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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박종순목사

[스크랩] 박종순 목사설교모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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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예정에서 영화까지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8:26-30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사람들이 미리 정하셨다는 교리를 [예정론] 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8:26-30과 에베소 1:3-14은 예정교리를 성경적으로 증언하

고 있습니다.

흔히 예정교리를 신학적으로 어렵게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러나

예정교리란 하나님의 인격적 행위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격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할 일과 앞으로의 계획을

미리 정합니다.

 

10, 5, 1년 그리고 하루동안 할 일을 계획하고 준비합니다.

예를들어 갑자기 자고난 다음날 러시아를 가겠다든지, 사무실에서 일하다

가 갑자기 일어나 미국을 갈 수는 없습니다. 미리 여행계획을 세우고 비행

기편을 예약해야 합니다.

결혼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길가다가 처음 만난 사람끼리 즉석에서 결혼

을 할 수는 없습니다. 만남과 교제, 확인과 점검을 거쳐서 사랑과 조건이

성립됐을 때 결혼하게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르리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구원하시는

그 위대한 계획과 섭리를 미리 예정하시고 진행하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

한 사건인 것입니다.

 

왜 예정하시는가?

첫째 인간구원이 너무나 큰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작년 여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시골교회에서 전 교인이 수양회를 가

졌습니다. 수양회가 계속되던 어느날 오후 더위를 식히기 위해 아이들과 젊

은이들이 강에서 수영을 하고 있습니다. 깊은 곳과 급류가 흐르는 곳은 들

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잠깐 사이 두 아이가 깊은 곳에 들어갔다

가 급류에 휩쓸려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언덕에서 지켜보고

있던 목사님이 옷을 입은 채로 뛰어들어 두 아이를 구해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헤엄쳐 두 아이를 구해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헤엄쳐 나오려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분은 장로회 신학대학을 졸업한 분이셨

기 때문에 금년 2월 장로회 신학대학교 동문회에서 그분을 장한 동문으로

표창하고 그 유족을 위로했습니다.

이 사건을 아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그분의 희생을 칭찬하고 평가하고 있습

니다.

두 아이를 구한 목사님의 희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작은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전 세계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예수 그리

스도의 희생은 다음 몇가지로 요약됩니다.

 

(1)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이 밝히는대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수 있는 분, 하나님이

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비우고 낮춰 종이 되셨습니다.

(2)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종이 되시고 낮아지신 그 분은 한평생 남을 위해 사셨습니다. 자신의 소

, 행복은 전혀 외면한 채 남을 위해 사셨습니다.

(3) 죽으셨습니다.

사람은 다 죽습니다. 그러나 자기 삶을 살다가 죽는 사람도 있고, 남을 위

해 살다가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남을 위해 살다가 죽으셨습니

.

(4)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희생은 위대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죄를 속죄하는 희생은 예수님의 경우만

 

 

 

가능했습니다. 이사야 53장을 보면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상하고 찔림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고 고침을 받고 사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 점에 우리네의 죽음과 다른 점입니다. 성경을 보면 [죄 값은 사

] 이라고 했습니다. 죄인은 심판받고 지옥갑니다. 그러나 죄사함 받으면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

니다. 이토록 귀하고 큰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미리 작정하셨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둘째, 사람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이 귀한가?

(1) 생긴 모습이 짐승보다 귀하게 생겼습니다.

동물 가운데 가장 사람과 유사한 것이 원숭이입니다. 그러나 원숭이 노는

꼴을 보면 진화론이 정떨어집니다. 사람은 의젓하고 잘 생겼습니다.

(2) 하는 일이 귀합니다.

희생, 가치창조, 문화창조, 교육, 역사발전 등 짐승은 흉내도 못냅니다.

(3) 창조가 귀합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천지만물과 짐승은 말씀으로,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

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했다"고 했습니다. "그 코에다가 생기를

불어 넣으시매 성령에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 다른 피조물과 구별된다는 뜻이며.

. 영적 존재라는 뜻이며.

.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인간만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습니다. 인간만 영혼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

간만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깁니다. 만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다른 것을 숭배하거나 섬긴다면 그것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그토록 귀하게 창조한 인간이 죄짓고 타락하고 멸망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

은 그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예정의 발전과정은 어떤 것인가, 로마서 8장과 에베소서 1장을 보면 그 단

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미리 정하십니다.

이것을 위해서 자세하게 언급했습니다. 확실한 것은 귀한 일일수록 미리

계획하고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부르십니다.

하나 하나, 한사람 한사람 부르십니다. 성경을 보면 부르신 이야기가 수없

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노아를 부르셨고, 모세를 부

르셨고, 이스라엘 민족을 부르셨습니다. 바울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를 부르셨습니다. 부르실 대 사용하신 호칭이 있습니다.그것은 "내 아들,

내 종, 내 사랑하는 벗, 내 백성" 이라는 것 등입니다. 하나님은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의롭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의정부에서 부모잃은 소년이 울고 있었습니다.

군이 그를 차에 싣고 부대로 들어가 돌보아 주었고 그 소년은 그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그후 그 미군은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그 소년을 데리고 갔고

자기 호적에 정식으로 올리면서 자기 이름인 Donald Smith를 따서 Donald

Lee Smith라고 했습니다. 그 소년은 미국에서 국민학교, 중학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Chicago 에 있는 Illinois 주립대학을 졸업한 후 지금은 큰

Computer 회사의 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들로 인정해 주는 것, 죄사함 받았다고 인정해 주는 것, 죄없다고 인정

해 주는 것을 칭의(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라고 합니다.

넷째, 영화롭게 해주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화롭게 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지옥도 아닙니다. 이유는 천국은 일

본이나 미국보다 훨썬 더 좋기 때문이고, 지옥은 일본이나 미국이나 한국보

다 훨씬 더 뜨겁고 나쁜 곳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특성은

(1) 하나님이 준비한 나라.

(2) 영원한 나라.

(3) 세상의 나쁜 것들이 없는 나라.

(4)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사는 나라입니다.

 

.그 영광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한문 속담에 [권력은 10년 못가고 꽃은 1일 동안 계속 피지 못한다]는 말

이 있습니다. 그 뜻은 권력, 영광,아름다움이라는 것들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

리고 세상 영광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참 행복은 누구와 함께 하느냐고 결정됩니다. 제아무리 집이 좋고 돈이 많

아도 원수와 함께 산다면 하루하루가 힘들고 지겨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조건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산다면 그야말로 그곳이 낙원처럼 될 것

입니다. 장차 우리가 누리게 될 영화는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결론은 누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화를 누리며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로마서 8:28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르리 영접하는 자 곧 그 이유를 부르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가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시다.

 

발행일 : 940831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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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이 성에 유하라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24:44-49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모여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

건과 거기서 주신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본문 속에서 세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성경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45절을 보면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라고 했습니

. 구약성경 도처에 메시야이신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

습니다. 특히 죽었다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기사도 여러군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말씀을 반신반의 하는가

하면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성경을 풀어주시고

깨닫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깨닫게 하시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45절을 보면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려면 먼저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천사의 소리를

들어도,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어도 마음이 열려있지 않으면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튼튼하고 견고한 열쇠는 이스라엘,독일,미국 것들이라고 합니다. 아무나

함부로 열지 못하는 것이 견고한 열쇠입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간단한 쇠

꼬챙이 하나로 모든 열쇠를 다 열수 있다고 합니다. 자동차, 아파트, 사무

, 심지어 금고까지도 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구상에 그 누구도 열지 못하는 자물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

간의 마음입니다. 이것은 쇠꼬챙이로도 열지 못하고 이스라엘 열쇠로도 열

리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3:20을 보면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노니"

고 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내 마음이 문을 열고 들어올 만한 힘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

나 내가 나의 의지로 문을 열고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교회를 들락거리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악물고 예수를 안믿고 지옥

가기로 작정하고 악을 행한다면 그는 지옥으로 굴러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라고 말합니다.

 

남녀관계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마음이 열려야 만나는 것도 가능하고 대

화도 가능하고 결혼도 가능한 것입니다. 제아무리 외적 조건이 화려하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맞질 않으면 결혼이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경직되고 굳게 닫힌 제자들의 마음을 먼저 열고 그후에

성경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의 문이 닫힌 상태에서는

성경도, 설교도 깨달음이 없는 것입니다.

설교를 들으며 졸고 있는 사람 성경을 읽으며 하품만 연속하는 사람, 천날

만날 듣고 읽어도 감동이 없는 사람은 마음이 그 무엇인가로 막혀있는 사람

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나 설교를 깨닫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죄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나, 나와 너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마음을

모조리 차단해 버립니다. 마음 속에 죄가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지

도 않고 깨달음이 없게 됩니다. 내 영혼이 죽지않고 영생을 얻으려면 빨리

숨겨놓은 죄,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죄를 회개하고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야 합니다.

 

둘째, 교만입니다.

교만은 경험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유치원 아이들 보다는 중학생이 더

아는 척합니다. 경험이 많기 때문입니다. 중학생 보다는 대학생이 더 아는

척 합니다. 다양한 경험과 지식의 축적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교인들의 성향도 비슷하빈다. 초신자 보다는 오래된 사람이 교

만합니다. 직분 안가진 사람 보다는 직분을 가진 사람이 더 교만합니다.

 

성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 보다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성경을 배웠거나,

귀담아 들은 사람들이 훨씬 더 교만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 안다. 이미 알고 있다. 이미 들었다는 잘못된 경험 때문

에 마음의 문을 닫고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큰 병입니다.

이 중병을 빨리 고쳐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라오디게아 교회가 "우리는 넉넉하다, 부족한 것이 없

. 부유하다"면서 실상은 거지였던 것처럼 영적 가난뱅이가 될 것이기 때

문에 그 고질병을 빨리 고쳐야 합니다.

 

셋째, 잡념 때문입니다.

잡념이란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에 생각

을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빈다. 몸은 교회에 앉아 있지만 그 마음은 동네방

네 동서남북을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있는 사람, 찬송부르고 기도를 하고 설

교를 들어도 예수는 떠오르지 않고 다른 것들만 오락가락 하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들이 잡념에 빠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대학입시를 앞에 두고, 공부하는 학생이 잡념에 사로잡히면 공부가 되질

않습니다. 공부가 안되면 그 사람은 대학에 진학할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에 잡념이 많으면 말씀은 제대로 듣질 않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강단을 바라보는 눈동자의 촛점이 흐려있기 마련입니다.

씀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 그 영혼이 고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성경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마음을

열고 주님을 모셔드립시다. 마음을 열고 말씀을 받아 드립시다.

본문을 보면 성경은 무엇이 죄이며 누가 죄인인 것을 가그쳐 줍니다. 마음

을 열고 성경을 깨닫고 회개하면 영원한 생명이 내 것이 되는 것이빈다.

금 마음의 문을 엽시다.

 

2.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49절을 보면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

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 능력은 위로부터 임한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힘은 땅에서 생겨납니다. 음식을 잘 먹고 영양식을 한다든지,보약

을 먹고 강장제를 먹는다면 육체의 힘은 생겨납니다. 그리고 운동으로 체력

을 단련하면 힘이 생깁니다.

그러나 영혼의 힘은 그런 것들로 생기는게 아닙니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영혼의 힘이 솟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영혼의 힘은 위에서

임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을 받

으면 힘이 솟구칩니다. 삶의 새로운 활력이 솟아납니다. 세상사는 재미가있

고 일하는 맛이 달라집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찬송소리가 달라지고 기

도시간이 달라지고, 교회나오는 발걸음이 달라지게 됩니다. 우리는 위로부

터 임하는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둘째, 그 능력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좋은 옷도 입지 않으면 내것이 아닙니다. 제아무리 맛있는 음식

도 먹지않으면 내것이 안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뜨겁고 강한 성령의 능력이 위로부터 임할 때 그 능력을

내가 입어야 내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입는다]는 말

[입힌다]는 말은 다릅니다. 입는 것은 내가 입히는 것을 말하고 [입힌

]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입혀 주는 것을 뜻합니다. 본문은 "위로부터 능력

을 입히울 때까지"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내가 입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입혀주신다는 것입니다.

죄사함 받는 것도,능력 입는 것도 내가 주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능력을 입기위해 해야할 일이 있습니

. 그것은,

 

3. 이 성에 유하라는 것입니다.

 

49절 끝을 보면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고 했습니다. 여기

서 말하는 [이 성]은 예루살렘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대부분의 제자들은 거칠고 삭막한 수도 예

루살렘을 떠나 그들의 고향이었던 갈릴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순절 성령강림을 기다리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예루

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120명만 성령의

능력을 받았습니다. "이 성에 유하라"는 말씀을 듣고 순종한 사람만 능력을

받았습니다.

이 성에 유하라는 말씀은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줍니다.

첫째, 익숙하지 않더라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부분 갈릴리지방 사람인 제자들로서는 예루살렘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바다를 벗하며 배의 노를 젓던 그들에게 딱딱한 돌집이며, 거리는 전혀 생

소한 곳입니다. 분위기도 익숙하지 않습니다. 제도, , 관행을 따지는 예

루살렘 보다는 바닷바람이 속시원하게 부는 갈릴리 바다가 훨씬 더 친근하

고 익숙합니다.

 

더구나 예수없는 예루살렘에는 한시간도 머물고 싶지 않은 것이 그들의 마

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준미은 "이 성에 유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4을 보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벗하며 살다가 교회를 처음 나왓다든지, 교회를 옮긴 사람들은 모

든게 익숙하지 않을 것입니다. 낯설고 생소한 것들 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교회를 떠나거나,예수를 떠나면 안됩니다. 낯이 설고 익숙하지 않더라

도 이 성에 유해야 합니다.

 

둘째, 싫더라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등학생 1천명을 대상으로 물었습니다. 공부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가? 1

천명중 128명만 재미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왜 공부를 하는가라는 물음에 제일 많은 대답은 거쳐야할 과정이니까,

학에 들어가야 하니까, 안하면 사람구실 못하니까 등 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의 경우도 그 진가를 알기전 까지는 멋도 맛도 모르기 마련입니

. 그러나 "이 성에 유하라"는 말씀은 주목해야 합니다.

싫더라도 안하면 안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공부하는 것, 일하는

것 등입니다.

예수믿고 능력받아 힘있게 사는 것은 귀찮고, 힘겹고, 싫더라도 해야합니

. 싫더라도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싫더라도 이 성을 떠나면 안됩니다. 밥을 먹기 싫다고 해서 한달동안 밥을

먹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영양실조로 굶어 죽고 말 것입니다.

싫더라도 교회 나오고, 저녁예배 나오고, 새벽에 나오고, 수요일에 나와야

그 영혼이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성에 유하라는 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의 의미는 예루살렘입니다. 그리고 넓게는 예수의 품이

, 교회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으로 떠나지 말라 이 성에 유하라. 주님과 교회를 떠나지 맙시다.

그래야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을 힘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발행일 : 940828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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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그를 힘입어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3:15-17

 

 

바울 서신을 보면 벗으라는 말과 입으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벗고 입

는 행위는 인간세계에서만 가능합니다. 동물의 세계에는 입고 벗는 행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털갈이나, 허물갈이는 있습니다만 사람처럼 옷을 벗거

나 입는 일은 없습니다.

 

창세기 3:21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가죽 옷을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은 창세기에서부터 하나님은 인간이 벗고 입

는 일에 관여하셨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바울의 경우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은 벗어버리라"고 했고, "

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22-23에서 말씀했습니다.

성경이 지시하는 벗으라,입으라는 행위는 단순한 의상착용에 관한 교훈은

아닙니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옷을 벗고 입는 패션의 발달은 인간만이 누려온 문화

특권이기 하지만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벗고 입는 문제는 영적 사건인 것입

니다.

다시 말하면 죄에 물든 영혼의 옷은 벗어 버리고 예수를 옷입듯 입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고, [그리스도를 힘입으라]고 한

것입니다.

 

1. 우리가 벗을 것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에베소서 4:22을 보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

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옛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여자가 아이를 낳는 해산용어 가운데 [유산][난산][사산][순산] 이라는 있

습니다.

유산이란 임신도중 임산부가 받은 물리적, 외적 충격이나 정신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난산이란 해산과정이 순조롭지 못해 임산부가 태어나는 아기가 고통받는

것을 말합니다.

사산이란 문자 그대로 태어나는 아기가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순산은 고

통과 긴장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생명이 순조롭게 태어나 고고성을 터트리

는 것을 말합니다.

 

기독교인이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도 흡사합니다.

믿는 척하다가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산과 같습니다.

믿긴 믿는데 남을 괴롭히고,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고, 자신도 고통스럽게

살면서 가까스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난산과 같

습니다.

가롯 유다 처럼 예수 따라다니고 직분도 받고 집회참석도 하는 사람이 있

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 속에 예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영혼이

멸망하고 맙니다. 이런 사람은 사산과 같습니다.

그러나 시험과 연단을 잘 견디고 그리스도와 교회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잘 참으면서 마침내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순산]한 사람인 것입니다.

교회다니고 교인행세 하지만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유산,난산,사산 신자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바울은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한 것입니다.

[벗어 버리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단순히 [벗으라]가 아닙니다.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 뜻은 벗는 것만으론 안된다는 것입니다.

은 것을 멀리 버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재생가치가 없기 때문에 폐

기처분하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22을 보면 그것은 썩어져가는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썩어져 가

는 것은 도려내고 수술을 해야 새살이 돋아납니다. 썩어져 가는 것을 아깝

다든지 아쉽다고 해서 그대로 놔두면 생명이 위험하게 됩니다.

나의 옛사람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것은 욕심,방탕,시기, 질투,음란,

적질하는 것,훼방, 분쟁, 고집 등 이루 헤아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것들을

빨리 벗어버려야 합니다.

 

가롯유다도 옷벗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벗질 않고 고집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마감했습니다.

골로새서 3:5을 보면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 부정,

사욕, 정욕, 탐심이라"고 했고 3:6을 보면 "이런 것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걸치고 있던 누더기를 빨리 벗어 버립시다. 누더기에 묻어있는

세균이 내 몸을 온통 썬게 만들기 전에 지금 벗어 던집시다.

 

2.무엇을 입어야 합니까?

 

에베소서 4:24에서는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고, 골로새서3:17에서는 "

를 힘으라"고 했습니다.

낡고 더러운 옷을 훌훌 벗고나면 알몸이 됩니다.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

는 것은 나체주의자나 정신착란증 환자일 것입니다.

벗었으면 다른 것을 입어야 합니다. 벗어 놓은 것을 다시 입으면 안됩니

. 바울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를 힘읍으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고약한 마음을 고쳐보기 위해 어느날 속옷,와이셔츠,

넥타이, 벧트, 양복, 양말까지 새 것으로 갈아입고 출근을 했습니다. 기분

도 상쾌했고 발걸음도 가벼웠습니다. 그리고 그 기분이라면 화를 내거나 신

경질을 부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

100만원을 빌려간 뒤 석달째 종적을 감추었던 사람을 만났습니다. 아침에

갈아입고 , 나온 새 옷 때문에 그 사람의 감정이 흔들리지 않을까요?

옷말 갈아입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한 새 사람이란 거듭난 사람이 되는 것,예수의 소유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형의학의 발달로 신체의 모든 부분의 성형이 가능해졌습니다. 쌓꺼풀수

술도 가능하고, 코도 높였다 낮추었다 하는 것이 가능해 졌고, 가슴 크기도

마음대로 조정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형으로 안되는 것도 많습니다. 작은 키를 10CM정도 크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의 성격이나 인격은 성형의학으로 교정하지 못하빈다.

 

인간의 영혼을 교정하고 바로 잡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는 것으로만

가능합니다.

국가가 예수를 힘입으면 선진국가가 됩니다.

교회가 예수를 힘입으면 은혜로운 교회가 됩니다.

가정이 예수를 힘입으면 평안한 가정이 됩니다.

 

중국에는 기공술이라는 치료법이 있습니다. 220보트의 전기를 자기몸에 흐

르게 한 뒤 그 전류가 흐르고 있는 손으로 다른 사람을 치료한다는 것입니

. 전류가 흐르고 있는 손으로 전구를 잡으면 그 전구에 불이 들어옵니다.

전류가 흐르는 손으로 제 손과 목덜미를 만질 때마다 강한 전기가 감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를 힙입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힘을 내가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전류가 내 몸에 흐르는 것처럼 그리고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예수님의 힘을

내가 받고 예수의 힘을 옷갈아입듯 입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 힘이 없지만 예수를 힙입으면 나도 힘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빈

. 나는 쓸모가 없지만 예수를 옷입으면 쓸모있고 아름다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망서리고 미룰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누더기는 벗어 버리고 예수를

힘입어야 합니다.

 

3. 그를 힘입고 난 후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1)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됩니다(15).

예수를 힘입고 새 사람이 되면 평강이 우리 삶 속에 임합니다. 그리고 그

평강은 세상에서 얻는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세상 평강은 기분이나 조건에

좌우됩니다. 그 길이도 짤막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빼앗아 갈 수도 있습니

.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은 기분이나 조건이 좌위되지 못합니다.

길이 또한 영원하빈다. 그리고 사람도 마귀도 빼앗아 가지 못하빈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가 대통령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간 뒤

어느 날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으로 재직할 동안 보람도

있었고 일도 많았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일들도 많았다.그러나 고향으로 돌

아와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진정한 평안과 위

로였다"고 평강은 예수 믿는 사람이 받는 축복 가운데 가장 큰 선물입니다.

 

2) 감사하게 됩니다(15).

일반 회사와 교회의 다른 점이 여러가지 입니다만 그 가운데 하나가 용어

입니다. 교회는 은혜, 감사, 사랑, 믿음 등 세상에서 흔치 않은 용어를 많

이 사용하곤 합니다. 특히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용어입니다.

정말로 거듭나고 예수를 힘입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감사가 차고 넘쳐야 합

니다.

감사하는 방법은 세가지입니다.

첫째는 늘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둘째는 말로 표현해야 합니다.

셋째는 물질로 표시해야 합니다.

 

3) 신령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령한 삶은 16-17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첫째는 말씀이 풍성합니다.다시 말하면 말씀이 넉넉하기 때문에 그 영혼

이 배고프지 않다는 것입니다.배고프면 시끄럽고 불평이 많지만 배가 부르

면 온갖 불평이 잠잠해지고 열심히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새

활이 짜증스럽고 교회생활이 불평스런 사람은 [내가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해 배가 고프구나]라고 진단하면 틀림없을 것입니다.

 

둘째는 신령한 노래를 부릅니다. 찬송은 감사, 고백, 경배를 한데 묶어 드

리는 곡조붙은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중병을 앓고 있거나 탈진상태에 빠진

사람은 소리가 작습니다.

찬송소리가 작은 사람, 찬송부르며 딴 잡념에 사로잡히는 사람은 영적 건

강에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를 힘입으면 찬송의 크기가 달라지고 태도가 달

라지게 됩니다.

 

셋째는 모든 일에 예수의 이르으로 합니다. 기도도 예수 이름으로 찬송도

예수님께, 봉사도 예수이름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옷입으면 나는 감

춰지고 예수가 드러납니다. 더럽고 추한 내 모습은 예수로 감싸지고 예수가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예수 이름이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입은 바 된 에수의 그옷과 힘을 다시 벗어던져선 안된다

는 것입니다.

 

시편 31:10에서 시인은 "내 기력이 나의 죄악으로 인하여 약하며 나의 뼈

가 쇠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힘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블레셋 여

자 들릴라의 유혹에 빠져 주색에 몸과 영혼을 망쳤습니다. 그의 힘은 온데

간데 없어져 버리고 개처럼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사야 40:31을 보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힘있는 자는 살아남고, 힘없는 자는 마귀 밥

이 될 것입니다.

예수를 힘입고 새 사람이 되면 영적인 세계에서 당당한 승자가 될 것입니

. 예수를 힘입고 승리합시다.

 

발행일 : 940821

분 류 : 설교

 

 

41

제 목 : 해방된 사람들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8:1-2

로마서 8:1-2은 바울의 해방선언문입니다. 특히 2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

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

"고 했습니다. 다른 사본에는 "나를 해방하였다"로 되어 있습니다.

해방은 한마디로 자유로워 지는 것입니다. 정치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것이고, 정신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경제적 속박으로

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해방입니다.

다시 말하면 억압과 속박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사는 것을 해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자기네 이념투쟁을 걸핏하면 해방전쟁이라고 불렀습니다.

남조선 인민을 해방시킨다며 6.25 전쟁을 일으켰고, 월남을 해방시킨다면

오랜 세월 전쟁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한 해방은 피를 부르고 가난을 자초한 해방이었습니다.

 

1945815일은 우리가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방된 날입니다. 그러

니까 해방된지 어언 반시기가 지난 셈입니다. 김일성 사망이후 중단된 남.

북대화,제네바에서 열린 미국과 북한의 핵대화,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외교

정상화를 개시하게 될 것이라는 것 등이 맞물린 정세 속에서 815일 해방

기념일을 맞게 되었습니다.

 

저는 해방기념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몇가지 감사의 조건이 생각났습니다.

첫째, 해방된 주권국가가 되게 하신 것.

둘째, 잘 사는 나라가 되게 하신 것.

셋째, 자유롭게 살게 해 주신 것.

넷째, 천만 넘는 기독교인을 주신 것.

다섯째, 전쟁을 막아 주신 것.

여섯째, 가뭄과 태풍을 막아 주신 것 등 감사의 조건이 너무나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해방을 주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면서 참된 해방이란

어떤 것이며 우리는 어떤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졌는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8:2 끝을 보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니라"고 했습니다.

에서 말씀드린대로 어떤 다른 사본에는 "나를 해방하였다"로 되어 있습니

.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와 너" 우리 모두를 죄와 죽음에서 자유

롭게 해주셨습니다. 죄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죄값으로 죽게 됩니다. 그런데 답답한 것은 인간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의 힘이나 노력으로 죄를 없애거나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짐승을 사람 대신 잡아 제사드림으로 죄를 사함받았습니

.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죄를 사해 주

셨고 누구든지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사함 받고 영생을 얻

는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것을 가리켜 "죄와 죽음에서 나를 해방하였다"고 했습니

.

 

출애굽기 21장을 보면 6년 동안 주인을 섬기던 종이 7년 되는 해에는 아무

조건없이 주인을 떠나 자유롭게 되는 법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안시년 제도

라고 합니다.

레위기 25장을 보면 안식년을 일곱번 지나서 50년이 되는 해를 희년이라고

합니다. 희년이 되면 땅도 쉬고 종도 해방되어 자유를 얻게 됩니다. 이것을

희년제도라고 하빈다.

종이 제멋대로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그 법

테두리 안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죄와 죽음의 종으로부터 해방받는 것도 내멋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밝힌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안에서 "

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법으

로 내가 자유를 얻고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짓고 내멋대로 사는 것은 육신의 생각이지 성령의 생각은 아닙

니다. 8:5를 보면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

을 생각한다"고 했고 8:6을 보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

명과 평안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7절을 보면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고, 13절을 보면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

이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따르고 육신에 속한 일을 하고 살면서 생명을 얻는 것은 불

가능합니다. 그러나 11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

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했습니다.

 

이상의 말씀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따라 제멋대로 죄짓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살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를 믿고 성령의 생각을 따라 생각하고 살면 죄와 죽음에서 해방받고 15절에

서 밝힌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

.

 

결단은 내가 해야 합니다. 죄의 종노릇 하다가 죽을 것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노릇 하다가 영생을 얻을 것인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맺고 살면

서 행복하고 잘 살수가 있겠습니까? 죄와 죽음에서 해방받으려면 예수깨로

돌아와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감동을 거역하면 안됩니다.

에서 자유함을 받은 감격을 안고 살아 갑시다.

 

2.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법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표준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법

을 시행령과 금령으로 구분됩니다. 다시 말하면 무엇 무엇을 어떻게 하라가

시행령입니다. 금령이란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 하면 어떤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시행령은 적극적인 법이고, 금령은 소극적인 법입니다.율법 속에

는 이상의 두가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법은 없을수록 좋습니다. 이유는 다 지키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경우 율법조항이 너무 많고 세분화 되면서 법을 다 지키기

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법은 있는데 지키지 못하면 사람들은 거짓말을 시작

하게 되고 위선으로 자기를 감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일주일에 반드시 한번씩 금식을 해야 하고, 구제를 해야 하고,

기도를 해야 한다는 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법을 지키지 못하는 어떤 종

교지도자가 있습니다. 만일 그가 그 법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공개되면 그

의 지도력이나 출세에 지장이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 법을 지키는

양 하게 되고, 자기를 위선의 천으로 포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

.

바울은 선언합니다. "율법의 의로는 의로워질 수 없다", 로마서 7:7

보면 "율법이 없이는 죄를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법이 죄를 사하

지는 못하빈다.

 

율법은 내가 죄인임을 알게 해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나를 죄에서

해방시켜 준다는 것이 바울의 주장인 것입니다.

 

미국에서 겪은 일입니다. 어느 주일 아침 목사님이 저를 데려가기 위해 호

텔 앞에 잠깐 차를 세워놓고 제 방에 전화를 걸고 있는 사이 교통순경이 기

다리고 있었습니다. 불법주차를 했다는 것입니다. 차주인이 교통순경에게

나는 교회 목사인데 오늘 아침 설교할 목사님을 모시러 왔다가 잠깐 차를세

운 것이라며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교통순경은 "목사

님이 법을 어기면 되느냐"면서 티켓을 끊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사님

도 저도 할말이 없었습니다. 얼마짜리나겨 했더니 20불 짜리라고 했습니다.

 

언젠가 하와이에서 주일 아침에 불법주차를 했습니다. 시간은 제가 불법주

차를 했습니다. 시간은 제가 내려오는 시간을 합해 5분 정도였습니다.교통

순경에게 한국에서 온 목사님을 모시러 왔다가 잠깐 주차를 했노라고 했더

니 자기도 기독교인이라며 좋은 하루 되라고 인사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벌금 티켓도 떼지 않았습니다.

 

간단한 두 사건을 놓고 생각해 보십시다.불법주차는 벌금을 내야 한다는

것은 도로교통법입니다. 그러나 그 법을 집행하는 교통순경의 재량에 따라

법집행의 방법이나 결과는 달라집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방법이나 결과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법은 좋고 나쁜 것과 바른 것과 바르지 못한 것을 가르쳐 줍니다만, 그 법

은 내 죄를 도말하거나 속죄해 주진 못합니다.

그러나 에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은 내가 비록 죄를 범했더라도 그 죄르

리 용서하시고 새사람이 되게 해주십니다. 이것을 바울은 율법으로부터 해

방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죄에서 해방되고, 죽음에서 해방되고, 율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까?

 

3. 마귀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마귀는 계속해서 죄를 만들어 냅니다. 악을 만들고 이 세상이 온통 죄로

썩어 냄새가 나게 합니다.

마귀의 별명 가운데 바알세불이라는게 있습니다. 그 뜻은 [똥무더기의 주

]이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신선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을 싫어합니다.

마귀는 자신의 세력확장을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합니다. 전쟁,

분열, 술수,사상, 음란,퇴폐,불신앙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합

니다.

그리고 한번 마귀에게 사로 잡히면 내 힘으로 빠져 나오는 것이 불가능합

니다. 속박하는 힘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20:2를 보면 마귀를 옛뱀이라고 했습니다.

뱀의 여러가지 특성 가운데 공격목표를 한번 감으면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는 것입니다. 그만큼 휘감는 힘이 강합니다.

마귀에게 잡히면 해방받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가능합니다. 예수는 마귀의 머리를 깨뜨렸기 때문

입니다. 뱀은 머리에 치명타를 입으면 전신의 힘이 풀린다고 합니다.

창세기 3:15을 보면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마귀의 머리에 치명타를 입히게 된다는 예언입

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그리

고 그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 부터 마귀는 우리 곁을 떠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포기하는 것입니다.

 

죄로부터 자유,죽음으로부터 자유, 율법으로부터 자유,마귀로부터 자유,

사람들을 바울은 해방된 사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끝으로 우리는 바울의 경고를 주목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1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기 서

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유는 그 자체로서 위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유가 내 것이 되었다는

것은 감격적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잘못쓰면 무질서, 혼란, 방종, 타락, 자멸의 무기가 됩

니다. 비록 자유를 얻고 해방받는 사람이라도 날마다 그 자유가 방종이 되

지 않도록 자기와 싸워야 합니다.

바울은 자유인이었습니다. 단 예수를 위해 그는 자유인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를 위하여 나의 자유와 해방을 써야 합니다.나는 하나님의 자

녀로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맬 수가 없습니다.

 

발행일 : 940814

분 류 : 설교

 

 

42

제 목 : 선택받은 사람들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합동

구 절 : 3:12-14

 

본문 12절을 보면 "하나님이 택하신 자"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에 관한 사상은 구약과 신약 전편에 흐르고 있는 하나의 일관

된 사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사람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통해 하

시고자 하는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중심으로 다음의

사실들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1. 왜 선택하셨는가

 

1) 수가 작기 때문입니다.

신명기를 보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가 나옵니다. "내가 너희를 택한

것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그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작기 때

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수효가 적다는 것은 숫자가 적다는 뜻도 있고 약소민족이라

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나 크기가 작기 때문에 모든 것이 약한 것은 아닙니다. 재래식 폭탄은

큽니다만 핵폭탄은 작습니다. 그러나 그 위력은 작은 것이 더 큽니다. 반도

체의 경우도 작을수록 그 가치와 효용성이 높아집니다.

 

하나님은 작은 자들을 선택하십니다. 큰 사람은 오만합니다. 큰 나라도 오

만합니다. 그러나 작은 자들은 자기 실체를 알기 때문에 오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상적으로 주변에 흩어져 있는 폐품들을 모아 짜맞추는 예술행위가 있습

니다. 일명 전위예술이라고도 합니다만 쓸모없이 버려진 것들을 모아 하나

의 조각작품을 만드는 것을 어셈블리지(aSSEMBLAGE)라고 부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여기저기 쓸모없이 버려진 폐품조각과 같은 존재들이

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주워모아 쓸모있는 작품을 만드시고 거기다가

존재의 의미까지 부여해 주신 것을 성경은 하나님의 선택이라고 가르쳐 주

고 있습니다.

 

피카소의 작품 가운데 [황소의 머리]라는 조각작품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

전거의 손잡이와 자석으로 만든 것입니다. 만일 무명의 작가가 자전거 손잡

이와 좌석을 모아놓고 [황소머리]라는 작품명을 부쳤다면 놀림감이 되었을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이

라고 했습니다. 작기 때문에, 죄인이기 때문에 선택하셨다는 것은 선택받은

우리에겐 감격적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하나님은 찬송케 하기위해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들 가운데 의미없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늘의 해와 달과 별들, 땅과 바다와 거기있는 모든 생명체들, 풀 한포기에서

하루살이까지 필요없는 것은 없습니다. 인체에 돋아난 솜털까지도 필요가

있고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호주 어느 목장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독수리가 양떼를 채가는 바

람에 목장주가 화가나서 산탄총을 쏘아 독소리를 죽여 버렸습니다. 그랬더

니 그 후로는 양떼들이 전염병으로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그 원인을 알아

봤더니 독수리가 채간 양은 거의가 다 병든 양들이더라는 것입니다.

우린 이 이야기기 속에서 두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병든 양을 독수리가 채간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양도 독소리도 존

재와 필요가치가 다로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쓸모없는 폐품같은 나를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을 찬송케 하려

는 것이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모든 악기는 다 제 소리가 있습니다. 관악기는 관을 통해 소리를 내고,

악기는 현을 통해 소리를 냅니다. 그리고 타악기는 두드려서 소리를 냅니

. 모든 악기는 크기와 생김을 따라 소리가 각각 다릅니다. 그리고 다른

소리가 한데 어우려져 화음을 이룰 때 음악예술의 극치가 이루어지는 것입

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악기입니다. 각각 제소리를 내면 됩니다.

큰 소리도 있고 작은 소리도 있습니다. 높은 소리도 있고 낮은 소리도 있습

니다. 강한 소리가 있고 약한 소리도 있습니다.

 

모두가 다 필요한 소리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찬미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북한은 하루 아침에 김일성 찬가를 김정일 찬가로 바꾸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찬송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찬송을 위해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3) 사랑하기 때문에 선택하셨습니다.

물론 이 사랑은 일방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외면하고 제멋대로

살고 있을 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

습니다.

일시적인 만남은 사랑이 없어도 됩니다. 그러나 그 만남의 시간이 길수록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이 차 한잔을 나누는데는 사라

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나 친구가 되려한다든지 부부가 되어 일생을 함께 살기로 한다면 반드

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선택하셨습

니다.

사랑은 늘 함께 가까이 하고 싶은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늘 까이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한다면 하나님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도, 기도도 찬송도, 감사도

늘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4) 구원하시기 위해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의 결정적 이유는 구원입니다. 죄에서 건져내시고 영생을 선

물로 주시기 위해 버려진 폐품같은 우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모 일간지 실렸던 기사가 생각납니다. 로스앤젤스에 [리언 그레이브스]

는 흑인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1981년 어느날 그 노인이 살고 있는 아파

트 옆방에서 사흘간이나 아기 우는 소리가 그치지 않아 들어가 보았더니 출

생증명서 한장과 포대기에 쌓인 아기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고아원에 보낼

생을 했으나 그 아기가 천사철머 보여 기르기로 작정하고 지금까지 키웠는

데 그 아이가 금년 13살난 [정로이]이군 이라는 기사였습니다. 흑인 노인

[그레이브스]씨가 아니었더라면 그 아이는 울다가 질식해서 죽었을지 모릅

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나를 죄

에서 건져내지 않으셨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미 내 영혼은

죄에 눌려 죽었을 것이고 천하의 개망나니로 살다가 제명에 살지도 못한채

지옥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웬 일입니까? 웬 사랑입니까?웬 축복입니까? 왜 이토록 날 사랑하

셨습니까? 복음성가 가사가 생각납니다. "예수님 날 위해 죽으셨네, 왜 날

사랑하나, 갈보리 십자가 지시었네,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날 사랑하나. 예수님 갈보리 가야했네, 왜 날 사랑하나. " 아멘.

 

2. 선택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선택받은 곳에서 살아야 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선택하신 후 아브라함의 후손을 그곳에서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 가나안은 지금의 성지 이스라엘 땅입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내려갔

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왔고 그 아들 이삭도 살기 편한 그랄로 이민갔다

가 가나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애굽에서 430년간 살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동안의 대장정 끝에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왔고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

역시 모압 땅으로 이민 갔다가 가나안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지금도 유대인은 그 전통 그대로 성지를 지키며 그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주 넓은 땅을 다 빼앗긴 것처럼 저들도 넓은 땅 다 빼앗기고 지금

은 비록 강원도 크기의 땅을 차지하고 있지만 세계 민족 가운데 자기네 땅

을 성지(HOLY LAND)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유대인 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의 경우는 어느 곳이 택한 곳입니까?

 

첫째는 주님의 품입니다.

그곳을 떠나면 안됩니다. 시인은 "내가 주의 날개 그늘아래 피하리이다"

고 노래했습니다. 주님이 품은 나의 영원한 처소이며 성지입니다.주님의 품

밖으로 벗어나면 죽게 됩니다.

 

둘째 교회입니다.

어떤 이유로도 교회를 버리고 등지고 외면하면 안됩니다. 구약의 성전은

오늘의 교회입니다. 유대민족이 성전중심으로 살았던 것처럼 우리는 교회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간혹 교회가 병들었다느니 썩었다느니 라며 공격하고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교회자체가 병든 것이 아니라 그 교회에 모인 사람이 병든 것입

니다. 그리고 설사 교회가 병들었다 손치더라도 버리면 안됩니다.

병원만큼 병자가 많고 병균이 많은 곳은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병원을 외

면한다면 병을 고칠 수 없을 것입니다. 같은 이치입니다.

충신교회 교인은 충신교회가 하나님이 택해주신 성소인 것을 믿으시기 바

랍니다.

 

충신교회 교인들은 다음 몇가지를 믿어야 합니다.

첫째 충신교회가 주님이 계신다.

둘째 충신교회가 제일이다.

셋째 충신교사가 내 교회다.

넷째 충신교회를 끝까지 섬긴다.

 

2) 택하신 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그 법을 지키고 살아야

했습니다만 오늘 우리에게는 사랑의 법인 성경을 주셨습니다 택한 백성은

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가지 법을 민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잘잘못을 가리고 결정하는 법을 형법이라고 합니다. 입법부인 국회

는 법을 만들고 사법부는 그 법을 진행합니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정하신 법을 지켜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택하신 자들은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

을 옷입고 협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

하신 것 같이 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 하라"고 했습니다. 우린 이

 

 

 

구절 속에서 택함받은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법의 본질은 사랑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부관계를 예로 들겠습니다. 부부는 일종의 계약관계입니다. 계약조건을

따지면 살기 어렵습니다.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법

아래 있으면 문제될게 없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참으로 귀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

. 율법은 정죄가 있습니다만 사랑은 정죄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

랑을 강조한 것입니다.

 

3) 택하신 일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한 남자가 남과 북 경계선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남군이나 북군을 다 지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전쟁이 가열되자 그는

고민끝에 바지는 남군이 입는 것을 입고, 저고리는 북군의 것을 입기로 했

습니다. 그렇게 하면 남군이나 북군이 자기를 살려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

. 전쟁이 치열하던 어느날 그는 밖에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북군은 그의

남군바지를 향해 초을 쏘아대고 남군은 그의 북군 저고리를 향해 총을 쏘아

대더라는 것입니다. 많은 교훈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택함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세가지라로 생각합니다.

 

첫째는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는 말씀이 그것을 설명합니다. 서로 사랑

합시다. 화목하고 위해주고 도우며 삽시다.

둘째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주님 앞에 서는 시간까지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해야 합니다.

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해야 합니다.

셋째는 교회를 받드는 일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몸을 반드는 것은 주님을 받드는 것입니다. 교회

를 섬기고 맡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택함받은 사람들이 할 일인

것입니다.

택함받은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택한 곳에서 살고 택한 법을 지키

고 택한 일을 하는 사람은 이 지상에서 가장 멋지고 복된 사람들입니다.

택함받은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발행일 : 940807

분 류 : 설교

 

 

43

제 목 : 피조물의 탄식소리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합동

구 절 : 8:22-25

 

 

KBS 방송의 모 기상캐스터는 계속된 가뭄을 가리켜 "과거의 기상기록을 휴

지로 만들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기상이변이라는 것입니다.

전같으면 일본 규슈지방에서 이동 중인 태풍이 동해안으로 이동 중 앞으로

3일이면 제주도와 동해안을 강타할 것이라는 기상예보가 있게 되면 제발 태

풍이 멀리 달아나 주기를 바라는 것이 예사였습니다.

그런에 이번의 경우는 태풍을 학수고대 했습니다. 6천여개의 저수지가 바

닥을 드러냈고, 선풍기 에어컨은 3년전 재고가지 다 팔렸다고 합니다.

 

대청호에서는 수십만 마리의 빙어떼가 때죽음을 당했고, 농작물은 선 채로

메말라 죽어 버렸습니다. 닭장에선 닭들이 늘어진 채 죽었고, 길바닥엔 더

위를 견디지 못한 자들이 수십대씩 시동이 꺼진 채 서있었습니다.

금년 여름 더위는 한국만의 경우는 아니었습니다.

뉴욕은 50년만에 찾아온 더위로 찜통을 이뤘고 네바다 주는 섭씨 52도를

기록하는가 하면 캘리포니아 남부지역에서는 얼음공장에 얼음이 떨어질 정

도였습니다.

 

중국의 북경, 상해, 연변, 도문 역시 불볕 더위로 찜통을 이뤘고, 홍콩이

나 일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들을 바라보면서 피조물의 탄식이라는 본문이 생각났습니

. 사람도 신음하고, 짐승도 신음하고 초목도 신음하고 있는 것 바로 이것

이 피조물의 탄식소리인 것입니다.

 

1. 왜 피조물이 탄식하게 되었을까요.

 

22절을 보면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

리가 아나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함께 다 탄식하며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피조물인 인간이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

.주목할 것은 하루하루 창조사역이 끝날 때마다 "여호와 보시기에 좋았더

"는 말씀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2장을 보면 에덴동산을 만드신 후 아담과 하와의 주거지로

주신 기사가 나옵니다.

2:9를 보면 '보시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다"고 했고

2:10을 보면 강이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 발원한 비손강, 하윌라강, 기혼강,

핫데겔강이 굽이쳐 흘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각종 지하자원이 풍성하게

매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3:18을 보면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컹퀴를 낼 것이라"고 했습니

. 창세기 1장과 2장의 아름다운 자연이 3장으로 넘어오면서 박토로 변해

버립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창세기 3:19입니다.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

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긴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자연이

파괴되기 시작했고, 인간 자신도 죽음을 겪는 비극적 존재로 전락했다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피조물의 탄식소리는 인간의 탄식소리이며, 인간의 탄식소리는

그가 저지른 죄값이라는 것입니다.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이 썩어 악취가 나고, 깊은 산 개울가 할 것

없이 쓰레기로 가득차 돗자리 펴고 앉을 자리가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강이 저절로 썩고 개울이 저혼자 더러워집니까? 아닙니다. 사람이 먼저

썩고 그들이 버린 썩은 것들이 산과 강과 개천과 땅을 썩게 만들고 있는 것

입니다.

 

저는 721일 중국 도문시를 방문했습니다.도문시는 두만강을 경계로 함

경도와 인접한 국경도시입니다. 도문시 직원들의 안내로 국경 초소에 올라

가 북녁땅과 두만강을 바라보았습니다. 걸어서 10분정도면 건너 갈 수 있는

다리가 있었습니다만 아무나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다리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두만강물 역시 탁류였습니다. 그리고 김정구씨가 노래한 노젓

는 뱃사공도 거기엔 없었습니다.

두만강물이 오염되는 것은 아오지 탄광에서 쏟아져 내리는 폐기물과 폐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 그리고 그 심성이 타락한 사람들이 사는 곳일수록 자연이

탄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버리는 라면 비닐봉지는 땅속에서 50년 동안 썩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무 젓가락은 2560년이 되어도 썩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무렇게나 버리는 건전지들은 이땅을 수은중독증에 걸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상이변도 따져보면 자업자득입니다.

겨울이면 시베리아에서 형성된 차고 건조한 공기가 찾아오고 가을이면 동

북쪽의 오호츠크해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 때문에 청명한 가을이 이뤄집

니다.

 

봄이면 중국 양자강에서 훈풍이 불어오고,

여름이면 북태평양으로부터 무더운 바람이 불어옴으로 4계절의 순환이 이

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계절의 순환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습

니다.

그 원인 역시 사람입니다.

열대림 남벌로 인한 사막화 현상, 오존층의 파괴, 대기오염, 바닷물 온도

의 상승 등이 주원인인데 그 원인 제공자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린 흔히 선진국으리 GNP로 측정합니다. GNP가 높은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선진국은 대부분 자연보존이 잘된 나라들입니다. 그 나라

들은 강이나 개천에서 비누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습니

. 물고기도 싹쓸이 해서 잡지 않습니다. 살인적 매연을 내뿜는 차를 몰고

다니지 않습니다.

 

본문 22절 말씀대로 피조물이 함께 고통하고 탄식하는 것은 피조물 가운데

으뜸으로 창조한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은 오존병이 유행한다고 합니다. 오존병이라 자동차 매연에서 다량

배출되는 질소화합물이 강한 햇볕이 내리쬐면 자외선과 반응해 새로운 오염

물질을 생성시킨다는 것입니다.

 

오존병은 식물을 말라 죽게하고 눈병, 피부병,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며 플

라크톤도 소멸시킨다고 합니다.

미국의 [샌드라 포스텔 월드위치 연구소]의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70년대

세계가 오일쇼크로 흔들렸던 것처럼 90년대에는 물부족 현상이 일어날 것이

라고 했습니다.

 

물부족 현상은 중동평화를 깨드릴 것이며, 세계식량 안보를 위협할 것이

, 산업시설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물부족 현상은 자연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활

동에 의해서 초래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원인은 사람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그렇게 만든 것이 죄와 타락

입니다. 그 문제가 해결될 때 탄식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2. 해결방법은 무엇입니까?

 

23절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가 되어 몸이 구속받은 것이라"고 했

, 24절을 보면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라고 했습니다. 해결의

방법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을 받

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선진국은 자연환경 보존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자

연을 그대로 보존하는 나라들은 대부분이 기독교 국가들입니다. 미국,영국,

스코틀랜드,스웨덴,스위스, 독일,덴마크,노르웨이,호주,뉴질랜드 등.

사람이 살면서도 자연보존이 가능한 나라들은 대부분 보존합니까? 그것은

가진 나라들입니다.

왜 기독교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을 사랑하고 보존합니까? 그것은 하

나님의 맡겨주신 선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8을 보면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

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과 피조물들을 제대로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

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과 피조물들을 제대로 관리하고 다스리라고 하셨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함부로 관리할 수가 없는 것

입니다.

 

자연이 바뀌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합니다.

담배 꽁초나, 씹던 껌, 코를 훔친 휴지를 길바닥에 함부로 버리지 않는 시

민정신이 확립됐을 때 민주주의나 민주화는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 저 개인

의 소신입니다.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덴마크는 바이킹들이 지배하던 나라들입니다. 바이킹

은 해적들입니다. 바다를 주름잡고 약탈을 일삼으며 폭력과 야만적 행동을

일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주후 1080년 기독교의 복음을 받

아 들였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저들의 마음을 순화시켰고 문화민족으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그 결과 저들은 행동과 가치와 삶이 변했습니다. 그리

고 일등국가가 되었고 일등국민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해봅시다.

유교나 불교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민족계몽이나 선진도약에 끼친

영향이 무엇입니까?

기독교는 전래된 역사는 짧습니다만 이 민족 역사와 국가발전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앞으로 더욱 기독교의 할 일은 많고 무겁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묻은 십자가는 모든 피조물의 탄식소리를 그치게 합니

. 그리고 찬송 소리로 바꾸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탄식소

리를 그치게 해주십니다.

 

첫째 개인의 탄식소리를 그치개 해주십니다.

성경을 보면 신음하던 사람들과 슬피울던 사람들과 가슴에 맺힌 응어리 때

문에 고통받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고침받고 문제를 해결한 이야

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죄로 죽어가던 영혼들이 죄사함받고 새사람된 이야기가 수도

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둘째, 가정의 탄식소리를 그치게 해주십니다.

부부관계 때문에 자녀문제 때문에, 동기간의 갈등 때문에,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탄식하는 가정들이 있습니다. 그 탄식소리가 그치려면 예수 그리스

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 모신 가정은 탄식소리가 노랫소리로 바뀝니다.

 

셋째, 자연의 탄식소리를 그치게 해주십니다.

제아무리 최첨단 과학의 힘이 위대하다고 해도 그 힘만으로 자연을 정복

하거나 통치하진 못합니다. 인간의 심령이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나고 새롭

게 되기만 한다면 그래서 우리 모두가 자연의 청지기들이 된다면 병들고 죽

어가는 자연을 다시 살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넷째 역사의 탄식소리를 그치게 해줍니다.

찬송가 79장 가사가 생각납니다.

[이방이 떠들고 나라들 모여서 진동하나 우리 주 목소리 한번 발하시면 천

하에 모든 것 망하겠네 만유 주 여호와 우리를 도우니 피난처요 세상에 난

리를 그치게 하시니 세상의 창검이 쓸데 없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역사는 탄식하는 역사가 아닙니다.

러시아는 70년 동안 하나님 몰아내고 공산주의만으로 잘 살아 본다며 버티

다가 망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도 하나님 없애고 자기가 신노릇하며 지상낙원 만든다고 떵

떵거리다가 북한을 저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자신은 죽었습니다.

 

역사의 신음소리는 하나님없는 신음소리입니다. 그러나 그 민족 그 역사가

하나님을 영접하면 탄식소리가 그치게 됩니다.

지금도 탄식하는 사람들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크신 이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리고 탄식소리가 기도와 찬송과 감사소리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발행일 : 940731

분 류 : 설교

 

 

43

제 목 :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합동

구 절 : 고전 2:12-16

 

 

마음은 생각을 만들어 내고 생각은 행동을 결정하고 동기를 부여합니다.

사람은 마음의 생각을 따라 행동하게 되기 때문에 그가 어떤 마음을 품느냐

에 따라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가 좌우됩니다.

바울은 본문 16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 했습니

.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는 것은 신령한 마음 즉 성령

께서 주시는 마음을 뜻합니다.

 

그 마음을 가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본문이 밝혀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

 

12절을 보면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으

리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는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한평생을 살아가느라면 실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은혜를 입고 살

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모든 사람이 다 기억하거나 갚으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은혜나 도움을 잊고 사는 사람도 있고 기억은 하지만 갚지 못하는 사람

도 있습니다. 그리고 갚기는 커녕 삶은 산수화처럼 곱고 아름답습니다.

물며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기억하고 감사하는 삶은 그 어느 아름다움에서

도 비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로서 온 영인 성령을 받아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

을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을 수록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들을 낱낱이 기억

하고 감격하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시대는 하나님의 은혜는 물론 부모, 형제, 이웃들

에게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사는 불감증 중병에 걸려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용어가 점차 퇴화해 가고 있습니다.

정신분석 학자들은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표출되는 집단심리 현상 가운데

[집단 히스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 전체

가 히스테리 환자처럼 발작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경기침체, 계속되는 무더위,부정적인 사회현상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다

보면 우리들 역시 집단 히스테리에 걸릴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어느 유치원에서 원아들에게 역할극을 시키고 그 아이들의 교육환경이나

가정환경을 연구확인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를 한쌍

으로 묶어 부부역할을 하도록 했습니다.

사이좋고 오손 도손 얘기를 나누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앓는 소리를 내며

누워있는 부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고 싸움을 벌리는 부부도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의 역할은 가정에서 본 그대로를 연출한 것입니다. 오손도손 사

이좋게 사는 것을 지켜보는 아이들은 그 모습을 흉내냈습니다.

 

부모가 입원해 있거나 병을 앓고 있는 집의 아이들은 그 흉내를 낸 것입니

. 그런가 하면 이틀이 멀다하고 싸우고 소리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는가

하면 히스테리 발작을 일삼는 부모 밑에 있는 아이들은 역할극도 그런 것

을 해낼 수 밖에 없고, 그림을 그려도 그런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는 것입

니다.

 

우리가 영적 불감증을 고치고 집단적 히스테리를 치료하려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를 깨닫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신령한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13절을 보면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

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

느니라"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진행된 월드컴 축구경기를 보려면 미국엘 가야 합니다. 그러나

텔레비젼 중계를 통해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늘의 별을 눈으로 관찰하고 세는 것은 어렵습다만 천체를 보는 망원경이

나 첨단 장비로 볼 수 있습니다.

육안으로 내장이나 위장을 들여다 볼 수는 없습다만 내시경으로는 샅샅이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신령한 세계 역시 육신의 눈이나, 경험이나, 지식으로는 볼 수도 없고,

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라고 했고, "신령한 일로 분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작은 먼지만 들어가도 쑤시고 아픈 눈으로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없습니다.

 

변덕스런 인간의 경험으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거나 깨달을 수가 없

습니다. 돋보기 안경을 껴도 글씨를 보지 못하는 눈으로 영원하시고 영존하

시고 신령하신 하나님의 보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신령한 눈으로 봅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신령한 지식으로

분별합니다. 그래서 본문 14절을 보면 "이런 일은 영적으로야 분별한다"

했습니다.

얼핏 보면 세상 지식과 신령한 지식이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알곡과 가라지처럼 전혀 다른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지방 밀밭에 나가보면 밀과 가라지가 동시에 섞여 자라고 있습

니다 .그런데 색깔이나,크기나,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에 가라지를 골라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추수때가 되면 가라지는 분별이 쉬워집니다.

이유는 가라지는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라지는 엘러지의 원인

이 되기 때문에 사람에 손해를 줍니다.

 

세상 지식과 신령한 지식의 경우 비슷합니다.처음엔 오히려 세상 지식이

더 중요하다고 필요한 것처럼 보입니다만 세월이 지날수록 신령한 지식이

사람을 만들어, 역사를 만들고, 가치를 만드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동남아에서 가장 좋은 비싼 차가 많은 나라 그리고 돈이 흔하고 흥청거리

기 좋은 나라를 홍콩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홍콩은 10대들의 자살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급속한 경제성장과 정신적 공백, 이혼율의 급증으로

오는 가정 붕괴와 갈등, 1997년 중국으로 통치권이 이양되는 국가사회 심리

의 불안, 상급학교 진학문제가 주는 정신적 압박감, 메마른 고층아파트 문

화의 단조로움, 부부 맞벌이로 인한 대화의 단절 등으로 분석하고 있습니

.

 

인간은 영적 존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적 조건이나 문제가 충족되지

않으면 제 아무리 좋은 환경이나 조건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

지 않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것으로 신령한 것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러나 신령한 것으로는 신령한 것과 세속적인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

.

만일 우리가 영적인 존재임을 망각하고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문제를 세상

지식과 경험만으로 풀어가려고 한다든지 해결하려고 한다면 엄청난 장벽에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

조했다는 것이나 에수님이 내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은 신령한 사건입니

. 그 신령한 사건을 세상 지식으로 믿으려고 한다면 죽을 때까지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말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신령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면 그

어느 것 하나도 고개를 갸우뚱 거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를 들락거리고 감동도 감격도 없이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의 존재를 시

인도 부인도 못하는 어중간한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지금 이시간 신령한 믿

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신령한 마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믿고 풀어야 합니다.

 

3. 판단받을 일이 없게 됩니다.

 

15절을 보면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영적 판단력을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신령한 판단력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을 보면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 가운데 영분별의 은사가 나옵니다. 본문도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전공이 신학이기 때문에 다른 분야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제 서가에

는 주로 신학분야의 책이 많이 꽂혀 있습니다. 대학에서는 철학을 전공했

, 일반대학원에서는 사회학 분야를 공부했습니다만, 가장 오랫동안 그리

고 지금도 계속 접하고 공부하는 분야는 신학분야입니다. 그래서 세상 돌아

가는 것이나 정세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느라면 세상일의 옳고 그릇됨이 선하

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이나 행동의 옳고 그릇됨이

훤하게 드러납니다. 저는 그것을 성령께서 주시는 영적 판단력, 혹은 분별

능력이라고 봅니다.

 

성령충만하고 말씀이 충만하면 영분별과 판단력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

.

 

2) 다른 사람으로부터 판단을 받지 않게 됩니다.

본문 15절을 보면 "신령한 자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령충만하고 신령한 삶을 사는 사람은 남의 눈에

거슬리거나 지탄받을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남에

게 유익을 줄지언정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덕을 세울지언정 깨뜨리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감싸고 덮어주고 일으켜 세워주기 때문에 어

느 곳에서나 누구든지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됩니다.

"쉿 쉿' 바람 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성령충만하다고 떠들지 않더라도 그

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나 성령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이 그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사단이 그를 판단하지 못합니다.

사단은 계속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 도전합니다.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너는 죄인이다. 너는 소망이 없다. 너는 죽는다. 너는 패배자다. 너는 교회

를 다녀도 구원받기 힘들다"라면서 괴롭히고 정죄합니다. 그러나 성령충만

한 사람은 그런 것들이 겁나지 않습니다. 이유는 내가 예수님의 은혜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것을 확증해 주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을 보면 '누구든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주시

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죄사함 받았다. 하나님의 자녀다. 너는 소망이 있다. 너는 영생을

얻었다."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마귀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4) 주님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16절을 보면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자녀들은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면 그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주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했습

니다.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있고 기대가 있습니다. 그것을 알려면 내가

신령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눈짓만 해도 알아 차리는 것을 마음

이 통한다고 말합니다. 내가 주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순종하려면 주님의 마

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 마음은 성령충만할 때 성립되는 것입니다.

 

음식을 즐기는 각 나라 사람들의 방법이 각각 다릅니다. 블란서 사람들은

향을 즐깁니다. 그들의 음식은 향기가 나야 합니다. 불란서는 세계에서 가

장 향수문화가 발달된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태리 사람들은 맛을 즐깁니다.

그래서 그들은 각종 소스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색깔을 중요

시 합니다. 음식담는 그릇도 각양각색이고 음식도 색깔의 변화를 중요시하

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양을 중요시합니다. 세계에서 음식을 주문할

[곱배기] 를 주문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그리고 밥주걱으

로 밥을 풀때도 꾹꾹 눌러푸고 산더미처럼 쌓아올려 푸는 것는 우리네 뿐입

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마음을 즐기고 중요시합니다. 예수

가 멋있고 맛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면 그것이 살 맛이

, 살멋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습니까?

오 주님, 나는 지금 주님의 마음 갖기는 것이 내 소원입니다.

 

지금 내 마음 속에 성령으로 임재하여 주옵소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소서. 아멘.

 

발행일 : 940724

분 류 : 설교

 

 

45

제 목 : 내 생각을 너희 생각과 다르며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55:8-9

 

 

만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인간과 비슷한 조건을 가진 분이라면 친구는

될 수 있어도 신앙의 대상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처럼 늙고, 병들고, 죽는다든지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유치하

다면 우리의 하나님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8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라고 했습니다. 이 한구절 말씀으로 하나님과

인간은 같은 존재가 아님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피조된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 가운

데 가장 하나님과 비슷한 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

간은 하나님이 될 수도 없고 하나님 행세를 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신격화했던 세계 유일의 독재자 김일성의 죽음은 여러가지 면에서

충격적 사건이었고 다양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김일성이 일생동안

저지른 몇 가지 잘못을 지적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그는 한국전쟁을 일으킨 전범입니다.

김일성의 남침이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고 있는 요즈음도 북침아라고 우기

는 정신병 환자들이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김일성이 일으킨 6.25

동란의 상처는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이산가족, 전쟁 미망

, 상이군인의 한과 슬픔을 만든 장본인이며, 주전범인 것입니다.

 

둘째 반세기 동안 자신의 권력과 체제유지를 위해 역사상 유례를 찾아 보

기 힘든 독재정치와 폐쇄정치로 북한을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그는 북한 주민을 눈뜬 장님으로 만들었습니다. 사상과 체제의 노예로 세

뇌시켰고 속박시켰습니다.

 

셋째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살기 힘든 가난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나 소말리아, 모잠비크와 같은 나라처럼 천연자연이

나 기후가 악조건이어서 굶어죽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건이라고 치더라도

북한 주민이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국경을 넘어 탈출하는가 하면 망명을 쵸

청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모두가 다 김일성 정치의 실패 때문인 것입

니다.

 

러시아 모처에서 비밀리에 만난 북한 사람에게 밥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밥을 보자 그는 숨도 쉬지않고 밥을 움켜 먹었습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사

람이 그렇게 빨리 밥을 먹으면 체하게 된다며 천천히 먹으라고 권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굶어죽으나 먹다가 죽으나 죽는건 마찬가지라며 게속 밥을 정

신없이 먹더라는 것입니다.

경제는 정치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백성을 굶어죽게 만드는 정치라면

무슨 소리를 해도 잘못한 정치인 것입니다.

 

넷째, 자신의 우상화입니다.

김일성 뺏지와 동상을 비롯해 그는 자신을 절대화하고 우상화하는데 전심

전력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진노하시고 용서치 않으시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스라엘은 일찌기 바알, 아스다롯, 몰렉 등 이방우상을 끌어 들여 숭배했습

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았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왕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아합 왕은 이방여인

이세벧과 결혼하면서 그녀가 섬기던 바알우상을 함께 끌어 들였습니다.

리고 그 죄값으로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아 그 나라에 흉년이 들었스빈

. 그뿐입니까? 아합왕조 자체가 무너져 버렸고 아합과 이세벧은 비참한

최후를 마쳐야 했습니다.

 

그 누구라도 우상을 숭배하거나 자신을 우상화하면 지옥갑니다.

요한계시혹 22:15을 보면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

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라고"했습니

.

 

여기서 말하는 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을, 술객들은 무당 점쟁이

를 말합니다. 행음자란 우상숭배를 했거나 우상종교를 지지하거나, 방조하

는 자들을 말합니다. 살인자들은 체제, 정권, 사상을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자들을 말하고, 거짓말하는 자들이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자

신을 위하고 남을 해롭게 하기 위해 거짓말을 만들고 퍼뜨리는 사람들을 의

미합니다.

 

세상 떠난 김일성은 요한계시록 22:15절 전체에 해당됩니다. 그러니까 그

가 간 곳은 뻔한 것입니다.

 

다섯째 무신론을 주장한 것입니다.

그는 종교를 아편이라고 속단했고,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 적개심을 가지고

지도자들은 숙청했으며, 교회를 모조리 없애버렸습니다.

봉수 교회나 그의 고향에 지었다는 교회는 그이 선전용에 불과했습니다.

만일 그 교회가 선전용이 아니고 진정한 교회였다면 교인이 수천 수만명으

로 매주일 불어나고 성장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신이었고, 하나님을 부인한 무신론자였습니다.

유신론과 무신론은 협상 테이블이 없습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절충

이나 접목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유신론과 무신론을 둘 중에 하나가 무릎을

꿇거나 손을 들거나 죽어야 합니다.

 

남한에 가면 하나님이 있는 것으로 하고 북한에 가면 하나님이 없는 것으

로 하자는 식의 절충이 불가능합니다.

무신론자가 유신론자가 되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만 그러나 유신론

자가 무신론자가 되는 것은 멸망과 지옥으로 굴러 떨어지는 첩경이 되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유신론자라면서 무신론의 괴수를 위대한 수령 어쩌고.. 하는 것

은 도무지 무신론자라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우상종교와 손잡

거나, 방조하거나, 야합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그를 진노하실 것입니다.

김일성, 그는 이제 영원히 악명만을 남긴 채 역사의 지평에서 사라졌습니

.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의 악역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남북정상회담, 북미회담 거기에 거는 기대, 세계의 관심과 함께 그는 숨수

지 못하는 미이라가 되어 관속에 누워 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지켜 보면서 본문이 생각났습니다.

독재자 김일성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김일성을 협상 파트너로 생각했던 정부나 미국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는 같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세습적 절차로 정권을 승계한 김정일의 생각과 하나님

이 생각도 전혀 다를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하나님과 우리가 다른 점 두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1) 생각이 다릅니다.

8절을 보면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라고 했습니다.

몇가지 다른 점을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생각은 거룩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은 속되고 추합니다.

마가복음 7:21-23을 보면 사람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 목록이 열

거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음란,도덕질,살인,간음,탐욕,악독, 속임, 음탕,

흘기는 눈, 훼방, 교만, 광패 등 이 모든 악한 것이 속에서 나온다"고 했습

니다.

 

온갖 추잡한 것들로 가득찬 사람의 생각과 거룩하신 하나님의 생각을 비교

할 수가 있겠습니까?

 

둘째 하나님의 생각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원불변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 분의 생각도 변하지 않습니다.

조건이나, 환경을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은 변합니다.

40년대 50년대 사람의 생각은 아침 저녁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70년대 80년대 사람의 생각은 오전 오후로 변했다고 합니다. 90년대 사람들

의 생각은 시간마다 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즘 소위 신세대, X세대의

생각은 종잡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왜 마음이 변했니"라고 물으면

"내 마음 나도 몰라"라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변덕스럽고, 경망스럽고, 방정맞은 태도나 생각이 정상처럼 보이는 세상입

니다만 하나님이 생각은 변하지 않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생각은 늘 따뜻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은 범죄지향적이며 냉소적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생각 속에는 늘 인간에 대한 사랑과 구원이 가득차 있습니다.

러나 인간의 생각 속에는 시기,분노,질투, 미움, 등이 가득차 있습니다.

나님의 생각에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미국 존 홉킨즈 대학교의 사회학과 교수가 자기반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

었습니다. 그것은 볼티모어의 시내 빈민가에 사는 200명의 청소년을 만나서

그들의 희망이 무엇이며 장래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조사하도록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90%가 훗날 교도소에 갇혀 있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는 점입니다. 그로부터 2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교수가 자기 연구실

의 서류들을 정리하다가 그때 그 설문조사 자료를 발견했습니다.그는 그때

그 청소년 200명이 궁금했습니다. 그는 자기 과의 제자들을 동원해 그때 그

청소년 200명을 찾아 확인하는 작업을 지시했습니다. 그 결과 180명을 확인

했고 그 중 놀랍게도 4명만 교도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왜 그들이 교도소에 들어가지 않고 변화받아 당당한 사회인이 되었는가를

알기 위해 그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결과 100여명

이 고등학교 시절 교사였던 [오로크]라는 여자 선생님의 영향 때문이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오로크] 선생님은 은퇴한 후 양로원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를 찾아가

어떻게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가르쳤는가를 물었습니다. 그 할머니

교사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한가지 뿐입니다.

그것은 저는 그들을 모두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저는 그들을 사랑했

습니다"라고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생각 때문에 죄사함 받고,

생얻고, 오늘도 따뜻한 은총 속에서 살고 잇는 것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2) 길이 다릅니다.

8절을 보면 "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라고 했습니다.

길은 계획, 목적, 가고자 하는 길, 하고자 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내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 내 목적과 하나님의 목적은 다릅니다. 내가 하

고 싶고, 내가 가고 깊은 길도 하나님과의 길과는 다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길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따르면 삶이 편하고 길이 형통하

지만, 하나님이 뜻이나 계획을 외면하고 내 길을 고집하고 주장하면 그 길

이 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길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안내하시고 인도하십니

. 그리고 철저하게 보호하시고 지켜 주십니다.

1791114일 조지 위싱턴이 이끄는 군대가 세인트 클레어에서 대패했

습니다. 부하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각하 이 패배가 장군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았습니까?"라고 그러자

워싱턴은 '이겨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고, 져도 하나님의 품안에 있다"

대답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태도인 것입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아멘.

 

 

46

제 목 : 건강한 사람들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4:20-23

 

 

건강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육체적인 건강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

의 건강을 위한 일이라면 안하는 것이 없고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육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영혼이라는 사실과 영혼의 건강이 육

체의 건강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며 본질적인 것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

니다. 본문의 교훈 역시 영혼의 건강 관리에 관한 것입니다. 몇 가지 교훈

을 살펴 보겠습니다.

 

1.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20절을 보면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

이라"고 했고, 21절을 보면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환자가 병원에 가면 의사의 처방과 지시가 있기 마련입니다. 병을 고치러

면 의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대로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짜고 맵고, 자극성 있는 음식을 먹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환자

가 소금이나 고춧가루를 퍼 마신다든지 줄담배에 말술을 마신다면 병을 고

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바드 의과대학의 [윌리엄 크리슨][수전 행킨슨] 두 사람이 미국 의학

협회 저널에 발표한 연구보고에 의하면 하루 20개비 이상의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백내장과 폐암에 걸릴 위

험성이 두배 이상 높다는 것입니다.

의사의 말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사람은 병치료를 외면하고, 거역하고 살

면서 그 영혼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본문을 주목해 보면 " 내 말에 주의하라, 귀를 기울이라, 눈에서 떠나게

말라, 마음속에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생명과 건강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눈으

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귀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입으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이 건강유지의 비결인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 집없는 사람, 외로운 사람 그들 모두가 불쌍한 사람들입다만

그러나 병든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습니다. 병들면 산해진미도 높은 지

위도, 그리고 고급문화 주택도 아무런 의미가없습니다.

 

영혼이 병들면 제아무리 화려한 조건을 골고루 갖췄다고 해도 결국은 멸망

하고 지옥갈 것이 뻔하기 때문에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의 중심 교훈은 그 영혼이 건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의사이며 근대 임상의학의 창시자였던 [부르하페]교수가 세상

을 떠난 뒤에 그의 유물이 경매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남긴 유물 가운데 [의학상 다시 없는 비밀]이라고 쓴 두툼한 노트 한

권이 있었습니다. 그 노트는 노끈으로 단단히 묶어 놓았기 때문에 아무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부르하페]가 유명한 의사였기 때문에 그 노

트 속에는 건강과 장수에 관한 엄청난 비결이 적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

니다. 그 노트가 경매에 붙여지자 값은 치솟기 시작하여 엄청난 값에 낙찰

이 되었습니다. 그 노트를 산 사람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채 집으로 돌

아가 노트를 개봉했습니다.

그런데 그 노트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백지 노트 맨 마지막

 

 

 

장에 한줄로 큰 글귀가 써있었습니다. "머리는 차갑게, 발은 따뜻하게,

은 거북스럽지 않게 하라,그리하면 당신은 모든 의사들을 비웃을 수 있을

것이다...."

머리는 차갑게, 발은 따뜻하게, 몸은 거북스럽지 않게 하라는 것은 하나님

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의 월여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체내에 골고르 퍼져있는 열이 머리로 치밀어 오르면 쓰러지거나 터집니다.

발의 체운이 식어져서 싸늘해지면 사체가 됩니다. 전체 몸의 기능이 거북

스럽지 않고 편안하도록 유지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는 것이 [부르하페]

의 지론이었던 것입니다.

영혼의 건강유지 비결도 장황하거나 복잡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영혼을 위한담녀서 이곳 저곳을 찾아다닙니다.

어떤 사람은 영혼이 성장해야 한다면서 이곳 저곳을 기웃거립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다운 믿음을 갖고 싶다면서 이사람 저사람을 다라 다닙

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 영혼이 건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대로 살아야 영혼이 거듭나고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약학박사 1호인 홍문화박사는 현대인의 병을 세가지로 풀이했습

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성격병, 나쁜 생활 습과 때문에 생기는 습관병, 식사패턴

의 잘못으로 오는 식원병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가지 병을 고치려면

자기 성격 고치고, 생활습관 고치고, 식사패턴을 바꾸면 된다는 것입니다.

 

놀만 빈센 필 박사의 건강비결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육신과 영혼의 완치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을 것.

둘째, 육체는 영혼의 성전이라는 사실을 알고 소중하게 취급할 것.

셋째 모든 복수심을 버릴 것.

넷째 담당의사를 위해 기도할 것.

다섯째, 매일 성경을 읽고 운동을 할 것.

여섯째 자신이나 남에게 대해 악한 마음을 품지 말것.

일곱째 의사는 치료하고 하나님은 완치하신다는 사실을 믿을 것...

육신이 병든 사람은 불쌍합니다. 그러나 영혼이 병든 사람은 불쌍한 단계

를 넘어 비참한 사람입니다. 그 병을 빨리 고치지 않으면 소망이 없어지게

됩니다.

 

2. 나쁜 것을 버려야 합니다.

 

24절을 보면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했고, 25절을 보면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피라

"고 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영혼의 건강을 해치는 통로가 두 가지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입과 눈입니다.

입은 모든 음식물을 통과시키는 문과 같습니다. 너무 뜨거운 것을 통과시

켜도 안되고 너무 찬 것을 통과시켜도 안됩니다. 너무 맵고,짜고, 독한 것

들을 통과시켜도 안됩니다. 극약이나 독약을 통과시켜도 안됩니다. 입은 몸

속에서 생성되는 분비물을 내보내는 관문입니다. 그러나 계속 침을 흘린다

든지 가래를 내뱉는다면, 먹은 음식물을 입으로 내보내면 안됩니다. 건강한

사람은 계속 침을 뱉거나 가랠르 내뱉지 않습니다.

 

영혼이 건강한 사람은 그 입으로 궤휼이나 사악하고 굽고 독한 말을 내밸

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눈으로 못된 것, 나쁜 것을 보기위해 방황하지 않는 것이빈다.

 

그러나 영혼이 병들면 그 입으로 계속 더러운 말과 남을 괴롭히는 말이 쉴

새없이 마치 가리챔을 뱉는 것처럼 터져 나옵니다. 그리고 그 눈 역시 좋은

것을 보지 않고 나쁜 점만 보게됩니다.

 

 

 

 

미국에 이민가서 살고있는 사람가운데 22년 동안 108번이 교회를 옮긴 장

로가 있었습니다. 이민교회의 특성은 이합집단이 심하기 때문에 한 교회를

오래동안 다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만 그러나 그 사람은 특별한 경우였습

니다. 1년에 약 5번 정도 교회를 옮긴 셈이고 평균 두달에 한번 정도의 교

호를 바꾼 셈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108번 교회를 대하는 그의 태도였

습니다. 단 한번도 그 어느 교회에 대해 만족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교호

를 옮기는 날로부터 그 교회의 단점을 찾기 시작합니다. 목사의 허물을 맨

먼저 찾아냅니다. 그리고 마치 예언자나 된 것처럼 자기 눈에 드러난 허물

을 떠벌리고 얘기합니다. 교회주보, 성가대, 주방 교인들의 태도등 씹지 않

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108 교회의 단점을 낱낱이 노트에 적어서 마치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가 병으로 죽게되자 어느 교회도, 어느 목사도, 그의 장례식을 해줄 수

가 없었습니다. 이유는 그가 섬긴 교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죽기 전 108

번째 옮겨왔던 교회 목사님이 불쌍히 여겨 그의 장례식을 해주었습니다.

이야기는 108번째 옮겼던 그 교회 목사님이 저에게 들려준 이야기였으니까

진실한 이야기입니다. 목사님은 장례식날 관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하빈

. "이 분의 유랑과 번뇌가 108번째로 끝나서 천만다행이다"라고.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일 그 사람이 천당에 올라가 주님 앞에 108번 교회를 거치면서 잡아낸

허물을 기록한 두툼한 노트를 펴놓는다면 주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과연 그런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신앙생활은 했을까요?

과연 주님 앞에 설 수는 있었을까? 만일 섰다면 주님은 그 사람의 허물이

적힌 수십권의 노트를 던져주며 읽어보라고 하시지는 않았을까?

제가 보기에 그는 정의의 사람도 아니었고 신앙인도 아니었고 더구나 장로

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의 후손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아버지 못지않게 불행하게 되었

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만 그 내용을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내 영혼이 건강하려면 좋은 것을 보고, 좋은 점을 따르고, 좋은 점을 입으

로 말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남의 흉만을 찾고 입을 놀려대거나 나쁜 것만을 찾아 탐닉하는

사람은 그 영혼이 병든 사람입니다. 멀리 하는 것이 좋습니다.

 

3. 바로서고 바로 살아야 합니다.

 

27절을 보면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

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도 좌나 우로 치우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건거를 타려면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줄을 타는 사람도 중심만 잡으면

줄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심을 잡지 못하면 넘어지고 떨어집니

.

그것은 인생살이나 신앙생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줄에서 떨어

지지 않는 비결은 두가지입니다. 중심잡고 앞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중심잡고 앞을 바라보아야 타락하지 않고 건강하게 됩니다.

예수 중심잡고, 예수 바라보는 사람은 미국을 가든 소련을 가든,중국을 가

든 휴가를 가든, 여행을 가든 타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중심에서 떠나고 다른 것들을 바라보면 그 순간부터 악을 향

해 굴러 떨어지게 됩니다.

내 영혼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지속하는 비결은 간단합니다. 십자가 높

이 달리신 에수님 바라보고 예수님 중심으로 살면 영혼의 전염병이 만연된

세상에 살아도 전염되거나 쓰러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중심으로 살고, 예수 바라보면서 건강하게 살아갑시다.

 

 

 

 

발행일 : 940710

분 류 : 설교

 

 

47

제 목 : 단비를 주소서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10:1

 

 

필요할때 필요한 만큼 오는 비를 단비라고 합니다. 여러 날 동안 계속 내

리면 장마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비가 흔하고 강우량도 넉넉한

편입니다. 그리고 수리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농사를 짓는데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비가 내려야 할 때 내리지 않으면 강도 바닥이 드러나고

저수지도 바닥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는 비에 대한 개념이 우리와 전혀 다릅니다. 그나

라는 두 차례 비가 내립니다. 파종할 때 내리는 비를 이른비라고 하고,

실할 때 내리는 비를 늦은 비라고 합니다. 만일 이른 비가 내리지 않으면

씨를 뿌려도 싹이 나지 않게 되고 늦은 비가 내리지 않으면 결실을 못하게

됩니다.

 

알맞은 때에 비가 내리는 것은 그해 농사를 결정하는 원인이 됩니다.

제 아무리 수리시설이 잘된 나라의 경우라도 비가오지 않으면 농사는 물론

식수도 문제가 됩니다.

최첨단의 과학문명을 자랑하는 미국도 비가 오지 않으면 난리가 납니다.

잔디에 물을 주지 말것, 물을 아껴서 쓸 것 등 주정부나 시에서 비상이 걸

립니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흡족하게 내리는 비가 단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비를 구하라는 본문의 말씀은 지금까지 설명한 식수나 농

사에 필요한 비를 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시편 726절을 보면 "저는 벤 풀에 내리는 비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같

이 임하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사는사람에게 임

하는 은혜를 비로 비유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서 10:12를 보면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마치 단비처럼 우리네 삶을 구석구석 큰데서 작은 데까지

골고루 돌보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비는 바람과,초목과, 동물들에게도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 역시 모

든 피조물에게는 절대로 필요합니다.

돈이나 과학의 힘으로 비를 내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 비는 땅에서 분수처

럼 솟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왕 시대에 3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비가 내리지 않은 원인입니다.

그것은 아합왕이 바알 우상신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바알신이나 그 당시

이교도들이 섬기는 신이었습니다.

바알 신도들은 남신과 여신이 있는데 남신과 여신이 만나 접촉할 때 비가

내린다고 믿는 해괴하고 부도덕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하늘의 해와 달과 별, 그리고 비와 이슬을 주

장하신다고 믿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앙을 저버리고 소위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는 왕이라는 사람이

바울 신에게 절을 하는가 하면 도처에 바알 신전을 건축하도록 국고 지원을

했습니다. 그뿐입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엘리야 선지자를 죽여 없애겠다고

체포령을 내렸습니다.

 

 

 

이교도들도 하늘의 뜻을 거역하면 재앙이 임한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

.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우상의 전을 건축하고 우상앞

에 합장배례하고 추파를 던진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외면하거나 떠나서 살 수는 없습니다.

물고기가 아스팔트 위에서 사는 기적은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을 떠나서 사

는 기적은 없습니다.

 

 

2. 성령을 의미합니다.

 

단비가 사람과, 짐승과 초목 등 모든 피조물에게 생기와 활력을 준다는 면

에서 성령으로 비유되곤 합니다.

성령충만한 삶은 활기와 생기가 넘칩니다.

석회와 물이 합하면 뜨거운 열이 생깁니다.

녹슨 쇳가루와 알루미늄에 열을 가하면 2,000도 이상의 열을 냅니다.

[]라는 존재는 약하고 무력합니다. 그러나 내가 성령을 받으면 내게서

폭발적 힘이 발산됩니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길선주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었습니

. 부흥회 도중 어떤 사람이 과부의 유산을 처리해 주면서 100원을 착복한

것을 회개하고 그것을 변상하겠다고 나선 것을 필두로 3만명이 회개하고 예

수를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10월에는 4천명이 세례를 받았습니

.

이 불길은 선천, 재령,개성, 서울, 대구로 퍼져나갔습니다. 성령의 역사였

던 것입니다.

길선주의 그 당시 설교 속에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남의 물

건을 도둑질한 사람은 잡을 수 있으나 내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는 누

구도 포박해낼 수가 없다. 죄가 엎드려 있는 마음은 지옥이요 회개한 마음

은 천당이니...."

교회에 죄인들이 모여 죄를 자복하고 회개한다는 소문일 들은 경찰관 방은

덕이 죄인 몇놈 잡아다가 실적을 올리겠다며 장댓재 교회를 찾아와 구경하

다가 그날 성령받고 회개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방은덕은 체면도 불구하고 데굴데굴 구르면서 "선생님 나를 살려 주세요"

라며 소리지르며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성령이 행하신 능력이었습니다.

 

스펄전 목사는 "인간이 구원 받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께서 인간의 마음 속

에서 강력하게 역사하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희미한 숯불을 산소 속에 집어 넣으면 강한 빛을 발하면서 불꽃을 튀기며

타게됩니다.

유황 역시 공기속에서는 힘없이 타지만 일단 그것을 산소 속에 집어 넣으

면 강렬한 푸른 불꽃을 튀기며 타게 됩니다.

내가 성령을 받고 나를 성령의 도구로 맡길 때 나는 능력있는 그리스도인

이 되는 것입니다.

무디는 "우리들의 마음 속에서 교만과 이기심과 욕심과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모든 것들이 사라질 때 우리들의 마음이 성령으로 충만해질 것이

. 만일 우리들의 마음이 세상적인 것들로 가득차 있을 때 성령이 계실 자

리가 전혀 없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령이 단비로 충만하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그러면 단비를 구하는 자세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다.

 

첫째,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1장을 보면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

니다. 구하면 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가뭄으로 나무가 말라죽고 수도물이 중단되는 비상사태가 벌어지자 그 지

역 교회협의회가 모여 기도하기로 결정하고 기도의 날을 선포했습니다.

 

각 교회별로 기도의 날 교회에 모여 기도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기도모임

에 참석한 연인원이 2,800명이나 되어는데 그 중에 비 올줄로 믿고 우산을

가지고 나온 사람은 통틀어 13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것이 우리네 믿음의 현주소입니다. 비오게 해달라면서

우산을 준비하지 못하는 우리의 믿음 쪽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믿고 단

비를 구합시다.

 

둘째 너넉하게 구해야 합니다.

가뭄으로 갈라진 땅에 내리는 비는 넉넉하고 흡족해야 합니다. 먼 가뭄으

로 가라앉을 정도라면 해갈도 되지 않습니다.

은혜도, 축복도, 성령도 차고 넘쳐야 합니다.

사람들이 작은 규모의 구멍가게 보다는 대형 슈퍼마겟을 선호하는 이유는

다양한 물건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초라한 인생살이를 마감하고 풍요로운 삶을 시작하려면 성령을 충만히 받

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넉넉하게 구해야 합니다.

 

셋째, 나눌줄 알아야 합니다.

소양댐이나 팔당댐에 일정량의 담수량이 초과되면 수문을 열어 물을 내 보

냅니다. 그것이 위험을 막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나 성령의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전하고 바람직한 신앙생활을 하

려면 내가 받은 은혜나 능력을 다른사람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말

하면 "주시옵소서"만으로 끝나는 신앙이 돼선 안되는 것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있는 콜드워터스 어느 은행에 66일 새벽 폭발물이

터져 금고가 박살이 났습니다. 은행털이범들이 금고 안에 있는 돈을 털어가

기 위해 폭발물을 설치했고, 금고가 폭발하면서 돈을 길거리로 흩날라지 주

민들이 달려들어 너도나도 돈을 주워 담는 바람에 정작 범인들은 몇푼 밖에

챙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정상적으로 믿고, 벌고, 살고, 쓰는 것이 바람직한 신앙생활입니다. 그리

고 성령충만과 은헤를 구하는 태도 역시 정당해야 합니다.

명예나, 출세나, 치부의 수단으로 은혜와 성령을 구해선 안됩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3년 가뭄처럼 모든 것이 메마르고 갈증나 있습니다.

북한의 첨예한 갈등, 핵전쟁의 위협, 도덕성의 몰락, 윤리기강의 붕괴,

소년의 탈선, 우상종교의 창궐 등 먼지 풀석거리는 메마른 황야와 같습니

.

 

시원한 단비가 한바탕 쏟아졌으면 하는 바램이 일고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내 영혼의 갈증 역시 심각하빈다. 뭔가 텅빈 것 같은 공허감,

소유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허무감, 무엇인가 막혀있는 것같은 답답함,

쁨보다는 짜증스럽고 원망스런 속마음,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

니까? "봄비 때,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

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는 본문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게 비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심령, 내 가정, 이 나라에 단비를 주소서, 은혜의 단비를 주

소서, 성령의 단비를 주소서. 아멘,

 

발행일 : 940626

분 류 : 설교

 

 

48

제 목 :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2:11-15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입니다. 분단

국가였던 독일도 서독이 동독을 흡수함으로 통일국가가 되었고 예멘 역시

남과 북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되었습니다.

서독은 당초 동독을 흡수통일 하는데 소용되는 비용을 1조 마르크 정도로

잡았지만, 그 돈으로는 어림도 없고, 2조마르크(950조원)가 넘어서

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북한을 흡수통일 하는데 얼마의 비용이 들 것인가에 대하

[일본 장기신용은행 종합연구소]2천억달러(160조원)로 추산했고

국내 경제학자들은 40조원에서 많기는 6백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통일을 위한 비용이 천문학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도 엄청난 생명 유지비가 들아갑니다.

시는 물,산소, 심장이 뛰고, 위가 수축작용을 하고, 세포가 생성되고, 먹은

음식물이 소화되고,그것이 열량으로 변해 각 기관에 보급되고, 자동으로

, 발가락이 움직이고, 듣고, 보고 걷는 것 등,

돈으로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면 하루에 1000만원 정도의 시설비와 유지비

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달이면 30억이 되고, 1년이면 360억원이 됩니

.

 

그런데 우리는 병들면 돈내고 병을 고치면서도 매일 1천만원 정도의 생명

유지비를 공짜로 쓰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전혀 관심도 없고 감사도 없습

니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남북한 통일의 경우 1인당 비용을 산출하면 890만원 꼴이 된다고 합니다.

죽을 내 생명이 죄사함 받고 다시 살기 위해서는 얼마의 돈이 필요하리라

생각하십니까?

본문은 그것을 [은혜]라고 표현했습니다. 돈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혜란 조건부가 아닙니다. 조건없이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이 주는 몇가지 교훈을 찾겠습니다.

 

1.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주십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흔히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은혜라든지 거저 주신다든지 하면서 싸구려인

양 치부하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받는 나는 은혜였고, 거저 받은 선물이었습니다만 그 은혜와 선물을 주시

는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피흘리면 죽게 하

시고 그 공로로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결코 값싼 은혜도 아니고 싸구려 상

품이 아닌 것입니다.

 

고층 빌딩마다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가지 돈을 내고 엘리베이

터를 타본 일이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 무역센타빌딩이나, 엠파이어스테이

트빌딩은 관광객들에게서 돈을 받습니다만 그러나 대부분의 빌딩은 공짜로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그렇다고 해서 엘리베이터 자체가 공짜인 것은 아닙

니다.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당 5천만원 1억 혹은 2억 하는 것들도 있

습니다. 내가 그 엘리베이터를 공짜로 탄다고 해서 엘리베이터가 공짜인 것

 

 

 

은 아닙니다.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기까지에는 예수님의 희생과 십

자가에서의 피흘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외아들을 보내셨고, 죽게하신

슬픔을 겪으셨습니다.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신다고"고 여기서 말하는 모든 사람은 인종과,

지역과, 계급과, 성분과,출신을 포괄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구원을 주십니다. , 예수를 믿고 그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어느날 밤 관장이 야순을 돌다가 도둑을 붙잡게 되었습니다. 관가로 데려

다가 엎드려 놓고 볼기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도둑이 갑자기 "아이

구 태조대왕 등뼈 부러진다"고 고함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볼

기를 치자 도둑 역시 계속하여 "태조대왕 등뼈 부러진다"며 자기가 태조대

왕의 후손임을 암시하는 바람에 풀어 주었습니다.

 

그 기발한 소문을 듣게 된 어떤 도둑이 밤에 도둑질을 하다가 야순관리에

게 붙잡혀 관가로 끌려가 볼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볼기를 내려치기 시작하

자 그 도둑은 "아이구 염라대왕 등뼈 부러진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제딴에

는 아무려면 태조보다야 염라대왕이 더 높겠거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

니다. 그런데 그를 때리던 관리는 염라대왕이라면 이를 가는 사람이었습니

. 그날 그 도둑은 염라대왕 덕택에 반쯤 죽도록 매를 맞았습니다.

 

로마서 10:13에서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

리라"고 했습니다. 예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받고, 사랑받

, 복을 받게 됩니다.

 

2. 우리를 양육해 주십니다.

 

12절을 보면 "우리를 양육하시된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

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영적으로 출생과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어난 생명은 양육과 보호가 필요합니다.

 

부산 일신병원에 갔다가 인큐베이터 안에서 자라고 있는 신생아실을 둘러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미숙아로 태어난 생명이 인큐베이터안에서 보호받으

며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일정기간 동안으로 끝나야 합니

. 제일 바람직한 것은 태어난 새 생명은 엄마의 품 속에서 고동소리를 들

으며 사랑받고, 보호받고 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이 자라고 신앙이 자라는 것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받으며 양육되는 것이 제일 행복한 것입니다.

런데 본문은 "하나님이 우리를 양육하신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

입니까?

내가 누구의 보호를 받고 양육받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

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대통령은 경호원들의 철통같은 경호를 받습니다.

그러나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는 간수의 경호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지키는 사람

은 마귀의 소유인 것입니다.

1800년대 미국의 시인이었던 롱펠러(Henry Wadsworth Longfellow) 는 보통

종이 위에 그의 시를 써내려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훗날 그의 시는 6천 달

러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10불 미만의 종이 위에 그렸던 모나리자나 만종은 지금 수십만 달러의 명

 

 

 

화가 되었습니다.

 

누구의 것이 되느냐, 누구의 보호를 받느냐, 누가 나를 키워주느냐가 중요

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키워주시고 이끌오 주신다는 것이 본문의 강조입니

.

 

3. 바르게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양육하시는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르게 살라는 것입

니다.

12절을 보면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

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경건하게 살고 세상 정욕을 버리고

근신하고 바르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호화여객선 [아틀랜틱호]가 핼리팍스 해안에서 조난당해 수백명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다행히 살아남은 생존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우체국을 찾아가

가족들에게 전보를 보냈습니다. 전보내용은 간단했습니다. 그것은 "구원받

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훗날 그는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을 길이 간직

하기 위해 전보용지를 액자에 넣어 사무실 벽에 걸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리

고 그는 날마다 "구원 받았다"는 전보내용을 읽으면서 신앙생활의 채찍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 청년들의 모임에서 바로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묵

은적이 있었습니다.

참석했던 젊은이 90%가 잘 사는 것보다는 바로 살아야 한다고 대답했습니

. 그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잘 사는 것과 바로 사는 것의 차이점이 무

엇인가에 대한 그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잘사는 것.

1) 잘 먹고, 잘 쓰고, 잘 노는 것이다.

2) 하고픈 짓을 하고 사는 것이다.

3) 제 멋대로 사는 것이다.

4) 남의 간섭을 배제하고 사는 것이다.

 

바로 사는 것.

1) 자기를 통제하며 사는 것이다.

2)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며 사는 것이다.

3) 가치있게 사는 것이다.

4) 더불어 사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관점과 해석은 정확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과 자녀된 사람들이 바르게 사는 것을 원하십니

. 바르게 삽시다.

 

4. 선한 일에 열심이기를 원하십니다.

 

14절 끝을 보면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하려 하심이니라"고 했

습니다.

구라파를 휩쓸던 나폴레옹이 1백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러시아를 쳐들어갔

습니다. 그러나 그의 군대는 러시아에서 참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워터루

전선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그는 외쳤습니다. "모든 것이 끝장이다. 각자 살

아 남을 방도를 찾아라".

그러나 내가 믿는 예수는 너 알아서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나를 믿으면 산다, 나를 믿으라.

 

나를 따르라. 그리하면 산다.

나를 따르라. 그리하면 이긴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최종 목적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헤야될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하나님이 나에게 하신 일을 선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영국 웨스터민스터 교회 목사인 [모건] 박사에게 한 소년이 편지를 보냈습

니다. "저는 지난밤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집회에 참석한 후 예수님을 구주

로 영접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 이후로 나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차 있

습니다. " 여기까지 편지를 읽은 모건박사는 깊은 생각이 잠겼습니다. 설교

를 듣고 깊은 슬픔에 빠지다니.. 그러나 그 다음을 읽는 순간 기쁨이 되살

아났습니다. "목사님 제가 그토록 슬퍼하는 이유는 제 아버님이 아직 예수

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내가 사는 날 동안 해야할 가장 귀하고 크고, 위대하고, 절실한 선

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내 가족, 내 친척, 내 이웃, 내 친구를 주님 앞으로

인도해 내는 것입니다.그것이 나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

입니다.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갑니다.

 

발행일 : 940619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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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나와 내 집이 사는 길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16:29-34

 

 

역사 연구의 대가인 아놀드 토인비는 그의 역사연구에서 그동안 역사의 지

평에 떠올랐던 21개의 문명이 있었는데, 그중 19개가 자멸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무신론과 물질주의라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종교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자도 없고 옷도 입지 않는 야

만인이라고 해도 그들에게는 신도 있고, 종교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지능지수가 높고 고급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개나 침팬지에게는 신이 없습니

.

 

그 차이는 간단합니다.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고 짐승에게는 영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학에서의 논의되고 있는 사람에게는 뇌의 의식활동이 정지되는 것을 말

합니다. 다시 말해 뇌의 의식활동이 멈추게 되면 죽은 사람이라는 것입니

. 마찬가지로 그 영혼이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영적 활동을 하지 않

는다면 죽은 영혼이 되고마는 것이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사람을 구성하

는 가장 중요한 중심은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영혼을 본질이라고 본다면, 육체는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껍데기란 본질을

감싸고 있는 옷에 불구한 것입니다.

양장점 쇼윈도우에 서있는 마네킹은 철따라 달마다 새 옷으로 갈아 입곤합

니다. 그것도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최고급 의상입니다. 그러나 그 누

구도 마네킹을 바라보면 행복한 여인이라고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네킹은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의식활동이 정지된 사람들이 제 아무리 잘 먹고, 잘 살고, 잘 입는

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참 행복이나 보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살기좋고 잘 사는 나라로 유명합니

. 인구는 400만 정도에 불구하고 수도인 오슬로는 47만명정도가 살고 있

습니다. 쿠웨이트 다음으로 석유가 많이 나오는 나라이며 GNP25,000불이

넘습니다. 병나면 국가가 고쳐주고 늙으면 국가가 책임지고 먹여 살려 줍니

.

 

부자들은 섬이나 산속에 별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주말이나 휴가철이 되면

별장생활을 즐깁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별장들은 텔레비젼을 놓지 않고 수

도시설은 집 안에는 없습니다. 나무때서 밥해먹고, 물도 밖에서 길어다 먹

, 맨발로 걸어다닙니다. 다시 말하면 원시적 삶을 재현하고 있는 것입니

.

 

여러분, 잘 산다는 것은 편한 것입니다. 편하다는 것은 정신적인 것이며,

영적인 사건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혼이 편안해야 몸도 삶도 편안해지는 것

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창조하셨

습니다. 다시 말하면 온전하고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는 존재로 창조를 하신

것이빈다.

토인비가 지적한대로 문명이든, 국가든, 개인이든 무신론과 물질주의에 빠

지게 되면 침몰하게 됩니다.

 

그 좋은 예가 러시아의 붕괴입니다. 70년동안 러시아를 지배해 나온 것은

무신론과 유물론 사관이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무너졌습니다. 세계적인

 

 

 

문호 [도스토예프스키]"하나님은 없으면 못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믿는대로 살고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나쁜 것을 믿으면 나

쁜 짓을 합니다. 그러나 좋은 것을 믿으면 좋은 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건전한 종교와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최근 세계 의학계는 후천성 면역 결핍증(AIDS) 못지 않게 전세계에 충격과

공포를 가져다준 [살을 먹는 괴박테리아]의 정체 규명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의학계는 성형수술을 잘못받은 후 괴사성 근막염 증세를 보이

고 있는 환자 두명을 놓고 연구한 결과 정확치는 않지만 여러 정황으로 미

루어 성형수술 부작용이라는 개연성이 높다는 소견을 발표했습니다.

 

물론 개연성이 높다는 소견이기 때문에 성급한 결론을 삼가하는 것이 좋습

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본래의 것, 그것이 제일 좋다는

것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본래의 것이 무너지면 그 결과가 좋지 않습니

.

 

인간의 본래 모습은 내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순천자(順天者)

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문명, 문화, 과학, 경제, 학문이

라는 조건들 때문에 계속 성형수술을 받아 나오는 동안 전혀 다른 이질적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 이즈러진 나를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자는

것이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오늘 읽으니 성경 사도행전 16:31은 말씀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

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와 비슷한 말씀이 요한복음 3:16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

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기독교가 강조하는 복음의 골자는 쉽고 간단합니다.

고대 빌립보 교도소에 바울이라는 죄수가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죄명은 귀

신들린 소녀를 고쳐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교도소 소장이

죄수 바울을 향하여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며 종교적

구원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회적 신분이 보장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정상적인 가정과 가족이 있었습니다. 정신건강도 정상적이었습니

. 그러나 그도 역시 영혼의 문제에 대해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는 어떻게 해야 내 영혼이 구원받고 사람답게 살 수 있겠는가를 물은 것입

니다. 그 물음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명료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시오.

리하면 당신과 당신의 집(가족)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요...."

 

B.C 2세기 [안티파토루스]라는 사람은 세계의 7대 불가사의를,

1) 이집트의 피라미드.

2) 바빌로니아의 허공에 매달려 있는 정원.

3)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

4)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5) 할리카르나수스의 마우솔로스 능묘

6) 로즈섬의 콜로수스 거상(巨象).

7)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영국의 시사잡지(이코노미스트)는 세계의 7대 불가사의 목록

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1971년 미국 인텔사의 테드호프가 발명한 마이크로 프로세서.

2) 전세계 9천만명의 여성이 사용하고 있는 피임약(1951년 멕시코시티에

있는 신텍사스의 젊은 연구원인 칼제라시가 발명).

3) 1876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벧이 발명한 전화로 이것은 거대한 세계를

 

 

 

지구촌으로 좁힌 일동공신이라는 것.

4) 한번에 570명을 태울 수 있는 점보 제트기.

5) 해상 석유채굴 시설.

6) 1950년대 미국이 처음으로 실험한 바 있는 수소폭탄, 이것은 지구의

인류를 파멸시킬 수 있는 공포의 에너지라는 것.

7) 1969720일 오후 1018분 미국 우주선인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아폴로 11호로 달에 첫발을 내디뎠고, 그곳에 "인류의 평화를 위해 이곳에

왔다"는 명판을 남긴 이후 달기지의 꿈을 실현해 나가는 것 등을 7대 불가

스의로 꼽았습니다.

 

7대 불가사의는 인간이 만든 지식과 지혜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더욱 불가

사의한 것은 그토록 위대한 업적과 유산을 남긴 인간들이 해결하지 못하고

풀지 못한 문제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우주선을 쏘아 올렸지만 여객기 추락을 막지 못하고 있는가하면 생명공학

을 발전시킨 인간들이지만 죽음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두 종류의 인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등진 인간의 모습입니다.

것은 마치 빛을 향한 모습과 빛을 등진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빛을 등진

얼굴은 침울합니다. 그러나 빛을 바라보면 찬란합니다.

 

하나님을 등진 인간의 삶은 정신적으로 한대 지방과 같습니다.그래서 성경

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도소 소장의 "

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라는 질문은 빛을 등지고 살았던

한 사람의 고뇌에 찬 절규였습니다.

 

그에게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

"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이 짤막한 대답 속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구원의 가능성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게 됩니다. 직업이 무엇이며, 신분이 무

엇이며, 나이가 몇이며, 재산이 얼마이며, 학벌이 어느 정도인가 등 그런

것들이 상관이 없습니다.

나는 구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정신이나 영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

그리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

니다.

 

둘째는, 구원의 연쇄성입니다.

내가 예수 믿고 구원을 받으면 그 영향과 변화 때문에 가족과, 친척과,

웃과, 친구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는 연쇄반응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가 무엇인가를 묻는 잡지사의 설문조사가 있었습니다. 가장 많은 응답

순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함께 사는 사람.

2) 함께 가는 사람.

3) 함께 나누는 사람.

4) 사랑하는 사람.

5) 서로를 보완하는 사람이라는 것 등이었습니다.

 

그렇스빈다. 가족이나 부부란 함께 살고, 가고,나누고, 보완하는 관계입니

.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과 믿음을 나누며 사는 것입니다. 그 비

결이 무엇입니까?

 

 

 

 

어느 교도소 소장의 경우처럼 가족이 함께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1956년도 미국의 100대 재벌 랭킹에 들었던 기업가운데 1992년까지 살아남

은 기업은 불과 21개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천년이 되면 현재 10대 재벌 가운데 3개 정도가 탈락

하게 될 것이라고 대통령 직속 21세기 위원회가 예견했다고 합니다.

영원한 재벌도 영원한 건강도, 영원한 권력도 없습니다.

 

일본 주식회사의 얼굴이라는 평판을 듣던 [모리타 아키오]소니사회장이 뇌

출혈로 쓰러지자 일본은 물론 전세계의 경제인들은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키오 회장이 돈이 없어 쓰러졌겠습니까? 지정병원과

주치의가 없어 쓰러졌겠습니까?

그것은 모리타 아키오 회장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솔직하게 우리는 나 자신의 제한성과 한계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미국이 중요한가를 판단해 우선 순위를 따라 일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겐 무엇이 우선 순위일까요?

다시말하면 지금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의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무리하다가 쓰러진 52세의 사장은 "제가 바보였습

니다. 쓰러지면 끝나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라며 나와 내 집이

사는 길은 정해져 있습니다. 지금 마음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좋은 일, 급한 일은 뒤로 미루는 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지금 예수를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발행일 : 940612

분 류 : 설교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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