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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70115]믿음의 사람은 바라보는 것이 다르다./ 히브리서 11:1

믿음의 사람은 바라보는 것이 다르다.

히브리서 11:1(설교자: 비전교회마경훈 목사)

 

여러분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의 사전적 의미는 믿는 마음입니다. 믿는 마음은 성경적인 믿음을 설명해 주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믿음에서 중요한 것은 믿음의 대상입니다.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본문은 믿음에 관해서 두 가지 정의를 내려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믿음의 정의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여기서 바라다는 말은 헬라어로 엘피조라는 단어인데 뜻은 기대하다. 바라다. 소망하다입니다. 그리고 실상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휘포스타시스라는 말입니다. 뜻은 본질, 실체, 확신, 계획등입니다. 풀이를 하면 바라는 것들, 소망하는 것들, 기대하는 것들이 실제가 되는 것, 실상이 되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믿음의 대상과 방향입니다. 누구를 바라는가, 무엇을 바라는가입니다. 아무나 바란다고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신천지의 이만희를 바라는 것은 성경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 믿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천국에 갈 수도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헛된 욕망을 바라는 것도 믿음이 아닙니다. 아무것이나 바란다고 그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두 번째 믿음의 정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을 가지면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믿어진다는 말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마치 증거를 본 것처럼 믿어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 중에 주님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부분이 직접 자기의 눈으로 주님을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에게 주님이 살아계시는 것을 믿느냐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아멘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거짓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믿어지기 때문에 아멘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죠? 이상하게도 주님을 본적이 없는데 믿어집니다. 마치 주님을 눈으로 본 것처럼 믿어집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로부터 믿음의 선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주님을 확신할 수밖에 없는 내적인 증거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중에는 영적인 체험을 통해서 천국을 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국을 눈으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천국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아멘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역시 여러분은 이 대답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믿어지기 때문에 아멘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상하게도 천국을 본적이 없는데 믿어집니다. 마치 천국을 눈으로 본 것처럼 믿어집니다. 그 이유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믿음의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안에 천국을 확신할 수밖에 없는 증거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믿음을 가지면 바라는 것이 실상이 됩니다. 믿음이 실제가 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면 기도하는 것이 실상으로 나타납니다. 조건은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응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시고 또 응답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 편에서는 믿음의 기도를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너의 하나님은 너무 작다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네 인생의 크기는 네가 믿는 하나님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여러분은 얼마나 크신 하나님을 믿습니까?

알렉산더 대왕 곁에 늘 지혜를 빌려주던 늙은 장수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전역을 하고 고향 마을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더가 퇴역하는 장수에게 한 가지 소원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 장수는 폐하, 제게 폐하께서 점령하신 나라 가운데 한 나라를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주위에서 듣고 있던 다른 장수들이 폐하의 나라를 요구하는 것은 불경죄라고 화를 냈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더는 크게 웃으며 오히려 기뻐했다고 합니다. “한 나라를 가져라. 그대는 내가 나라 하나라도 줄 수 있을 만큼 큰 자로 인정했도다. 그대는 내게 큰 영예를 안겼도다. 가져라!” 알렉산더는 한 나를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또 줄만한 그릇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하물며 우리 하나님이시겠습니까?

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믿고 구하면 무엇이든지 다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기도제목이 되었든 상관없습니다. 믿고 구하면 다 받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무엇이든지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큰 기도제목도 믿고 구하면 응답받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믿음의 기도로 태양도 10도 물러가게 했습니다. 여호수아도 믿음의 기도로 태양과 달도 멈추게 했습니다. 믿고 구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기도해도 믿지 못하면 못 받습니다. 아무리 큰 소리로 기도해도 믿지 못하면 못 받습니다. 40일 금식을 하고 10년 철야를 해도 믿지 못하면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울고불고 소리를 치면서 기도해도 믿지 못하면 응답은 없습니다.

1:6-7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라고 하십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님께 응답받기를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믿는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대상이나 믿음의 방향이 잘못 되었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합니다.

오늘 설교는 본문에서 말하는 믿음의 정의 2가지 중에서 첫 번째 정의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에서 누구를 바라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즉 믿음의 대상과 믿음의 방향을 다루겠습니다.

오늘 설교는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제대로 된 믿음인가를 살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만약 자신의 믿음의 대상이나 믿음의 방향이 잘못 되었다면 회개하고 돌이켜서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을 가지시고, 여러분의 믿음이 여러분에게 실제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1. 사람이 아닌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유일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아버지 앞으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분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10번만 불러봅시다.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러분! 믿음의 주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신 분입니다.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신 분입니다. 그분 안에 구원이 있고, 그분 안에 영생이 있고, 그분 안에 천국이 있고, 그분 안에 하나님의 자녀됨의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만 바라보면 흔들림이 없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보지 않고 사람을 보면 흔들리는 종교생활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시대는 마지막 시대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시대는 흔들리는 시대입니다. 요동하는 시대입니다. 믿음이 흔들립니다. 예배생활이 흔들립니다. 교회생활이 흔들립니다. 신앙의 지진과 쓰나미가 몰려오는 시대입니다.

요즘 신앙인들에게 오는 영적인 지진은 작년에 경주에서 일어난 5.4 정도의 지진이 아닙니다. 역사상 최대의 지진은 1960522일 발생한 칠레대지진입니다. 리히터 규모 9.5의 강진이었습니다. 지진에 의해 25미터나 되는 쓰나미가 일어나서 칠레 해안을 강타했습니다. 빌라로 치면 10층 높이 정도 되는 쓰나미였습니다. 진앙에서 10,0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파고가 10.7미터였습니다. 이 쓰나미는 태평양을 건너서, 하와이의 힐로를 황폐화시켰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이런 영적인 지진과 쓰나미가 우리의 영혼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 영적인 지진과 쓰나미로 사람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무너집니다. 전에는 예배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예배에 별 관심이 없어지는 시대입니다. 전에는 기도에 사력을 다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영적으로 자고 조는 시대입니다.

영적으로 흔들리는 이유가 많습니다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사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봐야 하는데 사람을 봅니다. 여러분! 목사도 여러분의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기도 많이 하는 어떤 사람도 여러분의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앞장서서 일하는 일꾼들도 여러분의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다윗의 고백입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항상 자신의 앞에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자기를 무너뜨리려는 사람이 천만인이 되어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3: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천만인이 다윗을 둘러싸고 있는데도 다윗이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윗이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을 붙드시는 하나님을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흔들리십니까? 믿음이 흔들리십니까? 예배생활이 흔들리십니까? 기도생활이 흔들리십니까? 교회생활이 흔들리십니까? 사람보지 마세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열역학 제2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열역한 제2법칙이란 모든 우주에 존재하는 만물에는 일정한 방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사람은 늙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지금 아무리 피부가 백옥 같고 탱탱해도 나이를 먹으면 주름이 생기고 검버섯도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뜨거운 커피를 가만히 두면 식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방향성이고, 반대방향으로 절대 움직이지 않습니다. 열역학 제1법칙은 에너지의 양에 관한 것입니다. 열역학 제2법칙은 에너지의 품질에 관한 것으로 에너지는 고급에너지에서 저급에너지로 변한다는 법칙입니다.

신앙생활에도 열역학 제2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난로를 가지고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빨갛게 달궈진 난로가 있습니다. 석탄을 공급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될까요? 난로는 점점 식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난로가 계속 달궈진 상태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계속해서 석탄을 공급해줘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뜨거워졌습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주님을 섬깁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열역학 제2의 법칙에 의해서 반드시 신앙이 식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이 식어지니까 점점 세상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어지게 되고 결국은 주님과 너무 멀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을 10, 20, 30년을 했는데 전보다 믿음이 좋아지지 않고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전에는 주님과 동행했었는데 지금은 주님과 교제 없이 살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전에는 신혼부부처럼 주님과 뜨거운 사랑을 나눴는데 이제는 이혼 직전의 부부처럼 데면데면 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해서 시간이 흐르면서 신앙이 식어지고 주님과 멀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의 불을 계속해서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계속해서 영적인 에너지가 공급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에너지를 공급받으려면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영적인 에너지를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언제 영적인 에너지를 공급해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생명의 에너지를 공급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나 깨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분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을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높여드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마치 달궈진 난로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2. 욕망이 아닌 비전을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향해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가 원하는 것을 바라보면 마귀가 원하는 것을 향해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주님이 산에 가셔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은 갈릴리바다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바다를 건너던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서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제자들 중에 여러 명이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출신들이었지만 돌풍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기도하시던 주님께서 제자들이 고생하는 것을 아시고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셨습니다. 주님을 본 제자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돌풍이 일어나서 파도가 배를 삼키려고 하는 순간에 누군가가 바다 위를 걸어서 오니 제자들은 유령인줄 알았습니다. 그때 주님이 나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베드로가 흥분했습니다. 베드로가 심하게 다혈질이잖아요. 흥분한 베드로가 주님에게 말했습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라베드로의 담대함을 보십시오. 주님이 오라고 하시니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임하면 초자연적인 역사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다 위를 걷던 베드로가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가 바람을 보자 두려움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바다에 빠져 가면서 소리 질렀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예수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쳤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볼 때는 바다 위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파도를 바라보니 바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 믿는 사람들 마음에 소원을 불어넣어주십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들이 그 소원을 따라서 행동할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두시는 하나님의 소원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소원을 따라서 살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여러분의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적인 욕망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닌 자기가 보기에 좋은 것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마치 선악과를 바라본 하와처럼 살아갑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닌 것은 선악과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의 모토는 위대한 비전이 위대한 인생을 만든다입니다. 여러분은 위대한 비전을 사모하며 살아갑니까? 여러분이 꾸는 꿈은 위대한 비전입니까? 위대한 비전은 큰 비전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위대한 비전입니다. 그 꿈이 크든지 작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라면 위대한 비전입니다. 아무리 크고 좋고 화려한 비전이라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욕망입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은 좋은 학교를 나오고 좋은 직장을 다니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큰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적인 인생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과 비전을 발견하고 그 사명대로 살고 그 비전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이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인생을 산다면 그 사람은 대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헬렌켈러에게 어떤 사람이 듣지 못하는 농인과 보지 못하는 맹인 중 누가 더 불쌍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육안을 가지고도 비전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토마스 아퀴나스는 완전한 축복은 하나님의 비전에 있다.”고 했습니다. 완전한 축복은 내가 목적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만들어낸 비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한 축복은 하나님의 비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인생을 살려면 먼저 내가 원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소원인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 인생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찾았다면 그 일에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며 헌신해야 합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충성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부산에 살던 부자 집 이야기입니다. 그 집에서는 영리한 개가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바구니를 개 입에 물려주고 고기 한 근 값을 넣어줍니다. 그러면 정육점에 가서 고기를 사오곤 하였습니다. 주인아주머니가 살코기만 사오라고 요청하면 살로만 사왔습니다. 정확하게 심부름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가 서울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새로 이사 온 집에서 가까운 곳에도 정육점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부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고기를 사오라고 장바구니를 개 입에 물려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여기 저기 찾아보았습니다.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3일이 지났습니다. 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서울에는 개 도둑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개를 잡아 갔을 것으로 여기고 개 찾기를 포기하였습니다. 다시 3일이 지난 후 저녁 주인아주머니가 시장을 보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에 개가 입에 바구니를 물고 절뚝거리며 힘없이 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개에게 달려갔습니다. 그 개는 주인을 본 후 그 자리에 푹 쓰러지더니 죽어 버렸습니다. 알고 보니 부산까지 가서 고기를 사 가지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그 개는 지쳐서 쓰러져 죽은 것이었습니다.

이 개는 충성스러운 개입니다. 하지만 이 개의 충성은 성경적인 충성은 아닙니다. 성경적인 충성은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을 알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충성스러운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충성해야 합니다. 나의 욕망이 아닌 하나님의 비전에 집중하기를 바랍니다.

 

3. 세상이 아닌 천국을 바라봐야 합니다.

내가 어디에 비중을 두고 사느냐를 보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인가 아니면 천국을 바라보는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천국을 위하여 세상을 투자하는 사람이 있고 세상을 위하여 천국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천국을 위하여 세상을 투자했던 사람입니다.

3:8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바울은 세상적인 지위와 명예가 높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세상의 지위와 명예를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바울은 천국비중이 컸던 사람입니다. 천국을 바라봤던 사람입니다.

바울이 세상을 포기하고 천국을 위하여 헌신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바울은 부귀영화보다 천국의 상이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는 부귀와 영화를 천국의 영광과 비교하면 마치 배설물과 같았습니다. 바울의 목표는 하늘의 상이었습니다.

딤후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우리는 간절히 천국을 바라봐야 합니다. 천국에 들어갈 그날을 바라보고 범사를 절제하며 살아야 합니다. 천국에서 받게 될 상급을 바라보고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는 동요입니다. 같이 불러보겠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꿈에도 소원은 통일/이 정성 다해서 통일/통일을 이루자/이 겨레 살리는 통일/이 나라 살리는 통일/통일이여 어서오라/ 통일이여 오라.

정말 대한민국 주도의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통일이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 북녘 땅의 동포들에게 복음이 들어가서 복음 통일이 속히 이루어지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데 통일보다 더 큰 우리의 소원이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에서 통일을 천국으로 바꿔서 불러보겠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천국/ 꿈에도 소원은 천국/ 이 정성 다해서 천국/ 천국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천국/이 나라 살리는 천국/ 천국이여 어서 오라/ 천국이여 오라.

따라합시다. “그 날에 다 밝혀진다미군 부대에서 사무를 보는 처녀가 있었습니다. 결혼하였습니다. 귀한 가문에 독자와 결혼하였습니다. 임신하였습니다.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을 때 온 가족들과 친척들이 모였습니다. 너무나 자손이 귀한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분만하는 순간에 그 여자는 병원이 떠나갈 듯이 비명을 질렀습니다. 드디어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밖에서 궁금하게 여기던 가족들이 문틈으로 물었습니다. “아들인가요?” “아니요.” “딸인가요?” “아니요.” “아니, 그러면 무엇인가요?” 간호사가 말했습니다. “말할 수 없으니 들어와서 보세요.” 들어가서 아이를 보는 순간 온 식구는 뒤로 나가자빠질 뻔 했습니다. 몸집이 큰 흑인 아이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면 내가 천국에 갈 것인가 지옥에 갈 것인가도 그때 다 밝혀집니다. 교회 다닌다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천국 가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대로 산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짜 믿음은 행함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믿음의 대상과 믿음의 방향으로 우리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봤습니다. 우리는 사람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욕망이 아닌 비전을 바라봐야 합니다. 세상이 아닌 천국을 바라봐야 합니다.

출처 :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글쓴이 : 마경훈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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