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둥병자가 된 게하시(왕하 5장20-27) 2010. 6/ 6 주일 낮
문둥병을 고친 나아만은 여호와의 놀라우신 능력을 알게 된 후에 아람으로 돌아가서도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다짐했지만 그의 신앙은 유일하신 하나님께 그의 전 생애를 양도하는 것은 아니었다.
1. 위대한 하나님의 종 엘리사의 청결한 신앙
1) 사례를 거절하는 엘리사
엘리사의 지시대로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음으로 문둥병에서 나음을 입은 나아만은 그 치료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값비싼 재물로 보상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 선물을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물질이 필요한 이 땅에 살면서 물질을 초월한 신앙 이것이 엘리사의 위대한 면입니다.
2)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는 엘리사
사실 엘리사는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나아만의 물질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뿐만 아니라 그 물질을 그가 가르치고 있는 가난한 생도들을 위해 쓸 수 있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떳떳치 못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나아만의 사례를 거절했을까요? 그것은 '나아만의 문둥병을 낫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그러기에 영광을 받으실 분은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한 번 더 생각하였을 것이고 '이스라엘 외에는 하나님이 없도다.'하던 그의 신앙을 더욱 굳힐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물질주의에 오염되어가는 성도와 목회자들에게 엘리사가 보여 준 이 신앙은 단지 '자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진실로 감사와 예물이 드려져야 할 유일한 대상은 여호와 한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3) 엘리사의 지혜로운 답변
나아만이 림몬 숭배와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하는 문제로 고민하면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할 때 엘리사는 나아만이 듣기 좋은 '예'와 '아니요'의 답변보다는 '평안히 가라'고 응답했습니다.
①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을 데리고 온 무리들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고 한 것이나,
②납세에 대한, 바리새파 제자들과 헤롯당원들 앞에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마 22:15-22)라고 명답을 주신 것과 같은 지혜입니다.
어쨌든 엘리사가 그의 질문에 언급을 회피한 것은 그 스스로 자신의 신앙을 결단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답이었던 것입니다.
2. 나아만의 개종과 신앙의 문제점
나아만은 기적적인 치유 덕분에 하나님을 믿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고 결심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제단을 만들기 위해 흙을 가져가겠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개종은 완벽한 것도 아니었으며, 철저한 것도 아니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1) 하나님께 대하여 무지한 나아만
오늘날 기독교인들 가운데도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여 죄를 짓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여기서 나아만은 그를 치료해 주신 하나님께 단순히 감사하는 보답으로 그를 믿겠다고 했습니다.
①그의 무지함은 15절에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 아나이다.'라고 말한 데서 잘 나타납니다.
② 다음은 나아만이 하나님을 섬기겠다면서 '노새 두 마리에 실은 흙을 주소서'한 데서 그의 무지함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즉 그는 이스라엘 땅 안에서만 예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제단에 사용될 흙을 이스라엘에게 가져가려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상천하지에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인식 부재가 그를 이렇듯 온전한 결단으로 이르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2) 혼합주의적인 신앙 소유자 나아만
나아만은 자신에게 한 가지 문제점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 문제란 아람에 돌아가 아람 왕과 함께 림몬의 신전에서 절하는 문제가 있는데 이것을 하나님께 잘 말씀드려서 용서해 주기를 원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되는데 하나님과 우상 숭배를 결코 병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① 이것은 또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으며 (마 6:24),
②한 총알로 두 개의 목표물을 동시에 맞힐 수 없다는 것과 똑 같은 원리입니다.
이러한 나아만의 자세에서 우리는 그의 회개가 철저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여러분의 삶에서도 이런 이중적인 신앙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풍속을 좇는 생활을 한다면 이런 신앙을 나아만보다 결코 낫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때때로 자신의 행위가 범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죄를 끊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나아만은 자기가 앞으로 우상 숭배에 참여하는 것을 용서해 달라고 했다. 이러한 기도는 앞으로도 죄를 지을 테니 용서해 달라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올바로 인식한 신앙의 기도라고 할 수 없다.
3. 문둥병자가 된 게하시(왕하 5장20-27)
본문에서는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어리석은 욕심 때문에 엘리사를 속이다가 문둥병에 걸리게 된 경위를 기록하고 있다. 게하시는 잠시 근시안적인 물욕 때문에 자기의 자손에게까지 미치는 유전성 문둥병의 저주를 받은 것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참조, 딤전 6:10).
재물의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고 재물을 얻는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많은 죄를 범하고 그 죄의 대가로 형벌을 받게 되는 많은 인물들을 우리는 성경이나 역사 속에서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분수를 넘어 욕심을 부리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기적인 관계로 밖에는 지속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도 돌이킬 수 없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1) 욕심은 거짓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탐심과 거짓말은 같이 옵니다. 재물을 취하고자 하는 불타는 욕망은 게하시에게 나아만을 쉽게 속일 수 있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게 했습니다(참조, 21-23). 게하시는 '선지자의 생도 중 두 소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 왔으니'(22절)라는 말로 주인 엘리사의 생도의 수, 장소, 특성을 얼마나 완벽하게 고안해 냈습니까! 돈을 사랑하게 되면 정직해지고 순수해지기가 어렵습니다. 탐심은 또 다른 사악함을 낳게 됩니다. 세속적인 마음속에는 많은 허위와 거짓이 들끓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속적인 생각의 노예가 되지 말고 거짓에 대처해야 합니다.
2) 욕심은 당당하지 못하고 속이고 몰래 하려고 합니다.
완전한 기교와 비밀로 진행된 모든 것이 이미 그의 주인 엘리사에게 알려졌다는 것을 게하시는 거의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는 거짓말을 해서 여전히 이중성을 숨기려 했습니다. 포페(Pope)는 말하기를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그가 얼마나 힘든 일을 감행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거짓말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더 많은 거짓말로 그것을 은폐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예언자적인 통찰력으로 게하시의 사악함을 발견하고, 지금이 어찌 은을 받을 때냐? 라고 단호하고 신실한 충고를 하였습니다. 그처럼 흉악한 죄로 인해 무서운 판결을 기다리며 단호한 주인의 책벌 앞에 창백하게 떨고 서 있는 불쌍한 게하시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처럼 돈만 사랑하는 세속적인 인간들이 있다면 우리들이 충고자가 되어 그를 경고해 주고, 견책해서 그들이 깊이 뉘우치고 깨달아 선한 사역에 동참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3) 욕심은 무서운 파멸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27절).
죄에 따르는 형벌이 주어졌습니다.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① 그는 가장 혐오스런 형벌을 받아 살아 있는 시체가 되었습니다. 건강한 육체와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 가벼운 주머니와 수수한 옷차림으로 남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②그의 죄악은 자손 대대로 영원히 읽혀지게 될 것입니다. 후손들은 '게하시의 탐심과 거짓과 신성 모독을 보아라.'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처럼 자자손손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저주 속에서 게하시는 평생토록 후회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를 따르지 못합니다. 게하시는 모든 것을 비밀리에 관철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세상에 밝히 드러내어졌고 결국 사함 받지 못할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불의한 일들이 숨겨질 수 는 없습니다.
結論: 돈의 유혹은 게하시 뿐만 아니라 현대의 모든 신자에게도 심각한 것이다. 신자는 전쟁이나 질병 등, 타인이 당한 고난을 돈 버는 방편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남에게 계약 조건대로 했으니까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다고 하는 자세로 살아서도 안 됩니다.
▶(약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도(종교)와 양심을 넘는 욕심은 자신도 죽고 자손들까지 망하게 하는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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