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삶(1) 눅5:1-11 2014.1.5(일)
제자의 삶(1) 출발, 나를 따르라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묵은 해는 가고 새해가 되었습니다. 새 해 여러분의 가장 큰 소원은 무엇입니까? 저는 새해 우리의 최고의 소망을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에 두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찬양이 있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그런데 조금 더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받는 것과 함께 사용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해 주는 것처럼 감사한 일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최고의 일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것이요 우리의 최고의 일은 그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쓰실까요? 어느 누가 하나님앞에 자신만만하겠습니까? 어느 누가 하나님앞에 설 때 흠과 티가 없겠습니까?
그래서 어느 교회에서 담임목사를 모시는 데 교인들이 목사청빙위원회를 구성하고 몇 달동안 열심해 일했답니다. 때가 되어 교인앞에 그 결과를 보고하는 데 위원장되는 장로님이 이렇게 보고했답니다. “그동안 몇 달동안 청빙위원회에서 만나본 목사님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아담목사님, 아담은 좋은 분이었지만 부인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숲속을 벌거벗고 다니기 좋아하고 남의 사과도 따먹다 걸렸답니다. 둘째 노아목사, 노아 목사는 목회기간중 비도 오지 않는 데 무리하게 배를 만듦으로서 주민들의 원성을 샀다고 합니다. 요셉목사, 요셉목사는 꿈은 좋으나 꿈 때문에 부모를 버리고 이민을 가고 감옥에도 가는 등 전과기록이 있습니다. 모세목사, 온유하고 겸손하지만 자주 말을 더듬는 등 의사 소통에 문제가 있고 욱하는 성격이 있어서 조금 무섭다는 평이 있습니다.
드보라 목사, 여자 목사이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다윗목사, 지도력이 뛰어나지만 이웃집여자와 지울 수 없는 스캔들 때문에 계속 인터넷 검색 1순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솔로몬 목사, 설교는 잘하지만 여자 관계가 좀 복잡합니다. 엘리야 목사, 다 좋은 데 쉽게 낙심하고 잘 도망가는 성격이라 불안합니다. 호세아 목사, 인자하고 정이 많으나 사모님이 가출한 적이 있어서 모범이 안됩니다. 요나목사, 감동을 잘 받아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세례요한 목사, 침례교 목사님인데 가끔 무서운 저주를 퍼붓고 극단적인 금욕생활을 하는 등 일반 신자가 따라하기 어려운 목회를 합니다. 바울목사, 능력있는 설교자요 탁월한 학자이긴 하지만 몸이 너무 약하고 미혼입니다. 만일 부임하면 여신도가 매일 식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디모데 목사, 착하긴 하지만 너무 어리고 어머니, 외할머니 치맛자락에서 놉니다. 그래도 그 중 제일 나은 분이 있어서 추천합니다. 이름은 가롯 유다목사입니다. 이 분은 한때 예수님의 많은 총애를 받았던 분이고 생각이 혁신적이어서 사람들이 생각지 못하는 구상을 잘 하는 분입니다. 특별히 좋은 것은 그가 재정 문제를 잘 다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임하면 교회 재정이 훨씬 좋아질 것으로 봅니다. 다음 주에 가롯 유다 목사님이 오셔서 설교하는 데 잘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국 가롯 유다가 담임목사로 뽑혔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온 인물중에 단점이 없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누가 하나님앞에 완전한 자입니까?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그 부족한 사람들을 제자로 불러 하나님의 사람들로 사용하시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나를 부르시고 왜 부르시고 어떻게 하기를 원하실까요? 말씀을 통해 깨닫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은혜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의 시작은 그의 부르심으로 시작됩니다. 장면은 갈릴리 서쪽 게네사렛입니다. 베드로, 안드레를 비롯한 몇 명의 어부가 힘들게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소득이 없습니다. 5절 보시겠습니까? 눅5:5, “시몬이 대답하되 선생님 우리가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여기서 “수고”란 말은 헬라어로 ”코피아오“, 힘들게 일한다는 뜻입니다. ”코피아오“, 우리 말로 ”코피가 나요“ 하는 말과 비슷합니다. 베드로는 그날 갈릴리 바다에서 ”코피나게“ 일했지만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수고를 하되 대가가 있기만 하면 아무리 수고해도 피곤치 않습니다. 자식키울 때 허리가 끊어져도 자식이 잘되기만 하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밤새워 일해도 매출만 오른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해도 아무 성과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그럴 때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신 때는 이때였습니다. 3절입니다. 눅5: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이때까지 예수님은 어디 계셨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언뜻보면 갑자기 없던 분이 나타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멀리서 베드로를 지켜 보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정확한 때에 베드로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이번에도 게네사렛 호수에 갔습니다. 거기에 예수님 시대의 방파제가 있고(사진) 아마 거기 어디 쯤에서 베드로가 고기 잡고 있었을 것입니다(사진). 멀리서 베드로를 지켜보던 예수님이 드디어 베드로의 배로 올라오신 것입니다. 때와 장소를 보아야 합니다. 지금 베드로가 가장 힘든 때입니다. 베드로는 결혼한 가장입니다. 부양해야 할 장모, 아내, 자녀가 있고 아직 장가 안간 동생도 있습니다. 고기잡아야 먹고 사는 데 고기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너무 힘듭니다. 인생살이가 왜 이렇게 힘든가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얼마나 놀랐을까요? 낯선 사람이 자기 배에 쑥 올라오다니. 배는 베드로에게 무엇입니까? 배는 베드로의 모든 것입니다. 배는 베드로의 세계요 베드로의 삶 전체였습니다. 그런데 텅 비어 있습니다. 텅빈 배는 베드로의 모든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가난하고, 정신적으로 힘들고, 영적으로 외로운 베드로, 그가 텅빈 마음으로, 텅빈 배에 앉아 있었습니다.
여러분, 주님도 우리를 제자로 부를 때 이렇게 불렀다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가 가난하고 힘들고 외로울 때 우리가 주님을 찾기 전에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것을 아십니까? 그냥 찾아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 배로 쑥 들어오신 것을 아십니까? 그가 우리 마음에, 우리의 삶에 들어오셨습니다. 이스라엘 격언중에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사람들은 모두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사람들이 누구를, 무엇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릅니다.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조건이 필요하고 사랑하는 것은 조건이 필요없습니다. 만일 아름다워야 불렀다면 우리는 하나도 부름받지 못할 뻔 했습니다.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우상장사의 아들이 아니었습니까? 야곱은 아버지, 형을 속이고 야반도주한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솔로몬의 다윗과 밧세바의 불륜의 씨앗이 아니었습니까? 다윗의 조상 라합은 기생이 아니었습니까? 바울은 예수믿는 사람들을 많이 잡아 가두고 죽이지 않았습니까? 어거스틴은 사생아를 낳은 탕자가 아니었습니까? 성경과 교회사에서 누가 죄없이 완전한 자며 누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자입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사랑하기 때문에 부른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로 불렀습니다.
제자는 열매맺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은혜로 불렀다면 왜 불렀는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 첫 번째가 기적입니다. 그렇게 밤새 일했어도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던 베드로에게 주님이 배에 들어오시자 마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6절 보시겠습니까? 눅5: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여기서 심이 많았다는 것은 셀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배에 들어오시니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제자”라는 말이 모두 263회 나옵니다. 대부분 이 말은 “배우는 자”라는 뜻입니다. 제자는 예수님을 배우는 자입니다. 그러나 배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책상머리맡에 앉아 선생님 말씀을 듣는다는 뜻입니까? 성경에서 배운다는 것은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격, 능력, 은혜를 경험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물고기 한 마리 못잡은 상태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능력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도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의 부요를 경험해야 합니다.
기적이 예수님 제자됨의 목적은 아니지만 기적을 통해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도 맞습니다. 기적은 우리를 예수님께 인도하는 관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앞에 무릎꿇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8절에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9절 때문입니다. 눅5: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설교 때문이 아닙니다. 강의때문이 아닙니다. 고기잡힌 것 때문입니다. 기적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다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한 마디 했을 뿐인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잘못될 때가 있습니다. 물질이 필요없다고 말할 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제자야. 물질이나 세상에 관심가져서는 안돼. 그것은 마귀적이고 세상적인 것이야”. 그러나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고 또한 물질세계에 삽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그것을 다스립니다. 제자의 삶은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기도만 하면 끝난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는 언제나 기적이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뿐 아니라 요21장에서도 물고기 153마리를 잡는 기적이 체험했습니다.
“모나미 153”이란 것이 있습니다(사진). 개인적으로 저희 고등학교 선배신데 송삼석장로님이 계십니다. 이 분이 1963년에 볼펜 하나를 만들었는 데 그것이 모나미 153입니다. 요즘은 많은 펜들이 있지만 60-70년대는 이 볼펜만 있었습니다. “모나미”는 불어로 “나의 친구”라는 뜻이랍니다. 153은 요21장에서 베드로가 잡은 물고기 수입니다. 송장로님은 볼펜을 만들 때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영감과 지혜를 달라고. 그러자 요21장에 나오는 숫자가 떠올랐습니다. 베드로가 잡은 물고기 수입니다. 153, 그 숫자를 써서 대박을 만났습니다. 그것이 모나미 153입니다. 그런데 그 기적은 모나미 회사에게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깊은 데에 그물 던지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일어납니다. 바다에 바람은 언제나 붑니다. 돛이 있기만 하면 배는 언제나 갑니다. 바람은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저는 새해 우리 교우들에게 이런 기적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은 우리에게 꽃이 되라고 말한 적이 없고 오직 열매맺으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요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꽃은 예쁩니다. 향기롭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꽃이 나무의 목적은 아닙니다. 꽃을 내기 위해 나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기 위해 나무가 있습니다. 꽃은 나무의 과정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학생의 열매는 학업입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간는 공부의 목적은 아니지만 좋은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면서 공부 잘했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좋은 직장 얻기 위해 대학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직장 시험에 계속 떨어지는 데 대학 잘 다녔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업의 목적이 영리가 아니라고 하지만 돈벌지 못하는 데 좋은 기업일 리 없습니다. 교회성장을 위해 교회가 존재하지 않지만 교인이 늘지 않는 데 좋은 교회일 리 없습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해야 좋은 자녀교육은 아니지만 자녀가 잘못됐는 데 자녀교육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자녀는 잘되어야 합니다. 좋은 대학에 쑥 쑥 들어가야 합니다. 사업은 잘되어야 합니다. 돈많이 벌고 대박을 만나야 합니다. 교회는 부흥되어야 합니다. 교인은 늘고 수가 많아져야 합니다.
그동안 저는 이 부분을 많이 강조하지 못했습니다. 영성목회를 추구한다면서 늘 본질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면 받지만 더 중요한 것을 두고 축복받기만 바라는 것은 좋은 믿음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자녀가 아버지의 복을 누리는 것은 눈치볼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입니다. 자녀가 건강하고 잘되고 행복하게 되는 것은 일구월심 부모의 소원입니다. 특히 물질생활을 하는 우리가 믿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부자시다”. 다음은 “나는 그분의 자녀다”. 여러분, 이 사실을 믿습니까? 믿는대로 됩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시고 주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사랑스러운 자녀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 하겠습니까? 모든 좋은 것이 하늘에서 옵니다. 약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에게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주실 준비가 되어 있고 우리는 그것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온갖 귀한 선물 주님이 주신 것, 그 풍성하신 은혜를 다 감사드리세”. 새해에는 이 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열매맺읍시다. 학업이든, 사업이든, 자녀교육이든, 가정이든, 엡3:20-21절로 축복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크게 아멘합시다. 새해에는 여러분의 배가 은혜의 축복으로 가득 잠기기를 바랍니다. 새해에는 여러분이 심는 생각, 구하는 기도, 움직이는 모든 행동에 153세마리 물고기로 가득 열매맺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전적으로 따랐습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전적인 헌신입니다. 11절을 보실까요? 눅5: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베드로가 잘한 것은 자기 힘으로 아무 것도 못하던 것을 예수님의 능력으로 이루었지만 그것을 우상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텅빈 배에 두 배나 잠기는 물고기를 얻었습니다. 주님이 주신 열매였습니다. 허무와 무기력에 빠져 있는 자신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주셨습니다. 주님이 주신 열매입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물고기보다 주님을 더 높이는 것입니다.
제자의 삶의 핵심이 여기 있습니다. 제자의 삶에는 어떤 것도 필요없는 것이 없습니다. 육신과 떨어질 수도 없으며 먹지 않고 마시지 않고 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믿는 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영성과 육체성은 하나입니다. 제자의 삶에서 영성과 인간성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매일 기적을 베푸시지만 그 기적은 우리에게 선물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선물보다 선물을 주시는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다시 11절 보세요,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모든 것을 버립니다. 배도 버리고 물고기도 버리고 마가복음을 보면 아버지까지 버립니다. 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11절 마지막입니다. “예수를 따르니라”. 이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저는 새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해 주님을 따르자고 말하고 싶습니. 결론은 주님을 향한 따름과 전적인 헌신입니다. 저는 그와 같은 삶을 지금부터 100년전에 살았던 영국의 한 탐험가에게서 봅니다. 그의 이름은 어니스트 새클턴이었습니다. 그는 28명의 자원자들과 함께 남극에 가서 비록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데리고 귀환함으로써 제자의 삶에 헌신이, 인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1913년11월, 새클턴은 신문에 다음과 같이 탐험대 모집 광고를 냈습니다. “대단히 위험한 탐험에 동참할 사람을 구함. 급여는 쥐꼬리만함. 혹독한 추위와 암흑과 같은 세계에서 여러 달을 보내야함. 탐험기간 동안 위험은 끊임 없이 계속 될 것이며, 무사히 귀한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음. 그러나 성공할 경우 명예와 만인의 사랑과 인정을 받게될것임”. 그래서 28명이 모였는 데 그들은 직업도 하는 일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단 한 가지 공통점은 반드시 남극을 정복하고 오겠다는 다짐과 어떤 경우에도 대장의 말에 순종하고 참고 인내하며 헌신하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그래서 배 이름도 “인듀어런스”, “인내”라는 이름을 달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이 배가 남극의 부빙 속에 갇혀 꼼짝 달싹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칠흑같은 혹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그 고난을 이기고 마침내 살아 돌아왔는지 함께 보시겠습니다(영상).
어떻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저렇게 살아 돌아오겠습니까? 이들이 살아 돌아오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어떤 분이 연구했는 데 크게 세 가지랍니다. 첫째, 버리는 것입니다. 배가 빙하에 부딪치고 결국 난파되자 새클턴과 대원들은 가지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버리기 시작합니다. 조금이라도 무게가 나가는 것은 줄이고 한 사람당 1킬로씩만 가지기로 했습니다. 그래야 살기 때문입니다. 새클턴은 먼저 돈을 버렸습니다. 어떤 대원은 데리고 온 개를 버렸습니다. 어떤 대원은 그동안 찍은 필림을 버렸습니다. 어떤 대원은 옷을, 어떤 대원은 책을 버렸습니다. 떠날 때는 이것 저것 많이 필요했지만 막상 조난을 당하자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마지막까지 필요했던 것은 식량이었습니다. 버려야 삽니다. 미래의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오늘의 작은 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더 작은 것을 버리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버리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 나를 버려야 합니다. 둘째, 희생입니다. 배가 좌초하자 새클톤은 2400킬로나 떨어진 곳으로 배를 구하러 떠납니다. 침으로 죽기로 작정한 것이었습니다. 대원들을 살리기 위해 그는 온몸을 던졌습니다. 어떤 것보다 사람이 중요했습니다. 새클톤의 마음속에 끝까지 남은 것은 27명 대원들의 생명이었습니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는 어떤 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지막이 용기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것도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다음은 새클턴이 평소에 애송하던 시입니다. “나는 항상 투사였다. 한 번만 더 해보자. 최후의 것이 최상의 것이다. 용감한 자는 최후의 한 순간에 최악을 최선으로 바꿔놓는다”. 그 믿음으로 그는 5년 후인 1921년, 섀클턴은 또 다시 남극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리고 남극대륙에 발을 딛기 직전에 심장마비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신은 지금 사우스조지아 섬에 있습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목숨을 건 사람의 이야기, 그것이 새클턴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가야 할 제자의 삶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습니까?
제자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과 순종입니다. 다시 11절을 보십시오. 눅5: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제자의 열매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순종을 통해 옵니다. 믿음과 순종과의 관계는 이렇습니다. “오직 믿는 자만이 순종하고, 오직 순종하는 자만이 믿는다”. 믿음이 있어야 순종하지만 순종하지 않고는 믿음이 아닙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물에 빠진 베드로가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소리쳤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말씀을 믿는 순간 발을 내딛어 순종했습니다. 순종은 믿음에서 왔고 믿음은 순종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믿음과 순종은 기적을 가져왔습니다. 한 해를 믿음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렇다면 순종도 따라가야 합니다. 믿고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한 해동안 제자로 부름받은 여러분, 세 가지를 기억합시다. “첫째, 나는 은혜로 부름받았다. 둘째, 나는 열매맺어야 한다. 셋째, 그러기 위해 나는 믿음과 순종으로 주님만을 따르리라”. 한 해동안 여러분에게 제자의 삶의 열매가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제자의 삶(1) 눅5:1-11 2014.1.5(일)
제자의 삶(1) 출발, 나를 따르라
예수님은 우리를 은혜로 부르셨습니다.
눅5:5, “시몬이 대답하되 선생님 우리가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눅5: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게네사렛 호수에 방파제(사진)
고기잡는 배(사진).
이스라엘 격언,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제자는 열매맺어야 합니다.
눅5: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눅5: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모나미 153”(사진).
요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약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엡3:20-21,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예수님을 전적으로 따랐습니다
눅5: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어니스트 새클턴(사진)
(영상)
새클턴 승리의 비결
(1) 버리는 것
(2) 희생
(3) 용기
새클턴의 애송 시
“나는 항상 투사였다.
한 번만 더 해보자.
최후의 것이 최상의 것이다.
용감한 자는 최후의 한 순간에 최악을 최선으로 바꿔놓는다”.
눅5: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믿음과 순종과의 관계
“오직 믿는 자만이 순종하고, 오직 순종하는 자만이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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