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하는 삶 2009.01.03강용규목사
시편 23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시로 다윗 왕이 나이 들어 죽음을 앞두고 쓴 시이기도 합니다. 이 시에는 지나온 삶에 대한 다윗의 회고와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한 전망이 담겨있습니다. 송년주일 예배를 드리는 오늘 본문은 우리의 삶을 회고하게 하고 전망하게 합니다.
먼저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먼저 쓴 사람은 다윗이 아닌 야곱입니다. 죽음을 앞 둔 야곱이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면서 오른손은 에브라임 머리 위에 왼손은 므낫세 머리 위에 얹고 하신 말씀입니다. 야곱의 생애를 보면 간발의 차로 동생으로 태어나 장자의 축복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장자의 축복을 가로 챈 야곱은 그 댓가로 고향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던 야곱은 삼촌에게 속임을 당하고 7년을 더 일해서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형을 만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야곱은 밤새 홀로 남아 얍복 강가에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을 합니다. 그리고 야곱은 새로운 이름인 이스라엘로 태어나게 됩니다. 새롭게 태어난 야곱은 말년에 아들 중에 요셉을 편애했습니다. 야곱의 편애는 아들들사이의 분란을 낳았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이제 죽음을 앞두고 뒤돌아보니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다윗의 고백이 올 한해를 보내는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회고하게 되는 것은 본문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음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는 말씀입니다. 누구나 인생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내년에도 경기가 어렵다하니 두려움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죽음도 두렵지 않은 것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목자의 지팡이는 양들이 대열에서 이탈할 때 합류시키고 위험한 곳으로 갈 때 바른 길로 인도하고 사나운 짐승이 올 때 그 짐승을 내쫓아 양들을 지켜냅니다. 목자의 지팡이의 가운데 선을 그으면 십자가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살리셨습니다. 죽음에서 삶으로 멸망에서 영생을 주신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장래 일이나 현재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피조물이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고 고백합니다. 목자의 지팡이는 우리를 죽음에서 삶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고백합니다. 신명기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너희를 인도하셔서 너희 발이 부르트지 않았고 너희 옷이 해어지지 아니했다.”며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우리도 올 한해를 뒤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은 “여호와께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며 우리를 의의 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고백합니다. 히브리어로 ‘소생한다’ 는 말은 ‘회개한다’는 말과 같은 단어를 씁니다. 소생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회개에 있습니다. 만약에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후에도 계속 죄악 안에 있었다면 오늘의 다윗은 없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군대 수를 교만하게 모두 세어놓고 그냥 지냈다면 오늘의 다윗 또한 있을 수 없습니다. 시편 32편 51편에서 다윗이 눈물을 뿌리며 회개한 시가 나온 것처럼 회개로 다윗은 소생하게 되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의 회개가 없었다면 아버지를 만나는 소생의 역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생의 역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회개할 때 일어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예배가 살아 역사하는 예배가 되려면 이 예배 가운데 임재하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의 허물이 발견되어지고 “주님 잘못했습니다.”는 참회의 기도가 저절로 우러나오게 되며 사유하시는 주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임재하게 될 때 소생하게 되는 다시 사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다윗은 중요한 고백을 합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용서하고 새롭게 하신 후에 다윗은 더욱 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5절에서 사도 바울도 “그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지 말고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게 하려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고 고백합니다.
회고 다음은 전망입니다. 은혜를 받은 후에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전망이요 결단입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C.S 루이스의 작품 나니아 연대기에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아슬란이 나옵니다. 아슬란을 만난 루시에게 아슬란이 어떻게 생겼냐고 묻자 루시는 “사자”라고 대답합니다. “사자는 무서운 짐승인데 무섭지 않냐?”는 질문에 루시는 “무섭지 않냐구요? 물론 아슬란은 순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아슬란은 선해요.” 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이 그런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죄악을 보면 야단을 치시고.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장사하는 상을 뒤엎는 무서운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나 선하신 분이십니다.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우리와 함께 하시니 우리가 영원토록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전망과 결단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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