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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선물 2009.02.14강용규목사 ▒▒▒ 여호수아 24:1~4

뜻밖의 선물 2009.02.14강용규목사

▒▒▒ 여호수아 24:1~4



우리는 살다보면 생각보다 고되고 힘든 훈련을 받게 됩니다. 본문은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말씀으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가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서 우상을 섬겼다.”고 말씀합니다. 강 저편은 메소포타미아를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메소포타미아에서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섬기는 지역에서 아브라함을 끌어내서 가나안 땅으로 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식이 없던 그에게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축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축복으로 얻은 아들이 이삭입니다. 이삭의 첫째 아들은 에서이고 둘째 아들은 야곱입니다. 그런데 두 아들 중에 에서에게는 세일 산을 주셨지만 야곱에게는 가족과 함께 애굽에 가서 노예로 살게 하셨습니다. 에서는 장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에서가 아닌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세일 산에서 편안하게 살게 하시고 택함 받은 야곱과 가족은 애굽의 노예로 살게 하시다니 잘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고난 속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장 12절에 애굽으로 간 야곱의 후손들은 학대를 받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학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자손들이 생육하고 번성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지으시고 그들에게 축복하신 첫 마디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이 학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넘쳐났습니다. 성경은 고난 없는 영광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고난 속에서 예배드릴 때 하루에 3천 명씩 주님께로 돌아오는 전도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그 고난 속에서 하늘이 열려 영광스러운 주님이 하늘에 계시고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머나 감독인 폴리캅은 로마 총독이 “선생님 황제 숭배한다고 한 마디만 하십시오. 선생님 같은 분은 사셔야 됩니다. 죽으면 안 됩니다.” 라고 제안했을 때 “내가 80년 동안 주님을 모른다고 한 적이 없는데 앞으로 몇 년 더 살겠다고 주님을 모르겠다고 하겠느냐?” 고 대답했습니다. 그 일로 결국 폴리캅 감독은 화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터키의 인구 중 99프로가 이슬람인이며 터키의 세 번째 도시가 서머나입니다. 그 서머나에 온전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 들어가면 예수님의 고난과 영광의 그림과 함께 폴리캅 감독의 순교 장면이 교회 가운데 그려져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축복은 없습니다. 고난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늘 축복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도 있습니다. 고난도 있습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 때 비로소 부활의 영광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새벽기도회 시간에 요한계시록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에 칭찬받은 교회는 서머나 필라델피아 두 교회뿐입니다. 하나님은 서머나 교회에게 “내가 네 환난과 곤란과 궁핍을 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실상은 너희가 부자다. 너희가 장차 하늘나라에 가서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될 줄을 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자는 재산이 많은 부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되기에 부자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고난이 주는 선물은 기도입니다. 출애굽기 2장에 보면 애굽에 끌려간 야곱의 자손들은 하나님을 향해 울부짖어 기도합니다.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친히 내려와 그들을 보시고 조상들과 약속하신 것을 기억하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는 귀한 역사를 행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편하면 기도를 하지 않게 됩니다. 주님의 도움 없이도 이만큼 잘 사니까 하는 생각으로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부자라고 말하나 실상은 가난한 자이며 심판받을 교회인 것입니다. 기도는 단어를 나열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만약 한나에게 자식이 많았다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식이 없고 아이를 못 낳는다고 브닌나로부터 조롱을 받았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성전에 올라가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편안하게 지냈다면 히스기야 왕의 기도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에게 죽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는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원치 않는 어려움을 겪으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고난 중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뜻밖의 선물은 간증입니다. 본문은 고난 중이라기보다는 편안한 상황에서 여호수아가 간증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난을 모르는 후손들아 오늘 우리가 여기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독수리 날개 치듯 홍해를 건너게 하셨고 바위를 쳐 물이 나오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여호수아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를 후손들에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간증하는 사람들을 종종 초청하는 이유는 그들이 겪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같이 경험하며 나에게도 같은 은혜를 부어주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에는 바울의 간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고 모여든 사람들 앞에서 “나도 과거에는 바리새인이었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지만 다메섹 도상에 올라가다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되었다.” 고 간증합니다. 로마 총독 벨릭스 앞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간증합니다. 뿐만 아니라 헤롯 왕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간증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고난으로 많은 사람들과 은혜를 나눈 것처럼 우리의 고난도 많은 사람들에게 간증이 됩니다. 이와 같은 뜻밖의 선물을 받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