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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강용규목사

큰 용사의 특징 2009.03.01강용규목사 ▒▒▒ 사사기 6:11~18

큰 용사의 특징 2009.03.01강용규목사

▒▒▒ 사사기 6:11~18


우리는 살면서 하나님께 항변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 3장 10절에 하나님께서는 나이 80세인 모세에게 “애굽 땅에 들어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자신의 나이가 80세이며 말도 잘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느냐고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항변을 무시하시고 “너는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끌어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나서에서도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 백성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데 가서 복음을 전하라니 말도 되지 않는다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항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니느웨의 반대편인 다시스로 가는 배에 오릅니다.

오늘 본문인 사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사기 6장에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미디안 족속들에게 피해를 입고 있었습니다. 추수 때가 되면 미디안 족속이 메뚜기처럼 몰려와 이스라엘 백성이 1년 동안 추수한 것들을 모두 약탈해가곤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나타나서 “기드온아 너는 큰 용사다. 너희를 괴롭히는 미디안 족속을 네가 나서서 물리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기드온은 “어찌하여 저에게 큰 용사라고 말씀하시며 미디안 족속을 쫓아내라고 하십니까?”라며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모세의 항변을 기각하시고 요나의 항변을 기각하신 것처럼 기드온의 항변도 기각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그러셨을까요? 우리는 어쩌면 결론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모세가 출애굽의 지도자로 나서지 않았다면 오늘의 모세는 없었을 것입니다.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요나서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드온이 미디안 족속과 대항해 싸우지 않았다면 사사 기드온은 오늘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기드온의 항변을 한번 봅시다. 기드온의 첫 번째 항변은 6장 12절에 하나님께서 “큰 용사여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고 말씀하시며 기드온에게 미디안 족속을 내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하나님 왜 하필이면 지금 이 시간에 이런 얘기를 하십니까? 하며 항변합니다. 이 말 속에는 그동안 미디안 족속에게 번번히 당할 때는 어디계셨다가 지금에 와서야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라는 서운함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 저는 므낫세 지파 중에서 가장 작은 가문이고 그 가문에서도 가장 작은 자” 입니다. 정리하면 기드온은 하나님께 “왜 당신은 지금까지 가만히 계시다가 이제 와서 나같이 작은 자에게 이 일을 맡기십니까?”라는 항변인 것입니다. 이러한 항변이 타당한 듯 보이지만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떠나신 것입니까? 아니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까? 이사야 59장에서 하나님은 “내가 손이 짧아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함도 아니요 내가 귀가 둔해서 너희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못함도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사야서 59장 2절에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에 거리를 만들었고 너희가 저지른 죄가 하나님의 귀를 막았도다.”고 말씀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떠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날 때가 더 많습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버려두셨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그 때에도 하나님은 그 자리에 변함없이 서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바알과 아스다롯이란 우상을 섬겼습니다. 우상을 섬기던 이스라엘이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은 기드온을 세우시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려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기드온이 자격이 없다 하더라도 그에게 “내가 너와 함께하며 너의 방패가 되어주며 힘이 되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표징을 보여 달라고 간청합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표징을 보여주었음에도 물러서지 않고 더 보여 달라고 간청합니다. “마른땅에 양털을 놓았는데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양털에 물이 가득 고여 있고 땅은 마르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은 그의 간청을 들으시고 그대로 행하십니다. 그러자 기드온은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하나님 내일 아침에는 양털은 아주 말라있고 땅은 흥건히 있게 해 주십시오.”고 간청합니다. 하나님은 다음날 아침에 양털은 바짝 마르고 땅은 흥건히 젖은 상태로 있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말대로 행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한다는 표징을 우리에게 얼마나 보여 주셨는지 모릅니다. 한번 뒤돌아보며 하나하나 세어 보시기 바랍니다. 열 손가락이 모자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명령에 순종했을 때 그는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했을 때 예수님의 제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기드온도 결국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13만 5천명 미디안 족속과 대면하게 되었을 때 그의 군대는 불과 3백명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군대는 하나님의 용사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기드온의 군대가 13만 5천명을 무찌르고 승리하였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늘 기도하는 제목 중의 하나는 “하나님 저에게 더욱 굳건한 믿음을 주옵소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굳건한 믿음 가진 자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자를 크게 들어 쓰시는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큰 용사가 되는 비결은 하나님을 더욱 더 굳건히 신뢰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