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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강용규목사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살고 싶은가? 2009.01.31강용규목사 ▒▒ 성경 _ 마태복음 7: 7~12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살고 싶은가? 2009.01.31강용규목사

▒▒ 성경 _ 마태복음 7: 7~12



미국의 어느 교도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교도소의 간수장이 입소하는 재소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교도소는 간수가 많지 않아서 너희 모두를 지켜주거나 보호해 줄 수 없다. 그러니 너희가 알아서 교도소 생활을 해라.” 이곳은 삼면이 미시시피 강으로 둘러싸여 있는 루지아나 주의 주립 교도소입니다. 이 교도소에 들어온 사람은 주법에 따라 절대로 가석방 되는 일이 없이 20년 이상 또는 종신형을 살아야했습니다. 간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죄수가 있으면 다른 죄수를 시켜 죽이게 했고 사람이 죽으면 박스에 말아서 미시시피 강 둑에다 묻어버렸습니다. 이 교도소는 악명이 높기로 이름이 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5년 그 교도소를 방문한 사람들은 교도소를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악명 높은 간수들은 무기를 지니지 않은 채 죄수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죄수들도 체육 꽃 가꾸기 동물 사육 등 무언가를 배울 뿐만 아니라 취미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취미생활 중에는 밖에서 들어온 영치금으로 부서진 휠체어를 수리해 제3세계로 보내 남을 돕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5천명의 재소자들 중에 천 명이나 되는 죄수들이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일명 앙골라 감옥으로 악명이 높던 교도소가 어느새 수련원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바뀐 데에는 새로 부임해 온 벌 카인이라는 교도소장 덕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진실한 크리스천인데 교도소장을 맡으면서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라고 하셨는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죄수들을 향해 “당신들은 어떤 대우를 받기를 원합니까? 짐승처럼 대우받기를 원합니까? 하나님의 아들 딸로 대우받기를 원합니까?” 는 질문을 던지며 마태복음 7장 12절 “너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는 먼저 식당 주방장을 불러 음식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리고 간수들을 불러 “당신들이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그들을 대접하시기 바랍니다.”는 말로 죄수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를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결과 교도소의 분위기가 예전과는 전혀 다른 곳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떤 대접을 받고 싶습니까? 성경은 말씀하기를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서로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편견 없이 대하셨습니다. 우리의 착각 중에 하나는 구약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사랑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출애굽할 때 야곱의 열두 아들들의 자손들만 출애굽시킨 게 아니라 수많은 잡족들도 함께 출애굽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민족 공동체가 아닌 신앙 공동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 그들이 도움을 받은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방 사람인 기생 라합이었습니다. 사사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왕 야빈에게 20년 동안 괴롭힘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왕 야빈을 물리치는데 당시 남성 우월주의가 아주 팽배했던 시기임에도 여성인 드보라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편견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편견 없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만약 편견이 있었다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엘서에서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것인데 남종과 여종 모두에게 부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차별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역대 대통령의 취임식 중에서 최고 많은 인파가 몰렸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이 취임식을 기뻐했습니다. 이유는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든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버락 오바마는 흑인 대통령입니다.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을 보면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귀한 징표라고 여겨집니다. 허리케인 카타리나가 미국 남부를 강타했습니다. 그래서 낮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바닷물에 잠겼습니다. 그 때 아틀란타에 있는 큰 교회가 이재민을 위한 헌금을 했고 구제비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감사히 여겼습니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물난리를 피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도와준 교회가 있는 아틀란타로 갔습니다. 그리고 교회 근처에 살며 교회에 등록해 예배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교회의 백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백인들은 낮은 계층의 사람들과는 같이 예배드릴 수 없다며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 교회에는 아틀란타 프로야구 팀의 도미니카 출신인 유명한 투수가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그 사람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프로 야구팀 안에는 백인도 있고 흑인도 있고 중남미 사람들도 있지만 인종차별이 없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한다는 교회가 수재민이 왔다고 백인들이 떠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담임목사님을 찾아가서 항의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편견 없는 사랑 차별 없는 사랑으로 인해 오늘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 역사에는 모라비안 교도가 있습니다. 모라비안 교도는 로마 카톨릭이 개신교를 박해할 때 그들을 피해서 살며 마태복음 7장을 실천하는 교도였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대접하신 것처럼 나도 남을 대접해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남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사람들이 가기 어려운 곳 예를 들면 나환자촌이나 아프리카 곳곳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요한 웨슬리가 그들이 복음 전파하는 것을 보고는 감동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윌리암 캐리의 글에서도 “내가 선교사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모라비안이 나에게 가르침과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편견 없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한 차별 없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의 이웃들을 편견 없이 사랑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성도 여러분 편견 없는 사랑 차별 없는 사랑을 베풀어서 하나님께 칭찬받는 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