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하박국 3:2).
올해는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 백주년 되는 해입니다. 한일합방을 앞둔 암울하던 시기, 그 어느 곳에서도 소망을 찾을 수 없던 때, 1907년 1월14일 평양에서 선교사들이 정오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여기서 그레함 리(Graham Lee)목사의 짧은 설교 후에 사람들은 주먹으로 땅을 치고 울부짖으면서 마루에 자신을 동댕이치면서 회개하였습니다. 전체회중이 통성 기도하며, 통제할 수 없는 통곡 속에 기도회는 새벽 2시까지 이어졌습니다. 여기서 시작된 부흥의 불길이 전국적으로 번져나갔고, 길선주 목사에 의해 시작된 새벽기도회로 말미암아 더욱 뜨겁게 불타올랐습니다. 당시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신비스럽고 저항하기 어려운 능력을 체험하면서 울부짖고 큰 소리로 죄를 회개하면서 진실로 자신들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였습니다. 이러한 회개는 사람을 변화시키며 공동체를 새롭게 변화시켜 나갔습니다. 이러한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은 우리 한국기독교 부흥의 원형의 모습으로 존재하였고, 이를 초석으로 하여 오늘의 한국교회가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그때로부터 10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수많은 역사적 변천을 겪으면서 자랑스러운 모습도 있었고, 부끄러운 모습도 있었습니다. 자랑스러운 모습이라면 전 세계가 놀라는 엄청난 교회와 교인의 양적 증가와 그 속도이며, 이로 인한 한국교회의 국제적 위상과 전 세계에 파송하고 있는 선교사들 숫자와 사회봉사의 모습들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성장의 이면에 우리는 때로 우리의 부끄러운 치부와 미성숙한 모습들을 드러내었고, 세상의 질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교회는 이전의 부흥의 열정을 잃고 현실에 안주하며 물질주의와 세속화의 늪으로 빠져들면서,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 채,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기대가 아닌 비난과 질시의 대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로 인해 성도들은 길거리에서 '예수 믿으라'고 외치던 복음 전파에 대한 용기를 잃어버렸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신의 정체를 나타내는 것조차도 쭈뼛거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침체되고 그 열정을 잃어가면서, 국가적으로도 많은 정치적인 혼란과 가치관의 상실, 그리고 이로 인한 도덕과 윤리의 부재 현상이 세상에 넘실대게 되었습니다. 경제가 침체하고, 범죄율이 높아지고, 실직자가 증가하는 등,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아무런 희망을 찾지 못한 채, 죄 없는 이웃과 함께 자신의 삶을 자폭해버리는 일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지도자에 대한 불신, 북한 핵의 위기, 사회적인 갈등 등, 산적한 우리의 문제들이 가만히 생각해 보면, 메말라 버린 영혼들에 의해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사회적인 황폐 현상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가운데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던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했던 선지자의 기도를 들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3:2)". 먼저 우리 영혼이 회개와 기도,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부흥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교와 성도의 교제를 통해 교회의 부흥을 이루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이 나라와 이 사회도 사랑과 공의가 넘치는 참된 부흥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Again 1907, Revival 2007!"이 되도록 우리 모두 심령을 새롭게 하고, 우리 각자가 부흥의 불씨가 되어 이 민족을 살려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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