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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仰人이 갖춰야 할 基本(시33장 1-22절) 2010. 7/11 주일 낮

信仰人이 갖춰야 할 基本(시33장 1-22절)        2010. 7/11 주일 낮 

                          


  얼마 전 우리나라는 ‘기본이 바로 서는 나라’라는 구호가 가득하였습니다.  정치가 어지럽고, 경제가 흔들려 고통을 당할 때 나라를 새롭게 하려는 의지가 이런 구호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기본을 바로 세운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지금 경제를 걱정하지만 사치와 허영을 버리고 열심히 일하는 사회의식을 이룬다면 경제난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정치를 걱정하지만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고 정직으로 기강을 세우면 회복할 수 있습니다. 나라의 어려움은 국민들이 기본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바로 세워야 할 것은 경제나 정치만이 아닙니다. 신앙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왜 신앙의 회복과 믿음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신앙과 삶은 서로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과 삶은 언제나 같이 움직입니다.  신앙이 푸르면 삶도 푸르게 되고 신앙이 변질되면 삶도 변질되어 타락하고 신앙이 변화되면 삶도 변화되어 새로워지는 삶이 되니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된 삶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배에 성공하는 사람이 삶도 성공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사람들과의 관계도 성공합니다. 영혼이 잘되는 사람이 건강하며 범사에 잘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성은 우리의 삶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기본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간에 대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이 부족하면 시간을 규모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고 절제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또한 자신들의 생각과 기분에 맞추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예배드리는 일이며 봉사하는 일에 열심입니다. 그러나 기분이 안 좋거나 생각이 복잡해지게 되면 예배며 봉사며 다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기본이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영성의 삶이라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몇 시간씩 오랫동안 기도를 해야 영성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세속의 일을 모두 버리고 교회에만 있고, 기도원에만 있어야 영성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를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고, 종일토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그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서 삶을 점검하며 하루를 마치는 삶이 영성의 삶입니다. 일하면서 찬송하고, 걸으면서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무슨 일이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하나님께 기도하며 사람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기본이 바로 서있는 성도의 생활은 행복합니다. 즐거움을 늘 맛보며 살아갑니다.  상황과 현실에 따라 요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낙심할만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품습니다. 미워할 만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용서하고 사랑합니다. 

신앙인은 세상 어떤 사람들의 삶보다 행복합니다. 마땅히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세상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신다면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먼저 신앙의 기본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기본이 무엇입니까? 점검해야 할 사항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하나님과 어떠한 만남을 갖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신앙인이 가져야 세 가지의 모습을 통해 기본을 바로 세우자고 말합니다.


1. 신앙의 기본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찬송이 회복되면 신앙이 회복되고, 삶이 회복된다.)

1절 2절 3절은 계속하여 말하기를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하였습니다. 말로만이 아닌 몸짓으로, 악기로 최선을 다하라고 말합니다. 수금과 열 줄 비파로 연주하며 찬송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준비된 찬송을, 연습된 찬송을, 정성을 다한 찬송을 드리라고 말합니다. 대충 부르는 노래도 아니며 자신의 감정과 흥에 따르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집중하며 온전히 드려지는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이 말씀은 찬양대에게만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묵상도 없이 이리저리 돌아보며 딴 생각으로 부르는 찬송은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찬송이 아닙니다. 이러한 자세로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듯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찬송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은 하나님께 드려질 악기입니다.

▶ 롬 6:13-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같은 병기라도 죄악을 저지르는 일에 사용될 수도 있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에서 ‘병기’라는 단어는 ‘악기’라는 단어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같은 악기라도 어떤 사람이 연주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거지가 동냥하기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하였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연주자가 그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하자 지나가던 모든 사람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 연주를 들었답니다. 바이올린의 대가 「피가니니」의 일화입니다.

여러분의 몸이 병기이며 악기입니다. 여러분의 삶으로 연주하는 것입니다.

수금과 열 줄 비파로 연주하듯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최고의 찬송을 올려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3절은 이어 말하기를 새 노래로 노래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새롭게 작사 작곡된 노래가 아닙니다. 새 마음으로 불려지는 노래입니다. 같은 곡이라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새롭게 하면 연주가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까?  왜 온 몸으로 삶으로 하나님께 연주하여 드려야 합니까?  그분은 말씀으로 하늘을 지으시고 만상을 입 기운으로 이루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6절). 

우리는 다른 이유보다도 나를 만드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그분의 전능하심 때문에, 그분의 이루 말할 수 없이 높으심 때문에 찬송합니다. 하나님은 찬송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창조이심을 늘 기억한다는 말입니다.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주이심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기본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영성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며,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이 피조물인 것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잘 보여야 할 존재들이며,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해야 할 존재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 때 교만하지 않게 됩니다.  진실하게 됩니다.  섬길 줄 아는 낮아짐의 삶을 살수 있습니다.  겸손과 진실과 섬김이 있는 영성의 삶을 사시기 축원합니다.


2. 신앙의 기본은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경외한다는 말은 찬송과 같은 축입니다. ①하나님을 높인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②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③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존재를 잘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은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씀과 더불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말씀이 같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자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경외는 ①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게 하며, ②사랑할 수 있게 하며, ③또한 구원을 이룰 수 있게 합니다.

▶ 빌2장12절-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과 경건한 삶으로 구원이 완성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을 경외합니까? 본문 9절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히 1장 3절-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고 하였습니다.  만물을 지으실 뿐만 아니라 지으신 만물을 말씀으로 세우시고 붙드시며 운영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안다면 경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0절의 고백처럼 열방의 도모를 패하시고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는 하나님을 어찌 경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분의 능력 앞에 무릎을 꿇고 조아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신앙인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본을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참된 신앙인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13,-14절에서 이렇게 일침을 가합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 하시도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감찰하시고 하감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삶을 삽니까?  왜 구별된 존재로 살아가지 못합니까? 성도의 기본이 무너지는 이유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운전하다가도 감시카메라는 용케 발견하고 속도는 줄이면서 삶의 구석구석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발견하지 못합니다. 삶의 속도를 조절하며, 절제할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눈앞에서 사는 것이 갇힌 것 같고 자유가 없는 것 같지만 그것이 진정한 자유이며, 행복입니다.

양이 목자를 떠나 제 갈 길로 가는 것이 자유이고 행복 같지만 그 길은 죽음의 길입니다. 슬픔의 길입니다. 눈물의 길입니다.     그러니 성도는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행복하며 즐거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인생은 행복합니다.


3. 신앙의 기본은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인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는 것에 있습니다. 세상의 다른 것들은 진정한 힘이 되지 못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앙의 기본을 세우지 못한 사람들은 세상 적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합니다. 사람의 힘과 지혜와 능력을 의지합니다. 문명을 의지하고 기계를 의지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우리를 구원할 힘은 없습니다.

16-17절에서 말씀합니다.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 도다.  구원함에 말은 헛것임이여 그 큰 힘으로 구하지 못하는 도다.”

세상의 군왕들이 수많은 군대를 양성하였지만 그 군대의 힘으로 끝까지 나라를 지키고 자신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군대의 힘으로 어찌하지 못하는 난관이 수없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최강대국인 미국의 울창한 산림에 불이 났을 때 주정부 군인들이 동원되고 연방의 군인들이 동원되었지만 조금도 불길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온 국민이 걱정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비가 내렸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이 동원되어도 잡을 수 없었던 산불이 삽시간에 꺼져버렸습니다. 인간의 힘과 자연의 힘이 가지는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였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외에도 사람이 가진 힘과 지혜와 능력이 얼마나 무기력한지 많은 사건들을 통해서 깨닫곤 합니다.

누가 영혼을 사망에서 건질 수 있습니까? 누가 기근에서 살게 합니까? 하나님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 사 건지시고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기자는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과 방패 시 로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한 자만이 그 마음에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힘을 공급받기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의 기본은 세워가지 않습니다. 날마다 말씀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보면서 비뚤어지고 바르지 않은 것을 하나하나 고쳐나갑시다. 생각까지도 성령의 능력 가운데 바꾸어 갑시다.  바르지 않은 신앙의 습관을 깨닫고 고쳐 나갑시다. 그래서 날마다 변화 받고 새로워지는 복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 -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