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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70129]어떻게 빛으로 살아 갈수 있는가?/ 에베소서5:3-14

어떻게 빛으로 살아 갈수 있는가?

에베소서5:3-14(설교자: 비전교회 마경훈 목사)

 

떡국이 엄청나게 위험한 식품이라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국내외 연구진들의 보고에 의하면 사람이 떡국을 먹게 되면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된다고 합니다. ㅎㅎ

어떻게 명절 연휴 잘 보내고 계십니까? 금년에는 주님이 여러분들과 동행하시고 여러분들은 주님을 더 닮아가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가로등을 누가 만들었는지 아십니까?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벤자민 플랭클린입니다. 위대한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이분이 동네 사람들을 위해 무슨 좋은 일을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이분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벤쟈민 플랭클린은 집 앞에 선반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아름답고 좋은 등을 하나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지면 그 등에 불을 켜두었습니다. 처음에는 동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등은 집안에 두고 불을 켜는데 어째서 이 사람은 집 밖에다가 등을 켜두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벤자민 플랭클린이 기름만 낭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 주, 두 주, 한 달이 지나가자 사람들이 뭔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집밖에 켜둔 등불로 인해 길이 환해졌습니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멀리서도 방향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를 좋게 생각한 마을 사람들이 날이 어두워지면 하나둘씩 집밖에 등불을 켜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온통 길거리가 환해졌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가로등의 시초인 것입니다.

가로등이 없을 때는 밤이 되면 온 세상이 어두움 속에 파묻혔습니다. 그런데 가로등이 생기고 나니 캄캄한 밤에도 길을 가는데 지장이 없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이 세상은 칠흑 같이 어둡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거리의 가로등처럼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에서 빛으로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밝아질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학교의 빛이 되어야 하고 회사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의 빛이 되어야 하고 세계와 열방에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빛으로 사는 사람과 어두움으로 사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둘째는 우리가 어떻게 빛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빛으로 사는 사람들과 어두움으로 사는 사람들의 다른 점

먼저 빛으로 사는 사람과 어두움으로 사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무로 비유하면 열매가 다릅니다. 빛의 열매가 있고 어두움의 열매가 있습니다. 열매가 다른 이유는 나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7: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나무가 좋으면 열매가 좋고 나무가 나쁘면 열매가 나쁜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베트남에 다녀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의 기도로 잘 다녀왔습니다. 저는 3일간 여러 곳을 돌아봤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국부로 생각하고 있는 호치민이 거주했다는 주석궁도 돌아봤습니다. 주석궁에서 신기한 나무 몇 구루를 봤습니다. 하나는 연리지입니다. 종류가 다른 두 나무가 뿌리나 몸통 부분이 아니라 공중에서 가지끼리 붙어서 한 나무처럼 자라고 있었습니다. 참 신기한 나무였습니다. 또 하나는 But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뿌리가 마치 죽순처럼 밖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또 신기한 나무는 수백 년 된 나무 안에 야자수 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기 힘든 나무들이었습니다.

주석궁을 돌아보면서 베트남 사람들이 국부로 여기는 호치민에 관해서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호치민은 민족주의자로 베트남이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있어서 베트남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13찬이라는 원칙을 정해놓고 일생을 검소하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너무 큰 주석궁에서 사는 것이 낭비라고 생각해서 전기 수리공이 쓰던 집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여러 면에서 본받을 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점이 보였습니다. 제가 볼 때는 이분의 사상이 베트남의 뿌리인데, 뿌리가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기공의 집에 호치민이 사용했던 책상 위에 두 장의 사진이 붙어있습니다. 가이드의 말로는 그 두 사람이 호치민이 가장 존경했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한 장의 사진은 공산주의 이론을 발전시킨 레닌의 사진이었습니다. 또 한 장의 사진은 소련에 공산 혁명을 일으켜서 5천만 명을 숙청하고 1,800만 명을 죽인 스탈린의 사진이었습니다. 그리고 김일성과 친구였다고 합니다. 저는 호치민의 생활이 검소하고 여러 면에서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였다할지라도 그런 악한 자들을 가장 존경했던 호치민이라면 그의 뿌리와 나무는 악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무가 악하면 악한 열매가 열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빛의 열매와 어두움의 열매는 다른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열매가 다를까요?

 

1) 말이 다르다

어두움의 자녀는 말로써 세상을 어둡게 만듭니다. 빛의 자녀는 말로써 세상을 밝게 만듭니다.

3-4절에서는 6가지 말을 금하고 있습니다. 음란한 말입니다. 더러운 말입니다. 탐욕의 말입니다. 누추한 말입니다. 어리석은 말입니다. 희롱의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사용해야 할 말을 가르쳐줍니다. 감사의 말입니다.

감사한 일이 있을 때는 누구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일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감사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감사한 일이 희귀할 때에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이 아름다워지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늘 감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은 다니엘이 적들의 모략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기도하면 적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파놓은 함정에 걸려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다니엘은 기도를 했습니다. 그의 기도에 관해서 기록한 단 6:10에 보면 다니엘은 전에 하던 대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감사를 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전에 하던 대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은 감사를 잘했습니다.

우리가 다니엘처럼 감사의 말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이 2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흠뻑 받으면 됩니다. 마치 소나기를 맞은 것 같이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면 모든 것을 감사하게 됩니다. 은혜 충만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합니다. 전천후 행복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의지를 가지고 감사를 훈련해야 합니다. 감사도 다른 기능들처럼 훈련하면 더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입을 벌려서 감사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몇 년 전 뉴욕 타이즈에 세계를 움직이는 100인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중에 첫 번째가 오프라 윈프리였습니다. 그녀는 흑인입니다. 태어날 때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백인이었는데 흑인 남자에게 강간당하여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릅니다. 어머니는 지독하게 가난했습니다. 할머니 손에서 거의 매일 매질을 당하면서 자랐습니다. 20대 초반에 가출하였습니다. 마약복용으로 하루하루를 지옥같이 살았습니다. 살고자 하는 의욕이 전혀 없었습니다. 몸무게가 107까지 나갔고 보기에 흉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 최고의 명사가 되었습니다.

비결이 두 가지라고 합니다. 책읽기 감사일기입니다. 이 두 가지가 성공의 비결이었답니다. 어릴 적부터 책읽기를 좋아했습니다. 친구가 없어서 강아지에게 성경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일어난 일들 중 감사한 일 다섯 가지를 찾아 감사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도 빼지 않고 기록했습니다. 감사일기의 내용은 특별한 것만 기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생활에서 감사거리를 찾아서 감사했습니다. “오늘도 거뜬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유난히 눈부시고 파란 하늘을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점심 때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얄미운 짓을 한 동료에게 화내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좋은 책을 읽어서 감사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감사 조건을 찾았습니다. 조용하고 편안한 장소를 선택하여 그 곳에 앉아 감사 일기를 매일 썼습니다. 이제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미국 내 시청자만 2,200만 명입니다. 전 세계 105개국 14,000만 명의 시청자를 웃고 울리는 이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토크쇼의 여왕이 되었습니다. 감사의 기적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그리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만 생각해도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감사거리를 찾아서 감사하며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빛의 자녀들은 감사의 말을 합니다.

 

2) 내면이 다르다

3-5절에 보면 어두움의 자녀들은 생각하는 것이 악하고 음란하고 더럽고 누추합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하게 되고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빛의 자녀들은 생각 자체가 다릅니다.

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사람은 그가 생각하는 것이 그의 인격입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것이 그의 미래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그 사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6: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여러분! 강대상에 있는 컵 속에 물이 들어가 있으니 이 컵에서 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간장이 들어가 있으면 간장이 나오는 것이고, 콜라가 들어가 있으면 콜라가 나오는 것입니다.

어두움의 자녀들은 마음에 어둡고 더럽고 음란하고 누추한 것들이 쌓여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그런 것들입니다. 빛의 자녀들은 마음에 주님이 계시고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빛의 자녀는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3) 결말이 다르다.

5절에 보면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기업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두움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받지 못합니다. 빛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받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가 천국에서 하나님의 상속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천국의 기업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25: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지막 심판대에서 사람은 2 종류로 나뉩니다. 영벌에 들어가는 사람들과 영생에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영벌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영원한 지옥에 떨어집니다. 영생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갑니다. 확실히 결말이 다릅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중간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진보가 있고 보수가 있고 그 사이에 중도가 있습니다. 한반도를 보면 북한이 있고 남한이 있고 그 사이에 비무장지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세계는 중간이 없습니다. 천국 아니면 지옥입니다.

저는 성경에서 천국과 지옥의 중간 단계인 연옥을 보지 못했습니다. 천국 아니면 지옥입니다.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보면 부자는 지옥에 떨어졌고 나사로는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그 사이에는 큰 구렁이 있습니다만 누구도 그 사이에 있을 수 없습니다.

 

4)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다

6-7절에 보면 어두움 가운데 있는 불순종의 아들들이 있습니다. 빛의 자녀들은 이런 사람들과 만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따라 빛의 자녀들도 불순종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빛의 자녀들이 어두움의 자녀들에게 동화되어 그들과 같은 스타일의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이 뜻이 아닙니다. 빛의 자녀들이 어두움의 자녀들과 같은 하늘아래에서 살지만 그들과 구별되게 생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11절에 보면 빛의 자녀들은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책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두움의 자녀들과 빛의 자녀들이 추구하는 목적과 목표가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서 살수 없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단절하고 살 수 없습니다. 학생이 학교에 가면 거기에 어두움의 자녀들도 있고 빛의 자녀들도 있습니다. 직장인이 회사에 가면 거기에도 어두움의 자녀들도 있고 빛의 자녀들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빛의 자녀들이 세상과 완전히 단절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빛의 자녀들이 어두움의 자녀들에게 동화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바다에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있습니다. 그 물고기들은 바다를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물고기는 바닷물 속에서 살지만 바닷물에 영향을 받아서 자신의 살까지 짜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바다 속에 살지만 지킬 것은 지키는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총무 일을 보았습니다. 그때 요셉은 빛의 자녀였고 보디발의 아내는 어두움의 자녀였습니다. 요셉은 빛의 자녀였지만 어두움의 자녀인 보디발의 아내와 안 보고 살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할 때 요셉은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지켰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삽니다. 세상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에 동화되어 세속화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가는 길이라고 나도 그 길을 가면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나도 아무 생각 없이 해서는 안 됩니다.

과거에 저는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러면 그것이 맞는 줄 알고 따라 갈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때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확실히 많이 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5) 행동이 다르다

8-9절을 보면 어두움의 자녀들이 맺는 열매와 빛의 자녀들이 맺는 열매가 다릅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 빛의 자녀는 착한 행실로 세상에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가 착한 행실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면 세상은 우리를 통해서 주님의 빛을 보게 됩니다.

슈바이처는 30세에 신학박사, 철학박사, 오르간 연주가, 목사,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그대로도 좋은 세상이었습니다. 최고의 상류층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으로부터 3가지 영적 신호가 왔습니다. “첫째 네가 다른 사람보다 많은 특혜를 받았다. 남보다 많이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그 특혜를 나누어 주어야 한다. 둘째 이 땅에는 고통 받는 이들이 많은 데 네가 그들 곁으로 가야 한다. 셋째 흑인들이 지금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데 이것은 백인들 책임이다. 백인들이 흑인들을 가르치지 않고 종으로 부려만 왔기에 백인들이 그대로 받는 것이다. 심는 대로 거두는 법이다. 네가 백인들 대신 속량해야 한다.” 이런 깊은 감동이었습니다.

슈바이처는 30세에 이를 그대로 실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30세에 의과대학에 등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 아프리카에 들어가서 흑인들을 위하여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한 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빛을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비추면서 살았습니다.

다카스꼬라는 일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카스꼬는 일본 경도 제국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의과대학도 공부한 수제였습니다. 그는 철저한 불교인이었습니다. 1965년 다카스꼬는 대구 계명대학에 와서 간증을 하면서 울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그는 슈바이처의 생애에 감명을 받고 아프리카로 가서 슈바이처를 도왔습니다. 그는 불교인이었는데 슈바이처는 그에게 불교에 구원이 없으니 예수 믿지라는 전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철저한 불교인이었던 다카스꼬가 슈바이처에게 박사님! 저도 기독교로 개종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세례를 줄 수 없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서야 비로서 슈바이처는 다카스꼬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슈바이처는 다카스꼬에게 말로 전도하지 않고 행동으로 전도하였습니다.

빛의 자녀는 어둠의 자녀와 행동이 다릅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서 걸어갈 때는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두움 가운데서 걷는다면 당연히 더듬더듬 하면서 걸어 갈 것입니다. 영적인 것도 똑 같습니다.

빛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 안에 오셨습니다. 이제는 그분이 그리스도인을 통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어두움의 자녀들과 행동이 다른 것입니다.

 

6) 동기가 다르다.

10절에 보면 빛의 자녀들에게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시험해 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빛의 자녀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빛의 자녀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성공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빛의 자녀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일까?’를 생각하며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모든 언행심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한 동기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어떻게 해야 빛으로 살 수 있는가?

미국에 [조지 바나]라는 리서치 센터가 있습니다. 주로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는 매우 신뢰도 높은 조사기관입니다. 이 기관에서 발표된 내용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이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도덕성에 있어서 예수 안 믿는 사람들에 비해서 40% 이상의 격차가 있어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들이 100명중 20명 정도 정직하다고 가정할 때, 기독교인들은 60명 이상 정직해야 이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기관에서 미국에서 음란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조사했습니다. 일반사람들을 대상으로 했을 때 100명중 40명이 본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았더니 100명 중 30명이 본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결국 보통 사람들과 기독교인들과의 차이가 겨우 10%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로는 이 사회에 바람직한 영향력을 끼칠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빛의 자녀로서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보다 월등한 도덕성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야 하고, 빛 되신 그리스도를 우리들의 삶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빛의 열매를 맺으며 세상의 빛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성경적인 정체성을 가지라.

나는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군가가 농담 식으로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개가 사람과 오랫동안 살다보면 자기가 사람인줄 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인의 식구들이 다 외출 한 후에는 두 발로 걸어본다고 합니다. 개에게 정체성의 혼란이 온 것입니다.

3절에 보면 우리들을 성도라고 표현했습니다. 성도는 헬라어로 하기오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거룩한이라는 뜻으로 믿는 자들이 거룩한 존재가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거룩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5절에서는 성도를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천국이 목적지인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나라에서의 성공만을 추구하는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은 천국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이 되도록 힘써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8절에서는 성도들은 전에는 어두움이었으나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고 빛의 자녀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들은 빛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어두움의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세상의 빛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누군가가 개와 고양이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개는 자기에게 밥을 주는 사람을 주인으로 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누가 자기에게 밥을 주면 자기가 주인인줄 안다고 합니다. 이런 고양이는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 고양이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할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거듭났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거룩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자들입니다. 빛의 자녀들입니다.

 

2) 올바른 기준을 가지라.

9절에 보면 빛의 열매 3가지가 나옵니다.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단어는 의로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로움이란 세상에서 기준이 되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의로운 존재가 된다는 말은 세상에서 기준이 되는 삶을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빛으로 사는 것입니다.

군대에서 군인들이 줄을 맞추어 서려면 먼저 한 사람이 기준을 잡습니다. 그러면 모든 군인들이 그 기준을 중심으로 줄을 섭니다.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이래야 합니다. 세상에 기준을 제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기준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내면에 정확한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고전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그리스도는 우리의 지혜이시고, 의로움이시고, 거룩함이시고, 구원함이십니다. 여기서 의로움은 본문에서 사용한 의로움과 같은 단어인 디카이오쉬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내면에는 의로움이 되시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주님이 정확한 기준을 제시해주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는 올바른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빛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가치관이 무너지는 시대입니다. 가치관이 혼돈된 시대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을 못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에도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중심을 잡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변하지 않는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변하지 않는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세상은 시시때때로 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때로는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타도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흔들리고 변하는데 그리스도인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준이 정확하고 올바르면 분별력이 생깁니다. 6절에 보면 헛된 말로 속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그들에게 속을까요? 정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제가 1억 분의 1도 오차가 없는 정확한 자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합시다. 누군가가 길이를 속이려 하거나 속일 마음은 없지만 잘못된 길이를 제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저에게 정확한 자가 있기 때문에 상대가 제시하는 길이가 잘못된 것을 아주 명확하게 알지 않겠습니까.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가 0.0001mm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자의 역할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기준이 의로우면 삶도 의로워집니다. 그래서 10절 말씀처럼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네델란드의 코리 텐붐 여사는 우리 시대에 큰 간증을 남긴 분입니다. 그녀는 유대인을 도운 죄목으로 체포되어 온 가족과 함께 나치 수용소에서 고생했습니다. 후에 자기 언니를 죽인 간수를 용서하고 유럽과 미국, 전 세계를 다니며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코리 여사의 믿음의 감화는 본래 그녀의 아버지의 영향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캐스퍼 텐붐 이었습니다. 그는 시계방을 운영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였습니다. 하루는 한 부자가 와서 아주 비싼 시계를 현금으로 사겠다고 했습니다. 그 시계만 팔면 온 가족이 얼마동안 고생 안하고 살 수 있는 거래였습니다. 그런데 거래가 끝나고 시계를 받아들면서 부자가 말하기를 사실은 다른 시계방에 고장 난 자신이 아끼는 시계를 가지고 갔는데 그 시계를 고칠 수 없다고 해서 이곳에 와서 새 시계를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코리 아버지는 그 시계를 혹시 볼 수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계를 받아들고 몇 가지를 만지더니 이제 시계는 잘 작동한다고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며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 친구는 사실 좋은 시계공인데 아직 조금 더 경험이 필요할 뿐이라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면 그 청년도 자기처럼 훌륭한 시계공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코리 아버지는 그 부자에게 받았던 현금을 다시 건네주었습니다. “시계를 다시 저에게 주시지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코리는 이런 부친에게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그 돈이 얼마인데 그 거래를 포기하느냐고 부친에게 반문했습니다. 코리 아버지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리야, 돈은 하나님이 필요하면 언제나 우리에게 주실 수 있지 않겠니? 그러나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정직하게 손님을 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코리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사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코리의 아버지는 내면에 주님을 모신 분이었습니다. 주님이 그의 기준이 되어주셨습니다. 주님이 그의 중심을 잡아주었던 것입니다.

저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붙잡아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주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만나면 주님이 그 아이들의 중심에 기준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주님을 중심으로 삼으면 아이들은 그 기준을 따라서 움직이게 됩니다. 그래서 빛 되신 주님을 받아드린 사람은 빛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3) 늘 주님과 교제하라

우리가 빛으로 사는 방법은 참 빛 되시는 주님과 연합하여 하나 되는 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빛 되신 그리스도께서 임하시면 자는 자들이 깨어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임하실 때 빛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이 말씀은 최소한 3중적인 예언입니다. 이스라엘에 관한 예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면 이스라엘은 일어나서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메시야가 오실 것인데 그분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여 세상의 빛이 되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리스도인에 관한 예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빛이 임하게 되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으로 살게 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발광체가 아니라 반사체입니다. 주님은 발광체이시기 때문에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있지만 우리들은 반사체이기 때문에 빛을 받아야만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가위 보름달이 아무리 밝다 해도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합니다. 달은 태양이 내는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것입니다. 태양의 빛을 받아야만 빛을 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빛을 받아야만 빛을 발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재철목사님이 창동에서 개척교회를 시작 할 때의 일입니다. 무허가 건물 지하에 겨우 살림방을 구했습니다. 그 방에는 바퀴벌레들이 가득했습니다. 저녁에 방에 들어가서 불을 켜면 순식간에 바퀴벌레 떼가 냉장고 밑으로, 장롱 밑으로 도망치더랍니다. 어두움 속에 있던 바퀴벌레들이 빛이 임하니 숨어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으로 살려면 먼저 하나님의 빛을 받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들은 예배를 통해서 빛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빛이 우리들에게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시간도 하나님의 빛을 받는 시간입니다. 성경을 읽는 시간도, 성도가 거룩한 교제를 나누는 시간도 하나님의 빛을 받는 시간입니다.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예수님의 제자 마태는 본래 세리였습니다. 그는 부당한 세금을 걷어서 자기 배를 채우던 매국노였습니다. 어두움의 열매가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빛 되시는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가 주님의 빛을 받고 주님과 교제를 하자 그에게 있던 어두움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해바라기의 가장 큰 특징은 전 세계 어디서나 햇빛만 따라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특징은 빛 되신 주님을 바라보고 빛 되신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세상에 빛을 발하며 빛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과 교제하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글쓴이 : 마경훈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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