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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8:1-10(송년주일) 멈출수없는 이유 2013.12.29(일)

8:1-10(송년주일) 2013.12.29()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

한 해를 마치는 송년주일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벌써 한 해가 지났습니다. 오래전에 뉴욕의 한 시계공장에 도둑이 들어 수천개의 시계가 도난당했습니다. 주인이 경황중에 경찰서에 이렇게 전화했습니다. “여보세요. 여기 시계공장입니다. 어제 밤에 도둑들이 들어와서 시간을 훔쳐 갔습니다. 빨리 오세요”. 시계주인은 시계를 시간으로 잘못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가 잃어버린 것은 시계가 아니라 시간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어쩌면 시간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성경은 재미있게 표현합니다. 9:25-26입니다. “나의 날이 체부보다 빠르니 달려가므로 복을 볼 수 없구나 그 지나가는 것이 빠른 배 같고 움킬 것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 욥은 시간은 체부보다 빠르다고 말합니다. 체부는 우체부입니다. 옛날에 우체부는 말을 타고 역과 역사이를 달렸습니다. 옛날 사람이 생각할 때 가장 빠른 사람은 말타고 다닌 사람입니다. 그나마 편지를 전하는 우체부는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야 합니다. 편지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말타고 달리는 우체부와 같습니다. 시간은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독수리와 같다. 독수리가 얼마나 빠른지. 하늘을 빙글 빙글 돌다가 먹이를 발견하면 쏜살같이 달려듭니다. 시간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일년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아쉽고 서운합니다. 정말 정신없이 지내왔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잃어버린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까? 안가겠다고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합니까?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 멀리 가나안 땅이 보이는 지점에서 한 모세의 설교입니다. 모세는 지금 백성과 함께 모압평지에 있습니다(사진). 모압평지는 여리고 맞은 편 지금의 요르단땅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40년동안 백성들을 이끌고 정신없이 살아온 모세, 모압평지에 서자 지나간 40년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뒤를 보니 40년 광야요 앞을 보니 건너야 요단강입니다. 지금 그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서 있는 것입니다. 뒤를 돌아보고 앞을 바라보고, 그는 그 시간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선포합니다. 오늘 읽은 신8장의 말씀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할까요? 모세처럼 우리도 뒤를 돌아보고 앞을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도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지 않습니까? 과거는 우리에게 무엇이고 미래는 우리에게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감사하고 무엇을 결단해야 합니까?

한 헤동안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해를 돌아볼 때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릅니까? 잘된 일, 성공한 일, 감사한 일, 하나님의 은혜가 떠오르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잘 안된 일, 마음의 상처, 깨어진 관계, 실패, 이유없이 당한 고난, 이런 것이 먼저 생각이 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습니다. 지나간 40년을 생각해 보니 너무 너무 힘든 일만 생각이 났습니다. 5절을 보시겠습니까? 8: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을 마음에 생각하고”, 여기에 징계란 말이 나옵니다. 징계고통, 훈련이란 뜻입니다. 얼마나 광야 생활이 힘들었으면 살아온 길이 징계같고 훈련같았겠습니까? 훈련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요? 말하기는 좋지만 훈련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과연 광야에서 어떤 고난, 어떤 훈련을 받은 것입니까? 아마 몇 가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첫째는 먹고 사는 고통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애굽에서 배불리 먹던 채소와 고기는 먹지 못하고 오직 만나만 먹고 살았으니, 같은 음식도 한 두 번 먹으면 질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같은 음식을 40년이나 먹었습니다. 질리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지난 한 해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마 먹고 사는 문제였을 것입니다. 취업문제, 직장문제, 사업문제, 먹고 사는 문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노력해도 노력해도 한이 없습니다. 두 번째 고통은 단조로움의 고통입니다. 광야의 풍경은 변하지 않습니다. 매일 걸어도 그 모습이 그 모습입니다. 사람이 견디기 힘든 것중의 하나가 일상의 단조로움입니다. 오늘이 어제같고 어제가 오늘같은 삶은 얼마나 견디기 힘듭니까? 그래서 우울증이 생기는 것입니다. “벗어나고파”, 때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그 흔한 여행 한번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세 번째는 아마 인간관계의 갈등일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같은 사람이 40년을 함께 걸었다면 얼마나 많이 부딪치며 갈등하며 살았겠습니까? 상처는 늘 가까운 사람끼리 주고 받습니다. 여러분에게 지난 한 해 상처주고 마음 아프게 한 사람은 대부분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고슴도치의 사랑때문입니다. 고슴도치는 가깝게 몸을 지댈수록 서로 찌릅니다. 그렇다고 추운 데 떨어져 살 수 없지 않습니까? 가족이 그렇고, 교인이 그렇고, 직장 동료가 그렇습니다. 가까이 할 수 밖에 없고 가까이 하면 찌릅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살아왔습니다.

 

네 번째는 아마 밖에서 오는 대적들로 인한 고통일 것입니다. 40년 광야 생활중 이스라엘은 하루 한 날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애굽에서 바로가 학대하고 시내광야에서는 아말렉이 공격하고 에돔땅에서 에돔왕이, 모압땅에서는 발람이, 바산에서는 바산왕 옥이 공격했습니다. 그 많은 대적자, 방해꾼들 때문에 번번히 길이 막혔습니다. 이번에도 이스라엘 아라드를 방문했습니다. 옛날에 크고 웅장한 성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사진).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던 가나안 족속의 성입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38년을 광야를 배회해야만 했습니다. 21:4입니다.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길로 좇아 에돔땅을 둘러 행하려 하다가 길로 인해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여러분도 한 해동안 얼마나 마음이 상했습니까? 가려는 목적지가 빤히 보이는 데 갑자기 방해꾼이 나타나 길을 막지 않았습니까? 그 대적이 대학의 길을 막고, 사업의 길을 막고, 건강의 길을 막고, 영혼구원의 기회를 막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마음이 상하지 않았습니까? 광야는 그런 곳입니다.

 

또 하나가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에게 희망을 사라지게 하는 고통이 있었을 것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로 힘들고 하루 하루가 단조롭고 가까운 사람과 부딛치고 대적자들이 길을 막으면 영혼은 지치고 희망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생기는 것이 낙심입니다. 13:12절 말씀과 같습니다.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우리에게 가장 큰 위기는 소망이 사라지는 위기입니다. 소망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다 사라집니다. 어떻습니까? 한 해를 지나오면서 이런 고난을 겪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지나간 한 해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눈으로 바라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40년동안 광야에서 고난당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고난을 당했는 데 왜 당했느냐가 중요합니다. 2절입니다. 8:2,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이 사십년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절입니다. 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고난당한 것은 맞지만 고난 자체가 고난의 목적은 아닙니다. 고난의 이유가 있고 고난의 유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절대 내 입장, 내 관점, 내 생각에서 보면 이해가 되지도 않고 납득되지도 않습니다. 그것을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입니다. 2절을 다시 보시겠습니까?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5절 중간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6절입니다. “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7,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오늘 말씀에 가장 많이 나오는 키워드는 하나님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아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당한 고난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고난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고난의 이유과 목적을 이해하는 키입니다. 다른 눈으로 보면 설명이 안됩니다. 왜 먹고 사는 것이 그렇게 힘든지. 왜 단조로운 생활을 40년동안이나 해야 하는지. 왜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부딪치고 살아야 하는지. 왜 이유없이 밖에서 오는 시험과 환란을 당하고 살아야 하는지. 왜 그것때문네 좌절하고 낙심해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내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풀립니다. 2절 다시 보십시오. 8:2,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이 사십년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여기까지가 사실입니다.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이것이 하나님의 눈입니다. 또 나옵니다. 3, 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못먹고 못마시고 고생한 것은 극기훈련을 위해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너 고생 좀 해 봐라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말씀으로 살도록 훈련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가 그런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중요한 단어가 기억입니다. 2, 8:2,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이 사십년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신명기 15:15,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하셨음을 기억하라 그를 인하여 내가 오늘날 이같이 네게 명하노라”. 성경의 기억은 다만 뇌의 인식작용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눈으로 과거를 보는 것입니다. 과거를 기억하되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과거를 보지 않으면 두 가지 극단에 빠집니다. 실패로 인한 과거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 되고 성공으로 인한 과거는 떠나고 싶지 않은 환상이 됩니다. 그러나 과거는 악몽도 아니고 환상도 아닙니다. 실패도 성공도 하나님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실패도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좋은 일의 시작일 수 있고 성공도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안 좋은 일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안되는 일이 되는 일일 수 있고 되는 일이 안되는 일일 수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감상적 추억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만 감상적 추억으로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과거에 대한 뼈아픈 후회가 우리를 각성하게 하지만 뼈아픈 후회를 했다고 해서 반드시 나의 삶이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 대해 우리가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나의 과거에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 내가 경험한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이 성공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가? 내가 성공할 때 하나님도 성공했는가? 내가 힘들고 아플 때 하나님은 어디 계셨는가? 하나님은 내게 인생의 아픔과 고통을 주셨는가?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는 왜 내가?”라고 묻지 말고 하나님이 왜?”라고 물어야 합니다. 믿음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매사를 보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다는 말은 기도를 크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매사를 더 하나님의 눈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감, 낙천주의, 긍정적 사고는 믿음이 아닙니다. “나는 할 수 있다”, 자신감, “잘될 거야”. 낙천주의, “하면 된다”, 긍정적 사고는 자기로부터 나와 자기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성공과 실패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성공하시는 것입니다. 내 뜻, 내 행복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며칠전 <교회성장연구소>라는 기독교 잡지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목사님, 지난 한 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잠시 생각하다 제가 말했습니다. “언제나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도우셨습니다”. 영국의 c.s 루이스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평탄한 길을 주시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하시다”. 믿음은 매사를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은 우리에게 성공의 길로도 인도합니다. 일본에 마쓰시타 전기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일본의 대표적인 기업가입니다(사진). 그가 오늘날 그 유명한 쟙 쉐어링의 선구자로 꼽히는 데 1929년 대공항이 났을 때 직원 한 사람도 줄이지 않고 일을 나누고 월급을 나눠서 회사를 살렸습니다. 그는 가난해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밖에 못 다녔지만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이 되었습니다. 그가일본 경영의 예술이란 책을 썻습니다. 독실한 신앙의 사람이었던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세 가지로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세 가지 은혜를 주셨다. 첫째, 집안이 가난했기 때문에 나는 어려서부터 구두닦이나 신문팔이로 부지런히 일할 수 밖에 없어서 어린 나이에 많은 세상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둘째, 나는 타고날 때부터 몸이 약해서 운동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늙어서도 남보다 더 많이 일할 수 있었다. 셋째, 나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스승으로 여겨 끊임없이 배우려고 노력했다. 나의 불행이 곧 나의 성공을 만들었다”. 고난의 현실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성공이 보입니다.

 

믿음의 눈은 우리에게 성화의 삶을 가져옵니다. 어떤 목사님 집에 갔더니 책상앞에 이런 글이 붙어 있었습니다. “주님, 제게 웃음달라고 기도했으나 가끔 눈물주시니 감사합니다. 때로 고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나 가끔 외면당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과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주님, 존중받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나 가끔 오해받고 무시당하게 하셔셔 감사합니다. 고통속에서 제 자신을 추스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나 가끔 아프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병으로 신음하는 친구들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성공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나 가끔 실패하게 하서서 감사합니다. 실패속에서 하나님의 더 큰 성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과거를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이렇게 됩니다.

 

어떻습니까? 한 해동안 힘들었습니까?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한 해동안 많이 실수도 많이 하고 죄도 짓지 않았습니까? 괜찮은 존재라고 생각한 자신이 발겨벗겨져 하나님앞에 더 무력한 자로 서지 않았습니까? 한 해동안 원치 않은 질병으로 아팠습니까? 질그룻같은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고 더 강하신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았습니까?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받았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며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임을 절실하게 깨닫지 않았습니까? 한해동안 기도해도 응답이 없었습니까? 더 많이 엎드리고 더 많이 기도할 필요를 배우지 않았습니까? 자녀문제로 마음 고생 많이 했습니까? 자녀를 낳기만 했지 옳바로 키우는 것은 하나님이시하는 은혜를 받지 않았습니까? 아무 잘못도 없는 데 오해받고 미움받고 무시당했습니까? 내 속에 나도 모르는 죄를 깨닫고 더 많이 회개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과거를 깨닫는 하나님의 눈일 뿐 아니라 우리를 일으키는 힘입니다. 6절 볼까요? 8:6, “네 하나님 여호아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다시 일어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가 몇 번 넘어졌는지를 세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몇 번 일어났는지를 셉니다. 다윗은 수도 없이 넘어졌지만 넘어진 수보다 한 번 더 일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쓰셨습니다. 베드로도 성경에 수없이 넘어졌지만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은 넘어진 수보다 한 번 더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24: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24:16). 은혜는 깨닫고 하고 일어나게 합니다. 31:19입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가나안의 희망 때문에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광야같은 한 해를 살면서 우리가 결단할 마지막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패했어도,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할 이유는 우리 앞에 놓인 가나안의 희망때문입니다. 7절 이하입니다. 8:7-10,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옥토를 내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여기서 중요한 말은 아름다운 땅이라는 말입니다. 아름답다는 말이 또 나옵니다. 11: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 하지 아니하였으며”. 모세가 위대하게 된 것은 그 부모가 그 아이를 보는 눈때문이었습니다. 과연 모세 얼굴이 예뻐서 아름다웠을까요? 아마 그랬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더 큰 것은 부모의 믿음의 눈입니다.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부모는 모세를 아름다운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위험에도 불구하고 석달을 숨겼다고 말합니다. 사도행전입니다. 7:20, ”그때에 모세가 태어났는 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인간적으로 모세를 보면 갈대상대에 쌓인 핏덩이 아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으로 보니까 아름다웠습니다.

 

그 모세가 오늘 가나안 땅을 아름다운 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실제 아름다워서 아름답다고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풀 한 포기없는 광야가 국토의 2/3입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땅의 실제 모습때문이 아니라 믿음의 눈, 곧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시각은 과거뿐 아니라 미래를 보는 데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고 미래를 앞서 갈 수도 없습니다. 미래는 우리가 알 수 없고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 미래는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래란 우리가 기대하고 소망하는 가능성의 선택일 뿐이며 그나마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5세기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합니다. “과거와 미래는 우리 머리속에만 존재할 뿐 실제 존재하지는 않는다. 과거의 현재는 기억이고, 현재의 현재는 주목이며, 미래의 현재는 기대다.” 그래서 우리에게 유일하게 존재하는 현재를 중요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에 두 가지의 하나님의 눈이 필요합니다. 과거를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 좋은 기억입니다. 미래를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 좋은 기대입니다. 현재를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 좋은 기도입니다. 좋은 기억이 우리의 현재 모습을 형성한다면 좋은 기대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현재는 좋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성공적인 신앙생활의 도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공적인 신앙생활

과거 현재 미래

기억 기도 기대

하나님의 눈

 

모든 것을 꿰뚫는 눈이 하나님의 눈입니다. 하나님으로 과거를 보는 보는 것이 기억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미래를 보는 것이 기대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현재를 보는 것이 기도입니다. 3기입니다. 기억과 기도와 기대, 이 셋속에 있는 공통점은 하나님의 눈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미래에 대하여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까? 신문을 보면 기대할 수 없습니다. 경제지표가 어둡고 남북관계가 어렵고 취직도 어렵고 진학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되는 법이 하나 있습니다. 10, 8:10,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옥토를 내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다같이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신문에서는 안되지만 하나님 여호아께서 움직이면 됩니다. 세계경제로는 안되지만 우리 하나님이 역사하면 됩니다. 모든 좋은 미래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일어납니다. 추장의 아들 이야기를 아십니까? 남미의 어느 부족의 추장이 나이 많아 죽기 직전입니다. 그에게 아들 셋이 있는 데 누구에게 추장자리를 물려 줄까 생각하다가 아들들을 불렀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미션을 하나 줄테니 얼마 후에 돌아와서 보고해라. 저기 보이는 저 산에 올라가 각각 한 가지씩 본 것을 이야기해라”. 얼마후에 세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래 무엇을 보았느냐?” 큰 아들이 말했습니다. “저는 저 산에서 엄청 아름다운 꽃을 보았습니다”. 둘째가 말했습니다. “, 저는 저 산에서 아름다운 금강석을 보았습니다”. 셋째가 말했습니다. “, 저는 저 산 정산에 올라 산 다른 쪽을 바라 보았습니다. 거기는 들이 넓고 물이 많아 우리가 이사가면 아주 좋을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셋째 아들에게 추장을 물려 주었습니다. 오늘의 아름다운 꽃과 금강석보다 내일의 비전을 보고 돌아온 아들이 추장이 된 것입니다.

 

새 해를 앞두고 이 꿈을 가집시다. 7, 8:7,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하나님이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10,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옥토를 내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옥토를 주십니다. 내년에도 우리에게 고난과 실패와 고통이 있겠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16절입니다. 8: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다같이 마침내”. 마침내가 중요합니까?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주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가나안은 우리 것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 앞에는 지금 아름다운 땅이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8:1-10(송년주일) 2013.12.29()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

 

9:25-26 “나의 날이 체부보다 빠르니 달려가므로 복을 볼 수 없구나 그 지나가는 것이 빠른 배 같고 움킬 것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

 

모압평지(사진).

한 해동안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8: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을 마음에 생각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어떤 고통을 받았는가?

(1) 먹고 사는 고통

(2) 단조로움의 고통

(3) 인간관계의 고통

(4) 대적들로 인한 고통

 

아라드 성(사진).

21:4,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길로 좇아 에돔땅을 둘러 행하려 하다가 길로 인해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5) 희망이 사라지는 고통

 

13:12,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하나님의 은혜의 눈으로 바라 보아야 합니다.

8:2,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이 사십년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8:2,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이 사십년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8:2,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이 사십년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신명기 15:15,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하셨음을 기억하라 그를 인하여 내가 오늘날 이같이 네게 명하노라”.

 

기억은 다만 뇌의 인식작용이 아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과거를 보는 것이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사진).

 

기도

주님, 제게 웃음달라고 기도했으나 가끔 눈물주시니 감사합니다. 때로 고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나 가끔 외면당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과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주님, 존중받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나 가끔 오해받고 무시당하게 하셔셔 감사합니다. 고통속에서 제 자신을 추스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나 가끔 아프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병으로 신음하는 친구들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성공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나 가끔 실패하게 하서서 감사합니다. 실패속에서 하나님의 더 큰 성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8:6, “네 하나님 여호아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24: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31:19입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가나안의 희망 때문에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8:7-10,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옥토를 내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11: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 하지 아니하였으며”.

7:20, ”그때에 모세가 태어났는 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어거스틴, “과거와 미래는 우리 머리속에만 존재할 뿐 실제 존재하지는 않는다. 과거의 현재는 기억이고, 현재의 현재는 주목이며, 미래의 현재는 기대다.”

성공적인 신앙생활

 

과거 현재 미래

기억 기도 기대

하나님의 눈

 

8:10,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옥토를 내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8:7,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8:10,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옥토를 내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8: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