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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의 恩惠라(고전15장 9-11)

하나님의 恩惠라(고전15장 9-11)             2010. 6/27 주일 낮  

    

큰 전쟁을 막은 한 줄의 글 

2001.11.29, 남미의 아르헨티니와 칠레는 양국의 우호를 다지기 위해 국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동상을 세웠다. 그런데 이 동상으로 인해 오히려 두 나라는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기를 맞았다. 왜냐하면 그 동상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 때 칠레의 어떤 사람들이 ꡒ예수님 동상이 칠레에 등을 돌리고 계신다.ꡓ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사실 동상 전면은 아르헨티나를 향했고 뒷면은 칠레 쪽을 향하고 있었다. 이 일은 칠레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분노케 했다.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거칠어갔다. 양국간의 감정이 나쁜 방향으로 치닫고 있을 때 이를 명쾌하게 극복하는 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칠레의 한 기자가 신문에 쓴 재치 있는 기사였다.ꡒ예수님의 얼굴이 아르헨티나를 향하여 서계시는 이유는 아르헨티나가 칠레보다 더 예수님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라이기 때문이다.ꡓ 이 기사는 칠레인의 고조된 감정을 가라앉힐 만큼 큰 감동을 주었다. 한 사람의 긍정적이고 평화적인 마음이 두 나라의 엄청난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성경은 언제나 ꡒ(롬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 하라.ꡓ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고후 11:5 ; 12:11)고 하였습니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란 바울의 이 고백이 그 엄청난 난관을 무릅쓰고 복음을 온 세계에 선교할 수 있는 그러한 길을 열어 놓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과거에 무지하여 생명의 주를 멸시하고 교회를 핍박했던 죄인 중의 괴수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 주의 일꾼으로 세우심을 받았으니 그 감격이 일생을 붙잡고 있었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의 역사에서 바울만큼 큰일을 감당한 사도가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수 없는 매를 맞고 죽음의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온갖 위협과 배고픔을 참아가며 조금도 쉴 사이 없이 오직 복음 선교에만 전념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항상 과거 자신이 예수를 핍박했던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생각만하면 한없이 부끄럽고 왜소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1. 그의 사도됨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복음의 일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 로라.'(10 절).


전차좌석 양보 안 해 잃은 대사직  2001.12.05, 10:54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이 의원이었을 때 한번은 퇴근시간에 전차를 탔다. 할머니 한분이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올라왔으나 아무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할머니는 그 짐을 전차 맨 뒷자리까지 끌고 가 복도에 서있었는데 전차가 흔들려서 제대로 서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일어나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 할머니가 서있던 자리 앞에 한 사람이 앉아있었는데 할머니를 보고는 일어나는 대신 읽고 있던 신문을 더 바싹 얼굴에 대고 못 본 척했다. 매킨리는 일어나서 그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후에 매킨리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마침 대사 후보 명단이 올라왔는데 검토해보니 옛날 전차 안에서 신문으로 자기 얼굴을 가린 그 사람이 들어 있었다. 그가 젊었을 때 행한 예의 없는 작은 행동 때문에 그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 때 전차 안에서 매킨리가 자기의 무례함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일을 맡겨 주신다.(마25:23)ꡒ죽은 파리가 향 기름으로 악취가 나게 하는 것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로 패하게 하느니라.ꡓ(전도서 10:1)


바울은 핍박 자가 변하여 전도자가 된 사람입니다.  바울은 기독교의 복음을 세계에 선교할 그릇으로 이미 준비되어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가 중심이 된 기독교는 자칫 유대주의 화하여 복음이 율법을 초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에비온파'라고도 부르는데, 이 운동은 사도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도 할례 받는 것을 동의하였고, 베드로는 율법의 관례에 따라 이방인과 음식 먹는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즉 기독교는 율법주의를 크게 벗어날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은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심으로써 복음이 세계로 뻗어나가도록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그 점에서 바울의 회심은 매우 독특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은 바울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큰 은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2. 그는 다른 어떤 사도보다 더 큰 사도였습니다.(핍박 자가 전도자 됨)

▶ '내가 아무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고후 12:11).

바울은 그 어떤 사도보다도 큰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었고,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자신을 겸비하고 겸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실 지나친 자기 비하나 겸손은 교만에 속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은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의 고백이요, 자신을 은혜로 불러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이며, 예수를 친히 따르던 다른 사도에 비해 부족함이 많다는 겸손의 고백입니다. 그가 비록 다른 어떤 사도보다 더 큰 역사와 이적을 나타내었으며,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였다 할지라도 자신의 과거는 경망되어 인간됨이 만삭되지 못한 자와 같고, 행위는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한 자이므로 그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할 것밖에 아무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의 이 겸손의 미덕이 오늘날의 기독교로 하여금 세계를 구원하는 터전이 되게 하였고, 그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복음에 빚진 자라는 의식을 갖게 하여 세계 만민을 구원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일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오래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어느 한인 안경점에서 텔레비전 광고를 하였습니다. 그 광고의 멘트는 안경점 주인이 나와서 어눌한 말투로 “내가 아는 것은 안경밖에 없습니다.”라고 하는 한 마디였습니다. 이 광고가 당시에 큰 히트를 쳤습니다. 그리고 어느 해에는 최고의 광고로 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안경점에서 안경밖에 모른다는 것은 자랑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스콜라 철학을 집대성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가톨릭 신학의 거장입니다. 아퀴나스는 훌륭한 학자이며 동시에 경건한 수도사였습니다. 그는 ‘천사와 같은 박사’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수도원에서 기도하던 중 예수님께서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주님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아는 것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고전15:31)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 로라.


3. 그는 참된 겸손의 미덕을 나타내었습니다.(사용되어  열매 맺힘을 감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 로라'(10 절).

우리는 사도 바울이 얼마나 피 땀 흘린 수고를 했는가를 알고 있습니다(참조, 고후 11:23-29).

▶(고후11:23-27)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그러나 그 많은 수고에 참고 견디며 열매를 거두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느낄 때 그에게는 자만이나 자고함이 있을 수 없었고 오직 감격뿐이었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이 태도에서 은혜를 크게 받은 사람일수록 더욱 겸손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조금도 가식이 없는 겸손의 자세야말로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며 겸비를 나타내나 속으로는 자만으로 가득 차 존경받기만을 원하는 사람에게서는 아무런 향기도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만한 자는 그 결국이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하고 그에게서는 인간만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야말로 진실로 겸손의 미덕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結論: 보통 목회자들이 어떤 교회를 개척하여 그 교회가 크게 부흥하게 되면 '원로 목사' ‘원로장로’ ‘원로권사’ 등의 위치로 물러나게 되는데 그것보다는 오히려 젊을 때의 열정을 가지고 작고, 약한 교회를 섬기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하고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 - 멘

출처 : 아침이슬같은 소치교회
글쓴이 : 소(所)치(峙)교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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