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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on(2) 느2:11-20 나에게는 해야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2014.8.17(일)

Re-vison(2) 2:11-20 2014.8.17()

 

나에게는 해야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8월 셋째 주입니다. 옆에 있는 분에게 이렇게 물어 보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세상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상당히 심각한 질문입니다. 한 마디로 답변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이번 미국 보스톤에서 하바드 대학을 갔습니다. “하바드대학이 어떤 대학인지 아십니까? “하루 종일 바쁘게 드나드는 대학입니다. 거기서 바쁘게 드나드는 한 한국인 남자를 만났는 데 나이가 40은 넘어 보여서 처음에는 교수인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야기하다 보니까 학생입니다. 나이가 40대 초반, 가족까지 있었습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늦게 공부하러 나왔느냐고 했더니 자기는 서울에서 어느 유명한 회사를 다녔답니다. 연봉도 좋고 전망도 좋아 열심히 일했는 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불안해 지더랍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공부랍니다. 자기는 정말 공부가 하고 싶었는데 일찍 결혼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몇 년전에 결단했답니다. “내가 당장 굶어도 하고 싶은 것은 해야 겠다”. 그리고 사표쓰고 미국으로 왔답니다.

그를 보면서 오래 전의 제가 생각났습니다. 저도 오래전에 네 식구를 데리고 공부하러 떠났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40에 가까웠는 데 정말 그때 하루 하루가 힘들었습니다. 제 일생 공부하는 것이 꿈이었는 데 나이는 먹어가고 꿈은 이루어지지 않고 정말 사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네 식구가 이스라엘 벤구리온 공항에 딱 떨어졌는 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당장 가진 것이 없고 내일 어떻게 될지 몰랐지만 너무 좋았습니다. 꿈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입니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할 때입니다. 힘들긴 합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힘든 것이 하고 싶은 일을 못하면서 편안한 것보다 낫습니다. 어느 권사님이 손자를 봅니다. 아들 내외가 일하기 때문에 손자를 보는 데 매우 힘듭니다. 가끔 안보고 싶지만 아들 생각해서 봅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외손주를 보았습니다. 이제는 외손주까지 봅니다. 그래서 권사님, 힘들지 않아요?” 했더니 어쩌겠어요? 내가 할 일인데. 내가 안하면 저것들이 어떻게 살겠어요?” 합니다. 할머니가 손자 둘을 보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내가 할 일을 하기 때문에”, 그리고 손자들이 예뻐서 하는 일이니 괜찮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여러분이 하고 싶을 하고 삽니까? 하루 세끼 밥먹고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합니다. 해야 할 일을 해야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고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 일을 발견했습니까? 오늘은 그 일을 어떻게 발견하며 어떻게 이루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일의 좋은 모델을 안내하겠습니다. 이 사람처럼만 하면 해야 할 일을 하고 그것을 반드시 이루는 법을 배웁니다. 그 사람이 느헤미아입니다.

 

느헤미아는 대략 주전 444년 경에 페르시야에 살던 유대인입니다.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위로라는 뜻입니다. 과연 느헤미아가 살던 시대는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한 시대였을까요? 그렇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바벨론에게 나라를 빼앗긴 후, 또 다시 페르시야에게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그때 페르시야의 수도가 수산궁이었는 데 지금 이란에 있습니다. 이 궁전은 주전 4세기, 알렉산더대왕에게 망하기 전 약 200년 동안 페르시아의 수도였습니다. 그 왕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지금 남아 있는 기둥 하나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그림2). 고고학자에 의하면 수산궁의 모든 재료는 외국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레바논의 백향목, 사르디스의 금, 이집트의 은, 에티오피의 상아, 엘람의 돌, 이런 세계 최고의 재료로 궁을 지었습니다. 이것이 현재 복원된 수산궁의 모습입니다(그림3). 그때 느헤미아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이 궁전에서 왕을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왕을 먹고 마시고 움직이는 모든 일을 담당하는 비서실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니 느헤미아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세계 최강의 왕을 매일 모시는 신하에게 무엇이 부족했겠습니까?

 

그러던 어느날 그가 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자기 동생 하나니가 자기 조국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형님에게 왔습니다. 그런데 벌써 안색이 안 좋습니다. 그래서 동생, 왜 그래?” 했는 데 동생이 말합니다. “형님,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번에 예루살렘을 다녀왔잖아요? 그런데 예루살렘성은 무너지고 성벽마저 허물어 졌더라고요. 그 옛날 다윗의 영광은 어디로 갔는지. 참혹해서 볼 수가 없었어요”. 그 말을 들은 느헤미아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 조국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페르시아에 짓밟힌 것은 알았지만 차마 그 정도로 폐허가 된 줄은 몰랐습니다. 동생이 떠난 후 느헤미아는 망연자실, 그 자리에서 넋을 잃고 서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자기 조상의 땅, 다윗과 솔로몬의 성읍이요, 유대인의 혼이 싯든 도시가 아닙니까? 그 도시가 그렇게 참혹하게 파괴되다니. 느헤미아는 그것도 모르고 이국땅에서 호의호식하며 하루 하루 먹고 사는 재미로 살았으니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1:4에서 느헤미아의 그때 심정이 나타납니다.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여러분도 느헤미아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때부터 느헤미아의 마음은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좋은 것 봐도 재미가 없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맛이 없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했습니다. 어느날 왕앞에 음식을 들고 갔는 데 왕이 묻습니다. 2:2,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그렇게 얼굴에 수심이 가득할만큼 인생을 고민해 본 적이 있습니까? “내가 사는 것이 이것이 내 인생의 전부일까? 내가 지금 겨우 밥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닌가? 내 젊음의 꿈과 포부가 고작 이것이었나?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지금 뭔가는 해야 하겠는 데 그것이 뭔지도 모르겠고 마음은 급하고 그래서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본 경험이 있습니까? 사명은 이렇게 해서 탄생되는 것입니다. 평생의 사명이 그냥 쉽게 주어진다면 누가 성공하지 못하겠습니까? 비전은 자신의 삶에 대한 지독한 회의로부터 시작됩니다. ”내가 사는 지금의 삶이 최선일까? 이것이 내가 본래 하려고 했던 것일까?“ 답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비전을 향해 가는 사람은 이 과정을 밟습니다. 이 고독하고 아프고 답답하고 속상하고 막막한 터널을 지나가야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느헤미아에게 전광석화와 같은 하나님의 비전이 임했습니다. 그것은 에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비전이었습니다. 그 비전은 이렇게 임했습니다. 2:11-12,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문지 사흘만에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이 말씀을 주목하십시오. 이 말씀은 비전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말씀입니다.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이 말씀은 크게 세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내 하나님께서“. 비전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비전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다음 에루살렘을 위하여“. 비전의 목적이 다릅니다. 비전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비전은 나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나를 위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에루살렘을 위하여“. 중요한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지“. 이 말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라는 말입니다. 무엇이나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것이 비전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것이 비전입니다. 옛날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2:12,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게 하신 일“.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해서 나로 하여금 행하게 하신 일, 그 일이 비전입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크게 두 가지 일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소원이라고 합니다. 해야 할 일을 비전이라고 합니다. 가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중첩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은 주로 내 생각에서 나오고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내 마음의 감동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감동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나를 위하여 하는 일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나를 감동시켜서 하는 일입니다. 하고 싶은 일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이 원해서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 이 차이를 모세를 통해 보겠습니까?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 만나기 전에는 그는 그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았습니다. 왕궁에서 호의호식하며 살았고 심지어 자기 마음에 안든다고 사람을 둘씩이나 죽이며 살았습니다. 그가 하고 싶은 일은 그를 기분좋게 했으나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의 최종적인 결과는 비참한 살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호렙산에서 하나님 만났습니다. 하나님이 신발 벗으라고 하더니 말씀합니다.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데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라”. 청천 벽력과 같은 명령이었습니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자기 한 몸 가누기도 힘든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는 것은 상상만 해도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만 합니까?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고 삽니까? 미국의 밥 버포드라는 사람이 하프타임이라는 책을 썻습니다. 이 사람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그는 젊을 때 방송사 사장으로 잘 나갔습니다. 그때는 그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아들이 물놀이 하다 죽습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지금까지 내 삶은 무엇이었는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편하게 살았지만 내 아들 하나 모슈 살리지 않았는가?” 그때부터 그가 삶을 바꾸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던 사람에서 뭔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삶을 이렇게 두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 성공을 목표함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 의미있는 삶을 추구함

 

여러분은 어떻게 삽니까? 과거에는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았지 않습니까? 이제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야 할 일은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명령으로 우리에게 주신 일입니다. 하지 않으면 불순종하는 것 같아 마음이 괴롭습니다. 우리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은 이 부담감입니다. 뭔가 해야 한다는 부담감, 안하면 안될 것 같은 부담감, 그 부담감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갑니다. 소설가 서영은씨가 스페인 산티에고를 다녀와서 책을 썻습니다. “노란 화살표방향으로 걸었다”(그림4). 김동리의 늦은 아내이기도 한 그는 나이 60이 훨씬 넘어 멀고 힘든 길을 출발했습니다. 프랑스의 어느 도시에서 출발하여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700킬로, 거기 가면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습니다. 작가는 책 서문에서 그곳에 간 이유를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오래전 산티아고가는 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내 마음은 불탔다. 언젠가는 그 길을 걸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강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 길은 내가 더 늙기 전에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이었다”. 그래서 그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 먼 길을 출발했습니다. 40일만에 마치고 돌아와 책을 썻습니다. 그가 먼 길을 떠났던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반드시 그 길을 걷고 싶었다.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무거운 부담감”. 그것이 60이 넘은 그로 하여금 700킬로를 혼자 걷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 길도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이 있습니까? 내가 안하면 안될 것 같은 일이 있습니까? 그 일을 미루면 내가 지금 사는 이유도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그런 일이 있습니까? 이 해야만 하는 일을 우리는 사명이라고 부릅니다. 사명은 소원을 넘어 섭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이 발전하면 인생길이 됩니다. 여러분은 영화 명량을 보셨나요? 이순신이 배12척으로 330척의 왜군과 싸웁니다. 이순신은 왜 그렇게 무모한 싸움을 싸웠던 것일까요? 이순신도 인간적으로 그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패잔병 군인을 데리고 왜군과 싸워야 하는 일은 그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그에게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싸웠습니다. 그래서 이겼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내가 안하면 안되는 일입니다. 그 일은 우리에게 힘들지만 그 일을 실행하다 보면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 그의 계획을 이루어 갑니다. 오래전에 제 친구목사 한 분이 여름에 두어 달 교회를 비웠습니다. 그래서 여행갔나 했는 데 알고보니 중국선교를 갔습니다. 그런데 얼마후에 들려온 소문은 이 친구가 중국에 가서 다시 안돌아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인가 알아보았더니 그가 선교차 중국 단동에 갔는 데 거기서 은혜를 많이 받았답니다. 그가 중국쪽에서 북한 쪽을 바라보는 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탈북자 몇 명을 만났는 데 또 눈물이 쏟아집니다. 그때 그가 평생에 그가 찾던 사명을 발견했습니다. “북한선교입니다. 그리고 결단했습니다. “.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살았는가? 내가 할 일이 여기 있었는 데 왜 일찍 발견을 못했을까? 나는 앞으로 북한동포를 위해 살겠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지도 않고 북한선교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교회에게는 안되었지만 그가 평생에 걸쳐 해야 할 사명을 발견했다면 그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을 비전이라고 부르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 하는 사람을 비전가라고 부릅니다. 우리를 이끌어 가는 힘은 비전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도 반드시 해야 할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행복하고 목적 지향적으로 산다면 여러분에게도 해야만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행복하지 않고 방황하고 산다면 해야 할 일을 아직 찾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명한 일, 내 일생에 반드시 해야만 할 일, 그 일로 인해 여러분의 삶이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시작하면 우리는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비전의 또 하나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해야만 할 일을 우리가 시작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일을 잘 할 수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 할까요? “해야 할 일을 순종하면 할 수 있게 하신다”. 느헤미아가 그랬습니다. 느헤미아는 오랫동안 고민하고 기도한 끝에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211-12절의 말씀으로 다시 보면 그것은 첫째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둘째 예루살렘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셋째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일을 시작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비전은 받았으나 그것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실천할 때 따라는 문제는 그것을 시작할 때 많은 문제와 위험이 따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위험이 따릅니까? 우선 당장 왕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의 이란에서 예루살렘까지 그 먼 광야와 사막, 산과 강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해서 예루살렘에 도착했다고 해도 거기 있는 수많은 반대자, 방해자들과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느헤미아는 이 모든 과정을 믿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루었습니다. 비전은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작하면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20절이 참 중요합니다. 2:20,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20, “하늘의 하나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우리 인생의 첫 번째 과제, 우리가 평생 해야 할 일을 발견하는 것, 두 번째 과제, 그것을 믿음으로 시작하는 것, 다같이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시작할 때 할 수 있습니다. 실천할 때 할 수 있습니다. 18절을 또 보시겠습니까? 2:18,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정말 우리가 믿음으로 읽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니”. 아멘.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우리를 돕습니다. 비전이 하나님께로 왔다면 그것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임을 믿어야 합니다. 주신 이도 하나님이요 이루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이 마지막 구절이 너무 좋습니다.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두 가지 선한 것이 나옵니다. “선한 손”, “선한 일”.

 

선한 손 하나님의 비전의 손입니다. 모든 비전은 하나님의 손에서 나옵니다.

선한 일 모든 비전에 우리의 선한 일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 우리의 선한 일, 선한 손이 선한 일을 이루고 선한 일은 선한 손에서 나옵니다.

 

성경의 사람들의 특징을 아십니까? 여호수아, 여호수아는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을 정복하라는 비전을 받았습니다. 가나안 정복은 그에게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그것을 이루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1:3, “네 밟바닥으로 밟은 땅을 네게 주리라”. 발바닥으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의 비전은 한 걸음의 발바닥의 순종이 필요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어느날 발바닥으로 그 땅을 밟자 가나안 땅은 그의 것이 되었습니다. 해야 할 일을 시작하자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농부 기드온에게 하나님이 나타났습니다. 기드온아, 미디안을 쳐부수라”. 기드온은 겁도 많고 그를 따르는 자도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했습니다. “큰 용사여,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도다”. 기드온이 그 말을 듣고 힘을 얻어 나팔을 불자 수많은 이스라엘 지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시작하자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전을 받은 사람이 기억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기적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기회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적을 바라는 기도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회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에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기적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기회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몽상과 비전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몽상은 꿈이 저절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가 많이 쓰는 말은 기적입니다. 그러나 비전은 자신이 그 일을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그가 많이 쓰는 단어는 기회입니다. 기회가 기적을 가져옵니다. 내가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기적이 이루어집니다.

 

자녀를 가르칩니까? 그가 기적을 만나는 사람이 되지 말고 기회를 만나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사업을 하십니까? 내 사업에 기적이 임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내 사업을 통해 기적이 나타나도록 내게 기회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시작해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켄터키 치킨을 아십니까? 잘 모르신다면 이 할아버지를 아십니까?(그림5). 미국 어디 가나 이 치킨집이 있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오래 사업을 하다 망했습니다. 나이는 많고 할 일은 없어 그의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좋은 음식을 통해 세상을 유익하게 싶은 꿈이 있었는 데 이루지 못하고 한 생이 지나갔습니다. 어느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십시오”. 그리고 그가 먹어봤고 만들어 보았던 가장 맛있는 치킨을 기억나는대로 다 써 보았습니다. 그리고 식당을 찾아 다니며 자기가 맛있는 치킨을 만들 줄 안다고 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결국 그 일로 그는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창립했고 세계 수 천개의 프랜차이즈를 만들어 냈습니다. 비전은 기회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시작해야 하고 지속해야 하고 또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이런 비전을 가진 분이 있었습니다. 고 이중표 목사님, 1977, 청계산에서 기도하던 중 하나님이 그에게 이런 비전을 주셨습니다. “한국민족을 신자화해라”. “한국민족이요?” 그때부터 그가 한국에 미쳤습니다. 지나가다 한국이란 말만 봐도 가슴이 뛰었습니다. 한국이란 이름만 들어가면 다 좋았습니다. 한국, 한국인, 한국일보, 한국사람, 한국신학대학, 그러다가 드디어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한신교회”, 한신교회를 한국민족을 신자화하자에서 나온 말입니다. 한국민족을 미쳐 한국민족을 사랑하는 교회가 되자. 이것이 그가 받은 비전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30여년, 이제 그 비전은 우리의 비전이 되었습니다. 그 비전은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만 할 일입니다. 그 비전은 우리가 시작할 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지속하고 또 시작하고, 헌신하고, 또 헌신할 때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막연히 기적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기적을 만들기 위해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우리 앞에 펼쳐졌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오래 살아서 늙는 것이 아니라 꿈을 잃어버릴 때 늙는다” (맥아더), “사람이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간다”(니이체).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드리고 마치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고국으로부터 수 천킬로 떨어진 곳에 매어 있던 느헤미아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던 기생 라합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삭개오도 막달라 마리아도, 베다니의 마리아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미국에서 한 목회자 부부를 방문했습니다. 크리스와 프리슬라 부부입니다. 이들은 침례교 목사로 미시간대학생을 대상으로도 많은 목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프리슬라의 몸에 이상이 왔습니다. 몸이 굳어지는 루게릭 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 병이 급격히 진행되어 지금은 아무 것도 못합니다. 작년에 저희 딸이 미국갈 때까지만 해도 공항에 마중나오고 그 집에도 있게 했었는 데 지금은 아무 것도 못합니다. 남편은 목회를 접고 아내만 돌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프리슬라는 자기는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몸을 움직이지 못하지만 나는 너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하나님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우리가 돌본 많은 학생들이 아들같고 딸같아서 행복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 때문에 너무 감사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집을 나서면서 제가 또 뵙기를 바랍니다했더니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혹시 다음에 이 집에 와서 제가 없거든 제가 천국에 있는 것으로 아세요. 저는 그때 하나님품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때 저는 알았습니다. 해야 할 일은 우리가 건강할 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몸이 망가져 꼼짝 달싹 못하고 있을 때에도 우리가 할 일은 계속된다는 것을. 우리에게는 몸이 아파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5주전, 저는 돌아가신 정양웅 안수집사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는 위장암 말기로 죽음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제가 가서 손을 잡았더니 그가 천천히 입을 열고 말합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그동안 제가 죽음을 못 받아들여 교회에도 연락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괜찮습니다.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것, 참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도 감사하고 사람들에게도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의 인생은 모두 은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것이 정집사님이 남긴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비록 죽어가면서도 감사합니다. 은혜였습니다했다면 그는 마지막까지 하나님앞에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몸이 아파도 죽음앞에 서도 우리는 할 일이 있습니다. 그 해야 할 일, 하나님이 주신 일, 그 비전이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Re-vison(2) 2:11-20 2014.8.17()

 

나에게는 해야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수산궁(그림1).

복원된 수산궁(그림2).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2:2,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2:11-12,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문지 사흘만에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비전의 세 요소

- ”내 하나님께서“.

- ”예루살렘을 위하여“.

- ”무엇을 할 것인지“.

 

2:12,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게 하신 일“.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소원이라고 하고 해야 할 일을 비전이라고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 성공을 목표함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 의미있는 삶을 추구함

 

노란 화살표방향으로 걸었다”(그림3).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시작하면 우리는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을 순종하면 할 수 있게 하신다”.

 

2:20,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2:18,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선한 손 하나님의 비전의 손입니다.

선한 일 모든 비전에 우리의 선한 일이 필요합니다.

 

1:3, “네 밟바닥으로 밟은 땅을 네게 주리라”.

 

기적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기회를 위해 기도하라

 

켄터키 치킨 할아버지(그림4).

모든 사람에게는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정양웅 안수집사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