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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이윤재목사

성탄예배(마2:1-12) 왕의 선물 2005.12.25(일)

성탄예배(2:1-12) 2005.12.25()

왕의 선물

오늘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절입니다. 우리 옆에 있는 분에게 인사합시다.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절이 되면 사람들은 선물을 주고 받습니다. 여러분도 선물을 받으셨나요? 성탄절의 가장 좋은 선물은 카드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어떤 분이 저에게 카드를 주었습니다. “목사님, 벌써 한 해가 저물었네요. 지난 한 해 매 주일 오늘은 어떤 말씀을 주실까 기다렸습니다. 매 주일 주신 말씀이 저를 은혜에 흠뻑 적시게 했습니다. 내년에도 목사님이 생수의 통로이기를 기도합니다. 목사님,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성탄절 아침”. 자신의 글씨로 쓴 작은 카드 하나가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카드 이상의 선물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성탄절 선물 베스트 3위가 있습니다. 1위가 악세사리, 2, 태블릿 P.C, 3위 공연 티켓 혹은 여행 티켓, 남자들이 좋아하는 선물도 있습니다. 1위가 현찰, 2위가 IT 상품, 3위 가방, 지갑. 어린이가 좋아하는 선물도 있습니다. 1위가 닌텐도, 2위가 파워 레인저, 3위가 레고, 뽀로로, 4위가 강아지, 휴대전화 등이랍니다. 어떤 선물이든지 선물은 주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 받는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그런데 역사상 최고의 선물의 원조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동방박사입니다. 오늘 동방박사는 모든 종류의 선물의 원조로 가장 좋은 선물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2:1-2절입니다.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에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여기서 동방은 지금의 이란, 이라크지역입니다. 이 지역에 고대 페르시아 국가가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이곳에 살면서 중요한 일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는 데 그들은 별을 보고 미래를 예언하는 점성가들이었습니다. 옛날에는 다른 방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이 발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을 보고 박사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박사들이 어느날 별을 보았습니다. 그 별은 유난히도 밝고 컷습니다. 분명 그 별은 인류의 큰 인물이 태어날 징조였습니다. 유명한 천문학자 케플러는 2천년전의 별의 움직임을 연구하며 주전 45월 말경에 목성과 토성이 합쳐져 큰 빛을 내는 사건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동방박사들이 아마 그 별을 보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별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왔는 데 그때가 12월이니까 무려 7개월을 그 별을 따라 온 것입니다. 지금의 이란, 이라크에서 이스라엘까지 거리는 대략 1500킬로,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무려 세 배나 되는 거리입니다. 그 사이에 유프라테스같은 큰 강이 있고 큰 사막도 있습니다. 헬몬산을 비롯하여 높은 산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 높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아기 예수께 나왔습니다. 동방박사 이야기를 두 마디로 요악하면 이렇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스라엘까지 왔나? 별을 보고. 왜 왔습니까? 선물드리려고.

 

2장에 별에 대한 이야기가 세 번 나옵니다. 2, “별을 보고”, 9,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10, “별을 보고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별은 우리가 가는 방향을 가르킵니다. 그 방향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도달할 수퍼 스타입니다. 성경의 예수님은 빛이요 별입니다. 9:5, “내가 세상에 있을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다”. 22:16,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어떻습니까? 동방박사를 통해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별의 신앙입니다. “별을 보고”, “별을 따라”, “별로 인해 기뻐하며”. 여러분의 방향도 예수님께 고정되어 있습니까?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으로 인해 기뻐하겠습니까?” “바다를 항해하는 자는 다른 배를 바라 보지 말고 북극성을 바라 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배를 보면 방향이 바뀔 수 있습니다. 북극성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동방박사는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선물입니까? 2:11절입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황금과 유향과 몰약입니다. 그러면 질문은 이것입니다. 왜 동방박사는 왜 하필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드렸을까? 그것말고 많은 선물이 있었을 텐데 왜 이 세 가지를 선물로 드렸을까? 이유가 있습니다.

 

황금: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

동방박사가 드린 세 가지 선물은 단순한 선물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인지 고백하는 것입니다. “황금은 왕권을 의미합니다. 동서 고금의 모든 왕들은 금으로 치장한 옷을 입었습니다. 그 색이 모두 황금색입니다. 금으로 치장한 의자에 앉고 금으로 수놓은 옷을 입고 금으로 지은 궁전에서 살았습니다.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님께 황금을 바친 것은 예수님은 세상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마태복음은 두 사람의 왕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헤롯과 다른 하나는 예수님입니다. 헤롯은 주전 37년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예수님은 주전 4년에 태어나 인류의 왕이 되었으니 같은 시대에 살았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왕은 너무 달랐습니다. 헤롯은 권세와 향락과 쾌락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일생 권력을 잡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피나는 일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본래 유대인의 왕이 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라 에서의 후손 곧 에돔족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사막지역에서 떠돌아 다니는 유목민이었는 데 어쩌다 장사해서 돈을 벌어 로마 황제에게 뇌물을 바쳤고 그로 인해 지방 세무행정관의 직분을 얻었습니다. 헤롯은 벼락출세한 아버지를 따라 종종 로마에 가서 황제를 만났고 타고난 처세술로 황제의 마음을 사 주전 37년 유대왕을 하사받아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은 헤롯의 재임기간중 태어났습니다. 평소에 정권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있던 헤롯은 왕이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박사들을 보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2:8,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네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이 얼마나 교활한 말입니까? 권력을 위해서 자기 아내, 자기 처남, 심지어 자기 아들까지 죽인 헤롯이 예수님께 진정으로 경배하려고 그를 찾았겠습니까? 결국 헤롯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두 살 미만의 사내 아이를 모조리 죽였습니다. 피비린내는 살육이 베들레헴에서 일어나고 만 것입니다. 헤롯은 일생 10명의 아내를 얻었고 18명의 아들을 두었고, 사치와 향락을 즐기기 위해 예루살렘에는 여름궁, 겨울에는 따뜻한 여리고에 겨울궁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마사다에는 깍아지른듯한 졀벽에 3층짜리 별궁을 짓고 사우나 시설까지 지었습니다.

 

그런 반면에 예수님은 스스로 종이 되어 십자가에서 왕이 되신 분입니다. 96:10이 예수님에 관하여 정말 중요한 것을 예고합니다. “모든 족속에게 말하라. 주께서 다스리신다”. 그런데 초대교회 사본에는 이 말씀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족속에게 외치라. 주께서 나무에서 다스리신다”. 나무는 유대인들에게 저주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시편의 말씀은 예수님이 나무에서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나무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모양이 재미있습니다. 당시 로마의 십자가는 죄수들의 고통을 오래 연장시키기 위해 두 가지 장치를 했습니다(사진). 하나는 세딜이라고 엉덩이 근처에 나무 판자를 대고 다른 하나는 스페다니움이라고 발 근처의 나무 막대기를 달았습니다. 그래서 고통에 시달리는 죄수들이 그 참혹한 고통을 잊기 위해 몸부림칠 때 엉덩이 근처의 세딜에 몸을 앉히고 스페다니움에 다리를 올려놓아 잠시 고통을 잊으려고 했습니다. 시편의 말씀은 십자가는 엉덩이 판자가 사형수들에게 의자가 되고 발 판자발등상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가 보좌였고 십자가에서 세상을 다스렸습니다.

 

문제는 우리는 모두 헤롯을 싫어하면서도 헤롯처럼 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헤롯은 거짓과 속임수와 포악과 쾌락, 폭력과 권력으로 다스린 왕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스며든 왕이 헤롯왕입니다. 우리는 헤롯을 미워하면서도 헤롯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늘 조심할 것이 그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썻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토요일까지에 지은 죄를 주일날 회개하고, 월요일에는 다시 그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우리가 헤롯의 지배를 받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수능때마다 입시부정이 전국을 강타합니다. 한때 수백명의 학생들이 좋은 대학 들어가려고 핸드폰으로 조직적인 입시부정을 저질렀습니다. 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명문대를 졸업한 한 여성이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된 남자와 윤락행위를 하다 발각되었습니다. 왜 그랬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유학가기 위하여 그렇게 했습니다“. 이 여학생은 카나다 어학연수비 1,000만원을 벌기 위해 그런 일을 저질렀습니다. 우리안에 들어온 헤롯의 망령입니다. 몇 년전에 밀양에서 청소년들이 집단으로 여학생을 성폭행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후에 일어났습니다. 피해자 가족이 고발하자 가해자 학부모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고한 놈들 두고 보자. 어디 잘되나 두고 보자.” 언제부터 우리의 가치관이 이렇게 헤롯적이 되었는지 얼마나 우리안에 헤롯으로 가득차 있는지 깜짝 놀랍니다. 쾌락주의, 성공주의, 한탕주의, 우리 안에 헤롯입니다.

 

헤롯은 우리를 다스리려고 끊임없이 우리 곁에서 기회를 엿봅니다. 런던에 한 목사님 이 글을 썻습니다. 한번은 전차를 타고 차비를 냈는 데 운전사가 너무 많은 잔돈을 거슬러 준 것입니다. 우리 돈으로 500원을 냈는 데 5만원을 준 것입니다. 목사님은 잔돈을 세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많은 돈을 주다니. 순간적으로 자기에게 하나님이 축복으로 주셨나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아 결국 돌려주기로 하고 운전수에게 다가갔습니다. “이렇게 많은 돈을 주시다니. 실수하신 것 같아요”. 그때 운전사가 목사님을 보고 말했습니다. “아니요. 실수가 아닙니다. 어젯밤 목사님이 교회에서 정직에 대해 설교를 하셨는 데 한번 시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이런 헤롯이 엿보는 세상속에 살아갑니다. 세상은 우리가 믿는 대로 살아가나 늘 엿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주인입니다. 우리를 다스릴 사고, 가치, 행동은 무엇인가? 헤롯인가? 예수님인가? 물질적인 헤롯인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인가? 돈인가? 정직인가? 거짓인가? 진실인가? 우리를 다스리는 것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미국 교수님이 제게 카드 한 장을 써 주었습니다. “앞으로 영적 지도자로 살아가야 할 당신이 평생 싸워야 할 네 가지 s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아(self), 섹스(sex), 게으름(sloth) 그리고 물질(silver)입니다”. 언제나 제 목회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이 목회자인 저에게 헤롯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평생 헤롯이 아니라 예수님을 여러분의 왕으로 섬기겠습니까? 헤롯이 가까이 올 때 목숨걸고 거절하며 오직 예수님에게만이 여러분을 다스리도록 하겠습니까? 그것이 황금의 선물입니다.

 

유향: 예수님은 우리와 교제하시는 친구

동방박사가 두 번째로 드린 선물이 있습니다. 유향입니다. 유향은 과거 성전에서 성도들이 기도할 때 피웠던 향입니다. 모락 모락 올라가는 향처럼 제사장들은 아침 저녁으로 향을 피웠습니다. 제사장들은 들에서 딴 감람유 향을 곱게 찧어서 24시간 성전 제단에 향으로 피워 올렸습니다. 향은 자기를 태우며 밤새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성경을 기도를 향으로 표현합니다. 141:2,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향이 기도를 상징하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향은 위로 올라갑니다. 기도도 올라갑니다. 향은 자기를 태웁니다. 기도도 자기를 태운 만큼 됩니다. 향은 향을 냅니다. 기도는 영혼의 향기입니다. 자기를 깨뜨려 나오는 기도의 향기만큼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냄새는 없습니다. 구약시대 하나님은 백성들이 제사할 때 그 냄새를 맡기를 좋아하신다고 말합니다. 제사를 통해 맡기 원하셨던 향은 기도의 향이었습니다. 향은 또한 자욱히 퍼져 신비로운 느낌을 줍니다. 기도는 신비입니다. 하나님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신비입니다. 그 향이 모이면 대접으로 흘러내립니다. 8: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요한계시록에서 땅에서 성도들이 기도하면 하늘에 있는 대접에서 넘쳐 응답으로 임한다고 말합니다. 기도는 향의 넘침입니다. 일정한 분량의 기도가 쌓이면 대접에서 흘러내리듯 응답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기도는 질이 아니라 양입니다. 아직 응답이 없는 것은 아직 기도의 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가 예수님께 유향을 바친 것은 예수님을 나의 기도의 대상으로, 나의 대화의 파트너로, 내 문제의 해결자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으면 그 분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분이 내 안에 내가 그 분 안에 있도록 늘 주의해야 합니다.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구하라보다 거하라가 먼저입니다. 구하라는 한번 나오고 거하라는 두 번 나옵니다. 기도의 진수는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거하라가 안되면 구하라도 안됩니다. 어쩌다 내 안에 예수님이 없으면 금식이라도 해서 그 분을 회복해야 합니다. 4462,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즐겁고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신앙생활은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 분을 믿어 어떤 결과를 얻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과 함께 사는 것 자체가 신앙입니다. 성경 최고의 신비는 예수님안에 죽은 내 안에 예수님이 사는 것입니다. 어느날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의 집을 어떤 제자가 노크했습니다. “마틴 루터 박사님이 안에 계십니까?”. 이때 안에서 아니요라는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그러면 누가 계시나요?” 제자가 물었습니다. 루터가 말했습니다. “루터는 죽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대신 사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 대신에 예수님이 사십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우리 몸의 향을 살라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자기를 태워 하나님께 나아갑니까? 초는 자기를 태워 빛을 냅니다. 향은 자기를 살라 향을 냅니다. 감나무에 돌을 던지면 감나무는 감을 주고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 향기를 내어 줍니다. 자기를 태워 예수님의 향이 나오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아침으로, 저녁으로, 날마다 자기를 태워 기도해야 합니다. 141:2,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로 만난 향입니다. 누구나 예수님께 가면 하늘의 향이 납니다.

 

몰약: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는 생명

동방박사들이 예수님께 바친 세 번째는 몰약이었습니다. 몰약은 옛날부터 방부제로 쓰였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시신에 몰약을 발랐습니다. 유대인의 풍습중 하나는 사람이 죽으면 몸에 몰약을 바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활에 대한 믿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유대인은 두 번 장사합니다. 일단 죽으면 몰약을 바른 후 헝겊으로 묶어서 동굴이나 골짜기에 둡니다. 그리고 한 1년이 지나면 육신이 다 해체됩니다. 그러면 뼈만 추려서 항아리에 넣습니다. 몸에 몰약을 바른다는 것은 몸에 대한 부활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 예수께 드린 세 가지 선물의 순서를 기억해야 합니다. “황금”, 예수님은 우리의 왕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인이고 우리를 다스릴 분입니다. 그를 믿는 생각, 가치, 믿음이 우리를 다스립니다. “유향은 예수님은 기도로 교제하는 친구입니다. 예수님은 왕일 뿐 아니라 친구입니다. 왕으로서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고 친구로서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한 가지로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왕인 이유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인 이유입니다. 그것은 그가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생명이 아니라면 그가 우리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가 생명이 아니라면 그와 함께 거할 수도 없습니다. 그는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것이 몰약입니다. 그래서 세 선물중 몰약이 제일 중요합니다. 왕이 예수님의 통치권을 보여준다면, 유향이 예수님과의 교제의 중요성을 말해준다면 몰약은 예수님의 본질입니다. 그는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그를 믿는 자도 부활하고 생명을 얻습니다.

 

이 생명이 이미 우리에게 있습니다. 벧후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다같이 주셨으니”. 생명은 우리가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주셨습니다.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 생명은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입니다. 경건은 그것을 향한 본성적 갈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도 주시고 경건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골3:3이 중요합니다.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안에 감추어졌슴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이 감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감춰져 있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없는 것이 아니라 안 보이는 것 뿐입니다. 몰약은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죽었으나 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으며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서 나와 세상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를 믿는 우리는 죽지만 죽지 않습니다. 우리는 육신으로는 죽지만 영으로는 죽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아서 예수님과 왕노릇할 것입니다. 이것이 몰약입니다.

 

성탄에 오신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일까? 왕입니다. 친구입니다. 생명입니다. 저는 201010, 칠레 광산에 매몰되었다 살아난 광부의 이야기가 성탄에 오신 예수님을 가장 잘 나타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사진). 당시 광부 33명이 지하 700미터 땅속에 매몰되어 생사를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는 깜짝 놀랐습니다. 결국 69일만에 구조되었는 데 구조의 방법은 원통형 캡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매몰된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다 캡슐이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래서 먼저 굴착기를 이용해 수직으로 구조용 구멍을 뚫고 캠슐을 집어 넣었습니다. 캡슐의 크기는 사람 하나가 겨우 나올만큼의 크기 66cm였습니다. 그 캡슐안에는 사람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산소공급기, 조명장치, 안전벨트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결국 캠슐을 통해 광부들이 하나씩 밖으로 나왔는 데 사람 한 명 한명이 캡슐에서 나올 때마다 세계는 환호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하늘에서 캡슐같은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지금 사람이 33명이나 지하 700미터 깊은 땅속에 매몰되었습니다. 그들이 그들을 건지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사람이 땅을 파고 들어가서 건지는 방법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굴착기로 땅을 파고 캡슐을 집어 넣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온 것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 캡슐안에는 산소, , 안전장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생명이 있었습니다. 빛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힘이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캡슐을 통해 나오면 살았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하면 삽니다. 예수님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몰약입니다. “예수안에 생명있네. 주님이 빛이 되시네.예수안에 생명있네. 주님이 빛이 되시네”.

 

여러분은 동방박사가 드린 선물에 대하여 잘 들으셨습니까? 그러면 이제 드릴 질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슨 선물을 예수님께 드리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예수님을 최고의 선물로 받지 않았습니까? 동방박사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드렸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무슨 선물을 예수님께 드리겠습니까? 제가 교인중 몇 분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이 성탄절에 무슨 선물을 예수님께 드리겠습니까?” 교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예수님께 드릴 선물을 말했습니다. 함께 보시겠습니까?

 

이서연() (피아노)

이미영집사(자녀. 4남매)

서용주집사(자녀, 3남매)

이순자권사(봉사, 섬김)

정귀례권사(기도)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무슨 선물을 예수님께 드리겠습니까? 공부하십니까? 지식과 지혜를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업합니까? 물질과 소유권을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녀를 기릅니까? 자녀를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 일꾼으로 부름받았습니까? 봉사와 섬김을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청소년, 청년입니까? 젊음과 비전을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모두 동방박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친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요 부활입니다. 그 분이 오늘 나셨습니다.

 

 

 

 

 

성탄예배(2:1-12) 2005.12.25()

왕의 선물

2:1-2,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에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9:5, “내가 세상에 있을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다”.

22:16,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황금: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

2:8,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네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6:10, ““모든 족속에게 외치라. 주께서 나무에서 다스리신다”.

 

십자가 (사진). 세딜. 스페다니움

 

우리는 모두 헤롯을 싫어하면서도 헤롯처럼 되고 싶어합니다.

 

앞으로 영적 지도자로 살아가야 할 당신이 평생 싸워야 할 네 가지 s가 있습니다. 그것은 self(자아), sex(섹스), sloth(게으름) 그리고 silver(물질)입니다”.

유향: 예수님은 우리와 교제하시는 친구

141:2,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즐겁고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몰약: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는 생명

벧후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안에 감추어졌슴이라”.

 

칠레 광산(사진).

 

예수안에 생명있네. 주님이 빛이 되시네.예수안에 생명있네. 주님이 빛이 되시네”.

 

예수님

 

황금 유향 몰약

왕 기도 생명

다스리신다 교제하신다 살리신다

 

무엇을 드릴까?