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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ion(10) 나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2014.10.12(일)

Re-vision(10) 2014.10.12()

나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오늘은 총회가 정한 남신도 주일입니다. 남신도 주일로 지키는 것은 오늘 이 시대에 남자로 사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는 뜻일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남신도 여러분, 남자로 살만 합니까?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어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고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살만한 일입니까? 참 우리가 사는 시대는 남자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10년 됩니다만, 2004.11. 영국문화원에서 영국문화원 창설 70주년 기념으로 전 세계 102개국 비영어권에 사는 사람 4만명에게 물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가 무엇입니까?” 1위는 mother, 어머니가 꼽혔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게 추억을 주고 눈물을 주는 단어가 mother,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father, 아버지는 어떻습니까? 몇 위에 들었을 것 같습니까? 70위 권안에도 없었습니다. mother, 어머니에서 시작해서 70위까지 토끼, 고양이, 하늘, 오리, 호수, 하늘 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father는 없었습니다. 얼마나 아버지가 인기가 없었으면 토끼, 오리보다 못하겠습니까?

 

남자들이 사는 세상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 주는 통계가 또 있습니다. 이것은 요즘 통계입니다만, 대한민국 남편 3명당 1명이 아내에게 맞고 산답니다. 3명중 1명은 암에 걸리고, 40대 남성의 자살률은 여성의 4배랍니다. 물론 우울증은 여자가 남자보다 많습니다. 그러나 자살율은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남자들이 사는 세상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맞고 살지만 않아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이런 아내가 있었답니다. 멀리 여행을 가면서 냉장고에 이렇게 써붙였답니다. “까불지 마라”.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 까스 조심, “”, 불조심, “”, 지갑조심, “”, 마누라 찾지 말고, “”, 라면이나 먹고 있으라 말이랍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그 옆에 이렇게 붙였답니다. “웃기지 마”. “”, 마누라 없으니 웃고 살게 됐다. “”, 마누라 없으니 기가 산다. “”, 마누라 없으니 지갑도 마음대로 쓴다. “”, 마누라 빠빠이.

 

과연 남자들이 사는 세상은 쉽지 않습니다. 평생 가족들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어깨가 무겁습니다. 어머니는 자나 깨나 자식 걱정하지만 아버지는 자나깨나 먹고 살 걱정을 합니다. 거기다 경제가 좋지 않습니다. 수명은 늘어 100세 시대를 사는 데 퇴직은 일찍 합니다. 자녀들은 늦게 결혼해서 60이 넘어도 아버지는 학비대고 결혼시켜야 합니다. 자기도 젊을 때 꽤 큰 꿈이 있었고 지금도 야망의 불이 꺼지지 않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작아 집니다. 그래서 두터운 현실의 벽에 낙망, 우울증, 자살, 어두운 인생의 그림자가 다가옵니다.

 

그런데 저는 최근에 남자뿐 아니라 여자, 모든 사람이 꼭 외부 환경때문에만 불행한가를 생각했습니다. 우리를 정말 불행하게 한 것이 무엇일까? 우리를 그 많은 자살로 몰고 간 것이 무엇일까? 요즘의 자살은 못먹고 살아서 자살이 아닙니다. 잘살고 유명하고 잘나가는 데 자살합니다. 고등학생 아들의 성적이 부진하다고 자살한 아버지도 있었습니다. 주식이 1,000이하로 떨어졌다고 술마시고 자살한 남자도 있었습니다. 도대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다가 성경통독을 하면서 출20장을 읽게 되었습니다. 거기 1절에서 5절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20:1-5,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이 말씀은 십계명의 첫 번째 조항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 이끌고 시내산에 갔을 때 하나님이 불가운데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처음 읽을 때 저는 십계명이군. 그래 우상섬기지고 살아야지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눈을 감고 이 말씀을 묵상하자 점점 새로운 의미가 다가왔습니다. 제가 생각한 우상은 나무나 돌에 신의 형상을 새긴 어떤 조각이었습니다. ”우상이라고 할 때 우리에게 금방 다가오는 것은 절에 있는 부처나 돌로 새긴 신주단지, 장승, 부적, 굿, 이런 것들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저와 비슷하게 느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상은 그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상은 돌이나 금속에 새겨진 종교적 상질물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대신하는 무엇입니다. 우상이란 곧 하나님 대용품입니다. 피조물인데 그것을 하나님처럼 여기는 무엇입니다. 순간적인 것을 영원한 것으로 여기고, 제한된 것을 무한한 것으로 여기는 무엇입니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짝퉁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떤 우상을 마음에 새기면 사람은 우상을 섬기고 우상은 사람을 지배합니다. 처음에는 우상을 좋아하다가 나중에는 우상 없이는 못 살게 됩니다. 우상도 처음에는 사람을 부드럽게 대하다가 나중에는 무자비하게 지배합니다. 그래서 우상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불행하게 되고 절망과 자살로 달려가는 이유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도 우상이 있습니까? 아마 없다고 느끼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을 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있습니다. 종류는 다르지만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더 하나님앞에 겸손해져야 합니다. 우리안에 무슨 우상이 있는지 알아야 우리 불행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통해 제가 발견한 우상은 크게 다섯 가지입니다.

 

자식의 우상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우리에게 자식의 우상이 있습니다. 저는 창22장을 읽으면서 이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아브라함입니다. 고향을 떠나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빌었던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 아들 주세요”. 고대 사회에서 아들이 없는 것은 수치였습니다. 그것은 저주의 상징이기도 하고 절망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에게 25년만에 아들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아마 천하의 모든 것을 얻은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청천의 날벼락같은 음성이 들렸습니다. 22장입니다. “아브라함이 네 아들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바치라”. 왜 하나님은 그렇게도 힘들게 얻은 아들을 바치라고 한 것일까요? 그나마 그냥 바치라는 것이 아니라 번제로 바치라고 말합니다. 번제는 양이나 소를 죽여 갈기 갈기 찢고 각을 떠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어떻게 짐승도 아닌 자식을 그렇게 바칠 수 있습니까?

 

도대체 아들을 주었다 뺏는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22:2절에 비밀이 있습니다. “여호아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드리라”. 그냥 아들이 아닙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입니다. 얼마나 아브라함이 아들을 사랑했으면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이겠습니까? 아들에 대한 아브라함의 사랑은 단순한 사랑에서 숭배의 수준으로 발전해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 아브라함은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아들이 태어난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했지만 믿음의 저울추는 아들쪽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사랑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사랑해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문제였습니다. 만일 창22장에서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아브라함은 아들을 하나님처럼 여기며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살았을지 모릅니다. 다행히 아브라함은 아들이 하나님이 아니라 여호아가 하나님이라고 고백함으로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했지만 그 사건이 없었다면 아브라함은 아들보다 소중한 것은 하나님이며, 아들은 결코 하나님 이 아니라는 것을 마음속에 새기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자녀를 얼마나 사랑합니까?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겠습니까? 부모가 자녀사랑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문제는 이 질문입니다. “우리는 자식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아닌가?” “사랑하다 못해 이제는 거의 우상이 된 것이 아닌가?”. 자료를 보면 40-50대 남자의 40-50%가 기러기 아빠랍니다. 중년 남성의 반절이 아내와 자식을 외국에 보내고 혼자 삽니다. 그것도 못하면 무능한 아버지가 되고, 그렇게 하다 힘들면 외로운 아버지가 됩니다. 오죽하면 아들의 성적 때문에 비관해서 죽는 아버지가 있겠습니까? 자식의 학업 때문에 울고 웃는 부모들,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들을 보면 눈물겹습니다.

 

인간이 겪는 고통중에 슬픔과 절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슬픔과 절망은 다릅니다. 슬픔은 위로할 수 있는 고통입니다. 여러 가지 가운데서 좋은 것 하나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절망은 위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잃었어도 대체할 수 있으면 슬픔, 대체할 수 없으면 절망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자식 때문에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더 이상 자식을 대체할 무엇이 없다는 것 아닙니까? 자식이 모든 것이라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절망하고 자살하는 것 아닙니까? 다른 말로 자식이 우상이라는 것 아닙니까? 자식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상으로 삼고 있으니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면 우상은 우리를 노예로 만듭니다. 자식이 우상이면 자식은 우리를 노예로 부립니다. 그래서 자식 때문에 살고 죽습니다. 그때 떠올려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4,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고”,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다른 신들”, 복수입니다. “어떤 형상이든지”, 대상의 제한이 없습니다. “절하거나 섬기지 말라”. 자식은 사랑의 대상이지 섬김의 대상이 아닙니다. 자식은 피조물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육체적 사랑의 우상이 있습니다.

두 번째 우리에게 있는 우상이 있습니다. 육체적 사랑의 우상입니다. 저는 이것을 삼손을 통해 봅니다. 삼손은 그 좋은 인물과 가정에도 불구하고 여자에 눈에 팔려 망한 사람입니. 그런데 삼손이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13장에 보면 삼손은 아주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특히 그의 아버지가 훌륭했습니다. 그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나기 전 요즘으로 말하면 작정기도를 합니다. 아마 40일 이상은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태아나자 하나님께 나와 이렇게 기도합니다. 13:12절입니다. “마노아가 이르되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이 정도면 대단한 부모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나실인으로 키웁니다. 그런데도 삼손은 곁길로 나갑니다. 처음에는 자기 동네에 사는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다가 점점 지경을 넓혀 14장에는 딤나로, 16장에는 가사까지 갑니다. 그래서 들릴라를 만납니다. 그리고 망합니다.

 

구약의 야곱을 아십니까? 야곱이 레아, 라헬 둘 중 라헬을 선택한 이유가 딱 하나 있습니다. 얼굴이 예쁘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기준은 분명합니다. 라헬은 에쁘고 레아는 예쁘지 않았습니다. 여자를 보는 이 기준은 3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자들의 일반적인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예쁜 여자 하나 얻으려다가 마음에 안드는 여자까지 얻은 야곱은 뒤에 얻은 두 여종과 함께 네 여자의 이전투구와 질투, 다툼의 소용돌이속에 일생을 고생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문제는 육체적 사랑은 반드시 성적 일탈과 범죄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육체를 좇는 삶은 필연적으로 욕망의 바다로 달려갑니다. 저는 최근에 한 통계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기혼 남자의 60-70%가 아내외의 다른 여자와 외도를 경험했다는 통계입니다. 여기서 외도는 다른 여자와 사귀는 것 뿐 아니라 육체적 관계까지를 포함합니다. 이런 통계는 착하게 사는 많은 남자들을 분노케 하는 통계입니다. 그래서 제가 소스를 밝히겠습니다. 경향신문 유인경 기자가 쓴 대한민국 남자들이 원하는 것이라는 책입니다. 남자들 틈에서 자라고 남자들과 함께 일하는 유기자는 이런 통계가 있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자기 생각으로는 60-70%가 아니라 90%이상의 남자들이 그랬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이 상품화되고 쾌락의 수단이 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오래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남자는 사랑을 이용해서 섹스를 얻고, 여자는 섹스를 이용해서 사랑을 얻으려 한다”. 남자나 여자나 이 성의 상품화시대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성은 필요합니다. 성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성은 결혼의 울타리안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아가서에서 슬람미 여인을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4:12,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성은 잠겨 있어야 하고 봉해 있을 때 아름답습니다. 우물이 터져 밖으로 흘러 나가면 위험할 뿐 아니라 세상이 깨집니다. 미국의 경우입니다만 미국 포르노 시장의 규모는 연간 15조 규모로 미, 프로축구와 프로농구, 프로야구의 매출을 모두 합친 것보다 크다고 합니다. 밖으로 흐르는 육체적 쾌락은 끊임없이 를 추구합니다. 절제가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은 가정이라는 관계성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잘못된 성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떠나 가정을 파괴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까지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무서운 우상이 성입니다. 성이 우상이 되면 성은 우리를 비참한 노예로 묶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과 가정을 굳게 지킵니까? 특히 남신도 여러분, 여러분의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혹시 아내와 남편외에 다른 이성을 만납니까? 단호하게 끊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우상이 되어 여러분을 가혹하게 짓밟을 것입니다.

 

물질의 우상이 있습니다.

세 번째 우상이 물질의 우상입니다. 물질을 우상삼은 대표적인 사람이 삭개오입니다. 여리고의 세무서장 삭개오는 돈버는 재미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돈은 돈을 낳고 돈은 그의 인생을 타락하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남몰래 삥땅하고 남몰래 훔쳤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대담해져서 세금 내러 오는 사람들에게 아예 요구했습니다. “내 몫도 내시오”. 그 결과 그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19:2절입니다.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부자가 된 삭개오는 행복했을까요? 행복했으면 뽕나무에 올라갔겠습니까? 행복했으면 예수님 만나러 왔겠습니까? 그래서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이 가르칩니다. 12:15,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간통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간통은 자기도 알고 남도 아는 죄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순간, 서로 압니다. “, 우리가 죄짓는구나“. 그런데 탐심은 속에 있기 때문에 아무도 모릅니다. 눈에 안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가 욕심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포인트가 이것입니다. “탐심은 곧 우상숭배다“.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왜 탐심은 우상숭배입니까? 욕심부리면 그 욕심이 죄를 낳고 그 죄가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욕심은 우리가 죄의 종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우리가 물질을 다스리지 않으면 물질이 우리를 다스립니다. 우리가 물질의 좋은 주인이 되지 않으면 물질은 우리를 다스리는 나쁜 하인이 됩니다.

 

예수님이 누가복음에서 말씀하셨습니다. 16:9,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삼으라”. 왜 예수님은 물질을 불의의 재물이라고 하셨을까요? 물질안에 내재한 타락한 죄성을 말씀한 것입니다. 물질속에 숨어 있는 중독의 신을 말한 것입니다. 그 신을 성경은 맘몬신이라고 합니다. 돈이란 인간에게 가장 대표적인 대용신, 작퉁신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 말씀입니다. 16:9,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삼으라”. 내가 가진 돈을 남에게 줘야 합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내놓기 까지 돈은 우리를 계속 지배합니다. 다행히도 삭개오가 그렇게 했습니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빠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인자는 일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노라.”

 

돈으로부터 자유얻으려면 돈을 내놓아야 합니다. 빌 게이츠는 하루 평균 20억씩 자선한다고 합니다. 누구나 빌 게이츠처럼 못하지만 우리도 움켜 쥐지 말고 자주 내 놓아야 합니다. 헌금의 의미에 그런 점도 있습니다. 3세기의 교부 클레멘트가 말했습니다. “십일조는 탐욕의 해독제다”. 십일조를 드려 하나님의 것을 인정하는 순간, 탐욕의 우상으로부터 자유케 된다는 것입니다. 가지고만 있다고 부자되는 것 아닙니다. 잘 내놓아야 진짜 부자입니다. 영성가 리쳐드 포스터가 말했습니다. “돈은 주조된 인격이다”. 돈을 움켜쥘 때 우리 인격이 움켜쥠을 당하고 돈을 드릴 때 우리 자신을 드립니다. 예수님말씀대로 물질 있는 곳에 우리 마음도 있습니다. 지지난 주 선교에 대해 설교한 후 교인 여러분께 물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동그라미 하세요. “내 평생 교회 하나 개척하고 싶다”. “내 평생 해외에 학교 하나 세우고 싶다”. 몇 명이나 응답하겠나 염려했습니다. 놀랍게도 교회세우고 싶다”. 36, “학교세우고 싶다”, 42명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에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앞으로 축복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물질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성공의 우상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있다면 성공의 우상입니다. 성공의 우상에 사로잡힌 사람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행8장에 나오는 마술사 시몬입니다. 그는 이미 마술로 많은 부와 인기를 누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보니까 빌립이 기도하는 데 수많은 병자가 고침을 받습니다. 자기 보다 월등하게 능력이 많습니다. 그래서 빌립에게 와서 돈을 주며 자기도 그런 능력을 받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이미 성공했는 데도 더 성공하려는 욕망, 성공에 목마른 사람들, 자기의 성공을 위하여 성령까지 돈으로 사려는 마술사 시몬을 보고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8:20,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조차 자신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시몬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저는 어쩌면 저 자신의 이야기구나 하고 무릎을 칠 때가 많습니다.

 

저는 그동안 열심히 충성하면 목회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제 내면에는 제가 무서운 우상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성공의 우상입니다. 그것은 겉으로 나타난 제 목표는 충성스러운 목회자가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말로 하는 제 목표는 예수님 닮는 목회자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제 목표는 목회에 성공하여 큰 교회 목회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미 한 두 번의 성공을 통하여 내가 노력하면 얼마나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저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술사 시몬같은 자입니다. 저보다 능력많은 사람들을 흉내내고 우리 교회보다 큰 교회를 부러워 하고 어떤 방법이든 교회만 성장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작퉁 목사입니다. 성공과 승리를 잘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성공을 바라지만 하나님은 승리를 바란다는 것을 너무 자주 잊어 버리는 목사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눈으로는 성공했으나 하나님의 눈으로는 실패한 이 시대의 많은 교회들을 따라가는 시몬같은 자입니다. 제가 돈이 있었다면 돈으라고 써서 교회를 키웠을 것입니다. 그나마 돈이 없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성공의 우상, 그 우상은 우리 모두에게도 있습니다. 성경은 신기하게 한번도 성공이란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성경이 쓰는 단어는 구약에서는 형통이고 신약에서는 승리입니다. 성공은 물량적입니다. 승리는 영적입니다. 성공은 가시적입니다. 승리는 비가시적입니다. 성공은 돈으로 이룹니다. 승리는 믿음으로 이룹니다. 성공은 내가 이룹니다. 승리는 하나님이 이룹니다. 우리는 승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지 성공한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성공과 승리는 누구를 주인으로 모시느냐의 문제입니다. 우상이 우리의 주인이면 성공할 수 있으나 승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주인이면 우리는 승리합니다. 인간은 크게 세 가지 요소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유전, 둘째 환경, 셋째 개인의 선택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중 두 가지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첫째 유전, 부모로부터 타고 나는 것입니다. 누가 타고나는 것을 마음대로 하겠습니까? 부모, 시대, 조국, 혈액형, 기질, 고향, 형제, 가족, 신체적 특징, 유전적으로 타고난 재능, 이것들 중 우리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둘째 환경, 우리가 환경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릴 때 자랐던 환경, 우리가 자라면서 만난 사람들, 그들로부터 받은 좋거나 나쁜 영향,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나요? IMF, 우리가 선택한 것인가요? 세월호 사건, 우리가 예견할 수 있었나요? 남북한 상황, 세계정세,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개인적인 선택입니다. 그 양이 미국의 티모디 켈러 목사님은 4%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4%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 그 선택이 옳고 그른 것을 어떻게 압니까? 우리의 현재의 선택은 미래에 대한 분명한 예측으로부터 옵니다. 그런데 누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까? 설령 미래를 예측한다고 해도 선택의 옳고 그름의 문제는 도덕적인 가치의 문제입니다. 무엇이 그리고 누가 그것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합니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유전도, 환경도 우리가 할 수 없습니다. 개인적 선택도 커다란 한계안에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붙잡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지으시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환경을 다스리시고 하나님만이 우리를 붙드사 우리로 하여금 옳은 판단과 선택을 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돌아가는 결론은 무엇입니까? 20:3-5,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100:3절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아멘. 어떻습니까? 여호아가 저와 여러분에게 유일한 하나님입니까? “여호아가 하나님인 줄 너희는 알지어다”. 오로지 여호아만 여러분의 하나님입니까? 다른 신은 다 짝퉁이고 가짜라는 것을 아십니까? 오로지 하나님 섬깁니다. 언제나 차를 몰고 가다가 복음송가가 나와 따라 부르다 은혜받았습니다. “주님만을 찬양하리. 주님만을 사랑하리. 찬양받기 합당하신 존귀하신 나의 구세주”. 남신도 여러분, 여신도 여러분, 우리를 유혹하는 어떤 우상도 하나님이 아닙니다. 참 하나님은 여호아 하나님, 그가 어려분을 지키고 인도하고 복주시기 바랍니다.

 

 

 

 

 

 

 

 

 

 

 

 

 

 

 

 

Re-vision(10) 2014.10.12()

나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20:1-5,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우상=하나님 대용품, 짝퉁 하나님

 

자식의 우상이 있습니다

22:2“여호아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드리라”.

 

슬픔과 절망은 다르다

 

육체적 사랑의 우상이 있습니다.

13:12, “마노아가 이르되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남자는 사랑을 이용해서 섹스를 얻고, 여자는 섹스를 이용해서 사랑을 얻으려 한다”.

 

4:12,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물질의 우상이 있습니다.

19: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12:15,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16:9,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삼으라”.

교부 클레멘트, “십일조는 탐욕의 해독제다”.

리쳐드 포스터, “돈은 주조된 인격이다”.

 

성공의 우상이 있습니다.

8:20,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함께 망할지어다”.

 

성공과 승리는 다르다

 

인간 세 가지 요소

(1) 유전

(2) 환경

(3) 개인의 선택

 

20:3-5,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100:3“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주님만을 찬양하리. 주님만을 사랑하리. 찬양받기 합당하신 존귀하신 나의 구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