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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기에-사 53:1~6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기에-사 53:1~6
이름 김광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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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화가 슈테른베르그(Sternberg)는 교회의 요청에 의해 예수의 여러 모습을 담은 성화를 그렸습니다. 한번은 나체모델을 놓고 그림을 그리는데, 화실 한 구석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이 놓여 있었습니다.

독일의 화가 슈테른베르그(Sternberg)는 교회의 요청에 의해 예수의 여러 모습을 담은 성화를 그렸습니다. 한번은 나체모델을 놓고 그림을 그리는데, 화실 한 구석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이 놓여 있었습니다. 모델이 생각 없이 물었습니다. “저 그림은 무엇인가요?” 그러자 그는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는 장면을 그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모델이 우리의 죄라고요, 그러면 당신의 죄와 저의 죄를 위해 죽으셨단 말인가요?” 라고 물었습니다. 슈테른베르그는 아무 생각 없이 물론, 그렇고말고대답하였는데 그 순간 가슴이 무너져 내릴 듯 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그를 강하게 붙드신 것입니다. 그날 밤 자신이 대답했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하다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9장을 묵상하다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다시 그렸습니다. 그 그림이 바로 유명한 에케이 호모(Ecci homo-이 사람을 보라)”라는 성화입니다. 슈테른베르그는 예수의 성화를 그리는 화가였지만 예수를 진정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다시 만났을 때 영성이 회복되었고, 그의 그림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변화될 수 있었습니다. 슈테른베르크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삶의 목적과 방향이 정해졌습니다. 실제로 이 사람을 보라는 그림을 보고 찬송작가 프랜시스 해버갈은 내 너를 위하여라는 찬송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진젠돌프 백작은 그림을 통해 은혜를 받고 모라비안 교파를 만들어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다는 사실을 믿기만 하면 이처럼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사야 53장은 이사야 선지자가 7백년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예언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시제가 미래형이 아니라 과거완료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구약에서 자주 사용되는 어법으로 예언적 과거라고 말합니다. 즉 미래에 일어날 일이지만 확실하기에 완료된 것처럼 표현하는 것입니다. 마치 옆에서 스케치한 것처럼 생생합니다. 이 사건은 시간을 넘어 예수가 당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으로 정확히 성취되었습니다.

본문 6절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지우셨습니다. 여기의 담당하다는 말은 파가인데 만나서 중재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무거운 짐을 지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사건은 과거의 사건으로 머물러서는 결코 안 됩니다. 나의 것이 아니 남의 것이 되어서는 더욱 안 됩니다. 또 막연하게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으로도 부족합니다. 죽어 마땅한 나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으며, 나의 죄를 담당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심으로 우리에게 미치는 효력은 무엇입니까? 과연 어떠한 은총을 누리게 되었습니까?
 

첫째로 사함을 얻었도다

스펄전(Charles H. Spurgeon) 목사가 거리를 지나가는데, 한 소년이 새장에 든 새를 못살게 굴고 있었습니다. “그 새를 어떻게 할 생각이냐?” 라고 묻자 가지고 놀다가 싫증나면 죽여 버리죠 뭐대수롭지 않게 소년이 대답합니다. “차라리 나에게 팔지 않으련?” “100달러 주면 팔지요.” 100달러는 당시 거금이었습니다. 스펼전 목사는 그 돈을 주고 새를 샀습니다. 며칠 후 주일날 새장을 들고 강단에 올라갔습니다. 새장을 자그마치 100달러나 주고 산 내력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설교하기를, “하나님은 악마에게 물으셨습니다. ‘너는 인간들을 어찌할 셈이냐?’ ‘질투하고 미워하고, 싸우는 것을 가르쳐 잠시 가지고 놀다가 죽여 버리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사고 싶은데 얼마면 되겠느냐?’ 악마는 웃었습니다. ‘이것들을 사서 뭐하시게요? 그들은 당신을 배반하고, 침 뱉고 십자가에 매달 것입니다. 그래도 사시겠다면 당신의 눈물과 피를 내놓으세요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당신의 눈물과 피를 내놓으셨습니다. 즉 독생자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 우리에게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설교를 마친 스펄전 목사는 새장을 열어 새를 날려 보내어 주었습니다.

본문 5절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구약시대는 어린 양의 머리에 안수를 한 후 그 다음에 도살하였습니다. 그러면 흠 없는 어린 양이 피를 흘리고 죽어갑니다. 양이 애매하게 죽는 이유는 죄를 대신하기 위해서입니다. 죄가 어린 양에게 건네지고, 어린 양의 의가 인간에게 건네지는 것입니다. 양측에서 서로 전가하는 것인데 이중전가(Double Imputation)라고 부릅니다. 즉 십자가에서 나의 죄와 예수의 의가 맞바꾸기를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왜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습니까?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예수께서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가 피를 흘리신 것은,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711절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죄의 값은 사망이고, 피는 생명이기에 결국 피흘림이 없이는 구원받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 결과 예수께서 죄 없는 몸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쏟으시고 죽으신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그리스도의 공로로 죄 사함이 이루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평화를 누리도다

헨리 나우엔(Henri Nouwen)은 예수의 삶을 상처받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라고 말합니다. 예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와 조롱을 받았습니다. 가족으로부터 거절 받으셨고, 제자들로부터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당하셨고,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는 상처투성이의 삶이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받았던 상처 때문에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았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자학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상처받은 사람들을 가슴에 끌어안고 치유하시었습니다. 온 인류의 상처를 체험하신 분이 온 인류의 상처를 치유하는 위대한 치유자가 되셨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치료하시기 위해 스스로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목숨까지 십자가에 던지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가난한 자, 고통 받는 이웃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언제까지 상처만을 끌어안고 신음하겠습니까? 가슴을 열고, 손을 펴서 아직도 고통 받고 있는 자들을 위로하는 평화의 손길이 되어야 합니다. 눈물 흘리고 있는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합니다. 지치고 쓰러진 자들 곁에 서주고, 붙들어 주고, 일으켜주는 평화의 전달자가 되어야합니다.

본문 5절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여기의 평화건강, 안전, 번영을 의미하는 샬롬입니다. 그리스도가 죄악을 담당하심으로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사람들과 평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평화를 주시기 위해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평화를 주시기 위해 창에 찔리셨고, 채찍에 맞으셨고 피흘리며 죽으셨습니다. 찔림과 상함이라는 대가를 치르셔서 평화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들이 평화를 위하여 일하게 되었습니다.

죄는 모든 관계를 불화하게 만들고 불통으로 이끕니다. 왜 인간관계가 꼬입니까? 서로 미워하고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속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성도와 성도 사이를 이간질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삶을 평화의 관계로 회복시켜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를 주시려 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평화가 넘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평화를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평화의 창조자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로 나음을 받았도다

어떤 여인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하여 영양주사만 맞았습니다. 의사가 진찰을 하여도 병의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정신과에서 상담을 통하여 여인의 과거 문제를 발견하였습니다. 결혼하기 전, 순간의 잘못으로 정조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신체 마비 현상도 왔습니다. 기도가 마비되어 숨을 쉴 수 없고, 식도가 마비되어 아무 것도 소화시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찾았지만 죄책감을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의사들은 병원 원목께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원목은 여인과 상담하는 중에, 그녀가 어려서부터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목은 여인에게 죄 용서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 물었습니다. “당신의 죄를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알고 있습니까?” “, 압니다” “그것을 믿습니까?” “믿습니다” “그러면 당신의 죄는 이미 용서 받았습니다. 용서받은 증거로 성찬식을 행하실까요?” 원목은 성찬식을 행했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죄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살입니다. 이것은 당신의 죄를 씻어 주기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마시지 못하던 여인이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그리고 마비 상태가 풀렸습니다. 여인은 먹을 수 있게 되어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질병의 올무에서 그녀를 해방한 것입니다.

본문 5절입니다.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여기에서 나음라파인데 꿰매어서 고치다라는 의미입니다. ‘치유하다, 건강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우리는 병에서 놓여 건강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로 육체의 모든 질고를 담당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면 질병 대신 치유와 회복을 주십니다. 아픈 상처가 있습니까? 주님 앞에 낱낱이 털어 놓으십시오. 있는 마음 그대로, 아픈 그대로, 흘린 눈물 그대로, 고통스러운 그대로 주님 앞에 내어놓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그리스도께서 만지시고 치유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낫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악을 담당하심으로 온갖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셨습니다. 슬픔을 내놓으면 그 대신 기쁨을 주시고, 불안을 내놓으면 그 대신 평안을 주십니다. 그리고 절망을 내놓으면 그 대신 소망을 주십니다. 적극적으로 십자가의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 은혜는 구원을 주실 뿐 아니라 평강을 주시고 질병의 문제를 비롯한 모든 삶의 영역에서 놀라운 영향력을 미치는 전인적인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우루과이의 한 작은 성당의 벽에 써있는 반성하는 주기도문의 내용입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를 할 때, ‘하늘에 계신하지 마십시오. 세상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라고 하지 마십시오. 자기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하지 마십시오. 아들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고 하지 마십시오.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옵시며하지 마십시오.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지 마십시오.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하지 마십시오. 가난한 이 들을 못 본체 하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하지 마십시오. 죄 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하지 마십시오.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주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행동은 없고 말만 무성한 형식적 기독교인들을 비판하는 대목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가 나의 왕이요. 나의 주인이요. 나의 중심이요. 나의 푯대요, 나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를 통해 출세하고, 예수를 통해 병이 낫고, 예수를 통해 복을 받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를 따라가노라면 덤으로 허락하시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이 목적이 된다면 신앙은 진실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고자 독생자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늘 감격하여야 합니다. 내가 범한 죄 때문에 예수께서 모든 죄악을 담당하시고 죽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기에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질병에서 나음 받음을 믿고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03-28 22:2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