으로 취급하고 오직 하나님과의 구원은 자기 민족에게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타민족과 어울리기를 거절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사상은 극단적인 민족주의로 그들은 교만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2) 진멸의 위기에 놓인 유다

▶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7:4).

벌써 하만의 계략에 의하여 모든 유다인은 은 1 만 달라트에 팔려 사형의 선고가 내려져 있었습니다. 당시 바사 제국 내에는 수백만의 유다 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유다인의 대적 하만과 그의 추종자들은 사람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세계 제 2 차 대전 당시의 독일의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은 같은 인간이면서도 유다 인을 비인간시하여 멸절시키려는 음모와 계획으로 600 만의 유다 인을 저주하고 박해했습니다. 그러나 유다 인들은 그 죽음의 바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끝까지 싸웠습니다.

① 모르드개는 증오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에스더의 신중성은 모르드개로 하여금 용기를 갖게 해주었습니다. 이 같은 모르드개의 용기는 단지 하나님의 높은 뜻을 따르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신의 뜻을 따른다면 그것은 교만이지 참된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②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뜻을 따름에 있어서 자신과 에스더의 목숨을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습니다.

  당시 바사 제국에는 묘한 법이 있었습니다. 그 법은 왕의 허락 없이 왕께 나오는 자를 죽이는 법이었습니다. 이 법은 매우 엄한 것이어서 왕후라 할지라도 이 법의 적용에서 예외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자기 민족 유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왕께 나가야 했지만 이 법의 규정에 걸려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법의 규정을 뛰어넘는 유일한 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왕이 가지고 있던 금홀(金笏)이었습니다. 왕이 이 홀을 들어 가리키기만 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그 법의 규정에 제한받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확실히 이 금홀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③참된 신앙은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 더욱 그 향기와 빛을 발합니다.

  모르드개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고, 그래서 민족이 위기에 처하자 누구보다 사랑하는 에스더가 죽음으로 나가는 일조차도 주저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강권했던 것입니다.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4:14).

그는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가 위기에 처할 때는 하나님의 새로운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먼저 확인하고 인내와 용기로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14절).

  모르드개는 유다 인들이 예정된 학살로부터 모면하는 길은 오직 왕후 에스더에 의하여 왕으로 하여금 조서를 철회시키는 길밖에 없음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에스더가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그 임무를 감당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에스더의 말처럼 왕이 부르지도 아니하는데 스스로 왕에게 나아가는 것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위험한 일이라 할지라도 에스더가 이 일을 꼭 맡아 줘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차피 유다 인이 죽게 되면 에스더가 비록 왕후라 할지라도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4:13)

모르드개는 왕 앞에 나가는 일이 어렵다는 에스더의 말을 듣고 에스더를 설득하기 위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유다 인이 다 멸망하면 유다 인으로서의 개인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비록 왕후의 신분이라 할지라도 그 운명을 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은 공동체가 멸망하기 전에 공동체의 멸망을 예방할 의무와 당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르드개로부터 결단할 것을 종용받은 에스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결연히 일어섰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이것이 그녀가 자신과 동족에게 직면한 역경에 임하는 자세였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자세에서 우리는 성도가 가져야 할 참된 모습을 보게 됩니다.


1. 성도는 역경에 처해서도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에스더는 왕께 나아가는 일조차도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왕께 나아간다고 해서 반드시 유다 백성을 구원할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마치 첩첩산경과 같은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쉽게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역경 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이 일어서서 자기와 함께 기도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녀는 그처럼 역경 중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모르드개가 그녀에게 가르친 신앙의 힘 때문입니다. 신앙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 그 섭리, 그의 사랑을 알게 합니다. 그래서 역경을 당하더라도 그 상황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상황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그의 도우심을 바라보게 합니다.


2. 성도는 역경에 처할 때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연합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시기에 앞서 이것을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참조, 마 18:19, 20).

(마 18:19-20)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①베드로의 구명을 위하여 예루살렘교회가 모여 몇 날을 합심하여 기도하였다.

(행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행12:5-12)

②초대교회 성도들이 마가다락방에 120명이 모여 10일 동안 부흥집회하며 기도할 때 성령 충만이 임하였다.(행 2장 1-4)

  사탄은 할 수 있는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성도들을 분열시키려합니다.

에스더가 유다 인들을 수산 궁에 모이게 하여 기도하게 한 것은 이러한 사탄의 궤계를 방지케 하고 확실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케 한 조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성도들은 자주 모여야 합니다. 어려운 역경이 닥칠수록 더 자주 모여야 합니다. 사탄은 '그날이 가까 올수록' 성도들로 하여금 모임을 폐하도록 계속해서 획책할 것입니다(참조, 히 10:25).

3. 성도는 역경에 처할 때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성도가 신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보통 사람과 똑같은 성정을 가지고 똑같은 인간의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단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살아가는 방법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속적인 인간의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지만 성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방법대로 살아갑니다. 이것은 역경을 극복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스더를 보십시오. 그녀는 대제국 바사의 왕후였습니다. 그녀는 왕궁에서 살았으며, 왕족의 품위와 궁중의 법도에 따라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세속적인 방법으로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 증거로 역경에 처했을 때의 그녀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권력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적인 권모나 술수를 사용치도 않았습니다. 그녀는 유다 백성들을 다 모으고 금식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유다의 평민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자기도 금식을 합니다. 금식이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포기하는 행위요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죽음을 고백하는 행위요 오직 하나님만이 나를 살릴 수 있다는 고백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에스더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겸손했고 세속적인 방법을 의지하지 않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처럼 순수하게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들어주시지 않을리 없는 것입니다.


4. 성도는 역경에 처할 때 일사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는 에스더와 같이 특정한 신앙인에게만 요구되는 결단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한 모든 성도에게 요구되어지는 결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숨을 얻기를 원하는 자는 죽어야만 된다고 말씀하셨으며(참조, 마 10:39), 많은 열매를 얻기를 원하는 자들도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참조, 요 12:24). 죽기를 각오한 신앙인은 두려울 것이 없는 용맹스러운 주님의 군사가 될 것입니다.


結論: 에스더는 왕후가 가질 수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포기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습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부탁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온 유다 민족이 합심해서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르드개는 에스더의 이 부탁을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바사 제국의 모든 유다 인들의 기도가 3 일 동안 하나님을 향하여 올려졌습니다. 에스더의 결사 신앙은 죽으면 죽으리이다. 입니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한 충고는 민족의 멸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왕후의 생명을 포기해야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이 충고를 받아들였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일사를 각오한 것입니다. 에스더의 이 신앙적 용단은 ①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는 아브라함의 결단과 같고(참조, 창 22:1-3),

②'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욘 1:12)고 한 요나의 결단과 같고

③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의 결단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죽음의 결단을 하는 자들에게 언제나 '구원'으로 응답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


출처 : 아침이슬같은 소치교회
글쓴이 : 소치교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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