香油를 드린 女人(요12장 1- 8) 2010. 7/4 주일 낮
속초에 가면 함경도 북청에서 피난 온 방태영, 최명길, 안석율 이 세 친구가 의기투합해서 시작한 교회가 있습니다.
이 세 친구는 젊어서부터 신앙이 뜨거워서 공산 치하에 있을 수 없어서 오직 신앙 때문에 고향에서 가장 가까운 속초에 와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장로교회가 없어서 잠시 감리교회를 다닌 그들은 아무래도 장로교회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해서 청학동에 교회를 짓기로 했습니다. 그들의 직업은 시계방, 대서사, 잡화상을 하였습니다. 교회를 짓기로는 하였으나 자금을 만들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 친구는 ‘우리가 피난 올 때 맨손으로 왔으나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서 이만큼 살게 되지 않았느냐,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 때문에 맨손이 되자’ 라는 합의를 하고 가진 것 전부를 팔아 교회 건축헌금으로 드리고 맨손이 되었습니다. 그 교회가 성민교회인데 강원 동부지역에 대표적인 교회가 되었고 세 사람 모두 그 교회의 초대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 분들은 다시금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속초에서 남부럽지 않은 경제적 안정을 이루었습니다. 현재는 그 세분들 모두 소천 하셨지만 후손들이 그 교회를 잘 섬기고 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한 집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이 잔치는 특별히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 만에 살려준 「나사로」와 깊은 연관이 있는 잔치였습니다. 그 사실이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그 식구들이 주도해서 잔치자리를 마련한 것 같습니다.
잔치가 한창 진행 중에 있을 때 나사로의 동생인 「마리아」가 들어와 자기가 지녔던 가장 중요한 물건인 순전한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그리고는 자기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주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갑작스런 사건에 그 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거기에 대한 반응은 물론 여러 가지였습니다. ①ꡔ마가복음ꡕ에 보면 비싼 향유를 허비했다고 유다가 분을 냈다고 했고, ②ꡔ누가복음ꡕ에는 아주 불경한 사건으로 보고 있으며, ③본문은 가룟 「유다」가 아주 이성적인 말로 「마리아」를 책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이 사건이 여러 사람들의 생각대로 값진 것을 허비한 낭비적인 일입니까? 이 일이 정말 비이성적이고 생각 없이 저질러진 몰지각한 일입니까? 그래서 화를 내야 할 일이냐 구요.
◉마리아가 300데나리온 이상의 가치 있는 향유를 부은 사건은 성도들의 헌신에 있어서 3가지 관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마리아의 관점으로 보겠습니다.
1) 마리아는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을 드렸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부은 향유는 순전한 나드향으로서 값으로 따진다면 300데나리온 이상이 되는 아주 귀하고 값진 것입니다.(한 데나리온이 당시 장정의 하루 품삯= 300일 품삯 x 100.000 = 3천만 원)
값도 값이거니와 이것은 마리아에게 있어서 가장 아끼는 귀한 보물이었습니다. 이것을 주님께 바쳤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기의 최선의 것을 바쳤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바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로부터 이런 헌신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나를 위해 자기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하시고 그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하나님께 어떠한 것이 합당한 영광이 되겠습니까? 최선의 것을 바치는 것입니다.
2), 마리아는 향유를 부었습니다.
향유는 원래 한 방울씩 사용하는 것입니다. 한 방울씩만 사용해도 충분한 향기를 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일년 이상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아낌없이 한꺼번에 부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굉장히 낭비하고 허비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일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것을 한번에 부었으니 낭비같이 생각될 수 있습니다.
헌신은 희생이 있어야 진정한 헌신입니다. 희생이 없는 헌신은 진정한 헌신이 될 수 없습니다.
천 만 원의 월급쟁이가 10만원 드리는 것은 쉽니다. 진정한 헌신은 자신의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학자들은 「마리아」가 이런 향유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결혼을 위한 준비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혼 필수품이랍니다. 그들의 해석처럼 이 향유가 결혼을 위해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면 마리아는 예수님께 헌신하기 위하여 결혼도 포기하고 결혼 이후의 삶도 희생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주님을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삶이 진정한 헌신의 삶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보면 주님께 향유를 붓는 모습이 너무나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몇 천 만원을 들여 결혼잔치를 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헌금은 고작 10만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 째째한 모습이 아닙니까?
풍성하게 마련하여 손님들을 최고의 수준으로 대접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칠순잔치의 감사헌금이 단돈 몇 만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절대 헌신이 아니고 진정한 감사도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붓지 말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와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에 마음껏 붓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잔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넘칠 줄 믿습니다.
3) 마리아는 향유를 붓고 그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겼습니다.
진정한 헌신은 종종 자신의 몸의 헌신을 요구합니다. 몸의 헌신과, 사랑의 헌신을 하나님은 요구하시고 기뻐하십니다.
헌신을 한다고 하면서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헌신이 돈으로만 하는 것이라면 돈 있는 사람은 헌신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돈이 없는 사람은 헌신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돈과 함께, 물질과 함께, 마음의 헌신 또한 몸의 헌신이 있어야 진정한 헌신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영국의 한 시골에서 아프리카인을 위한 선교와 의료사업을 위해 헌금을 하고 있었습니다. 헌금함이 쭉 돌아가면서 헌금을 담습니다. 그러는 중 한 소년 앞에 이르자 이 소년이 대뜸 그 그릇 위에 올라앉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무슨 짓이냐며 야단을 치자 그 소년은 “저는 돈이 없으니 제 몸을 바치겠습니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바로 맨 먼저 아프리카의 선교사가 된 저 유명한 「리빙스톤」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어린 소년이 “나는 돈이 없습니다. 내 몸을 바치겠습니다.”하며 죽기로 헌신하는 그 자세, 몸으로 헌신하려는 그 뜻을 깊이 생각하고 배워야 할 것입니다.
2. 가룟 유다의 관점으로 보겠습니다.
마리아가 이런 엄청난 일을 하였을 때 가룟유다는 화를 내면서 “이것을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왜 이렇게 낭비하느냐”는 반응을 보였는데, 이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이 되었고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말입니까? 그러나 그 마음 중심은 따로 놀고 있었습니다.
1) 가롯 유다의 이 말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진정한 마음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가 정말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닌 속과 겉이 다른 말이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말로만 한 몫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헌금이 잘못 사용되고 있다. 구제비가 적다. 선교비가 적다’고 비판은 잘 하는데, 정작 자신들의 헌금생활은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지 못하면서 말로만 한 몫 보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말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자신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구제도하고 선교도 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2) 가롯 유다의 이 말은 자기 욕심을 채우지 못한 아쉬움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 일행의 회계를 맡고 있는 책임자였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그 돈을 자기를 위해 빼돌렸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큰돈이 맡겨져야 자기 마음대로 큰돈을 착복할 수 있는데 그 기회가 무산된 것에 대한 화가 난 것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안 되고, 자기 뜻대로 안 된다고 화를 내거나 상대방을 비판하고 적대시해서는 안 됩니다.
3) 가룟 유다는 상당히 계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그 향유 값이 300데나리온이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상당히 계산적이라는 말은 계산 없이 무작정으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사건은 신앙생활을 할 때 너무 계산적이면 절대로 헌신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볼 때 헌금이나 헌신에 있어서 상당히 따지고 계산적인 사람일수록 헌신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땅을 팔아 헌금하려고 보니 너무 금액이 컸습니다. 그런 큰 금액을 놓고 계산하다가 일부를 떼에 놓고 전부를 바쳤다고 속였고 결국 계산적인 그들의 행동은 큰 화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돈이면 무엇을 할 수 있을 텐데, 한달 과외비를 낼 수 있을 텐데, 한달 생활비가 될 텐데…, 계산을 하다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전혀 계산적이지 않습니다. 그 넓이와 길이를 알 수 없습니다.
結論: 마지막 예수님의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은 마리아의 편이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룟 「유다」의 말이 정말 맞는 말이고 자기가 잘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상당히 민망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해있는 「마리아」를 향해 예수님은 “저를 가만두어라. 너무 비판하지 말라. 나무라지 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편에 서셨고 마리아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예수님이 옳다고 해야 옳은 것이고, 예수님이 잘했다고 해야 잘한 것이고, 예수님이 손을 들어주어야 승리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여러분의 삶을 판단하실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그 말씀과 뜻에 순종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것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은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영적 의미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것은 자기 오라비를 살려준 것이 너무나 고맙고 감사해서 부은 것이지 예수님의 죽으심과 십자가를 생각하고 부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단순한 사건을 ‘내 장사를 위해 향유를 부은 것’이라고 의미 있는 사건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받으시고 더 축복해 주십니다. 우리의 삶을 더 풍성하고 의미 있게 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귀한 일을 하는데도 기회가 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향유 붓는 사건에서 가룟「유다」가 제기한 가난한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그들은 항상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헌신할 수 있는 기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향유를 부을 수 있는 기회도 사실은 다시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곧바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붙잡히셨고 곧바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한 헌신의 삶을 항상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신 기회는 수식 간에 지나가니 화살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①기회를 붙잡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②기회를 귀하게 여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③교회에 어떤 일이 있으면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으로 알고 적극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④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회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내일 기회를 다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기회 지나가기 전에 추수하고 헌신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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