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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70326]왜 하나님은 항상 찬송 받으셔야 하는가? 시편 34:1-10

왜 하나님은 항상 찬송 받으셔야 하는가?

시편 34:1-10(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다윗은 찬송의 사람이었습니다. 119:164에 보면 다윗은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루에 일곱 번씩 찬송을 했습니다. 저는 새벽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나님께 찬양을 한곡씩 드립니다.

다윗은 자기만 찬송을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찬송을 하게 했습니다. 다윗은 성전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4,000명을 구별했습니다. 그리고 288명의 찬양대를 세웠습니다. 다윗은 인생은 마땅히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에서 다윗이 언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는지 그리고 무슨 이유로 찬양을 드렸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1절에 보면 다윗은 자신이 여호와를 항상 송축하고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송축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찬양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원어를 보면 송축이라는 단어는 무릎을 꿇다, 축복하다, 복을 주다, 찬양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찬양은 영광, 찬미, 찬양, 찬양의 노래라는 의미입니다. 송축은 찬양보다 좀 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 두 단어는 우리가 하나님을 높이는 모든 행위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경배하고, 노래로 그분을 높이고, 입술로 그분의 위대하심을 고백하고 선포하는 등의 모든 행위를 포괄적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다윗은 언제 하나님을 송축했습니까? 언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까? 1절에 보니 다윗은 여호와를 항상 송축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송축 받으실 분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일이 있을 때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34편 표제에 보면 다윗이 이 시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때가 언제였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표제어를 보십시오.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을 시기한 사울 왕은 틈만 나면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의 칼을 피해서 도망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삼상 21장에 보면 어느 날 다윗이 그랄 왕 아기스에게로 피신을 하였습니다. 표제에 나오는 아비멜렉과 삼상 21장에 나오는 아기스는 같은 인물입니다. 아기스는 왕의 이름으로 고유명사이고 아비멜렉은 그랄의 왕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입니다. 당시 아기스의 신하들은 아기스에게 다윗이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죽인 자라는 이유로 다윗을 처단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다윗은 다급한 나머지 미친 척했습니다.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기스는 다윗을 미친 사람 취급하며 쫓아냈습니다. 다윗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미친 사람처럼 연기를 해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위기를 극복한 후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 시가 시 34편입니다.

다윗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위기를 모면해서 감사하기는 했지만 미친 척을 했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자존심 상하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내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라고 생각하며 비참한 마음도 들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1절을 그런 배경을 기억하고 읽어봅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다윗은 위대한 신앙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윗과 같은 신앙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만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때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을 당해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다윗은 무슨 이유 때문에 하나님을 항상 송축했을까요? 다윗은 왜 항상 주를 찬양했을까요? 왜 하나님은 항상 찬송을 받으셔야 하는 것일까요? 오늘 설교는 그 이유를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은 기쁨을 주시는 분

2절에 보면 다윗이 여호와를 자랑하면 곤고한 자들이 듣고 기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곤고한이라는 말은 가난한, 고통 받는, 겸손한, 온유한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곤고한 자들은 고난의 파도를 만나서 고통스러운 의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곤고한 자들이 언제 기뻐합니까? 다윗이 여호와를 자랑하는 소리를 듣고 기뻐하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지만 우리의 인생에는 수많은 파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파도들을 맞으며 곤고한 상황에 처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고난이 있을 때 기쁩니까? 여러분은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 들어가면 기쁩니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목사인데도 마음이 괴롭습니다. 감당하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2절에서는 다윗은 곤고한 자들이 기뻐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어떠한 때입니까? 다윗이 여호와를 자랑하는 소리를 들을 때입니다.

여러분! 곤고한 상황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십시오. 그럴 때 상황이 힘들어서 마음이 곤고했던 사람들에게 기쁨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길 때 진정한 기쁨을 맛보게 되어 있습니다.

11:2-3을 보겠습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이 말씀은 초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성령님이 예수님 위에 임하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예수님에게 임하신 성령님은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임하시면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게 됩니다. 감사한 일은 이 예언대로 예수 그리스도께 임하셨던 성령님이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도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들에게 기쁨의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우리에게 하늘의 즐거움을 주십니다. 이 영적인 기쁨이 저와 여러분에게 늘 충만하여 넘치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은 광대하신 분

광대하다는 말은 넓고 크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위대하다 또는 강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광대하십니다. 그분은 위대하신 분입니다. 강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찬송 받으실 분입니다.

동영상 하나를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가 얼마나 광대한지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우주 가운데 얼마나 미세한 존재인지를 생각해보기를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Ngm6EA5qkg

이 광대한 세상을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얼마나 광대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145:3입니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감사한 것은 위대하고 강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위대하고 강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도성인신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육신 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까?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성령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나를 성전 삼고 내 안에 계십니다. 위대하고 강하신 주님이 내 안에 계십니다. 놀랍습니다. 놀랍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광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3. 하나님은 간구에 응답하시는 분

본 시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4절에서는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다윗은 아기스 앞에서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하나님께서 미친 체하라는 응답을 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그것을 간증하는 것 같습니다. 6절도 같은 내용입니다. 7절에 보면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들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그들을 둘러 진치고 건져주십니다. 15, 17절에서도 기도 응답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약 17-18년 전 쯤에 개인적으로 기도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1:5입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저는 이 말씀을 받고 기가 막혔습니다. 외국에 나갈 기회도 없고 돈도 없는 저를 하나님께서 여러 나라에 보내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겠다는 말씀 아닙니까? 이 말씀을 받은 예레미야는 기가 막혔습니다. 1:6에 보면 예레미야의 반응이 나옵니다.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저도 예레미야와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저는 능력도 없고 돈도 없고 외국에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처지가 아닌데 이 말씀은 받아드리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다시 다른 말씀을 주셨습니다. 2:8을 주셨습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저는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필리핀 선교사님들 집회의 강사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저는 세계 20여 개국을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은 앞으로 더 많은 나라를 가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러분!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으실 겁니다. 그렇죠? 여러분은 힘든 일을 만날 때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환경을 변화시키시든지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4. 하나님은 광채를 주시는 분

5절 말씀이 은혜가 됩니다.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다윗이 이 시를 쓸 때는 부끄러움을 당한 후였습니다. 멀쩡한 사람이 살기 위해서 대문을 그적거리고 수염에 침을 흘려야 했으니 수치를 당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하나님을 앙망하고 늘 기도하는 생활을 하니 결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광채를 주셔서 빛나게 해주셨습니다. 다윗이 부끄럽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결국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저는 최근 몇 주 동안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 야곱에 관한 설교를 하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 가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어내로 얻기 위해서 7년간 종 아닌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첫 날 밤을 자고 일어나니 아내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라헬 때문에 또 7년을 고생했습니다. 그리고 약 18년 동안 외삼촌에게 품삯을 10번이나 사기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마지막 1~2년 동안 완전히 역전을 시켜주셨습니다. 야곱이 외삼촌과 계약을 했습니다. 계약의 내용은 점 있고 아롱진 양이나 염소는 야곱의 것이 되고 점이 없고 아롱지지 않은 것은 외삼촌의 것이 되는 내용입니다. 어디든지 양이나 염소는 점이 있거나 아롱진 것이 잘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라반은 고생은 야곱이 하고 모든 것은 자기의 것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계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건강한 양이나 염소가 새끼를 낳으면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이 태어나서 야곱의 것이 되었습니다. 또 약한 양이나 염소가 새끼를 낳으면 점도 없고 아롱지지도 않은 것들이 태어나서 라반의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결국은 1~2년 사이에 야곱은 거부가 되고 라반은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라반이 야곱을 죽이려고 군사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을 추격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라반의 꿈에 나타나서 야곱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광채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앙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사실 불편한 것들도 많습니다. 세상을 성질대로 살지 못합니다. 미운 사람이 있어도 마음대로 미워할 수도 없습니다. 놀고 싶다고 마음대로 놀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육신이 원하는 일이 있어도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범사에 절제하며 인내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면 결국 하나님께서 광채를 입혀주십니다. 나의 얼굴이 부끄럽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은 피난처

미국 3사관 생도들은 모두 물개가죽 신을 신고 있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물개는 수륙 양성 동물입니다. 물에서 싸우다 지려고 하면 땅으로 도망가면 됩니다. 땅에서 싸우다가 질 것 같으면 물속으로 도망가면 끝입니다. 물개는 도망간 적은 있어도 패한 적이 없는 동물이라는 것입니다. 잘 도망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관생도들에게는 물개가죽 구두를 신게 한다는 것입니다. 잘 도망가는 물개는 패한 적이 없습니다. 도망가려면 피난처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고양이 두 마리가 있습니다. 이름이 갈치와 고등어입니다. 개 한 마리가 있습니다. 해피입니다. 해피는 순합니다. 혹시 여러분이 해피를 만나도 무서워하지 마세요. 그런데 순한 해피가 갈치와 고등어만 만나면 쫓아갔습니다. 갈치와 고등어는 해피를 보면 자기들을 크게 보이려고 목을 세우고 털을 세웁니다. 그리고 해피가 쫓아오면 식당 뒤 하수구로 들어가든지 목양실 옆 지붕으로 도망을 갑니다. 특히 목양실 지붕은 고양이들의 피난처입니다. 그리로 도망가면 해피가 쫓아가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

다윗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았습니다. 8절에 보니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하는데 그것이 자기 이야기입니다. 9-10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면 어떻게 되는지 말합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면 부족함이 없습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은 사람은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다가 환난을 만나시거든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십시오. 위기를 만나면 사람이나 돈이나 권력을 피난처로 삼지 마시고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십시오. 118:8-9입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9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십시오. 사람이나 돈이나 권력보다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낫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가장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면 우리를 해할 자가 없습니다.

로마의 황제 아구스투스가 귀족 폴리오 집으로 초대가 되었습니다. 만찬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귀한 분들을 섬기던 노예가 값비싼 유리잔을 떨어뜨렸습니다. 박살나고 말았습니다. 주인 폴리오는 노발대발하였습니다. 그는 실수한 노예를 식인 고기가 놀고 있는 연못에 던져버리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참 사람이 잔인합니다. 접시 하나 깨뜨렸다고 식인 고기의 밥으로 주려고 하다니요. 위기를 만난 노예는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울면서 애원하였습니다. “황제 폐하! 살려 주십시오. 황제 폐하! 용서해 주십시오.” 황제는 노예를 살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로마법은 노예는 주인 마음대로였습니다. 황제도 이 권한을 침범할 수 없었습니다. 황제는 그 노예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였습니다. 황제는 자기 상 위에 있는 귀한 그릇을 드는 척하다가 일부터 떨어뜨려 깨뜨렸습니다. 폴리오는 황제의 그러한 행동이 무엇인지 눈치를 챘습니다. 노예를 연못에 던지려면 황제도 던져야 합니다. 그는 노예를 죽이지 않고 살려 주었습니다. 노예는 자기 주인보다 강한 황제를 피난처로 삼으려 했고 황제는 그의 피난처가 되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고 싶어 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피난처가 되실 만큼 충분히 위대하고 강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은 항상 찬송 받으셔야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기쁨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광대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광채를 주셔서 우리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는 분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피난처이십니다. 하나님을 송축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출처 :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글쓴이 : 마경훈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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