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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ion(8) (마9:35-10:4) 행복한 하나님의 나라의 씨앗을 뿌립시다 2014.9.28(일)

Re-vision(8) (9:35-10:4) 2014.9.28()

행복한 하나님의 나라의 씨앗을 뿌립시다

여러분은 믿음의 고향이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누구에게나 태어난 육신의 고향이 있듯이 누구에게나 믿음의 고향이 있습니다. 믿음의 고향중의 하나가 고향교회입니다. 여러분은 이 모습을 기억합니까?(사진1) 대부분 우리 고향에 있었던 교회종입니다. 제가 자라난 시골 교회도 종이 있어서 예배때마다 울렸습니다. 예배 30분전에 초종, 시작전에 재종이 울렸습니다. 교회종을 치는 종지기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교회에서 가장 믿음이 좋은 사람이 합니다. 조용히 눈을 감으면 그때 들었던 교회 종소리가 제 귀에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교회는 신앙생활해온 우리에게 오랜 마음의 고향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는 우리 믿음의 추억의 샘입니다. 주일학교, 성탄절, 새벽송, 부흥회, 교회 소풍, 교회 선생님, 노래, 여름 성경학교, 풍금, 분반공부, 어느 것 하나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요즘 너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교인수가 급격히 줄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성장의 피크는 1970에서 80년대 였습니다. 그때 교인수는 전 국민의 25% 이상이었습니다. 3-4명이 모이면 반드시 그 중의 하나는 크리스쳔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95년부터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하여 지금은 16%정도로 떨어졌습니다. 문제는 학자들이 한국교회는 앞으로 더 침체할 것이라고 전망한다는 것입니다. 그 가장 큰 외적 원인은 인구의 급격한 감소입니다. 출산율이 가정당 한 명꼴도 안됩니다. 농촌같은 경우는 거의 대부분이 도시로 나갔습니다. 극심한 경제란에 반종교적 세속화 때문에 교회마다 신앙의 불이 잘 타오르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에 전북 변산에서 열린 교단 총회에 참석했습니다. 거기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작년 한 해동안 저희 교단만 신자가 7천명 감소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해동안 천명 모이는 교회 7개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교인 천명이 적습니까? 천명이 모이려면 얼마나 오랫동안 노력하고 기도해야 합니까? 그런데 그 천명 교인 7개가 없었졌다니 얼마나 속상하고 마음이 아픈지. 우리 교단이 이렇다면 다른 교단은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왜 그럴까? 왜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교회가 갈수록 약해질까?

거기에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한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제가 가장 중요한 원인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뿌리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성경 최고의 법칙은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법칙이기 전에 자연의 법칙입니다. 콩심은 데 콩나고 팟 심은 데 팟납니다. 뭔가 심기만 하면 납니다. 그러나 안 심으면 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능력이 많아도 안 심었는 데 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설령 그런 기적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성경적 기적은 아닙니다. 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뿌려야 거둡니다. 재미있는 것은 전도서 11:1입니다.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심지어 식물을 물에 던져도 그 식물은 언젠가 다시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제를 강조하는 말씀이지만 이것은 또한 자연적 법칙을 강조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70년대 한국교회 부흥은 그 이전 시대가 심었기 때문입니다. 해방 이후 혼란과 6.25의 고난속에서도 우리의 선배들은 순교적인 각오로 복음의 씨를 뿌렸습니다. 교회마다 어린이들이 얼마나 많았으며 교사들이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했습니까? 서울 삼각산에 올라가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무 뿌리 뽑으며 기도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의도에 모여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맞고 기도했습니까? 70년대, 80년대 우리가 풍성한 열매를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선배들이 목숨걸고 기도하며 복음의 씨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렵습니다. 왜 어려운지 아십니까? 지금부터 30년전, 우리가 막 잘 살기 시작한 80년대, 물질문명에 취하여 흥청만청, 세상으로 나가 먹고 마시며 우리가 뿌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뿌려도 마귀가 씨를 먹어 제대로 날까 말까 하는 데 아예 씨를 뿌리지 않았는 데 무엇이 나기를 기대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습니까? 지금이라도 우리가 뿌리면 20, 30년 후에 한국교회는 다시 거둘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미래는 절대 어둡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우리는 반드시 잘되게 되어 있습니다. 16:18정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까?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문제는 우리에게 뿌리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 전략적으로 잘 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교회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여기까지 키운 어머니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복음의 씨를 뿌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생명의 씨를 열심히 뿌려 우리 시대에 못 거두더라도 우리 다음 세대가 거두게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 교회가 전략적으로 세 가지로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한다고 믿습니다.

 

농촌교회에 씨를 뿌려야 합니다.

우리가 뿌려야 첫 번째 복음의 씨는 농촌교회입니다. 농촌교회는 우리 신앙의 못자리입니다. 70% 이상의 교인이 농촌교회 출신입니다. 우리 중 대부분이 농촌교회에서 태어나 사랑으로 자랐는 데 우리를 키워준 농촌교회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저의 고향교회도 이번 추석에 가보니까 대부분이 노인들입니다. 4-50명중 30대 미만은 수를 셀 정도입니다. 대부분이 70, 80대입니다. 옛날에 우리를 키워준 농촌교회가 황폐화되고 있습니다.

 

요즘의 농촌교회를 보면 옛날 예수님이 빈들에서 보셨던 배고픈 군중들이 생각납니다. 36절 보시겠습니까? 9: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왜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을 보고 민망히 여기셨습니까? 36절 후반입니다. 9:36, “이는 저희가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주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목자없이 혼자 살기 때문입니다. 조금 먹고 살기는 나아졌지만 하나님없이 사는 고향의 노인들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양은 철저하게 목자를 의지하고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100:3, “여호아가 우리 하나님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우리는 그의 목자요 그는 우리의 목자가 아닙니까? 34:15-16절입니다. “나 주 여호아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어 있게 할지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긴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리라”. 목자이신 하나님의 안타까운 탄식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에 있는 예수영성대학에 많은 목회자들이 옵니다. 그들중에 많은 분들은 아주 멀리서 옵니다. 부산에서 주일날 기차를 타서 서울역에 내려서 우리 교회 사랑방에서 자고 월요일 수업에 참여하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포항에서 오시는 분은 월요일 아침, 새벽기도 끝나자 마자 고속버스를 타고 강남터미널에 도착해서 양재에서 지하철 갈아타고 판교역에 내립니다. 모두 7시간 걸립니다. 여수에서 기차로 오신 목사님이 있고, 제주에서 비행기로 와서 딸집에서 자고 월요일 오시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어렵습니다. 교인 30, 50, 자녀들 학비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목회를 잘해보겠다고 그렇게 먼 길을 오시는 것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이들을 매주 만나면서 농촌교회 현실을 너무 잘 알게 되었습니다. 매주 월요일 마다 수업끝나고 제가 목사님들과 식사하면서 꼭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자녀를 어떻게 키워요?” 그때마다 제가 목이 멥니다. 3, 3, 초등학교, 어린 자녀들을 힘들게 키우는 목회자들앞에 저는 감히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그나마 공부잘하고 대학진학하고 취직한 자녀가 있다면 저는 제 자녀인 것처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들을 섬기고 돌보아야 할텐데하는 강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우리를 자라게 하고 여기까지 있게 한 우리의 고향교회들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수원에 있는 한 교회에서는 매년 설과 추석때 고향교회 출석하기운동을 펼친다고 합니다. 고향교회에 내려 가서 자리도 채워주고 감사헌금도 하고 나이 많은 성도들 위로도 하고 힘든 목회자들에게 선물도 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자원자만 하다가 이제는 거의 대부분의 교인들이 참여한다고 합니다. 일부러 교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라도 고향에 내려간다고 합니다. 본 교회 예배수가 줄긴 하지만 농촌교회를 돕는 것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하고 할 수 있으면 우리 교회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선교회별로 농촌교회와 자매결연을 맺어 가고 오기도 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목회자 자녀 장학금을 마련하여 돕기도 합니다. 어떤 교회에는 농촌교회 자녀를 위한 기숙사를 만들어 제공하기도 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성탄절이나 추수감사절 감사헌금을 모두 모아 농촌교회 장학금으로 보내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사재를 털어 고향교회를 다시 짓기도 했습니다. 최고의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로 농촌교회를 살릴 수 있을까요? 지난 여름, 미국에서 돌아온 후, 한 교회 수양관에 갔습니다. 거기서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 교회는 매년 여름에 한 군을 선택하여 그 군에 속한 모든 지역에 전 교인이 함께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 군에 모두 49개 교회가 있었는 데 그 교회와 연합하여 그 지역에 필요한 여러 가지 봉사활동, 할머니, 할아버지 이미용, 의료봉사, 경노잔치, 여름성경학교, 다양한 전도활동, 문화할동등을 실시하고 수요일에는 전 교회들이 동네 사람들을 초청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사진2). 제가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매년 여름이면 어린이, 중고등부, 청년부, 시원한 물가에 가서 쉬면서 수양회할 때 그 교회는 무너져가는 농촌교회와 고통을 함께 하면서 그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소비적인 수양회, 돈드는 수양회 하자고 말하지 말고 가난한 이 민족교회를 섬기자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의 휴가가 우리 몸 쉬자고 너무 비싸고 즐거운 곳으로만 가지 않나 반성해야 합니다. 전교인이 우리의 농촌교회에 다시 생명의 씨를 심는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야 먼 훗날 우리를 낳고 기른 교회들이 또 다른 자녀들을 낳고 기를 수 있습니다.

 

개척교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우리가 씨를 뿌려야 하는 또 하나는 개척교회입니다. 이번 교단 총회에서 우리 교회가 받은 상이 있습니다. 교회개척상입니다. 세종장로교회를 돕고 광교한신교회를 세웠다고 받은 상이었습니다. 당연히 한 일인데 왜 받느냐고 했더니 많은 목회자들에게 도전을 주기 위해서 받으라고 해서 받았습니다. 5년전, 총회앞에 “2015년까지 교회 개척하겠습니다하고 약속한 150개 교회중 약속을 지킨 8개 교회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교회 개척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선 돈이 들어가고 엄청난 준비와 기도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누구를 파송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지난번 광교 한신교회도 여러분이 힘들게 헌금해주시고 기도해주셔서 이루어졌습니다. 가끔 이렇게 힘들게 세운 교회도 어떤 어려움 때문에 순식간에 무너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가 너무 많다”. “개척교회가 너무 난립했다.” 고 해서 교회 세우지 말자고 합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이 목자없는 양같이 유리하는 백성들을 바라보고 슬퍼하면서 세운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12제자입니다. 12제자는 말하자면 목자없는 양들을 돌보는 작은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 양들을 어디에서 돌봅니까? 집입니까? 공회당입니까? 거리입니까? 아닙니다. 교회입니다. 읽어버린 양들을 돌보기 위해 세운 사람들이 12제자라면, 잃어버린 양들을 돌보기 위해 세운 집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마16장에서 주님이 결국 세운 것이 교회입니다. 16:18,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교회는 베드로의 믿음위에 예수님이 세운 하나님의 집이었습니다. 사도없이 교회없지만 또한 교회없이는 사도도 없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습니다. 일생을 교회와 함께 해오면서 교회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동시에 교회 때문에 많은 시험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젊은 날 한때 교회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제가 교회에 대하여 가졌던 시험은 주로 교회의 위선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 이 문제가 풀렸습니다. 그것은 내가 교회라는 깨달음을 가진 후였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교회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곧 교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그렇게 비판하고 못마땅해 하던 교회는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 내가 위선자가 아니고 목회자나 장로들이 위선자들인 줄 알았는 데 그들속에 내가 함께 있었고 내가 곧 그들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더 이상 교회를 비판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현실 교회가 잘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교회를 비판하기 보다 제 가슴을 쳤습니다. 몇 년전에 가까이 있던 분당의 어느 교회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제가 그 교회 목사님께 전화했습니다. “목사님, 힘내세요. 기도하겠습니다”. 그 분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잘못이 곧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나 말고 비판받을 사람이 교회에 더 없습니다. 여러분도 교회가 비판받을 때 이렇게 말하십시오. “여러분, 나를 비판하십시오. 내가 바로 교회입니다”.

 

또 하나는 교회가 어머니라는 깨달음을 받은 후였습니다. 어머니는 우리를 낳고 길렀지만 결코 완전하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완전한 것이지 어머니의 인격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한 것이지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이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그때부터 제가 교회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교회를 세워야 합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2천년 역사동안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돌볼 다른 기관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C.C.CYMCA를 세운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웠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세운 유일한 기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유일한 통로요 교회는 구원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가 많기 때문에 교회 세우지 말자“. 그러나 교회가 많기 때문에 교회 세우지 말자는 것은 세상에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자식을 낳지 말자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가 문제가 많기 때문에 교회 세우지 말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세상 남자들이 문제가 많기 때문에 딸시집 보내지 말자는 부모와 같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여기 있는 것은 여러분이 다닌 그 교회를 누군가 세웠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기 있는 것은 저희 증조할머니가 처음 예수믿고 우리 할아버지가 고향에 교회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금 여기 있는 것은 1998, 고 이중표 목사님이 왜 이런 허허벌판같은 황무지에 교회 세우느냐는 핀잔을 들어가며 교회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교회를 세웠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 있다면 우리가 세운 교회 때문에 먼 훗날 누군가가 있을 것입니다. 사과나무는 사과나무를 낳고 교회는 교회를 낳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가 교회를 세우는 그 일에 동참하지 않겠습니까? 혹시 여러분 생전에 여러분의 필생의 사업으로 교회 하나 세워보면 어떻겠습니까?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는 한 그 교회를 세운 사람을 영원히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이 다 끝나기 전에 여러분의 이름으로 영광스러운 교회 하나 세워보면 어떻겠습니까? 세상에서 조금 절약하고 아껴서 여러분이 하늘 나라 가기 전에 모아서 교회 하나 세워보면 어떻습니까?

 

사도행전 교회의 특징을 아십니까? 8:1입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여기서 흩어졌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8장에만 1, 4, 11:19절에도 나옵니다. “흩어졌다는 이 말은 핍박 때문에 사람들이 사방으로 퍼진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의 뜻이 중요합니다. 헬라어로 디아스페이로”, 이 말은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시대, 성도들이 핍박을 받아 흩어졌습니다. 사람들은 흩어진 것은 무서워서 피한 것이 아니라 복음의 씨를 뿌리려고 흩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안디옥교회였습니다. 안디옥교회가 또 흩어졌습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소아시아 7교회였습니다. 소아시아 교회가 또 흩어졌습니다. 그 교회가 빌립보교회, 고린도교회, 로마교회였고, 그 교회가 유럽, 영국, 미국으로 갔다가 1885년 새문안, 정동교회가 되고, 1977, 서울한신교회, 1998년 분당한신교회, 그 교회가 또 흩어져 2013년 세종장로교회(사진3), 2014, 광교한신교회(사진4)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부지런히 흩어져야 하고생명의 씨를 이 땅에 뿌려야 합니다.

해외에 학교선교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뿌려야 할 씨가 있습니다. 그 씨는 다음 세대를 위하여 학교를 세우는 것입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잠재력을 가진 선교의 불루 오션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어린이입니다. 전 세계에 4살에서 15세까지 어린이가 전 인구의 1/3, 185천명이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가난, 질병, 공산주의, 이슬람등에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두말할 것 없이 인생의 틀은 아주 어렸을 때 형성됩니다. 6세 이전에 인격의 85%가 형성됩니다. 예수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4,200명을 정밀 조사해 보니, 주님을 영접한 나이가 5-13세는 32%였습니다. 14세 이후부터 노인까지 예수 믿는 비율은 10%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5-13세는 32%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이들이 곧 2-30년 후 세계의 주역이 됩니다. 지금 교회는 이들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에 따라 역사의 운명이 달라진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전 역량을 동원하여 학교를 세우고, 다음 세대를 양육할 때 세계선교의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우리 나라의 역사도 선교사들이 학교 세울 때부터 달라졌습니다. 1888115일 이화학당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린이 12명과 부인3명이 모여 성경 공부를 한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이화여대가 우리 역사에 얼마나 큰 공헌을 했습니까? 그 이화여대도 아주 작은 학교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배재학당을 선두로 1885년부터 19102월 사이에 선교사가 설립한 기독교계 학교가 모두 790여개입니다. 이것이 해방 당시, 2,500여 개로 늘었습니다. 그러다가 요즘 어떻게 되었습니까? 2007년 통계로 보면 기독교 학교가 240여로 줄었습니다. 70-80년대 여의도에 모였던 그 구름 떼와 같은 성도의 물결은 다름 아닌 해방 전후 이들 미션스쿨에서 배우고 자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미션스쿨이 줄자 기독교 인구도 줄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할 때 항상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른입니다. 어른을 상대로 가르치고 어른을 상대로 전도하고 어른을 상대로 치료하고, 그것이 빠르기는 합니다. 그러나 멀리 보면 선교를 더디게 하는 길입니다. 요즘 세게에서 가장 빨리 발전하고 있는 세력이 이슬람입니다. 이 이슬람의 선교전략이 무섭습니다. 우리가 가끔 T.V에서 무서운 이슬람 무장게릴라들을 봅니다. 그리고 무참하게 사람을 죽입니다. 미국의 911테러를 주도했습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하지만 이유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지금 영국에만 150만의 이슬람교 신자가 있습니다. 영국을 방문해보면 이슬람 사원이 너무 많습니다. 무려 1,800개나 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슬람 학교가 3,000개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아직도 형식상 기독교 국가인 영국의 먼 미래를 잡기 위해 철저히 어린이를 선교의 대상으로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곧 기독교를 능가할 상황에 있습니다. 1980년대는 전세계 18%에 불과했던 이슬람이 2000년에는 23%였고 2025년엔 전 세계인의 31%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카톨릭, 개신교 다 합친 기독교를 앞서는 것입니다. 왜 이렇습니까? 어린이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른들은 내버려두고 철저하게 다음 세대를 공략합니다. 그 결과 유럽에만 이슬람이 1,680만입니다. 아프리카는 빠른 속도로 이슬람화되고 있습니다. 과거에 전통적인 기독교 지역이었던 케냐, 탄자니아, 아프리카 동부지역이 빠른 속도로 이슬람화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공산당처럼 뼈속깊이 이슬람교리를 새겨주니까 자라서 빈 라덴, IS, 이슬람 국가를 꿈꾸며 사람을 서슴없이 죽이는 것입니다. 그들 선교의 결과입니다.

 

저는 지난 8, 뉴욕에서 뉴욕 순복음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선교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교회는 2000년부터 에콰도르, 도미니카, 온두라스, 볼리비아 등 중남미 전역에 기독교학교 10개를 세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약 만여 명의 어린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동안 수없이 남미를 방문하며 매년 수십명씩 여름, 겨울 단기 선교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카톨릭에 눌려 전혀 효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선교가 그때 뿐이었답니다. 깊히 뿌리내리지를 못했다는 겻입니다. 그래서 왜 그런가 생각했답니다. 그랬더니 쉬운 어른 몇 사람만 대상으로 선교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어린아이들에게 집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천년부터 어린이 선교에 집중했답니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은 학교라는 것입니다. 학교를 세우고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가르치니까 그때부터 남미선교의 뿌리가 내려졌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린이는 복음을 빨리 받아 들입니다(사진5). 어른들보다 100배쯤 쉽고 마음이 옥토와 같아 쉽게 복음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빨리 자랍니다. 금방 중학생, 고등학생 되고, 대학에 진학하여 어른이 됩니다. 그러면 배운대로 삽니다. 부모들도 자녀들을 가르쳐 주니까 다 믿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세우니까 교회가 바로부흥됩니다. 그래서 뼈속깊히 카톨릭 교인이었던 그들이 뼈속까지 거듭난 기독교인이 됩니다. 사실 우리 교회도 지금까지 수없이 선교했습니다. 제가 온 이후로 인도, 탄자니아,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많이 다니고 많이 봉사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놓고 보니까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선교하고 왔다고 대단하게 여기지만 그들은 우리를 기억조차 하지 못합니다. 남기는 선교를 해야 합니다. 그 민족을 어릴 때부터 키워야 합니다. 어린 심령에 하나님의 말씀을 떨어뜨려야 합니다. 어릴 때 심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입니까? 여러분은 선교하는 신자입니까? 거두려고 하니까 없지 뿌리려고 하면 어디나 뿌릴 수 있습니다. 추수하기 전에 우리는 뿌려야 합니다. “선교에 사용된 자금은 지출이 아니라 투자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나라의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선교는 지출이 아니라 투자입니다. 우리가 할 일이 이것입니다.

 

 

 

 

 

 

 

 

 

 

 

 

 

 

 

 

Re-vision(8) (9:35-10:4) 2014.9.28()

행복한 하나님의 나라의 씨앗을 뿌립시다

교회 종(사진1)

 

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11:1,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16:18,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농촌교회에 씨를 뿌려야 합니다.

9: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9:36, “이는 저희가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100:3, “여호아가 우리 하나님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34:15-16, “나 주 여호아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어 있게 할지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긴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리라”.

 

어떻게 농촌교회를 도울 수 있을까?

- 설과 추석때 고향교회 출석하기

- 선교회 차원에서 농촌교회와 자매결연 맺기

- 농촌교회 자녀를 위한 기숙사 제공

- 성탄절이나 추수감사절 감사헌금을 모아 농촌교회 장학금으로 보내기

- 고향교회 다시 짓기

전 교인 여름 봉사(사진2).

 

개척교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16:18,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8:1,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흩어졌다”=“디아스페이로”=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는 것

 

세종장로교회(사진3)

광교한신교회(사진4)

 

해외에 학교선교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해외어린이 학교(사진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